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문서 없는 노예가 되어
거처할 곳이 생기면서 열찬씨의 개간사업은 아연 활기를 띄었다. 말이 출퇴근이지 오갈 때 마다 버스를 옮겨 타며 버스정류장만 50여 개를 거치는 앞뒤로 15분에서 25분을 걸어 도합 두세 시간이 걸리는 출퇴근을 않으니 하루에 무려 6시간이나 절감이 되는 셈이었다.
아침 여섯 시 경에 일어나 밖으로 나와 막사주변과 진입로를 빙 돌며 이슬에 함초롬히 젖은 클로버와 달맞이꽃을 바라보며 쉼 호흡을 해 오장육부가 다 투명할 정도로 상큼한 기분이 되어 모닝커피를 한 잔 마시고 곧바로 컴퓨터를 캐고 집필한 지 3년째가 되는 두 개의 장편소설 <신불산>과 <다리 밑에서>중 하나를 써나가기 시작했다.
<신불산>은 자신이 증조부에서 시작된 버든마을사람들이 일제의 수탈과 6,25, 군사혁명과 경제발전을 겪으면서 인심이 변하고 마을이 뜯겨나가는 자전적 대하소설이었고 <다리 밑에서>는 공무원과 노동자, 식당여주인으로 늙어온 60대 후반의 늙고 병든 노인들이 제 가끔의 회상에 젖으며 새로운 인간관계를 엮어가는 이야기였는데 쓰다 보니 어느 새 열찬씨 자신의 객지생활과 직장생활, 특히 김모구청장으로부터 핍박받던 이야기가 자꾸만 튀어나오는 것이었다.
맑고 고요한 풀밭위의 아침, 창을 열어놓으면 여명으로 붉게 물든 건너편 야산 커다란 소나무위로 벌건 태양이 떠올라 밝고 노란 빛으로 변할 때쯤 잠에서 깬 산새들이 울기 시작하고 부지런한 양계장 주인이 첫 번째 짬밥을 실으러 차를 몰고 나가다 저도 열찬씨가 무얼 하는지 보려고 창가 쪽으로 눈길을 주다 눈빛이라도 마주치면 휙 하고 휘파람을 불거나 빵빵 경적을 울리기도 했다.
그렇게 여덟시 반까지 두 시간 남짓 워터프로세스를 치면 보통 하루 5,6쪽의 진도가 나가고 인용문이 있거나 대화체가 많은 때는 7,8쪽을 치기도 한 것이 두 소설이 다 이미 1,000쪽을 돌파하고 있었다.
여덟시 반경에 전기밥솥의 밥을 퍼서 아침식사를 하는데 알뜰한 영순씨가 국물이 없으면 밥을 못 먹는 열찬씨를 위해 육개장이나 콩나물국, 미역국 따위를 끓여 냉장고에 냄비 째로 넣어두고도 예비로 봉지에 든 재첩 국이나 다슬기 탕을 냉동시켜 놓기 때문에 국물이 떨어지지도 않고 김치나 나물도 넉넉히 준비해두었기 때문에 월, 화, 수 3일을 밭에서 지내고 목요일 집으로 가서 하룻밤을 자고 금요일 돌아오면 토요일 밤에 손녀 현서를 제 어미에게 돌려준 영순씨가 일주일간 열찬씨가 먹을 시장을 봐서 농막으로 와서 하룻밤을 묵고 일요일 오후에 떠나는 것이었다.
냉장고에 기본반찬도 넉넉하지만 밭을 개간하다 보면 지천으로 나오는 민들레를 뿌리째 씻어 된장에 찍어먹거나 머위 잎을 삶아서 먹으면 약간 쓰면서 상쾌한 맛이 입맛을 돋우는 것이었다.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한 뒤 열시 경부터 오후 한시 경까지 세 시간 가까이 밭일을 하고 점심을 먹고 잠시 눈을 붙인 뒤 여섯 시까지 또 세 시간 너머 일을 하고 재빨리 씻고 나서 6시 반에 시작하는 프로야구를 시청하면서 저녁을 먹고 야구가 끝난 밤 열시 경 밤이슬이 촉촉하게 젖은 진입로를 한 바퀴 돌며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나른하기는 하지만 아주 흡족하고 상쾌한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토요일 밤에 도착한 영순씨가 일요일 새벽 열찬씨 보다 먼저 일어나 농장을 한 바퀴 빙 돌더니
“아쭈, 제법인데. 좌우간 우리 영감 끈기하나는 알아주어야 해.”
