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꼭대기 '라 라구나' 마을 카페 앞에서 저 아래로 내려다 본 풍경. 사진= 조해훈
오늘은 2024년 11월 19일 화요일이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샤워를 한 후 배낭을 정리해 1층 카페로 내려갔다. 어제 함께 잔 순례자들에게 “저는 오늘 하루 더 이 알베르게에서 쉴 생각입니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또 뵙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에르윈과 로버트, 린다(Linda·39)는 각각 필자를 껴안아 주며 “부엔 카미노!”라고 했다.
배낭을 카페 구석에 놓아두었다. 구석의 벽난로에는 장작불이 타고 있었다. 라 라구나는 산꼭대기 마을이어서 춥다. 오전 내내 난로 옆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글을 썼다. 오전에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낮 12시쯤 카페 밖으로 나가 카페 주변을 천천히 산책하면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지대가 확실히 높았다. 모든 게 아래로 보였다.
카페 지나 있는 축사에서 소들이 나와 담장 옆을 돌아 초지로 가고 있다. 사진= 조해훈
그때 카페 지나 바로 있는 축사에서 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할머니께서 나오는 소들이 카페 쪽으로 가지 않고 축사 담을 돌아 초지로 가라고 앞에서 막고 막았다. 거짓말처럼 축사에서 나온 소들은 할머니 앞에서 돌아 담 바깥으로 해서 초지로 향했다. 10여 마리는 될 것 같았다. 축사에서 소들을 바깥으로 내보내고 마지막으로 할아버지께서 나오신다.
카페 입구쪽에 있는 다른 축사의 소들도 카페 앞을 지나 초지로 가고 있다. 사진= 조해훈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오랜 세월 동안 소를 초지에서 키우신 모양이다. 소들을 다루는 모습이 너무 익숙해 보였다. 소들은 걸어가면서 똥을 싼다. 길은 소똥 냄새가 진동했다. 필자는 여기서 하루 묵고 이틀째 지낸다고 그새 소똥 냄새에 무디어져 있다. 그 순간 별세하신 어머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사람은 움직이면 돈이 들고, 소는 움직이면 똥을 싼다.” 필자가 30대쯤 이 말을 들었다. 그 뒤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정말 명언이었다.
한바탕 소들이 축사에서 나와 초지로 가고 나자 카페 주변은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고요해졌다. 이 산꼭대기 마을에는 사람 한 명 지나가지 않는다. 날씨가 추워지니 확실히 순례자들이 많이 줄어든 모양이다. 아마 더 추워지기 전에 순례의 종착지인 콤포스텔라까지 가려고 빨리 움직인 것 같다. 필자처럼 느리고 어정대는 순례자는 이제 거의 없으리라. 점심 때인데도 카페에 들어오는 순례자는 고사하고 지나가는 순례자가 한 명도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좀 있으니 카페 앞으로 소들이 걸어온다. 카페 오기 전에 있는 축사에서 나오는 소들이다. 그 집 할아버지께서도 소들을 초지로 이동시키는 모양이다. 그 집 소들도 자신들이 어디로 가는지를 잘 아는 듯 서슴지 않고 앞으로 간다. 카페와 그 앞 야외 테이블 사이로 늘 다녀 아주 익숙한 듯 망설임 없이 지나간다. 필자는 약간 떨어져 소의 이동을 보면서도 조금 겁이 났다. ‘혹시나 성격 괴팍한 소가 낯선 이방인인 필자에게 덤벼들어 뿔로 받지는 않을까?’ 하고 말이다. 소들은 우리나라 소보다 덩치가 큰데 다들 순하다.
아까 카페 옆집 소들보다 마릿수가 조금 더 많은 것 같다. 일렬로 지나가는 소가 한참 이어진다. 필자 앞으로 소들이 지나가는 경험을 하기는 생전 처음이었다. 소에 대해 잘 아는 편은 아니지만 이 마을 두 집의 축사에서 키우는 소는 비육우(肥肉牛)인 것 같다. 한참 동안 소의 이동이 이어졌다.
카페 윗집 소들과 아랫집 소들은 초지에서 풀을 뜯어 먹다 나중에 해 질 무렵 돌아올 것이다. 그때도 소들의 이동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신기한 경험이다.
