24. 또 다시 지주의 횡포(9)

이튿날 이사를 준비하는 열찬씨가 창고에서 짐을 챙기는데 얼마 전 새로 산 삽과 구하라고 부르는 폭이 넓은 괭이가 보이지 않아

(이상한데. 삽에 다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하면서 물탱크아래 윤여사네 연장이 있는 곳을 뒤져봐도 없었다. 그렇다면 평소 무엇이든 필요하며 열찬씨네 창고에서 가져다 쓰는 윤여사가 자동차에 삽과 괭이를 싣고 일광의 밭에 갔다가 그냥 두고 온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남은 연장과 분무기, 비료, 농약, 비닐, 끈, 포대, 갑바라고 부르는 천막천 등을 운반하기 좋게 정리하고 미리 철물점에서 사온 마대에 닭똥 거름을 퍼 담는데

“선생님, 지금 어디 계세요? 밭이세요?”

평소보다 훨씬 상냥한 목소리로 윤 여사가 전화를 하더니

“이사준비하시지요.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하며 곧 온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세상의 지주가 소작인을 대하는 태도란 세상에는 자기 땅을 가진 지주와 그 땽을 소작하는 소작인이 있어 평생 눈치를 보며 굽실거려야 하는 갑을(甲乙)관계인데 그 을인 열찬씨가 이제 자기네 밭을 부치지 않고 제 땅을 마련 새로운 갑(甲)이 되어 출발하니 먼가를 의식하여 전과 같이 대하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삿짐을 도와준다며 온다지만 사실은 뭔가를 챙기고 감시할 것만 같은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40킬로들이 새 포대에 50개에 거름을 다 담고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허드레 포대 대여섯 개에 닭똥거름을 퍼 담기 시작하는데 윤 여사가 도착해

“선생님, 일찍도 오셨네요. 어제 밤에 마신 술이 적은 술도 아닌데.”

하며 웃어 보이더니

“난 선생님이 그저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쓰는 분인 줄 알았는데 또 그렇게 애절한 발라드가수인줄 몰랐어요.”

“에이, 무슨 가수씩이나?”

“아닙니다. 매 곡마다 얼마나 절절하게 부르던지 듣는 사람 마음이 다 뭉클했어요.”

하며 자루입구를 벌려주어 금방 일을 마치자

“이제 남은 거름은 두고 가는 거지요?”

“예. 윤 여사님 쓰세요.”

“닭똥거름이야 그냥 얻은 거지만 저기 소똥거름은 꽤 돈이 들어간 것일 텐데요?”

“예. 3.5톤에 20만 원을 주고 사서 한 반쯤 썼으니까.”

“고맙습니다. 잘 쓸 게요.”

하고 커피나 한잔 하자며 농막으로 가서 열찬씨가 물을 끓이는데

“선생님, 저 개수대 두고 가면 안 되나요?”

“개수대라? 영서할매가 무릎도 안 좋고 허리도 안 좋아 꼭 필요한 건데.”

“아니 새 농막 지으면 새것으로 하나 장만하지요?”

“아, 알았어요.”

“이 비닐도 이렇게 여러 가지 있으면 하나 주고 가지요?”

하면서 대답할 틈도 없이 반도 채 안 쓴 폭 120센티 한 뭉치를 따로 챙기더니

“요건 같은 사이즈가 두 통이나 되네.”

90cm짜리를 또 하나 챙기고 다시 창고 안을 빙 둘러보더니

“이 물 조리게도 하나 주고 가세요.”

하고 허락할 틈도 없이 챙겼다. 비로소 탁자에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며

“이런 이야기를 드리기가 뭐 하기는 하지만 이선생님 오시는 바람에 전봇대만 세워놓았던 전기를 넣느라고 60만 원, 또 지하수도 평소에 늘 쓰는 것이 아니라 분담금을 안 내고 버텼는데 사람이 상주하며 늘 쓰는 판이라 또 10만 원 돈이 들어가기도 했답니다.”

“예. 안 그래도 영서할매가 늘 그 점을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호영이할매가 그건 어차피 있어야할 시설이니 당연히 지주가 넣어야 하고 그로 인해 땅값도 올라가고 손이 쉬운데다 이번에 세운 농막이 그럴 듯해 나중에 땅을 팔 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야지요. 그래서 우리가 목돈 들여 농막을 인수받은 것 아닙니까?”

