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장편소설】 저곳 - 12. 을식과 해아(2)

박기철 승인 2024.06.06 00:00 의견 0

12-2. 기세등등해진 해아 부부

내 살아생전의 이야기를 하면 정말로 기가막혀. 난 권력을 누릴 대로 누렸어. 정치인들이 뭔가 해결해야 할 난제를 가져오면 나는 그걸 해결해 내고 말았어. 내가 영부인을 만나 그 문제해결을 원한다고 말만 건네면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말이야. 그렇게 나는 파워 우먼이 되어 가고 있었어. 이 당시 내 남편은 대통령의 시중을 드는 집사같은 비서실장이었는데 서울시장이 되었어. 남편을 시장으로 만든 것도 다 내가 이루어낸 일이었어. 물론 남편이 성실하고 충실해서 대통령의 신뢰를 얻은 덕도 있지만 내가 남편을 서울시장으로 꼽은 것은 나의 역할이 결정적이었지. 그렇게 대통령 옆에서 시중만 들다가 한 나라 수도의 행정을 맡는 시장이 되었으니 남편은 권력의 맛이 뭔지 아는 사람이 되어 갔어. 그는 강력한 권력자가 되기에는 소질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희한하게도 그는 권력을 즐기기 시작했어. 내가 놀랄 정도로 과격할 때도 있었어. 다 나의 강력한 내조 덕분이었어. 내가 그렇게 남편을 조종하면서 우리 부부는 야망을 가지게 되었어. 너 야망이라는 게 뭔지 아나?

야망! 영어로는 앰비션(ambition)일 텐데 큰 희망같은 거 아니겠어. “Boys be ambitious!”란 말을 들어는 봤는데… 작은 희망보다 큰 희망을 가지라는 뜻이겠지.

대충 맞았어. 그런데 이 말을 처음 했다는 사람은 영국의 처칠수상이 아니라 클라크(William Smith Clark 1826~1886)라는 미국인이었대. 앰비시어스라는 표현을 쓸 때 야망(野望)보다는 대지(大志)라는 뜻으로 사용했다고 하지. 개인의 이익이나 명예에 관한 큰 뜻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할 도리에 관한 큰 뜻을 품으라는 뜻이었다지. 그래서 그가 이 말을 했던 지금의 훗카이도대학에는 “Boys be ambitious!”를 일본어로 번역해 돌에 새긴 표지석이 있다는군. “大志ぉ 抱ぃて” 큰 뜻을 품으라는 뜻이지. 그러니까 앰비션이 야망이 아니라 큰 뜻인 대지(大志)라는 거야.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야망을 가지라고 알고 있지. 야망이란 한자 뜻 그대로 거친 꿈이야. 인간의 도리로서는 절대 품어서는 안 될 못된 꿈이기도 하지. 야(野)라는 한자에 ‘못된’이란 뜻이 있거든. 정말로 우리 부부는 못된 야먕을 품었지. 여든살 늙은 노인네인 현직 대통령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되겠다는 야망이었지. 그게 불가능한 게 아니었어. 일단 남편은 국방부 장관까지 지냈어.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No 2 맨인 국회의장이 되었어. 지금의 국회의원이라 할 수 있는 민의원을 지내기도 했지. 그 때까지 거침이 없었지. 원래 천성이 감상적이고 낭만적이었던 남편은 권력의 셰계에 발을 디딘 후 거침이 없는 사람으로 변화해 갔어. 지금와서 보니 옳지 않게 과분하게 변질된 것이었지. 그 순했던 사람이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물불 가리지 않는 막가파가 되었어. 남편이 했다는 말 중에 제일 유명한 말이 이 거야. 당시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 데모가 많이 일어날 때인데 데모를 강력하게 진압하라며 이렇게 말했다지. “총은 쏘라고 있는 거야!” 샌님같던 양반이 어째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는지 놀라워. 확실히 권력이란 게 본성은 어떨런지 모르지만 사람 심성까지 변화시키더군. 당시 깡패들이 설쳐대던 세상이었는데 깡패들을 동원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끝내 이루도록 했어. 그렇게 억지로 일을 추진하느라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 갔겠지. 원래 건강체질의 사람이 아니라 내가 그러지 말라며 말려야 했는데 나도 그 때는 오히려 그렇게 하라고 더욱 부추겼어. 착하지만 고지식한 남자를 마른 수건짜듯 세게 몰아 붙였어. 그러면 남편은 내가 부리는 억센 소처럼 행동했어. 내가 너무 나대면 간혹 나한테 여러 사람들 앞에서 무안하게 큰 소리치기도 했지. “계집년이 어딜 나서, 저리 가!” 이런 말을 자주 남들 앞에서 해대서 내 스타일이 구겨지기도 했지. 그래도 남편은 내 말을 잘 듣는 어린애같은 사람에 불과했어. 그렇게 우리 부부는 권력의 셰계에서 권력을 주도하며 잘 나갔어. 70대 때까지는 영민했던 대통령이었지만 80대 때부터 노쇠해진 대통령한테는 듣기 좋은 보고만 올라가도록 했어. 대통령은 나라 돌아가는 세상물정에 어둡게 되었어. 그렇게 우리는 막강한 제2인자가 되었어. 정국은 우리 부부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어. 야당에서 거센 반발이 있었지만 우리는 그걸 억누르며 제압할 막강한 정치조직과 정치세력이 있었어. 우리한테 그저 충성하며 하라는 대로 따르는 깡패조직도 있었고…

잘 나갈 때 조심해야 하는데 우째 뭔 사단이 날 것같은 느낌이 드네. 하여튼 해아, 네가 주력이 되어 움직이는 너희 부부 대단하네. 참으로 막강한 부부였네.

박기철 교수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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