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서상균]

이튿날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두 시간 반이나 버스를 타고 허겁지겁 밭에 도착한 열찬씨가 문을 열고 들어가다
“아이구야!”
절로 탄식을 했다. 간밤에 강풍이 불었는지 애써 친 그물이 모조리 무너진 것이었다. 얼핏 보면 알프스의 초원처럼 그저 평화롭기만 한 구릉, 남진의 노래 <님과 힘께>의 저 푸른 초원위의 그림 같은 집 주변엔 꽃이 피고 새가 우는 것이 아니라 늘 소금기가 간간한 바닷바람이 부는 것이었다. 배낭을 벗고 무너진 울타리를 세워보려던 열찬씨가 이내 손을 거두었다. 울타리를 다시 치는데 또 하루가 걸릴 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음 날 영순씨가 오면 서로 붙잡아 주면서 하기로 하고 다시 삽과 괭이를 찾아 땅을 파기 시작했다.

0.아침 6시 기상, 새소리를 한참 듣고 커피를 한 잔
0.6시 반부터 글쓰기
0.9시 취사준비, 식사, 설거지
0.10시 오전 작업(밭일구기)
0.12시 반 점심, 휴식이나 낮잠
0.오후 2시 작업개시, 4시 반 간식(막걸리 한통)
0.오후 6시 작업종료
0.6시 반 프로야구 시청하면서 저녁식사 반주(소주)1병
(야구가 없는 날은 이리저리 어슬렁거리거나 탁자에 앉아 어둠이 내리는 정경 구경, 남의 집 라디오 듣기)
0.저녁 10시 반 취침.

특별히 시간표를 짜지 않아도 일과가 고정되고 하루하루가 물처럼 순조롭게 흘러갔다. 영순씨가 오는 날도 크게 다름이 없었다. 주로 토요일 늦게 오고 일요일 오후에 돌아가니 프로야구와 연속극 시간이 겹쳐 갈등하는 일도 없었다.
“당신이 열심히 사는 것은 틀림이 없지만 시간사용이 너무 이기적이야.”
“...”
“아내인 내가 와도 오로지 글을 쓰고 밭을 일구는 자기시간에 맞추기만 바라니 말이야.”
“...”
“조씨아저씨를 비롯한 주변사람들도 그들이 찾아오지 당신이 찾아가는 일은 없을 거야. 꼭 무얼 물어볼 일이 없으면 말이야.”
“...”
“특별한 일이 없어도 먼저 찾아가 인사도 하고 남의 예기도 좀 들어주고 하세요.”
“아, 알았어.”
일요일에 비가 와서 밭일을 못 하면 컴퓨터를 켜고 작업에 몰두하는 열찬씨를 보며
“일요일엔 좀 쉬어. 하느님도 휴식을 명한 날인데.”
“...”
“남은 성당에도 못 가게 사람 불러놓고 혼자 글쓰기야?”
“그럼 어떡해. 우리가 뭐 늦둥이 볼 나이도 아니고 <쎄쎄쎄>하고 놀 나이도 아니고.”
하며 전국노래자랑이 시작되기 전까지 고스톱판을 벌이다가
“아이구, 한심하다. 이렇게 비가 추적되는 산속에서 우리가 이거 무슨 짓이고?”
“그럼 월내나 좌천에 감자탕이나 밀면이라도 먹으러 갈까?”
“뭐 비 오는데 라면이나 끓여먹지.”
하던 영순씨가 그 까짓 하루쯤 글을 못 쓰면 어디 덧나느냐며 일요일엔 자기차로 집에 가서 자고 월요일 날 하루를 쉬어 화요일쯤 돌아가라고 졸랐다. 너무 무시하기도 그렇고 해서 그렇게 하자니까 기왕이면 연산동에서 저녁을 먹자며 미혜씨나 슬비네에 전화를 해서 모처럼 회식을 하게 했다. 그렇게 모처럼 제대로 된 저녁식사를 하고 자리에 들면서
“당신, 내일아침에 내가 영서집에 가고 슬그머니 오리농장으로 가면 안 돼. 만약 꼭 가고 싶으면 가되 월, 화 이틀자고 수요일 저녁에는 집으로 돌아와야 해.”
“길도 먼데 왜 그래?”
“첫째는 당신 식사가 부실해서 그렇지만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우리가 떨어져 지내는데 익숙해서는 안 돼.”
“아, 알았어.”
“내가 농장에 가져갈 밑반찬 냉장고에 따로 넣어놓았으니 챙겨서 가.”
“고마워.”
영순씨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같이 지내는 것을 원칙으로 했고 열찬씨도 따르기로 했다.