“아무튼 고맙습니다. 한 해 동안 잘 지냈습니다.”
“뭘요. 보통 사람이면 엄두도 못 낼 황무지의 개간을 무려 200평 가까이나 해주셨으니. 우리 부부는 가선생님이 캐낸 돌무더기만 보면 감탄을 금하지 못한답니다.”

“예. 그건 우선 농사도 지어야하지만 그 보다도 늘 한 뼘의 땅이 아쉽던 빈농의 아들로서 사람이 한 평생 밥을 먹고 또 제 처자식과 후손까지 이 땅의 밥을 먹고 산다면 최소한 한 이, 삼백평의 땅쯤은 일구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또 구서동에서 떠나올 때 속에 맺힌 게 좀 있어서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생각하는 내가 스스로 뭘 좀 안다고 글까지 쓴다는 내가 당연한 트집 같은 지주의 심술에 좌절할 일은 아니다, 나는 나대로 하나의 신념이나 고집 같은 걸 가지고 내 인생을 내가 개척하듯 내 땅을 일굴 것이라는 생각으로 여기 오리의 황무지에서 칡을 캐고 돌을 빼면서 한 사내로서의 신념과 자부심을 다진 것이지요.”

“하하하. 그런 것도 모르고 사방에서 농사짓는 사람이 머리도 허연 사람이 힘도 좋지만 미쳐도 보통 미쳐서는 저리 하지 못할 것이라고 처음 변강쇠로 부르던 별명을 미친 영감이라고 수군대기도 했다더군요.”

“하하, 머리가 허연 미친 영감이라? 그럼 백수광부(白首狂夫)로 하면 되겠네.”

“백수광부라니요? 어디선가 들어본 것도 같은데...”

“예. 어느 때, 누가 지은 지 확실치는 않지만 어느 술주정뱅이 노인이 홍수가 져 물결이 사나운 강을 건너 술을 사러 가려고 건너가려는데 그 아내가 제발 건너지 말라고 울면서 애원했지만 기어이 강을 건너다 물에 빠져죽었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아아, 그렇구나!”

“그걸 얼마 전 강을 죽음으로 대체해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란 영화를 만들어 히트 친 기억이 나네요.”

“아, 그렇구나! 우리 신랑하고 티브이로 그 영화를 보고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데...”

“그렇지요. 이 세상의 모든 부부는 저 죽음이란 강을 앞두고 서로가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를 부르다 마침내는 홀로 되어 탄식을 하게 되는 그런 존재인 것이지요.”

“선생님, 혹시 그 노래의 가사를 아시나요?”

“원문이 한문으로 전해져 현대적 정서하고 맞을지는 몰라도 아마 이럴 것입니다.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임은 결국 물을 건너시다

마침내 물에 빠져 죽었으니

장차 임을 어이할꼬.”

“혹시 작자가 누군지는 아시는가요?”

“그 백수광부의 아내라고도 하고 그걸 지켜보던 여옥(麗玉)이란 여자라고도 하는데 아무튼 그 내용은 백수광부를 떠나보낸 아내의 탄식인지라 여옥이란 사람이 바로 백수광부의 아내일 수도 있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규태씨의 가사해설에 보면 백수광부의 아내가 아닌 옆에서 바라보던 사람이라고 나온답니다.”

“그렇구나? 오늘 좋은 걸 배웠는데 이제 언제 또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

가슴이 뭉클한 것 같은 표정이더니

“저, 선생님!”

은근한 표정으로 올려다보아

“예. 말씀하시죠.”

“제가 선생님을 댁까지 모셔다드릴 테니 우리 일광 밭에 잠깐 들려서...”

“예. 그래서?”

“전에 선생님이 쳐준 울타리를 좀 손봐주셨으면.”

“울타리라? 이 한겨울에...”

“예. 고춧대를 뽑고 마늘과 양파를 심었는데 산돼지가 내려와서 짓밟을까 봐서요.”

“산돼지는 고구마나 옥수수 같은 곡식종류가 아니면 잘 덤비지 않는데요.”

