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40분쯤 콤포스텔라 공항에 도착하니 아직 티켓팅 업무가 시작되지 않고 있다. 사진= 조해훈

새벽 4시 옷가지·배낭 들고 복도로 나가
티토 따라 나와 포옹하며 작별 인사해
새벽 4시 반 택시 타고 공항으로 이동
시간 일러 커피와 빵 먹으며 감회 젖어
일찍 검색대 통과해 탑승구 앞으로 가
거기서 또 커피 마시며 여러 생각 잠겨
7시 55분, 마침내 파리로 비행기 이륙
43일 간의 순례 모두 끝나 만감 교차

오늘은 2024년 11월 29일 목요일이다. 새벽 4시에 핸드폰 알람이 조그만 소리로 울리자마자
른 사람이 깰까 봐 얼른 껐다. 지난밤에 한숨도 자지 못했다. 42일 동안 순례길을 걸은 후 이제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여러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았다.

걸으면서 들었던 많은 생각과 순례길 위에서 만났던 사람들, 그리고 낯선 풍경들을 떠올렸다. 무엇보다도 함께 순례길을 걷겠다고 한국에서 같이 오신 분과 사정상 따로 걷게 된 것이 무엇보다 아쉬웠다. 그 문제로 필자는 상처를 많이 받아 순례를 마칠 때까지 스트레스로 두통을 심하게 앓았다.

자는 중인 다른 순례자들이 혹여 필자의 움직이는 소리 때문에 깰 수 있어 배낭과 벗어두었던 옷가지 등을 안고 살며시 복도로 나왔다. 방문을 닫으려니 티토가 따라 나왔다. 티토는 필자를 포옹했다. 함께 안은 채 작별 인사를 나눴다. 필자는 “그동안 무척 고마웠습니다. 티토 당신을 잊을 수 없을 겁니다.”라고 거듭 감사 인사를 했다. 그 역시 같은 말을 했다. 필자는 “어서 들어가서 더 주무세요. 저는 배낭 챙겨 내려가겠습니다.” 티토는 한 번 더 필자를 포옹한 후 방으로 들어갔다.

공항에 새벽인데도 영업하는 카페. 필자가 셀카로 찍었다. 사진= 조해훈

순례자는 매일 아침 배낭을 새로 꾸린다. 필자는 배낭을 챙길 때마다 군대 시절 ‘더블백(Duffel Bag·의류대)’이라고 부르던 병사용 배낭을 생각했다. 논산훈련소에서 받아 개인 소지품을 넣어두다 훈련소를 떠나 자대(自隊·병사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제대할 때까지 근무하게 되는 부대)에 갈 때 더블백에 병사의 옷과 소지품 등 개인 물품을 담아 어깨에 메고 간다. 대개 자대에 가면 고참들이 군기를 잡는다고 더블백을 입에 물고 오리걸음을 시키거나 연병장을 돌게 한다. 필자는 동기도 없이 자대에 혼자 갔다. 물론 자대에 가서 후에 동기를 만나기는 했다. 행정반 고참들은 필자에게 “더블백을 메고 연병장을 돌아!”라 했고, 내무반의 고참들은 “입에 더블백을 물고 오리걸음으로 내무반을 계속 왔다갔다해!”라고 했다.

여하튼 복도에서 배낭을 꾸리면 방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릴 것 같아 티토가 들어간 후 배낭과 옷가지 등을 들고 1층 카운트로 내려와 배낭을 꾸렸다. 그러다 보니 택시가 오기로 한 4시 30분이 다 되었다. 출입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니 택시가 왔다. 일반 승용차 택시가 아니고 큰 짐도 실을 수 있는 화물택시였다. 택시를 타니 운전기사께서 “공항으로 가면 되죠?”라고 했다. 필자는 “네.”라고 답했다. 아직 세상이 어두운 시간이었다. 잠에서 깨어 있는 이는 택시기사와 필자뿐인 것 같았다. 10분가량 걸렸을까? 콤포스텔라 공항에 도착했다.