정해진 시간표대로 오전 작업을 시작하면 맨 먼저 아래쪽 보일러 김씨의 집에서 들리는 라디오소리가 그를 반겼다. 자주 듣다보니 몇 시쯤 무얼 하는지 감이 잡히며 음악은 물론 진행자가 주고받는 멘트나 시청자의 편지를 낭독하는 내용까지 상세하게 귀에 들어왔다. 이야기가 재미있을 때는 저도 모르게 잠깐 일손을 놓고 듣기도 했다. 그런데 묘한 것은 바람방향에 따라 아래쪽 보일러 김씨 라디오를 집중하다가 한쪽 귀로 들리는 위쪽 재활용 조씨의 라디오소리도 그 내용이 재미있으면 귀를 쫑긋해서 듣기도 하는데 어느 새 자신의 취향에 따라 위쪽, 아래쪽의 방송을 가려듣기에 이르렀다. 아래 쪽 김씨는 늘 mbc를 켜놓았지만 위쪽 조씨는 올 때마다 채널을 이리저리 바꾸는 모양으로 어떤 때는 위아래가 같은 채널로 쌍 나발을 불기도 했다.
한동안 <봄이 오면>, <봄이 오는 길>등 봄을 주제로 한 노래가 주류를 이루더니 식목일이 넘어서면서 벚꽃 철이 왔는지 <벚꽃엔딩>이라는 처음 듣는 노래, 가사도 극히 감성적인데다 코맹맹이 사내가 불러 처음에는 너무나 생경스럽던 노래가 차차 중독성을 가지고 익숙해지더니 하루에도 여러 차래 어떤 때는 위, 아래 라디오로 여남 번씩 듣는 날도 있었다.

[그림=서상균]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오늘은 우리 같이 걸어요 이 거리를
밤에 들려오는 자장노래 어떤가요?
오, 예
몰랐던 그대와 단 둘이 손잡고
알 수 없는 이 떨림과 둘이 걸어요.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우우 둘이 걸어요.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우우 둘이 걸어요.
오, 예
그대여 우리 이제 손잡아요.
이 거리에 마침 들려오는
사랑 노래 어떤가요?
오, 예
사랑하는 그대와 단 둘이 손잡고
알 수 없는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우우 둘이 걸어요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우우 둘이 걸어요
바람 불면 울렁이는 기분 탓에
나도 모르게
바람 불면 저편에서 그대여
니 모습이 자꾸 겹쳐
오 또 울렁이는 기분 탓에
나도 모르게
바람 불면 저편에서 그대여
니 모습이 자꾸 겹쳐
사랑하는 연인들이 많군요.
알 수 없는 친구들이 많아요.
흩날리는 벚꽃 잎이 많군요, 좋아요.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우우 둘이 걸어요.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우우 둘이 걸어요.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하도 곡이 길어 하마 끝나려나 싶으면 다시 <그대여, 그대려>로 불을 지피는 코맹맹이소리가 마침내 끝나면 mbc 에프엠 최유라 조영남의 <지금은 라디오시대>나 양희은, 서경석의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나 정경미, 박준형의 <두시 만세>를 들으며 가끔 허리를 펴고 허허 웃기도 했다.