“아니에요. 울타리가 무너져 있으니 불안해서 잠이 안 와서요.”

해서 하는 수 없이 따라나서는데 아래쪽에 자동차를 주차하고 나오면서

“선생님, 삽과 괭이는 가져가셔야죠.”

하며 트렁크를 여는데 낮에 찾던 새 삽과 구하가 고스란히 나와

“...!”

어안이 벙벙했지만 차마 말을 못 하는데 윤여사는 아무 내색이 없었다. 말뚝 몇 개를 새로 박고 울타리를 다시 치고 내려오니 벌써 오후 다섯 시가 넘어 해가 지고 있었다.

“늦었는데 우리 이선생 불러 식사하실까요?”

“아, 아닙니다.”

묘하게도 사람을 언짢게 하고 피로하게 하는 이 여인으로부터 어떻게든 빨리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다음날 열찬씨의 컴퓨터도 챙길 겸 가벼운 농기구들을 명촌의 현장으로 옮기려고 영순씨와 같이 오리로 가서 짐을 챙겨 싣고 농막앞뒤를 한 바퀴 비잉 둘러보며

“또 한 마디 세월이 지나갔구나? 꿈에도 생각하지 않던 구서동 시내가 끝나고 오리시대가 또 끝나고 이제 새로운 명촌시대는 영원한 정착이 될 것인가?”

하고 열찬씨가 감회에 젖는데

“내 역마살이 든 당신하고 사느라고 이사하나는 참 원 없이 해보요.”

영순씨가 혀를 차는지라

“뭔 역마살씩이나? 난 연산동에서만 40년 넘게 산 진득한 사람이야.”

“연산동에서만 오래 살면 뭐 해? 그 안에서 셋방만 열 번도 더 옮기면서. 그것도 부족해서 이번에는 밭을 또 세 번이나 옮기네.”

“그게 그렇게 되나?”

스스로 생각해도 기가 찬데

“형님, 연산동형님!”

아래쪽 보일러김사장이 부르더니

“농장 옮긴다면서요? 그 동안 참 좋았는데.”

하면서 울타리를 따라 휘적휘적 걸어와 플라스틱소쿠리에 든 닭과, 오리와 기러기와 칠면조의 여러 종류 알을 건네주며

“집에 가서 삶아 잡수소. 그간 술도 많이 얻어먹고 정도 많이 들었는데.”

“그래 앉으소. 이별주나 한 잔 합시다.”

하자 영순씨가 소주와 김치를 꺼내오며

“안주가 없어 우짜노? 냉장고에 삼겹살 조금 있는데 구울까요?”

하는데

“아, 아입니다. 내가 언제 안주 가지고 술 묵는 거 봤능교? 막걸리 한 병인 소주 한두 잔은 그저 김치나 소금안주면 딱이지요.”

전부터 안주 먹기를 죽기보다 싫어해, 자네도 이제 환갑이 오늘 내일 하는 판에 계속 안주 없는 술을 먹으면 갈 곳은 딱 한 곳뿐이라며 억지로 냉장고의 반찬을 이것, 저것 꺼내자

“아, 콩 이파리 지가 다 있네. 내가 콩 이파리, 깨 이파리 지 좋아하는 걸 형수가 우째 알고?”

하며 먹어보고는

“형수 솜씨가 보통이 아니네. 형님은 술맛깨나 나겠소.”

하며 마시다 하루는 가자미조림을 먹어보고

“야, 예술이다. 까지매기에서 이래 깊은 맛이 나다니!”

감탄하기도 했다.

“우짜노? 오늘은 콩 이파리 깨 이파리, 까지매기도 없는데.”

“그마 김치나 주이소. 형수가 담은 김치면 그것 하나만 해도 안주가 넉넉하다.”

하고 소주 한 병을 비우고 안주도 없으니 이제 그만하자고 하자

“형님, 저 짐들을 다 우짤껑교? 차 부르면 암만 못 해도 돈 십만 원 달랄 텐데 저까짓 닭똥거름 옮긴다고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게 생겼소.”

“그래도 할 수 없지. 명촌에는 당장 쓸 거름이 없으니까?”

