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서상균]

제1장 뜻밖의 귀촌(6)

그렇게 해서 한 때 등말리를 호령하던 박씨네 종가의 토지는 집터를 빼면 겨우 못 위의 논 300백 평, 밭 300평이 남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집을 지으면서 자꾸만 추가경비가 나자 사람이 그냥 올곧기만 한 일식씨는 걱정이 되어 잠이 오지 않았다. 교회에 나가 어서 시험에서 벗어나 은혜를 받게 해달라고 기도를 해도 잠깐 마음이 평온할 뿐 현실적으로는 아무 것도 해결되지 못 했다. 평생 남에게 무얼 빚지거나 빌려본 일이 없는 일식씨의 고민이 점점 깊어지다

“하는 수 없지. 나중에 형편이 되면 다시 사면되지.”

마지막 남은 칼치못 위의 땅을 일부 떼어 팔기로 작정을 한 것이었다.

우선 돈이 급해 팔기는 팔지만 매물 자체가 평수가 넓고 번듯한 땅이 아니라 부동산에 매물로 내어놓아도 누가 금방 관심을 가질 만 한 것이 못 된다며

“글쎄요. 일단 매물로 접수는 하지만 작자가 나타나기는 힘들 거요.”

면소재지 산전과 언양 서부 두 군데 중개사사무소에 접수를 시키고 오던 일식씨가

“이러다가 하자세월일 뿐이야. 또식이는 날마다 돈을 안 준다고 아우성인데 모래에서 싹이 트기를 기다릴 것도 아니고.”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남에게 돈을 빌려줄 여유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누구에게 돈을 꾸거나 혀를 꼬부릴 일도 없이 있으면 있는 데로 없으면 없는 데로 살아온 일식씨로서는 두 살 아래 아시동생으로 부터 돈 독촉을 받는 것만 해도 기분이 언짢은데 같은 교회 집사로서 자기보다 서열이 한참이나 아래인 제수씨 천집사가 원망이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이 무엇보다도 거북했다.

(내 우짜든동 동생 돈은 해결해야지. 내 명색 시숙이자 교회의 선임집사로서 우째 제수씨한테 쇠를 꼬꾸릴 거고...)

하고 연구 끝에 찾아낸 구매자가 같은 당시 자기 밭 위의 산을 사서 전원주택을 짓는다고 땅을 밀어붙이다 사광리주민들의 반대로 공사를 중단한 대학교수였다. 울산까지 찾아간 일식씨의 이야기를 들은 대학교수가 자초지종을 듣고

“그러지요 뭐. 우선 현장이나 한번 둘러보고 당장이라도 돈을 돌려드리지 뭐.”

하고 현장에 와서 칼치못 뒷 두렁을 따라 길쭉하게 누운 논밭을 보고

“그 것 참! 집사님 말대로 참 손이 안 쉽게 생겼어. 우선 도로가 있기는 해도 도면에 없는 현황도로라 건축허가도 나지 않는데다 설령 나중에 절대농지나 시설녹지가 해제되어도 아래위로 필지가 길쭉해 자체로서는 집 지을 면적이 안 나오겠네. 억지로 집을 지으려면 저 가느다란 두 논밭을 하나의 필지로 합필해야 되는데 그게 논이 될지 밭이 될지 아니면 동시에 대지로 될지 형질변경절차도 꽤나 까다롭겠는 걸...”

중얼거리는 소리에 간이 콩알만 해진 일식씨에게

“박집사가 돈이 급하니 일단 사기는 사야지. 여기 땅들 요즘 시가가 어떤지?”

“저 아래 도로가에는 평당 7,80만원에서 100만원도 가지만 자체가 절대농지라 조금만 위로 올라오면 똥값으로 변해 못뚝 바로 밑에는 3,40만원도 채 못 받는다던데.”

“그럼 여기는 못뚝 위에다 땅도 이상하게 생겨 형질변경절차를 거쳐야 될 판이니 조금 깎아 평당 20만원으로 하지.요?”

하고 아래 위 약 600평을 가로로 한가운데로 잘라 제법 반듯한 직사각형의 300평을 사기로 하고

“내가 앞쪽 땅을 살까? 뒤 쪽 땅으로 할까?”