그런 어느 날 갑자기 잘 나가던 음악이 딱 끊기면서 <긴급속보>라며 인천에서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유람선이 전라도 어딘가 서 침몰되어 수백 명이 꼼짝 못 하고 갇혔다고 하더니 이내 수십 명을 제외한 전원이 구출되었다고 하다가 다시 그와 반대의 절망적인 상태라는 여자아나운서의 흥분된 목소리가 마침 바람에 흔들리는 전파처럼 어지럽게 귓가를 맴도는 것이었다.
“!”
민방위과장과 방재안전과장을 지내며 누구보다 재난에 민감한 열찬씨가 방으로 들어가 텔레비전을 틀고 아직도 상황파악이 안 되어 우왕좌왕하는 목소리를 듣다 방송을 끄고 눈을 감았다. 이 화창한 봄날에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구출하고 누군가는 울부짖고 누군가는 시시콜콜 원인을 따지고 누군가는 절망하고 누군가는 삿대질을 하며 항의하고 원망을 할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머리가 허연 노인이 되어 한적한 산중턱에서 밭을 가는 그는 더 이상 흥분할 일도 아니었다. 그래도 콩닥콩닥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잠깐 잠이 들었다 일어나니 이번에는 이건 명백한 인재라고 이런 대형참사가 일어나도록 정부나 관계당국은 무엇을 했느냐의 질타로 이어지더니 이어 대통령은 그 시간에 어디서 무얼 하고 왜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는지가 이슈가 되더니 곧 선박회사인 <세모>의 실제주인인 구원파가 집단살인사건의 오대양교와 어떤 관계이며 그 실체가 무엇인지 장황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선박이 처음 침몰하기 시작했을 때 동요하지 말고 의자에 앉아 기다리라는 선내방송이 나와 대부분의 학생과 승객들이 배가 완전히 침몰될 때까지 곱다시 앉아서 죽음을 맞았다고, 처음에 단순한 사고인줄 알고 장난전화 비슷하게 가족들에게 전화를 하거나 문자를 보내던 학생들이 마침내 절망적인 목소리로 절규하다 뚝 끊겼다고 보도되더니 그 북새통에 선장과 선원은 전원 탈출하여 단 한명도 죽지 않고 무사하다는 기가 막히는 내용이 이어졌다. 그리고 갑자기 방송음악이 느리고 침울한 톤으로 바뀌었다. 라디오를 틀어도 텔레비전을 켜도 모조리 안개처럼 침침한 어둠이 가득한 것이었다.

이제 몇 명이 구출되고 몇 명의 시신이 수습되고 몇 명이 배속에 있느냐가 시간대별로 방송되는데 아직도 정확한 승선인원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갑갑한 소식도 이어지고 진도(珍島)의 합동분향소와 대책본부, 울부짖는 가족과 자원봉사자들과 노란 리본의 물결, 그리고 대통령은 무얼 했느냐, 세모의 유병언은 왜 그리도 무식하고 몰상식하게 배를 고치고 무리하게 운행하는지, 그 구원파라는 사이비종교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지, 꽃다운 학생들을 수장시키고 저만 탈출한 선장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사람인지 연일 보도되더니 차츰 보도의 가닥이 잡혔다.
어느 쪽은 대통령과 정부, 관계당국의 잘못으로, 어느 쪽은 한 사이비종교단체가 무리하게 운행한 단순한 해난사고로 몰고 가려는 정치적 색깔이 나타나면서 야당에서는 대통령이 물러나야 된다는 목소리와 함께 엉뚱하게 자기당의 여자대표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수백 명이 죽고살고 전 국민이 가슴을 졸이는 판에 바야흐로 정치게임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송도해수욕장일대가 태풍 매미호로 쑥대밭이 되어 서구청공무원들이 몇 몇 일이나 집에도 못 가고 파김치가 되었을 때 그 바쁜 사람들을 불러들여 <태풍매미 호 피해 및 수습대책>을 보고 받고 수시로 현장의 상황이 변하는 상태에서 집계가 틀린다고, 수치 하나 제대로 못 맞히고 업무보고를 하는 것은 의회를 무시하는 처지라고 삿대질을 하고는 점심시간에 갈비 집에서 서로의 질문내용을 무슨 무용담처럼 나누며 소주잔을 들어 건배를 하던 사람들이 기름기가 번질거리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런들 어찌하랴? 나는 이미 은퇴한 것을...)
몇 몇 일이 지나도 애도일색의 음악을 들으며 그래도 그는 꿋꿋이 작업을 진행했다.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