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조직의 실상을 날카롭게 파헤친 '검사님의 속사정'과 '주진우의 정통시사활극 주기자' 표지.
과거 법조팀에서 일할 때부터 친분이 있던 한 검찰 간부와 저녁 식사를 했다. 안부와 농담 몇 마디가 오가던 중 그 간부가 물었다.
“이 기자, 검찰이 왜 조폭 수사를 경찰에 다 맡기지 않고 직접 하는 줄 알아?”
“글쎄요, 뭐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그게 말야, 하늘 아래 두 조직은 있을 수 없는 법이거든.”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빵 터졌다. 하지만 정작 말을 꺼낸 당사자는 꽤나 진지한 표정이었다. 20년가량 몸 담아온 평소 검찰의 조직문화에 많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농담 같지만 농담이 아니야. 솔직히 검찰이 그(조폭) 조직보다 더하면 더했지 모자라지 않잖아. 검사들이야 그 안에만 있다보니 그것을 당연시하며 살고 있는 것이고...”
실제 그랬다. 생각해보면 옆에서 지켜본 검사들 상당수가 “검찰조직이 이래서는”, “검찰조직을 위해서는”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검찰’이라는 말만큼이나 ‘검찰조직’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래서일까, 검사들에게 한번 부장검사로 모신 선배는 변호사로 개업을 했건 기업체 임원이 됐건 항상 “부장님”이었고, 한번 총장을 지낸 이는 영원히 “총장님”이란 호칭이 따라 다녔다.(이순혁, 『검사님의 속사정』, 씨네21북스)
사람은 관계 내 존재이다. 하여 나아갈 자리, 머물 자리, 물러날 자리를 스스로 결정하기란 참 난망한 일이다. 이번 동창회 준비 모임의 참석도 내 본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궁벽한 내 서재까지 동기들이 차로 데리러 온 것은 나에 대한 예우 차원이 아니란 것도 알았다. 평소 ‘벼슬 없음이 최고로 높은 자리’(無位最貴)로 알고 글줄이나 읽고 있는 한미한 친구가 어쩜 구색친구로서 필요한 때도 있는 법이었다.
준비 모임의 시무(時務)는 ‘자랑스러운 동문인’을 결정하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동창회 임원들이 이미 점찍어 둔 모양이었다. 추천이 아니라 누구를 명토 박아 대면서 동의를 구했다. 이번에 대령에서 장군으로 진급했단다. 군 단위 시골 고등학교에서 별을 단다는 게 얼마나 영광인가. 더구나 육사도 아니고 3사 출신으로 별을 달았으니, 당연히 모교를 빛낸 ‘자랑스러운 동문인’ 상을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논리였다.
인정한다. 육사 출신도 열에 한 명 정도 대령까지 진급하고, 그것만 해도 군대생활 성공한 것이라고들 한다고 들었다. 그러므로 시골고등학교와 3사 출신으로 별을 다는 일은 하늘에 별을 붙이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리라. 하지만 장군이 곧 자랑스럽다, 라는 등식에는 동의할 수 없다. 출중한 군인으로서 평가 받아 어깨에 번쩍거리는 별을 단 것으로서 개인은 충분히 보상을 받았다. 그렇지만 ‘자랑스러운’은 그 직분과 직책에서 어떤 성과를 거뒀느냐는 사후 평가에 달린 것 아닌가. 하여 장군에게 상을 주는 것은 뒤로 미루자. 주위에 정말 자랑스러운 동문들이 없는가. 있다. 선배들 대부분은 농사를 짓는다. 힘들고 어려운 농사를 지으면서 부모님 잘 모시고 자식들 제대로 건사하는 동문, 이들이 ‘자랑스러운 동문인’이 아니겠느냐. 상은 이들에게 주어야 한다.
별 반응이 없었다. 선배 임원들은 무슨 뚱딴지 궤변이냐는 표정도 대놓고 지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책상물림쯤으로 치부되었다. 그래도 후배와 동기 몇몇은 음료수 잔에 시선을 고정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으로 되었다. 몇 사람에게나마 가납사니 취급 받지 않는 것만으로 족하다. 내 의견이 받아지길 애당초 바란 것은 아니니까. 소크라테스도 시대의 등에(gadfly) 역할로 만족해했다지 않는가.