아직 항공사의 직원들이 업무를 시작하지 않았다. 티켓팅하고 배낭을 부치는 데스크 인근의 카페에는 손님이 네 명 있었다. 필자도 커피와 빵 한 개를 주문해 천천히 먹었다. 다른 손님들도 아마 필자와 같은 파리행 비행기를 탈 모양이다. 의자와 테이블이 높았다. 옆에 중년 아저씨가 의자에 앉은 채, 젊은 여성은 서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콤포스텔라에서 마지막으로 먹는 터피와 빵. 감정이 벅차올라 눈물이 핑 돌았다. 사진= 조해훈

커피와 빵이 나왔다. 밀크커피를 한 모금 마시니 눈물이 핑 돌았다. 40일 넘게 거의 아침·점심·저녁 식사로 마신 밀크커피이다. 한국에 가면 ‘카페 라테’와 비슷하다. 스페인의 밀크커피가 늘 맛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카페에서 카페 라테를 주문하면 윗부분에 하트 문양이나 나뭇잎 문양으로 멋을 낸다. 스페인은 그런 멋을 내지 않고 커피에 뜨거운 데운 우유를 부어주지만 진하고 맛이 좋다. 빵 또한 우리나라의 것만큼 달지 않아도 맛이 있다.

커피를 다 마실 무렵 티켓팅을 시작했다. 손님이 거의 없어 1, 2분 만에 비행기표를 발급받고 배낭을 부쳤다. 파리로 가는 손님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오전 7시 55분 출발 비행기인데 비행기에 탑승하는 시간((Boarding Time)은 오전 7시 15분이었다. 검색대를 통과해 커피를 한잔 마시며 기다리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검색대로 갔다. 기다리는 손님이 없어 바로 바지에 든 소지품과 벗은 점퍼를 같이 소쿠리에 담았다. 그리곤 검색대를 통과하려 양팔을 들고 검색원 앞쪽으로 갔다. 검색원이 필자를 보더니 “산티아고 카미노?”라고 물었다. 필자는 “네.”라고 말하니 검색기로 필자의 몸을 훑고는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했다. 필자는 “감사합니다.”라고 답하였다.

검색대를 통과해 명품숍들을 구경하면서 탑승구 쪽으로 걸어갔다. 탑승구 가까운 곳에 카페가 있었다. 커피를 한 잔 주문했다. 커피를 마시면서 보니 손님들이 많지 않았다. 이 시간 무렵에는 파리행 비행기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콤포스텔라 공항이 크지 않다 보니 더욱 그런 것 같다. 이 커피가 산티아고에서 마시는 마지막 커피다. ‘물론 다음에 또 산티아고 순례를 온다면 커피를 마실 수 있겠지만 지금의 이 맛만큼이야 하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산티아고에 온다면 지금의 느낌과는 다를 것이다.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생각하는데 항공사 직원이 “지금부터 탑승 수속을 하겠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먼저 탑승하러 가고 필자는 가능하면 천천히 표를 보여주고 비행기에 올랐다. ‘떠나고 싶지 않다.’라는 마음이 일어났다. 필자의 좌석은 통로 쪽이었다. 앉아 안전벨트를 맨 후 눈을 감았다. 수많은 기억과 생각을 안은 채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목욕한 번 하지 못했고, 얼굴은 햇볕에 그을려 시커멓고, 수염을 며칠 깎지 못해 그야말로 영락없는 노숙자였다.

콤포스텔라 공항에서 아침 7시 55분에 파리 샤골드골공항으로 가는 필자의 항공티켓. 사진= 조해훈

좀 있으니 스튜어디스가 방송을 했다. “파리 샤를드골공항으로 가는 비행기 곧 출발하겠습니다. 안전벨트를 매시고 좌석 등받이를 바로 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멘트를 했다. 그리고 나자 기장이 안내방송을 했다. “승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러분을 파리 샤골드골공항까지 안전하게 모실 기장입니다. … ”라고 말했다. 그러고 난 후 비행기 동체가 서서히 움직였다. 비행기는 앞으로 속도를 내다가 마침내 이륙했다. 드디어 산티아고 공항에서 이륙함으로써 총 43일 간의 산티아고 순례 일정이 모두 마무리되었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이렇게 해 65세인 필자의 산티아고 순례 완주가 모두 끝난 것이다. - 끝 -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