“앞쪽이 아무래도 가치가 낳을 텐데.”

“그럼 집사님이 앞쪽을 하소. 나는 뒤쪽을 할 테니까.”

“그럼 농사는 물론 출입이 힘들 텐데?”

“상관없어요. 농사도 전과 같이 집사님이 지으시고 나중에 개발이 되어 건축허가가 날 때는 뒤에 감나무 밭으로 가는 현황도로든 앞에 칼치 못이 매립되어 길이 되든지 건축에는 지장이 없을 테니까.”

하고 둘이 곧장 법무사사무실로 가서 1/2 지분등기를 하고 당일로 돈 6,000만원을 통장에 꽂아주었다. 일식씨가 진심으로 고맙다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자

“원래 땅을 사려는 마음보다 집사님의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나선 거니 언제라도 형편이 되면 원가에 도로 팔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하며 위로했다. 사실은 그 땅을 삼으로서 땅은 물론 땅을 판 일식씨까지 마을사람들의 반대에 부딪힌 전원주택을 지을 발판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덜컥 산 것도 모르고 그야말로 시험에 든 자신을 구해준 하느님의 은혜라고 생각한 일식씨의 입에선 절로 할렐루야! 가 나왔다.

그렇게 해서 처음 제대로 된 집을 지어 본 또식씨는 제 친형이 아니라면 자꾸만 공기가 늦어지고 추가경비가 나오고 공사자체가 이상해 뜯어내고 다시 시공하기를 반복한 공사가 제대로 완공되기도 힘들었겠지만 어쨌든 자신도 커다란 2층집 하나를 지어본 건축업자가 된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후로 제대로 된 경험이 없는 그에게 건축을 맡길 사람이 있을 리 없는지라 전에 부터 하던 교회첨탑공사에 컨테이너박스나 농막, 천막이나 철제구조물, 소소한 토목공사에 조립식 건물, 심지어 헌집철거에 이르기 까지 온갖 잡일로 전전하다 지난 해 울산의 어느 봉사단체에서 발주한 조립식 경로당 11평을 건축해본 것이 유일한 추가 건축공사경험이였다.

그 판에 뜻하지도 않던 외삼촌을 비롯해 여동생 현주씨에 사형인 천성일씨에 사형친구 김기연씨까지 무려 네 동의 건물을 골티골짝에 짓는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본바닥 등말리출신으로서 이미 건축업을 하는데다 일대가 개발되자 대를 베어내고 정지작업을 하는 일까지 맡은 자기로서는 당연히 남도 아닌 네 사람의 건축을 맡을 것이라는 자신감에 가득 찼다.

신이 난 또식씨는 우선 면소재지 산전에 지붕이 높은 조립식 창고건물 60평, 마당 60평 도합 120평을 전세 3천만 원 월세 100만원에 세를 내어 울주공업사란 커다란 세로간판을 길가에 세우고 떡과 기념품을 만들어 개업식까지 가져 열찬씨가 10만원이 든 봉투까지 보낸 것이었다.

그러나 거창한 개업식을 가지고 제법 반듯한 사무실을 차려 컴퓨터까지 갖추었지만 아직 제대로 된 공사도 없이 하루하루 소소한 일당벌이 작업이나 하며 그 마저 없으면 미리 표준형 기본 창틀이나 골조, 방수목 탁자 등을 만드는 판에 나중에 공사를 대비해 호동씨와 연변할아버지에 후배까지 세 사람이나 잡고 있으니 인건비부담이 여간이 아니었다. 하다 못 해 성철이라고 부르는 후배를 다음 일이 있을 때까지 일단 가지산이나 신불산을 돌며 약초나 채취하게 해 인건비부담을 줄이는 판이었다. 그런 또식씨가 하루는 베어낸 대나무와 커다란 소나무와 바위 등을 밀어붙인 틈의 스무 남은 평 공간의 검불과 돌을 주워내는 열찬씨를 보며

“외삼촌, 지금 뭐하능교? 그런 험한 일을 직접 하면 우짜능교?”

하고 전화를 걸어 호동씨더러 조그만 포클레인 하나를 불러 단 10분 만에 깨끗이 정리해주며

“여게 뭐 숭굴낀 데요?”

“들깨.”

