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오의 '생활법률 산책' (9)승소판결의 함정(하)

이상오 승인 2019.01.07 18:47 | 최종 수정 2019.02.08 17:47 의견 0
법무법인 '서면' 제공

우리 민사소송법은 소송에서 패소한 측에서 승소한 측의 소송비용을 부담하도록 합니다. 일종의 상식이기도 한데 자세히 들어가 보면 함정이 있습니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승소를 하였을 때에는 원칙적으로 패소한 측에 소송비용 전액을 부담하도록 하지만, 이 사건과 같이 소송가액의 일부만 승소하였을 때에는 법원은 통상 승소, 패소의 비율대로 소송비용을 부담하라고 판결문에 명시합니다.

원래 일부 패소 사건에서 당사자간의 소송비용 분담비율을 정하는 것은 법원의 재량에 속합니다. 소송법에도 그렇게 되어 있지만 법원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승소, 패소 비율대로 나누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법원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해서 위법한 것은 아니며 사안에 따라 법관이 자유롭게 비율을 나누기도 합니다.

이 사건의 경우 소송을 제기한 측에서는 조금이라도 이겼으니 승소라고 생각하겠지만 소송을 당한 측 입장에서는 2억 원을 청구한 것을 400만 원으로 막았으니, 거꾸로 보면 1억 9600만 원 만큼 승소를 한 것입니다.

이 소송에서 집주인의 승소율은 2%이고, 패소율이 98%입니다. 소송비용 분담은 보통 5%단위로 산정하기 때문에 법원은 집주인에게 전체 소송비용의 95%를, 건설사 측에 5%를 부담하라고 판결했습니다. 건설사 측에서 부담한 총 소송비용의 95%를 집주인이 상환해야 하고, 건설사 측에서는 집주인이 부담한 소송비용의 5%를 상환해야 합니다.

건설사 측에서는 변호사 선임비용으로 1,000만 원을 지출했고 집주인 측에서는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았기 때문에, 양측이 서로 주고받을 소송비용 상환액을 정산하면 결국 집주인이 건설사 측에 상환해야 할 소송비용이 훨씬 커집니다.

물론 건설사 측에서 변호사 선임비용으로 지출한 금액이 전부 그대로 소송비용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소송비용을 상환받기 위해서는 소송이 완전히 종료된 이후에 별도로 법원에 신청(‘소송비용액 확정 신청’)을 하여야 합니다. 이 경우 법원은 대법원에서 정한 규칙(‘변호사보수의 소송비용 산입에 관한 규칙’)에 따라, 판결문에 명시된 대로 승소, 패소비율 대로 정산하여 상환하여야 금액을 결정합니다.

이 사건에서는 집주인 측이 건설회사 측에 약 500만 원 이상 소송비용을 상환하라는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법에 따라 계산해보면 대략 그렇게 나옵니다. 집주인은 소송에서 일부 이기고도 금전적으로는 오히려 손해를 보는 일이 발생한 겁니다.

변호사보수를 얼마나 소송비용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가는, 변호사를 선임하여 소송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100%를 이겨도 변호사비용을 전부 상환 받지 못하면 배보다 배꼽이 클 수도 있습니다. 소송이 상급심으로 올라가고 몇 차례 거듭되다보면 소송비용 때문에 집안 말아먹는다는 말도 나옵니다.

대법원에서 소송비용으로 인정하는 변호사보수 금액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논란이 있어왔습니다. 그동안 몇 차례 개정되었고, 2018년 4월에도 큰 폭으로 개정되었습니다. 이제 소송에 패소하는 측에서는 이전보다 큰 부담을 떠안아야 합니다. 현재 기준으로, 소송가액이 1억 원인 소송에서 완전패소를 하면 상대방의 소송비용을 약 700만 원 이상 물어내야 합니다. 소송가액이 높을수록 물어내야 할 소송비용도 커집니다. 안될 줄 알면서 무리하게 소송을 제기하지 말라는 취지이고, 승소한 측에는 현실에 가깝게 최대한 소송비용을 상환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사실 위 사건의 집주인이 변호사에게 소송을 맡겼더라면 처음부터 소송가액을 그렇게 높게 잡지는 않았을 거고, 피해 감정결과가 나왔을 때 소송가액을 그에 맞춰서 감액했을 겁니다. 만약 집주인이 소송 중에 소송가액을 400만 원으로 낮추고 판결이 그대로 났다면 집주인은 100% 승소한 것이 되기 때문에 자신이 지출한 감정비용과 법원에 납부한 소송비용을 거의 전부 상대방 건설사로부터 상환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법원에서도 소송 중에 소송가액의 변경 사유가 발생하면 통상 당사자에게 소송가액을 변경할 것을 유도합니다. 당시 그 집주인은 자신의 고집을 꺽지 않고 처음의 소송가액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결국 패소한 비율만큼 상대방의 소송비용까지 물어내야 했던 겁니다. 법원이 알아서 소송가액을 변경해 주면 좋겠지만, 소송가액은 청구하는 측이 알아서 변경해야 하고 법원은 청구하는 범위 내에서만 판단하는 것이 소송법의 대원칙입니다.

이 사례와 같이 지나치게 많이 청구해서 소송비용을 물어내야 하는 경우도 문제지만, 가끔은 청구하는 측에서 잘 몰랐거나 실수로 원래 청구해야 할 금액보다 적게 소송가액을 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법원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해도 소송가액 보다 더 지급하라고 판결하지는 않습니다. 그 만큼 소송가액을 정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언론에 종종 나오는 ‘승소판결’의 이면을 보면 비슷한 사례가 많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한 사건 중에도 무리하게 소송가액을 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로 정치인, 연예인 등 공인의 명예와 관련되거나,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는 사건들에서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예상되는 판결액은 수백 수천만 원인데, 소송가액을 수억 원으로 청구하는 것은 당사자 입장에서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법원이 재량을 발휘해서 소송비용을 상환하지 않아도 되도록 판결하면 다행입니다만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지 않는 한 소송비용 부담으로 인한 금전적 손실은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손해배상을 둘러 싼 민사 분쟁이 시작되면 대개 감정이 격앙되어 이성적인 판단을 잘 하지 못합니다. 당사자가 경험하는 주관적인 손해는 객관적으로 보이는 손해를 훨씬 능가합니다. 법의 무지를 법원이 알아서 보호해 주지도 않습니다. 법원은 어느 편에도 설 수 없는 심판의 위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분쟁이 발생했을 때는 사안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예측하는 전문가의 시각이 필요합니다.

<법무법인 '서면' 사무국장>(051-817-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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