하면서 벌써 5,60평은 됨직한 개간지를 둘러보며
“캐낸 돌은 차차 치우기로 하고 우선 곡식을 심어야지.”
하면서 이미 심어놓은 상추, 쑥갓 외에 밭농사의 주 종목인 고추를 좀 넉넉히 심도록 4월말 까지 여기서 저기까지 넉넉히 밭을 갈라더니 금방 신명이 나서 장안읍소재지 좌천리에 나가 감자씨, 옥수수씨를 사왔다. 부지런히 감자 골을 타고 비닐을 덮고 감자를 10미터나 되는 골 다섯 골을 심고 옥수수는 울타리 삼아 그해 개간키로 한 경계선을 따라 삽으로 흙을 한 삽 파고 거름을 한 줌 넣고 바로 두 알씩 씨를 뿌렸다. 싹이 트면 주변의 잡초를 뽑아주겠지만 재빨리 키가 크는 옥수수는 어느 정도만 자라면 스스로 주변의 잡초를 제어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내외가 부지런히 오전 작업을 마치고 점심을 먹으려 손을 씻는데 미혜씨의 전화가 와서
“내만 두고 너거 둘이 오손도손 밭에 가니 재미가 좋나?” 하더니
“점심은 묵었나? 좌천에 흑돼지고기가 아주 끝내주는 집이 있다 캐서 오늘 너거하고 묵을라 캤는데.”
또 먹자타령이라
“언니야, 이서방 먹을 반찬이 너무 없어서 어제 밤 일찍 왔다. 다음 주에는 꼭 같이 모시고 오께.”
달래는데
“어이, 올캐야, 우리 고리원전아파트까지 왔는데 여기서는 어데로 가면 되노?”
장촌의 덕찬씨 전화가 와서 부산울산 경계지점에서 좌회전을 해서 고개를 넘어오면 마중을 나가겠다며 급히 도로가에 나가 고차대씨가 운전하는 승용차를 맞이해 원룸건물이 있는 황토고개를 넘는데
“아이구야, 부산천지에 이런 데가 다 있나?”
하던 고차대씨가
“가만 보자. 내가 산림조합 다닐 때 더러 오던 길이네.”
하고 현장에 도착하여 열찬씨가 뒤집어 놓은 밭과 여기저기 쌓인 돌무더기를 보더니
“처남은 명색 고등관이란 사람이 머슴 살던 사람도 안 하려는 이 무식한 일을 와 하는 건데. 이 정도 땅이라면 불도저로 땅을 파고 돌을 걸러낸 뒤 트랙터나 경운기로 로터리를 쳐야 될 일로 그래 삽 한 자루 괭이 하나로 덤비니 그게 곰이지 어데 사람이가?”
혀를 끌끌 차다가
“여게는 원자력발전소가 있어서 몸에 안 좋다고 살던 사람들도 다 나가는데 처남은 무슨 배짱으로 들어왔노? 내가 장촌에 처남 니 심심풀이 할 땅을 구해 줄 테니 당장 나가자.”
하다 명촌의 금찬씨와 눈이 마주치자 뜨끔해서 입을 다물었다. 금찬씨의 둘째 아들 또식씨가 무려 2백만 원이나 하는 농장건물을 지어주었다는 말에 집 구경을 겸해 둘러보러 온 사실을 깜빡했던 모양이었다.
“우리 또식이가 손끝이 야물제? 생각보다 집이 멀쩡하제?”
비로소 금찬씨가 한숨을 돌리는데
“자, 이거는 동생 당뇨와 아토피에 좋다는 문디뱁추다. 그라고 이거는 머구뿌린데 심어놓으면 금방 잎이 나서 한 보름이면 묵을 끼다.”
덕찬씨는 자기네 농사처럼 신이 나서 호미를 찾아와서 영순씨와 같이 심기 시작하는데
“이 놈의 민들레는 엉성시럽지도 안 하나? 세상에 이거를 채소라고 다 심었나? 놔두면 씨가 퍼져 절단난다.”
열찬씨가 밭을 갈다 나온 뿌리를 심어 겨우 사람을 하고 자리를 잡는 민들레를 발로 쓱쓱 밟아 문질러버리자
“새이야, 뽑아도 심은 동생이 뽑도록 놔둬라.”
“가시나 니는 마 시끄럽다.”