검찰도 자세히 보면 내부적으로 복잡다단하다. 1827명(2011년 11월 현재) 검사 가운데 법무부와 대검, 서울중앙지검 등 핵심 기관・부서에 근무하는 엘리트 검사는 10~20%에 불과하다. 언론의 주목을 끄는 사건들을 처리하는 이도, 검찰조직 차원에서 내려지는 주된 결정도 모두 이들의 몫이다. 때문에 시민들은 이들이 검찰의 전부인 것으로 안다.(이순혁, 앞의 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는 어땠을까? 어떤 검사는 “죄가 없는 것은 아니었잖냐”라는 반응을 보였고, 또 다른 검사는 “검찰이 죽인 게 맞다. 죄송하다”며 머리를 숙였다. 또 노 전 대통령 수사 당사자는 “우리가 무슨 죄가 있냐? 범죄 척결은 계속돼야 한다”고 반응했지만, 다른 검사는 이들 수사를 진행했던 동료 검사들을 싸잡아 “망나니들”이라고 평했다.(이순혁, 앞의 책)
판검사들은 자신들이 특별한 계급이라고 생각한다. 판사들은 세상에 판사가 있고 일반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검사들은 세상에 판검사가 있고 일반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대체로 판사는 검사를 무시하고, 검사는 판사를 시기한다. 판검사 모두 승진에 목숨을 거는데 판사는 법복을 벗는 것을 두려워하고, 검사는 정치권으로 갈 궁리를 많이 한다.(주진우, 『주진우의 정통시사활극 주기자』, 푸른숲)
내가 만나본 판검사 가운데 똑똑한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고위직에 앉은 사람일수록 형편없었다. 미안한 말이지만 외고나 특목고 출신, 강남 출신 판검사들은 끔찍했다. 우리 판검사들은 암기 과목 공부만 몇 년씩 하다 보니 세상 물정에 어둡다. 그들에게 여행도 하고 세상 돌아가는 것에 관심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조선일보만 읽지 말고 시사IN도 좀 읽으라고.
또 소설을 많이 읽으라고 권한다. 특히 연애소설을. 부족한 인성을 만회할 상상력과 공감능력이 절실하다. 어차피 법전은 적용하면 되는 것이고 소설을 좀 읽어서 ‘피고가 왜 그랬을까?’에 대한 상상력을 키웠으면 좋겠다. 고등학교 때 1등이었는데 그때 20등 했던 친구보다 돈을 더 못 버는 것 따위로 고민할 게 아니라 말이다.(주진우, 앞의 책)
고위직으로 갈수록 양심, 신념, 가치, 법 정신 이런 좋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급격히 줄어든다. 앞에서 말했듯이 공무원은 승진에 목숨을 건다. 특히 검찰이 그렇다. 한 전직 지검장이 말했다. “검사에게 승진과 출세보다 중요한 것은 없어요. 양심이, 신념이 인생을 책임져줍니까. 순진한 소리죠. 주 기자는 꼴통이니 그렇게 사는 것이지.”(주진우, 앞의 책)
“저도 묵묵히 고향을 지키며 농사짓는 선배들이 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배님의 식견이 존경스럽습니다.” 후배가 잔을 권하며 인사를 했다. 의외였다. 우리 동문 중에선 한다하는 후배에게 이 정도의 찬사를 받을지는 정말이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는 20여년 후배로 장군 동문만큼이나 희소성 있는, 경기도 어디 지방검찰청 검사였다. 동창회에서는 기수별로 자리를 구별한다. 하여 끼리끼리 모일 수밖에 없다. 한데 경제적으로 제법 성공한 친구가 굳이 이 검사 후배를 우리 자리로 데리고 왔다.
검사라는 직업의 무게로 좀은 방자하게 굴 법도 한데, 이 후배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입성도 수수하고, 권하는 술잔을 마다않고 받았지만 언행에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친구가 데려오면서 이러쿵저러쿵 내 소개를 하는 끝에 세상과는 한 발 물러나 책 속에만 묻혀 사는 철이 좀 덜 든 징표로서 자랑스러운 동문인 상에 대해 얘기를 한 모양이었다.
“어이 후배, 장래 검찰총장님, 한 잔 받게. 우병우 정도는 뛰어넘어 김기춘이나 황교안 급으로 성장해야지. 나는 김기춘이나 황교안이나 우병우를 충신이라고 생각하네. 시대가 변해서 그렇지, 자기를 발탁해준 대통령에게 충성을 다한 게 무슨 죄냐. 세상은 또 바뀌게 되어 있어. 여자는 자기를 사랑해 주는 사람을 위해 분을 바르고, 선비는 모름지기 자기를 알아준 사람에게 목숨을 바치는 법 아닌가. ‘女爲悅己者容 士爲知己者死’(여위열기자용 사위지기자사)라고 말이야. 사기열전에 나오는 말이다.”
유달리 호기로운 친구였다. 평소에도 대화 중에 고전을 무시로 인용했다. 동기들은 대체로 긍정하는 분위기였다. 후배의 반응이 궁금했다. 감사합니다만 저는 그 분들만큼의 인물이 못 됩니다. 제 직분을 수행하는 것만으로 벅찹니다. 그냥 평범한 일개 검사에 불과합니다, 라며 고개를 숙였다. 우리가 바라는 검사의 인품이란 되게 높은 게 아니라 바로 이 정도의 겸손함이 아닐까. 동문 후배가 검사란 이름에 걸맞은 인품의 소유자여서 퍽 다행스러웠다.
친구는 뭐라 뭐라 쉼 없이 떠들었지만, 그의 말은 내 귓등을 스치는 ‘소리’일 뿐이었다. 다만 머릿속으로는 ‘남자는 자기를 알아주는...’과 김기춘, 황교안, 우병우를 연결시킨 친구의 기발한 상상력에 탄복하고 있었다. 흔히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운운하는 경제인이나 정치인 치고 ‘한 점 깨끗함 있는’ 치들이 드물었다는 경험칙도 떠올렸다.
그러면 ‘士爲知己者死’란 정확히 무슨 뜻이며, 어떤 시대적 맥락에서 유래한 성어(成語)인가? (곧 ‘중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