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또 다시 지주의 횡포(10)
얼마 전 양정시장의 과자장사로 떼돈을 벌서 40이후 평생을 놀고먹었던 한량이던 아버지가 죽어 2남 1녀 이복동생들에게 “너거는 너거 엄마 살았을 때 벌써 바리바리 싸서 지 몫 다 챙겼다 아이가? 인자 너거 줄 돈은 단 한 푼도 없다.”
냉정하게 선언하고 마지막에 살던 아파트까지 처분해서 저축한 통장의 7억을 독식했다. 그의 아버지는 젊은 시절 과자장사를 할 때 헌범씨의 어머니인 본처와 사이가 무척이나 좋았음에도 낙찰계의 오야이던 아내가 계가 터져 잠적하는 바람에 저절로 이혼이 되고 말았다. 돈이 많아 어렵잖게 처녀장가를 가 2남 1녀를 낳은 후 외톨이로 자라는 장남이 가엾어서 어떤 간섭도 않는 것은 물론 오히려 아이의 눈치를 슬슬 보며 키웠다. 그 외로운 소년 종일 말 한마디 없이 침울하다 한 번씩 엉뚱한 농담이나 던지며 괴팍하고 인정머리 없는 사람으로 자란 것이 평생 아픈 손가락이 되어 늘 애련한 생각밖에 없는 그의 아버지는 임종을 앞두고 마지막 한 푼까지 장남에게만 주었던 것이었다.
밑에 세 동생들은 이제 법이 바뀌었으니 넷이 마지막 한 푼까지 균등하게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헌범씨는 너거 엄마가 살았을 때 자기만 배제하고 가져간 돈이 자기 몫의 몇 배씩은 된다며 들은 척도 안 했다. 오죽하면 중풍을 맞아 집밖으로 나오지 않는 자신의 아내까지 지금은 이혼을 하고 아이 둘을 키우며 힘들게 사는 막내딸(시누이)에게 조금만 떼어주자고 해도 들은 척도 안 했다. 그러면서도 7억을 독식한 것이 무슨 큰 자랑거리라고 단골 노래방의 마담, 두 사람의 관계가 좀 아리송한 마담에게 말해 겨우 서너 번 본 적이 있는 마담이 열찬씨에게
“저 인간이 단지 힘 하나 좋은 것 때문에 내가 같이 친구사마 지내지만 어떤 때는 인정머리가 너무 없어 무서운 생각이 다 들어요. 그 불쌍한 여동생 은영이한테 돈 한 5천 주면 어때?”
하고 흉을 볼 정도였다.
생각하면 할수록 7억을 독식한 것이 흐뭇한지 지난 번 형제계에 와서는
“인생은 인물도 학력도 간판도 아이다. 그냥 현금이다. 여게 내보다 현금 많은 사람 있으면 나와 봐!”
큰소리를 탕탕 치다
“인간아, 돈 많다고 자랑만 하면 뭐 하노? 남한테 한 푼 쓰지도 않으면서?”
보다 못한 미혜씨가 말하자
“그래 기분이다. 내 돈 백만 원 내어놓지!”
호언장담을 하다
“그래 일구이언(一口二言)이면 이부지자다.”
미혜씨가 오금을 밖아 7집 계원 중 자기 처를 뺀 여섯 여성에게 등산용 점퍼 하나씩을 사주기로 하고 하나에 35만원씩 무려 210만 원을 쓴 것이었다.
“그래 좋다. 지금 여기서 내가 사준 잠바 안 입은 여자 있으면 나와 봐!”
영순씨를 비롯한 눈치 빠른 여자들이 미리 다 빨간 잠바를 입고 온데다
“따봉!”
“오빠!”
엄지를 치켜세우며
소리 지르자 헌택씨, 헌관씨, 화룡씨가 얼굴을 찌푸리며 자기들 끼리 술잔을 채워주고 있었다.
“이서방, 어서 한 잔 하소.”
술을 마시기 바쁘게 안주를 집어주려고 젓가락으로 회 한 점을 집은 미혜씨가 열찬씨를 바라보는데
“그래 처형은 힘이 장사네. 누가 지금 처형을 보고 속에 중병이 든 사람이라 카겠노? 오늘 따라 얼굴도 이래 곱고...”