세 살 터울 두 자매는 기어이 그날도 한 바탕 시비를 붙는데
“혼자 사는 집에 무슨 가전제품이 이렇게 많노? 사십년도 더 산 우리 집보다 많겠다.”
방안을 둘러본 고차대씨가 껄껄 웃었다. 열찬씨가 농막건물을 지었다는 말에 미혜씨가 웬만큼 낡은 가전제품을 몽땅 바꾸기로 하고 자기가 쓰던 세탁기, 냉장고, 전기밥솥, 커피포트에 텔레비전과 라디오까지 일습을 주었는데 또 다시 살림 복이 터졌다. 처음 구서동 밭을 소개해주었던 영순씨의 계원 계순씨도 마침 혼자 사는 어머니가 폐암에 걸려 오늘내일 하는 판에 2남 2녀 자식들이 구서동의 토박이이자 알부자인 친정어머니의 땅과 건물과 은행에 예치된 현금을 나누고 마지막으로 모친이 거주하던 2층 양옥을 팔아 4등분으로 나누려는데 문제는 모친이 쓰던 가전제품과 살림살이였다. 자식들이 다들 잘 살아 누구하나 부모가 쓰던 살림살이를 가져가려던 사람도 없어 가까운 곳에 사는 계순씨가 고물상에 처분하면 인건비는 나올 것이라고 일을 맡았는데 마침 영순씨가 새 건물을 지었으니 무엇이든지 필요하면 몽땅 다 가져가라고 한 것이었다. 그래서 어느 일요일 용달차 하나를 불러 현장에 가서 계순씨가 시집오기 전부터 살았던 방 세 칸 부엌하나에 창고와 계단과 옥상에 있는 모든 살림살이를 다 가져가라는 바람에 냉장고, 세탁기, 텔레비전에 믹서와 전기밥통과 가스 랜지, 에어컨에 김치냉장고는 물론 선풍기 두 개와 우산 10여 개에 몽키 스피너에 드릴과 전기톱을 갖춘 공구 통 두 개에 철사와 못을 찾아 용달차에 싣고 집을 나서려는데 계순씨가
“냄비랑 그릇 부엌살림도 좀 가져가. 너거 안 가져가면 전부 쓰레기로 고물상에 청소시킬 거다.”
해서 제법 큰 옹기 독 두어 개를 포함해 수많은 냄비와 법랑, 스텐식기와 수저까지 잔뜩 챙겨 영순씨의 승용차에 싣는 사이 열찬씨는 벽장을 뒤져 옛날 5일장에서 팔던 수십 년이 된 책력과 언문으로 된 이야기책과 아주 오래 된 화투까지 한 모 챙겨 나왔다. 그렇게 오리의 농장으로 옮겨온 가전제품이 겹치면 그중 성능이 좋은 것은 설치하고 나머지는 수돗가에 주욱 세워놓았다가 당시 한창 형편이 어려운 막내 처제 영아씨에게 몇 개를 주었다.
그래도 남는 것은 재활용 조씨에게 주니 산중에서 가전제품이 쏟아진다며 허허 웃으며 싣고 갔는데 원래 사람이 좋아 그런지 가전제품을 얻어서 그런지 그 때부터 열찬씨나 영순씨를 만날 때 마다 퍼뜩 모자를 벗고 인사를 한다고 그 소담스런 대머리를 다 드러내는 등 극진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부산에 아파트 하고 안 그래도 이중살림인데 이래 가전제품이 많아서 전기세는 우째 다 감당하노?”
천생 자린고비 고차대씨가 걱정을 하는데
“여기는 원자력발전소 주변이라 전기세가 50% 감면에다 농사용전기라 또 50%를 감면해서 사용량의 1/4만 내면 되니 죽자살자 써도 기본요금 5,000원을 안 넘습니다. 그래서 여기 농장에 사는 사람들은 밥도 난방도 심지어 라디오나 손전등충전도 모조리 전기로 하지요.”
하는 순간 영순씨가 밥을 하러 쌀을 씻고 김장김치에 꽁치통조림을 넣고 점심을 차리려 준비를 하는데
“이 난장에서 무슨 점심을 하노? 나가서 먹지.”
금찬씨가 당연히 외식을 하는 것처럼 말하며 제부 고서방을 바라보는데 콧날이 우뚝한 미남제부는 달다, 쓰다 말이 없었다.
“그마 돈 드는데 여기서 대충 먹지.”
영순씨가 쌀 씻던 손을 멈추고 열찬씨를 올려다보는데
“가자. 누가 사든지 여기까지 와서...”