“요게 들깨 심어 두되 나기도 힘들 낀데 3만원 소득 들깨 심느라고 하루 30만 원짜리 포클레인을 동원했네.”

하고 웃는지라

“와? 내가 돈 좀 주까?”

“아임더. 어차피 대나무뿌리 파러오던 날이라...”

하고 한참이나 뜸을 들이더니

“외삼촌집은 언제 건축허가가 나능교?”

“글쎄. 설계사에서 자꾸 끄네. 그런데 니가 와?”

“나는 외삼촌 집 짓느라고 장비 사고 사무실 임대하고 일꾼을 셋이나 홀딩했는데 일이 있어야지요.”

“그래?”

“땅장사 장영희씨도 그렇고 토목공사 프라임 전무도 외삼촌이라면 겁을 슬슬 내며 다른 사람은 엄두도 못 낼 울주군청 건축허가도 금방 날 것이라고 하는데 말입니다.”

“아이다. 내가 공무원출신이라고 안 날 허가가 나는 것이 아니고 나야할 허가를 안 내줄 수가 없다는 정도지. 그렇지만 설계사가 건축허가 접수를 안 하니 어떻게 해볼 수가 없네.”

“예. 제가 알아보니 그 안병도란 건축사가 장영희씨하고 같이 일을 하는 김여사라는 뚱뚱한 여자랑 한통속이 되어 여기저기 택지개발도면을 독점하고 건축허가는 맡아 놓고 일은 안 하면서 커미션을 줄 때까지 골병을 들인다 안 캅니까?”

“그래?”

“니나 다른 사람들도 그 안병도한테 당해봤나?”

“예. 현주나 성일씨나 기연씨가 다 바쁘다고 해서 제가 주로 설계사무소에 출입을 하는데 갈 때마다 엉뚱한 말로 질질 끄는 사람이 하는 말을 찬찬히 들어보니 뭔가 이상한 거라.”

“그래. 어떻게.”

“건축허가를 내려면 인접지주 상호간에 동의서가 있어야 된다고 해서 울산에 임사장과 우사장 동의서를 받아다 준지 한 달이 넘었는데 또 동의서를 내라고 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그건 지난번에 주었다고 하니 절대 안 받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때 당신이 오른 쪽 가운데 서랍에 넣는 것을 보았다고 다시 한 번 찾아보라고 하니 만약 그래서 안 나오면 당신이 우짤 거냐고 도로 협박을 하는데 말입니다. 설마 동의서가 다리가 있어 도망 갈 거도 아니니 일단 열어보라고나 했지요. 정말 안 나오면 내가 초밥집에서 점심을 산다면서.”

“그랬더니?”

“한 사람이 넉장씩, 외삼촌 것까지 무려 열여섯 장이 나왔지요.”

“참, 그랬구나. 나도 써 주었지.”

“그러자 ‘이상하다 그게 왜 거기 있지.’ 하고 혼잣말을 하던 친구가 갑자기 어조를 바꾸어 그건 산림형상변경허가를 위한 것이고 건축허가용은 따로 내어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말문이 막혀서 그냥 왔지요.”

“이런 수가 있나? 그럼 산림형상변경허가는 왜 아직 제출하지 않았느냐고 따져야지.”

“그러게 말입니다. 생각이 나야지요? 그래서 다음날 동의서를 또 가져다주고 일주일 후에 확인해보니 또 접수가 되지 않아 다시 찾아가 따졌더니 이번에는 문화재심의에 필요한 동의서가 없다는 겁니다.”

“저런 죽일 놈! 요즘은 복합민원 원스톱 시스템이라고 아무리 복잡한 허가절차도 주무부서가 아닌 민원봉사실에 한 건의 서류로 제출하면 행정청에서 문서처리부서를 정하고 그 주무부서가 협조를 띠워 자동으로 처리되게 되어 있는데 말이다.”

“그러니까 잘 아시는 외삼촌이 나서야지요.”

“공무원으로 정년퇴직한 내가, 그것도 민원접수로 잔뼈가 굵고 민원실장은 물론 감사실장까지 거친 내가 우째 그런 자잘한 실무를 따진단 말이고, 새까만 후배들한테?”

“그 다음엔?”

“뭐 우짭니까? 또 갖다 주었지요.”

