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꽃이 핀다, 담갈색 팔뚝에 검정색 티셔츠 소매 끝에. 티셔츠 등짝에도 허옇게 소금꽃이 피었으리라.
여름날 취나물 비닐하우스 안은 덥다. 차양막을 씌웠지만 바람도 통하지 않고 후끈후끈하다. 수십 년 농사일에 이골이 난 할머니들과 베트남 인부들이 취나물을 베어 플라스틱 소쿠리에 담는다. 나는 그 소쿠리의 취나물을 비닐 포대에 담고, 빈 소쿠리를 인부들의 뒤에 다시 대어준다.
그리고 10kg씩 저울에 달아 운반하기 좋게 비닐 포대를 묶는다. 동선이 길지 않지만, 한 포대를 꾸리는 데 10번 이상은 허리를 구부렸다 폈다,를 반복해야 한다. 그리고 그 포대를 3~4m 옮겨 5개씩 모아둔다. 감당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앉아서 잘 드는 낫으로 부드러운 취나물을 베어 담은 일꾼들과의 운동량은 비교할 수 다. 더구나 점심시간과 오후 새참 때를 제외하면 줄곧 서서 움직여야 한다. 앉아 쉴 새가 없다.
땀이 쏟아져 흐른다. 앞가슴이나 등때기는 물론 팬티까지 젖는다. 바지주머니에 볼펜과 함께 넣어둔 메모지가 땀에 흠뻑 젖어 메모를 포기할 정도다. 그러나 다행히도 나는 땀에 강하다. 땀을 쏟으면 진이 빠지는 게 아니라, 몸이 가벼워진다. 힘이 센 편은 아니나 원력(原力)은 괜찮은 모양이다.
점심시간이나 일을 마치고 바람기 있는 그늘에서 땀을 들인다. 팔뚝이나 검정 티에서 물기가 사라지면 소금이 하얗게 드러난다. 소금꽃! 아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 아닐까? 소금꽃을 피워본 적이 있는가, 아니라면 그 꽃을 보고 그 꽃의 함의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있는가?
나는 근력노동에 특화된 사람은 아니다. 책상물림이다. 하여 취나물 수확시기인 1월부터 6월까지 네댓 달, 한 달에 끽해야 3~5일 친구 비닐하우스에서 육체노동을 할 뿐이다. 책값 대는 게 주목적이다. 이 목적만으로는 서글퍼지니 의미를 덧댄다. ‘건강 점검’의 호기라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65세부터가 공식적으로 노인이다. 스스로는 장년(壯年)이라고 강변하지만, 노인이 된 지가 벌써 2년이 지났다. 그래서일까? 육체노동을 하면 육신은 물론 정신적 에너지도 함께 고갈함을 절감한다.
일을 마치고 샤워하고 저녁 먹고, 네댓 시간은 확보할 수 있다. 본업이 읽고 쓰는 일인데, 겨우 조금 읽고 전혀 쓸 수가 없다. 쓰는 일은 읽는 일보다 두세 배의 공력이 든다. 따라서 나에게 육체노동은 본업의 입장에서 보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삭제된 시간이 된다. 하기사 그 본업의 연장(책)을 마련하는 시간이니 쓸모가 없는 바가 아니긴 하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한창일 때, 그 운동 가운데 주택개량 사업에서 초가집을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꾸는 일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농촌 주민의 저항이 만만찮았다. 사업실적이 담당공무원이나 해당 지방관청에는 대단히 중요했다. 고심하던 한 공무원이 꾀를 냈다. 저항주민을 설득할 때 이건 ‘국명’(國命)이라고 했다. 국명이란 말을 듣고 대부분의 저항 주민은 꼬리를 내렸다.
우리뿐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민주주의는 최신 발명품이다. 민주주의는 간단히 표현하면 주권이 왕이나 지배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있다는 이데올로기(ideology)이다.
이데올로기는 개인 또는 집단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향하는 가치관과 신념체계를 의미한다. 이는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한다.
분명한 건, 이데올로기는 진리나 진실이 아니라 당대를 지배하는 가치관 또는 신념체계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재명정부의 공식 명칭은 국민주권정부이다. 이재명정부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확실히 못 박은 명칭이다. 그러나 ‘국민주권’은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 노무현의 ‘참여정부’보다 민주주의의 시각에서 보면, 분명히 진화된 개념이다. 그러나 쉽게 와 닿지 않는 개념이기도 하다.
주권(sovereignty)이란 개념은 16~17세기에 서양에서 처음 등장했다. 그 이전 로마 교황의 권위와 간섭 아래 놓여 있던 유럽 각 지역의 왕국, 제후국, 도시 정부 등이 스스로 독립하여 근대적인 국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주권이다.
30년 전쟁을 종결시킨 베스트팔렌 조약(1648년)을 통해, 로마 교황과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간섭을 배제하면서 종교에 대한 국가의 우위를 확립하고, 각 국가를 독립된 실체로 인정했다. 이로써 각 국가는 독립성과 최고 통치성을 갖게 되었고, 이를 주권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주권은 처음에는 당연히 각국 국왕의 것이었다. 그러나 1776년 미국 독립, 1789년 프랑스 혁명 등을 거치면서, 국민이 주권을 가져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여기에서 국민주권 혹은 주권재민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그리고 국민주권을 실현할 수 있는 제도로서 의회로 상징되는 대의민주주의 제도가 만들어졌다.
한국에 국민주권의 개념이 들어온 것은 1880년대였다. 1884년 <한성순보>에서는 내용상으로 ‘국민주권론’이 나오고, 1895년 유길준의 『서유견문』에서는 주권이란 단어가 처음 나온다.
그러나 여전히 군주국이었던 대한제국기에 국민주권이란 말은 불온한 말로 금기시되었다. 한국사에서 본격적으로 이 말이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제정한 임시헌법이다. 제2조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대한인민 전체에 있음”이었다.
1948년 제헌헌법을 만들 때, 국회는 임시정부의 임시헌법을 계승하여 제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제2조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문구를 넣었다. 국민주권 조항이 정식으로 헌법에 들어온 것이다.
그러나 이후 이어진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의 독재로 인하여 국민주권의 조항은 사실상 사문화되었다. 이 조항이 다시 살아난 것은 1987년 6월 항쟁으로 국민의 자유를 되찾고, 참정권(대통령 직선제)도 되찾아, 국민이 비로소 주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였다.
이렇게 보면 우리 역사에서 국민주권이 실행되기 시작한 것은 40년이 채 안 된 셈이다.(‘국민주권’이란 무엇인가/박찬승/한겨레신문/2025.6.6)
70대는 정치성향에서 대체로 보수적, 엄밀히 말하면 수구적이다. 어쩜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국민주권이 본격적으로 실행될 때 그들은 30대였다. 가치관 혹은 신념체계는 이미 확립되었을 때이다.
가치관이나 신념체계는 쉬이 변하지 않는다. 그들은 왕권은 알아도, 무소불위의 독재 권력은 인정해도, 자신이 주권자임을 자각하기에는 학습이 부족하다. 국민주권으로 대표되는 민주주의를 체득, 내면화하기 위해서는 상당량의 학습이 필요하다.
박정희도 공무원도 감히 ‘어명’(御命)이라는 용어는 쓰지 못했다. 명백히 반헌법적이기 때문이다. 하여 유사한 효과를 낼 수 있는 ‘국명’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그리고 그게 먹혔다. 어명 혹은 국명은 명백히 잘못이더라도 반드시 따라야 하는 강제력을 갖는다는 것으로 알기 있기 때문이었으리라. 사약(賜藥)을 마시는 충신을 떠올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계속>
<작가/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