덕찬씨가 남편을 쳐다보며 의중을 떠 봐도 묵묵부답이라
“갑시다!”
열찬씨가 결정을 했다. 미혜씨와 같이 갔던 감자탕집에 가서 빙 둘러앉자
“감자탕에 소고기가 들어가나, 돼지고기나 닭고기가 들어가나?”
금찬씨가 물어
“돼지고기 등뼈가 들어간답니다.”
“안 되겠네. 그라면 약 묵어야지.”
금찬씨가 핸드백을 부스럭거리다가 파란 알약하나를 찾어 먹었다. 소고기나 돼지고기는 물론 네 발 달린 짐승이라면 토끼고기만 먹어도 두드러기가 나기 때문에 미리 예방약을 먹어야 하는 것이었다.
“이기 순 뼉다구하고 배추시래기뿐인데 1인분에 9천원이면 너무 비싼 것 아이가?”
부지런히 뼈를 바르며 고차대씨가 말하자
“보기보다 맛이 좋네. 뼈보다 시래기 맛이 진국이다.”
“예. 그렇지요. 서울에서는 배추시래기를 우거지라 안 카능교? 그래서 사람이 찌푸리면 우거지상이라고 말입니다. 서울 가면 돼지 뼉다구에 배추시래기를 넣은 우거지해장국이 유행한다 아잉교?”
하며 냄비바닥에 드러나도록 부지런히 퍼 먹고 마지막에 밥을 볶는데 덕찬씨가 흘금흘금 남편을 바라보며 어서 지갑을 꺼내라고 눈총을 쏘는데 소주를 마시는 척 하며 그걸 바라보며 열찬씨가 빙그시 웃자 영순씨가 열찬씨의 옆구리를 쿡 찌르더니 계산서를 들고 일어서 열찬씨의 지갑을 받아들고 나갔다. 커피를 한 잔씩 빼다 마시고 언양손님 셋을 하직하고 돌아와 이빨을 닦고 잠시 눈을 붙이기로 하는데 한참 만에 전화가 와서
“괜히 동생에 댁이 돈만 썼제? 그놈의 영감쟁이 농협에 돈을 20억이나 꼽아놓고 처가식구 밥 한 끼를 안사네.”
덕찬씨가 전화로 한숨을 푹푹 쉬더니
“땅이 넓어 우리 동생 원 없이 삽질 한 번 해보겠네.”
“그러게 말입니다. 와 안 할 고생을 사서 하는지 통 알 수가 없습니더.”
“지가 클 때 우리는 땅이 적고 또 전신에 길도 멀고 도가리가 많은 천수답이라 땅에 한이 맺혀서 안 그러나? 월깨 니가 이해해라.”
하는 통화음을 듣다 또 잠이 들었는데
“그래도 아주버님이 당신 여기서 묵고자면 원자력발전소 때문에 몸에 안 좋다고 걱정을 태산같이 하더랍니다.”
“그래. 고맙긴 한데. 여기 일광, 월내, 좌천, 남창, 서생사람들 다 멀쩡한 데 뭐.”
“그 기 괜히 미안해서 하는 말 아일까?”
“무슨 소리. 당연히 밥값이야 주인이 내는 거지.”
낮에 씻었던 쌀과 꺼냈던 꽁치통조림으로 저녁을 먹고 커피까지 마신 뒤에
“여보, 나 갈란다.”
“그래. 조심해서 가소.”
“알았어.”
하고 다시 방안을 둘러보는 영순씨를 보고
“와? 갈라카이 발이 안 떨어지나?”
“그거 보다 당신 해 묵고 사는 기 걱정이지. 사람이 음식을 가리거나 까다롭지는 않지만 워낙 재주가 매주라서.”
“마. 쌀 있고 라면 있고 소주 있으면 된다. 반찬이사 없으면 된장 한 가지만 있어도 민들레에 겨울 초에 갓 같은 것 뜯어서 찍어 묵으면 되고.”
“그래도 문단속 잘 하고 불조심 하소.”
“알았어. 당신도 문단속 잘 하고 자.”
하고 한참을 걸어 자동차에 시동을 거는 영순씨를 보며
“와? 혼자 잘라카이 무섭나?”
“아니. 신혼 때도 당신 숙직하는 날은 늘 혼자 잤는데 뭐.”
“그래. 부부가 가끔씩 떨어져 자야 건강한 사이가 된데.”
“잘 자소.”
“잘 가시오.”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