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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염소

이 화 영

어둑한 눈발 속으로 소년이 나타났다
쇠말뚝에 목줄 매인 아기 염소
짧은 꼬리를 흔들며 소년에게 달려간다
소년이 아기염소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려하자
아기염소 잽싸게 쇠말뚝 자리로 돌아간다

둑방길로 오는 동안/ 소년은 아기염소 울음에 귀 기울이고
아기염소는 쏟아지는 눈밭 속에서 소년을 기다리고

눈발은 거세지는데 소년은 움직일 줄 모른다/ 아기염소 가는 울음 길게 두 번 울고/ 소년 쪽을 기웃거린다

시든 고마리 눈에 덮이고
미나리꽝은 살풋 얼음을 입고

소년은 아기염소 목줄을 가만 움켜쥔다
아기염소 젖은 풀 해찰하다
높은 굽 타달거리며 소년을 쫓아간다
눈밭은 아득히 그칠 줄 모르고

- 『서울, 세계 詩 엑스포 2025 기념 한국시인협회 사화집』, 한국시인협회

시 해설

아기염소도 강아지마냥 주인과 서로를 밀당하는 감정교류 모습이 연상되는 시이다. 눈이 내리는 어둑한 분위기 소년이 나타나니까 쇠말뚝에 목줄 매인 아기 염소가 꼬리를 흔들며 소년에게 달려가다가 소년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려하자 아기염소는 잽싸게 쇠말뚝 자리로 돌아가 버린다. 반가움을 내색하다가 아닌 체하는 것이다.

눈은 내리고 집으로 가야 하는데 서로가 만나기 전에 소년은 둑방길에 메어 둔 아기염소가 잘 있는지 울음소리에 귀 기울이었고 아기염소는 눈 속에서 소년이 나타나기만 기다려 왔던 것이다. 서로가 관심을 기울이었다.

둘의 탐색전이 시작되었다. 눈발에 아랑곳없이 소년은 무관심한 척하는 전술로 움직임을 멈추었다. 아기 염소는 그 정적이 힘들어서 ‘가는 울음 길게 두 번 울고 소년 쪽을 기웃거’렸다. 먼저 반응한 아기염소의 판정패 묘사는 ‘시든 고마리 눈에 덮이고 미나리꽝은 살풋 얼음을 입’는 것으로 한다.

소년은 아기염소 목줄을 가만 움켜쥐었고 아기염소는 젖은 풀 해찰, 즉 모르는 척 풀을 헤적거리다가 ‘높은 굽 타달거리며 소년을 쫓아’가는데 뽀드득 소리 나는 ‘눈밭은 아득히 그칠 줄 모르고’ 저기 따스한 불빛이 보이는 집이 있다.

조승래 시인

◇ 조승래 시인은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이사, 문학의 집 서울 이사,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 시향문학회와 시와시학 문인회 회장, 가락문학회, 함안문인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취미생활로는 검도를 하고 있다(대한검도회 영무검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