소들이 다 지나가자 주인할아버지께서 말을 타고 뒤를 따라가시고 있다. 사진= 조해훈
소들이 다 지나가고 나니 큰 개 세 마리가 뒤에서 따라간다. 아마 소를 모는 개들이리라. 개들이 가고 좀 있으니, 그 소들 주인인 할아버지께서 말을 타고 필자 앞을 지나가신다. 정말 재미있는 광경이다.
소들이 지나가고 잠시 후 나이가 많아 보이는 한 순례자가 와 카페에 들어갔다. 필자도 이제 카페에 들어가 간단하게 점심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카페 안으로 들어가니 주인 할머니께서 그 순례자에게 줄 커피를 내리고 계셨다. 순례자와 간단히 인사만 했다. 필자는 벽난로 옆 노트북을 켜놓은 자리에 앉아 밀크커피와 빵을 한 개 주문했다. 그게 점심 식사였다.
필자가 카페 구석 벽난로 옆에 앉아 글 쓰다 오후 3시쯤 셀카로 찍은 사진.
커피를 마시며 노트북으로 계속 글을 쓰고 있었다. 오후 3시 50분쯤 이 카페의 손자가 학교 수업을 마치고 카페에 웬 아주머니와 함께 들어왔다. 아주머니는 이 손자에게 노트와 자료를 꺼내게 해 공부를 하라고 말했다. 그리곤 아주머니는 밖으로 나갔다.
필자는 카페 주인 할머니께 “좀 전에 그 여자분은 누구신가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손자의 학교 선생님이세요. 손자에게 숙제를 내주고 가셨어요.”라고 답했다. 필자는 다시 “손자가 여기서 학교에 어떻게 다닙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잖아도 필자는 그게 궁금했다. 할머니는 “학교에서 아침에 차로 데리러 오고, 학교 파하면 여기로 태워준답니다.”라고 대답하셨다. 그러자 필자의 궁금증이 풀렸다. 초등학교 4학년쯤으로 보이는 손자는 할아버지·할머니와 이 카페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카페 안쪽에 살림집이 있었다.
이 카페의 초등학생 손자를 하교 시켜준 학교 선생님(왼쪽)이 손자에게 숙제를 내주고 있다. 사진= 조해훈
손자는 다른 친구가 없는 이 산꼭대기 마을에서 혼자 놀았다. 주로 축구공을 갖고 카페 바깥에서 혼자 공을 차고 놀거나 가끔 손님이 없을 땐 카페 안에서 테이블 사이로 공을 차고 다녔다. 할머니는 “손자의 학교까지 차로 가면 대략 15분쯤 걸린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필자가 부산 기장군 장안읍 명례마을(마방지마을)에 살 때 큰아들 조현일과 작은아들 조현진이 등하교 시 버스 이용이 불편하였다. 그리하여 아침에 필자가 부산교육대학교 입구에 있는 국제신문사로 출근하면서 장안초등학교에 등교시켰다. 마을의 다른 아이들도 필자의 차를 타고 함께 가려고 미리 집에 와 기다리고 있다. 그리하여 필자의 아들 두 명뿐 아니라 마을 아이들까지 학교에 태워다 주었다.
해가 거의 진 오후 6시 23분, 낮에 초지로 풀을 뜯어먹으러 갔던 소들이 카페 앞을 지나 아래 축사로 돌아가고 있다. 사진= 조해훈
아이들이 하교 때는 학부모 중에서 차가 있는 사람이 아이들을 집으로 태워다 주셨다. 가끔 학교의 선생님이 퇴근하면서 아이들을 태워주기도 하셨다. 그런 게 마땅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학교 앞서 한참 기다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버스정류소에 내려 집으로 걸어오는 데 30분이나 소요됐다. 필자가 토요일 출근하지 않거나 늦게 출근할 때는 장안초등학교 앞으로 가 기다렸다가 인근 마을 아이들까지 다 태워 일일이 각자의 집에 내려다 주었다. 지금은 말이 안 되지만 그때 필자의 승용차에 아이들이 13명이나 탄 적도 있다. 필자는 지금 산티아고 순례길의 ‘라 라구나’ 산꼭대기 마을에서 이 카페의 손자를 계기로 큰아들과 작은아들이 장안초등학교에 다닐 때인 약 25년 전의 일들이 떠올랐다.
