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번호 3617, 내란 수괴 혐의 피의자가 ‘속옷 차림’이란 희한한 무기로 체포 영장을 무력화했다. 내란 사건 재판장인 지귀연 부장판사는 법원 휴정기 동안 재판을 중단하고 휴가에 들어갔다. 취임 때부터 신속한 재판 진행을 강조했던 조희대 대법원장은 이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다.
이 세 가지 사건은 전혀 별개의 사안일까? 하나로 꿰어지는 그 뭔가가 있다. 사법부에 자정 능력 혹은 자정 장치(self-correcting mechanism)에 빨간불이 들어왔다는 확실한 징표이다.
내란죄는 중대 범죄이므로 공소시효가 적용되지 않거나 25년이다. 내란죄 우두머리에게는 형량이 사형,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밖에 없다. 일반 사회인과 영원히 접촉해서는 안 되는 악마적 범죄자로 분류하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생활 영위와 사업경영에서 근본적인 기준은 법이다. 그 법의 법이 헌법이다. 그 헌법을 파괴하는 범죄가 내란죄이다. 따라서 내란죄는 전 국민의 일상과 사업의 기준을 망가뜨리는 일이니, 그 피해자는 전 국민이다. 따라서 내란죄에 대한 처벌은 엄혹함이 당연지사이다.
갈 데까지 간, 볼 장 다 본 내란 수괴가 ‘빤스’만 걸치든지 알몸으로든지 뻗대는 추태는 추접스럽지만 이해는 할만하다. 그렇지만 시시비비를 가리고 응징을 해야 할 재판장과 대법원장의 작태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12·3 내란 사건은 친위쿠데타이다. 그러므로 당시의 사법부 또한 체제의 기득권 세력임은 당연하다. 친위쿠데타에 동조했는지는 특검 수사로 차후 밝혀질 것이다. 분명한 건, 지 판사는 엉터리 구속기간 계산으로 내란 수괴를 풀어줘 국민의 분노를 산 전력이 있고, 정권이 바뀐 현재에도 재판을 지연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더해 5·1 대법 판결(이재명 유죄 취지 파기 환송)과 같은 ‘참사’를 일으킨, 법관의 인사권을 한 손에 쥔 ‘황제적 대법원장’은 이에 동조하고 있다. 국민의 분노에 아랑곳하지 않아도 위헌이나 위법은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겠지.
그렇지만, 사법부의 존립 근거는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존중이다. 법관들이 기득권 유지에 몰두해 자정 능력이 없는 조직으로 전락한다면 이는 국민의 신뢰는 배반하는 일이다. 따라서 이는 사법부의 독립을 운운하기에 앞서 스스로 존립 근거를 부정하는 꼴이다. 현재 우리의 사법부에 과연 자정 능력이 있을까?
자정 장치가 잘 작동하는 과학과 자정 능력이 본질적으로 허약한 제도(Institutions)와 비교해보자.
과학은 다음과 같은 구조적 특성 때문에 자정능력이 뛰어나다. 같은 분야의 연구자들끼리 상호 검증함으로써 오류나 편향을 걸러내는 동료 심사(peer review), 누구나 실험을 반복해 볼 수 있어 검증이 가능한 재현 가능성(reproducibility), 이론은 반박될 수 있어야 과학적이라는 반증 가능성(falsifiability), 연구자들은 서로 경쟁하며 결과는 공개되어 비판 받는다는 지속적인 경쟁과 공개성 등이다. 이 모든 요소는 권위보다는 진실을 우선시하는 구조를 만들어내고, 그 결과로 과학에서는 자정 능력이 뛰어나게 된 것이다.
반면, 제도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자정(自淨)이 매우 어렵다. 내부 감사나 평가가 외부에 공개되지 않거나 형식적이게 된다는 폐쇄성, 상명하복으로 위계 중심의 운영으로 비판이 억제되는 권위주의적 구조, 이해관계가 서로 얽혀 제도 구성원들이 서로의 잘못을 눈감아주는 이기적 문화, 문제가 생겨도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구조적 특성 등이다.
어떤 조직의 취약점에 대해서는 조직 구성원이 가장 잘 안다. 하여 동료 심사는 아주 중요하다. 5·1 대법 판결(이재명 유죄 취지 파기 환송)에 대한 국민의 분노로 5월 26일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열었다. 의제는 ‘사법의 정치화’, ‘법관 독립성 강화 방안’, ‘징계, 감찰 제도 개선’ 등이었다.
하지만 입장 채택 없이 대선 이후 논의를 이어가기로 하고 회의를 마쳤다. 그리고 현재까지 이어간다던 회의는 열리지 않고, 아무런 의견 표명이 없다. 국민의 사법부에 대한 원성이 이만큼 높은데도 말이다. 이는 결국 사법부는 자정 능력이 없다는 것을 방증한다.
조직 내부에서 자정능력이 없다면, 외부에서 망치를 들어야 한다. ‘창조적 파괴’가 필요하다.
일본에는 국민들이 직접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파면시키는 제도가 있다. 우리나라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기능을 겸하는 일본 최고재판소의 재판관들은 임명된 뒤 처음 치러지는 총선 때 전 국민의 신임투표에 부쳐진다. 국회의원 투표지와 별도로 재판관들의 이름이 적인 투표용지가 교부되고, 유권자들은 자격이 없다고 여기는 재판관의 이름에 ×표를 한다. ×표가 투표자의 과반에 이르면 그 재판관은 바로 파면된다.
이런 제도가 우리에게 있다면 조희대 대법원장은 6월 3일 대통령 선거 때 국민심사를 받았을 것이다. 그 결과는 자명하지 않은가. 바로 파면이다.
일본 헌법은 법관(재판관) 전체에 대한 민주적 통제 장치도 두고 있다. 제64조에 ‘국회는 파면의 소추를 받은 재판관을 재판하기 위하여 양원의 의원으로 구성하는 탄핵재판소를 설치한다.’ 탄핵 대상 공직자 중 하나로 법관을 포함시킨 우리 헌법과 달리, 일본 헌법은 법관만 꼭 집어 탄핵 조항을 두고 있다. 그리고 탄핵 재판은 국민의 대표인 의원들이 맡는다.
파면 사유도 우리처럼 ‘헌법·법률 위반’에 그치지 않고, ‘재판관으로서 위신을 현저하게 잃은 비행’까지 포함한다. 지금까지 8명의 재판관이 파면됐다. 향응 수수, 스토킹, 지하철 불법촬영, 부적절한 에스엔에스 글 등이 사유였다. 우리 기준에 비춰보면 탄핵 사유까지도 안 되는 것도 있다. 그러나 법관의 높은 윤리 기준을 통해 국민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원칙을 제도로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박용현/「내란이 드러낸 ‘법관의 왕국’, 이런 나라는 없다」/한겨레신문/2025.7.31)
이런 제도가 있다면, 유흥주점 향응 의혹이 구체적으로 제기된 지귀연 판사는 어떻게 됐을까? 불문가지이다. 바로 파면이다.
국민이 파면시킴이 마땅한 판사와 대법원장이 사법부에서 건재한 현실, 뭐가 잘못 돼도 한참 잘못된 일이 아닌가!
사법부 개혁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핵심은 국민이 직접 사법부를 통제하는 것이다. 국민의 통제 아래 사법부를 두는 것이야말로 K-민주주의에 한 획을 긋는 일이 될 것이다.
<작가/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