“아이구, 갈수록 태산이네.”

잠깐 뜸을 들이고 또식씨의 눈을 들여다보던 열찬씨가

“또식아!”

박집사가 아닌 이름을 바로 부르자

“예. 외삼촌.”

“니가 일이 많이 급하제?”

“예. 일각이 여상추라고.”

“그래 여상추나 여삼추나 한 가지로 치고 또 현주나 천집사 동생 성일씨나 그 친구 김기연씨도 일이 급하다면서?”

“예. 그 사람들도 저 못지않게 급하지요.”

“그럼 내가 방법을 제시하면 니가 행동대장이 되겠느냐?”

“예. 시켜만 주시면요.”
“그래. 그럼 잘 들어봐라.”

둘이 마주보며 잠깐 뜸을 들이고

“지금 설계사 안병도를 움직이게 하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누가 직접 안병도를 만나서 저녁마다 한 사흘 밥도 사주고 술도 사주고 노래방도 가주면서 봉투를 하나 주는 방법, 즉 채찍과 당근 중 당근작전이고.”

“예.”

“또 하나는 니가 막 가면 우리도 막 간다는 맞불작전이다.”

“예에?”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라고 이번에는 채찍작전으로 나가 단숨에 박살을 내는 방법이다.”

“단숨에 박살?”

“니가 행동대장이 되어 현주와 김기연, 천성일 세 젊은이를 이끌고 직접 설계사무소로 쳐들어가는 것이다. 가기 전에 미리 역할을 나누는데 덩치가 크고 목소리가 큰 자네하고 천성일씨는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면 설계소장을 찾거나 소장이 없으면 안병도를 일단 멱살을 잡아 땅바닥에 한번 매다 꽂고.”

“그렇게나요? 상대가 대들면요?”

“지가 한 죄가 있는데다 그렇게 세게 나가면 정신이 없어서 감히 대들 생각도 못하지.”

“그 다음엔 요?”

“주변의 누가 뜯어말리고 일단 앉아서 이야기를 하자면 깐깐한 김기연씨가 조목조목 원칙을 따지는 거고 그러다가...”

“에. 그러다가?”

“우리 측이 불리하거나 궁지에 몰리면 그 때 현주가 나서는 거지. 지금 우리 사정이 얼마나 급한지 우리 딸이 씻고 자고할 공간이 없어 얼마나 말이 아닌지 설명을 하다 경우에 따라선 울음을 터뜨리고 경우에 따라선 고함을 치며 패악을 부리고. 그러면 상대가 여자인 만큼 누구도 감당을 못 해.”

“이건 완전히 상해공갈단 비슷한데요?”

“우짜겠노? 호랑이를 잡으려면 나도 호랑이나 담비가 되어야 하고 또 호랑이굴에도 들어가야 하고.”

“히야! 참 신통한 작전이기는 한데 아이들이 그만한 간짜바리가 될까?”

“우선 현주는 그간 세상풍파를 많이 겪고 성깔자체가 보통이 아니라 걱정할 것 없고 보험회사 다니는 성일씨도 걱정이 없고 기연씨도 내가 보니 보통 깐깐한 사람이 아니더라. 문제는 조카 니다. 우장바우처럼 덩치 크고 사람 좋고 시원시원해서 시작은 해놓고 상대가 물러서거나 약한 모습을 보이면 자신도 그만 슬그머니 물러서서는 안 되지.”

“아임더. 외삼촌, 내가 그래 만만한 줄 압니까? 그래도 한 때 상북, 산전바닥을...”

“시끄럽다. 꽁을 잡아야 매지.”

해서 또식씨가 세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이틀 뒤에 군청 앞 광장에서 모이기로 했다. 그날까지 민원실에 서류가 접수되지 않았으면 바로 설계사무소로 쳐들어가기로 한 것이었다.

“다들 한 자리에 모여서 예행연습이라도 한번 해야 되는 거 아닐까?”

“아, 아임니더. 그 사람들이 바쁘기도 하지만 외삼촌 만나면 주눅이 들어서.”

“저런 경이원지(敬而遠之), 즉 존경하면 두려워서 멀어진다는 이야긴데 내가 그래 안 만만하나?”

“...”

“알았다. 니가 알아서 단디 해라.”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