이 카페의 할아버지는 무뚝뚝한 스타일이어서 손자를 가만히 쳐다보기만 하고 할머니께서 손자를 챙기시며 이런저런 잔소리(?)를 하셨다. 할머니의 잔소리가 길어지면 손자는 한 번씩 “No!”라며, 화를 내곤 공을 들고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필자는 타인이므로 손자에게 아무 말 못 하고 그 아이가 하는 말과 모습을 그저 쳐다보기만 했다. 어제와 오늘, 이틀간 카페에서 손자를 본 필자의 이야기를 정리해 보았다.
카페 벽난로에 장작불이 활활 타고 있다. 사진= 조해훈
필자가 앉은 옆 벽난로에는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오후 5시 5분, 젊은 동양 남녀가 카페로 들어왔다. 이들은 아마 이 카페 2층 알베르게에서 숙박할 모양이다. 필자가 주인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여쭤보지는 않았으나 짐작으로는 관청에서 이 카페를 지어 마을 주민인 이분들께 위탁운영을 하는 것 같았다. 이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젊은 아주머니도 아마 관청에서 비용을 대는 것 같았다. 스페인 정부의 순례자에 대한 배려가 고마울 따름이다.
오후 6시 20분, 바깥은 제법 껌껌한 데 낮에 카페 앞을 지나 초지로 갔던 소들이 돌아오고 있는 모습이 카페 창문으로 보였다. 필자는 카페 바깥으로 나갔다. 소들의 주인 할아버지는 보이지 않고 소들만 카페 앞을 지나 축사로 가고 있다. 아마 소를 모는 개들이 앞서고, 할아버지는 맨 뒤에서 소들을 보내는 모양이다. 매일 소들이 축사에 초지로, 초지에서 축사로 이동하다 보니 어두워도 길을 잘 아는 것 같다. 오히려 낮에 초지로 갈 때보다 더 빠르게 축사로 향하고 있다. 카페 지나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소들은 필자가 카페 안에 있는 동안 아마 초지에서 축사로 이동했을 것이다.
오후 5시 7분, 카페에 들어온 젊은 동양인 남녀가 카운터에서 알바 아주머니에게 접수를 하고 있다. 홀에서 주인 할머니가 주방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 조해훈
그러는 사이 젊은 동양 아가씨 한 명이 카페로 들어왔고, 좀 있다가 또 젊은 동양 아가씨 2명이 카페로 들어왔다. 이들은 필자 앞 테이블에서 저녁 식사를 주문하고 한 자리에 앉았다. 이들은 필자에게 “어디서 오셨습니까?”라고 물어본 후 “한국에서 왔습니다.”라고 하니 인사를 했다. 그러면서 “합석하시겠습니까?”라고 물어 함께 저녁을 먹었다. 먼저 카페에 들어온 남녀 중 남자는 한국인이고 여자는 대만인이었다. 나중에 혼자 온 아가씨는 한국인이었다. 뒤에 들어온 여성 둘은 한 명은 한국인이고, 다른 한 명은 중국인이었다.
오후 7시 넘어 오늘 이곳 알베르게에서 숙박할 젊은 동양인들과 필자가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 가운데 서 있는 분이 카페의 주인할아버지. 사진= 카페 주인 할머니
카페에서 밤 9시가 다 되어서야 필자를 포함한 이들 순례자는 모두 2층 방으로 올라갔다. 그러고 보니 카페에서 서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필자는 어제 잤던 침대에 짐을 풀고, 각자 침대를 정해 짐을 풀었다.
필자는 이 산꼭대기 마을의 카페에서 하루 더 묵으며 인근의 산세를 구경하고 글을 쓰면서 여유로운 하루를 보냈다. 게다가 소들이 축사에서 초지로 가는 모습과 초지에서 축사로 돌아오는 광경을 처음 보는 경험도 했다. 큰 도시가 아닌 이런 산촌에서 하루 더 머무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오늘은 걷지 않고 해발 1,151m의 라 라구나(La Laguna) 마을에서 연박했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