“그래요? 그럼 내가 한 바리 하지요.”

하며 금방 보일러와 부품을 싣고 다니는 포터차의 화물칸을 정리하고 닭똥거름 앞에 정차시키고

“40키로 포대라 무거울 텐데 내가 올리고 형님은 위에서 받으소.”

하고 부지런히 싣고 나서

“농기구나 다른 짐도 다 싫으소. 하는 김에 두 번 일 안 되게.”

하면서 농기구와 분무기, 물조리개, 갑바 등을 모조리 싣고

“잘 둘러보소. 혹시 빠진 것 있는지?”

“싣기는 다 실었는데 술을 묵어 운전이 되겠나?”

“아, 소주 반병이야 불어도 안 나오지만 벌써 거름 싣느라고 다 깼소.”

하고는 화물차에 자리가 없으니 영순씨는 컴퓨터만 싣고 앞장을 서라고 했다. 마침내 명촌리 현장에 도착해 6미터 도로의 깨끗한 바닥에 짐을 부린 김씨가

“형님, 나중에 집을 지으면 어떨지 모르지만 지금은 정신이 하나도 없소.”

직설적인 성격대로 한 마디 던지더니

“실망이다, 실망!”

하고 손을 탈탈 털며 차에 오르는데

“김 사장, 고맙다. 내 마늘도 뽑아야 되고 하니 한번 갈게. 그 때 연락하면 제수씨하고 우리 넷이 식사나 한 번 하든지.”

“예. 드는 정은 몰라도 나는 정은 있다고 머리 허연 형님이 인자 안 보일 거라고 생각하니 섭섭하네.”

“보내는 니가 그런데 떠나는 나는 안 그렇겠나? 얼굴도 시꺼멓고 성질도 고약하지만 부지런하고 손끝 야물고 의리도 있는 우리 김 사장이 눈에 삼삼하겠지.”

“형님 입은 찢어져도 말은 바로 하라고 내가 얼굴이 씨꺼머면 형님은 아예 숯덩거리지요.”

“그래 맞다. 니는 인도징이고 나는 흑국놈이다.”

마주보며 허허 웃고 손을 한번 흔든 뒤 김 사장이 떠났다.

“아이구, 회의시간 늦겠다. 미혜언니 기다리겠다.”

고속도로에 차를 올리며 영순씨가 조바심을 내는데

“그래도 짐을 옮기고 나니 속이 다 시원하다.”

“그건 나도 그래요. 김사장 그 양반이 보기보다 참 속이 깊은 사람이네.”

“그래. 다음에 우리가 밥 사자. 그런데 오늘 회의는 어데고?”

“양정시장안에 고성횟집.”

“저런? 미혜처형이 암환자라서 회를 못 먹잖아?”

“자기는 신경 쓰지 말래. 달걀찜이랑 다른 찌게다시도 있지만 뽈라구나 한 마리 구워서 먹으면 된 대.”

“그래. 요즘 병세는 어떻고?”

“항암치료중인데 아직은 견딜 만하대. 밥도 잘 먹고.”

“응, 다행이네.”

부지런히 달려 4촌 형제 계를 하는 고성횟집에 도착하니 15분이 늦었다.

“미안해요. 우리 때문에...”

영순씨의 말에

“뭐 그럴 수도 있지. 오빠들 동생들 들었지요? 우리 가서방이 언양에 땅 사서 농장하면서 집짓는다고.”

영순씨의 무안을 덜어주려 큰 소리로 말하며 둘러보는데 아무도 반응이 없이 분위기가 사아하자

“이런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더니...”

평소에 밥술이나 뜬다고 시건방지니 어떠니 옛날에는 잘 살다 지금은 형편이 어려운 사촌들이 수군거리던 것을 떠올리며

“우리 좋은 말로 축하도 해주고 다음에 놀러도 가자.”

해도 아무도 반응이 없다가 열찬씨가 소주를 두어 잔 마시고 나자

“이 서방, 욕봤네. 축하하네.”

소방관으로 퇴직한 헌범씨가 비로소 아는 척을 하며

“인생살이 뭐 별 거 있나? 한방에 한 7억쯤 땡기면 되지.”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