“그거 이 서방이 제일 싫어하는 정치적 발언 아이가?”
“아냐. 진짜 혈색이 좋다니까. 살도 약간 빠진데다 뺨도 붉고 눈빛도 더 붉어진 것 같고 한마디로 농염해.”
“하긴 아직 특별히 아픈 데는 없어. 항암치료할 때 한 이틀은 온몸이 땅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지만 며칠만 지나면 이래 멀쩡한 것 말이야.”
사실 미혜씨의 췌장암은 발견당시가 말기라 수술 같은 적극적인 방법으로 어떻게 손을 써볼 수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최후로 효과가 있든 없든 일단 향암치료를 해보는데 비록 머리가 빠져 늘 모자를 쓰고 다니기는 하지만 원래 좀 통통하던 체격에 약간 살이 빠져 오히려 보기만 좋을 뿐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이제 1년 남짓 밖에 못 산다는 사람, 거기에다 이미 3,4개월이 지난 사람이라고 볼 수가 없었다. 한번은 현서를 보는 영순씨를 만나러 갔다가 무심결에 모자를 벗어
“아, 스님할머니다!”
아직 세 살짜리가 어디서 배웠는지 스님이라고 불러
“아니야, 난 카톨릭신자야. 성모마리아의 딸이야.”
하면서 아이의 뺨을 쓸어준 적이 다 있었다. 영순씨의 전도에 의해 늦게 믿는 종교지만 불치의 병이 오자 미혜씨의 신앙심은 돈독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평소 취미로 배운 서예솜씨가 상당해 노인복지회관 등에 강사로 봉사활동을 나가기도 했는데 이제 집에서 붓글씨로 하느님아버지, 성모마리아, 나자렛동산, 골고다언덕, 산상수훈 등을 쓰는 것을 보고 영순씨가
“언니야, 그러지 말고 성경을 필사해봐. 나는 아이가 있어 못 하지만 신앙심이 돈독한 사람, 그 중에서 몸이 불편해서 잘 못 나다니는 사람들이 신약, 구약할 것 없이 성경을 많이 필사한데. 그렇게 필사하다 보면 저절로 성경내용도 깨닫게 되고 믿음도 확고해지고 또 마음이 평온해진대.”
하는 말을 듣고 정말 열심히 성경을 필사해 이제 신약성경을 거의 마칠 정도라 이어서 구약성경에 도전한다는 것이었다. 크고 뚱뚱한 몸매와 굵은 목소리 누가 보면 좀은 거칠거나 함부로 나대는 덩덕군이나 왈바리 같은 인상과 달리 차분해 영순씨가
“언니 니 참 진득하게 잘도 하네.”
하면 열찬씨가
“꾸준하다는 말은 진득하다가 아니고 시궂다고 한다.”
“시궂다가 뭐고? 나는 평생 처음 듣는데?”
“그게 진득하다는 말인데 진득하다고 하면 손에 뭔가 찐득찐득 들어붙는 것 같아 나는 싫다.”
“말이야 어떻든 우리 언니가 신앙심하나는 참 알뜰한 사람이다. 내가 전도했지만 나보다도 더 돈독한 것 같다.”
할 정도였다.
“참, 처형은 물 기 없어 우짜요?”
“뭐 저녁 한 끼야 대충 묵으면 되지. 안 그래도 우럭 한마리 따로 꾸버주라캐서 묵었심더.”
“그래도 처형은 칠암 꺼먹동네에 가서 아나고 1관 시키고 잡어 한 사라 해서 넙떡한 손바닥에 한 줌 쌈을 싸서 볼이 미어지도록 밀어 넣어야 되는데.”
“내가 나아서 다시 묵을 수 있으면 좋지만 그래 안 되도 그 동안 많이 묵었다 아잉교?”
“오늘은 와 자꾸 사투리를 쓰는데?”
“몰라. 자꾸 우리 아부지 어무이가 쓰던 언양하고도 소야사투리가 생각나네.”
하는데 아까부터 미혜씨 앞의 우럭구이를 보고
“아따, 그 우럭구이 맛있겠다.”
하면서 슬쩍슬쩍 한 점씩 집어먹는 헌범씨를 보며
“처남은 회를 자시지. 이건 환자용 구이야.”
해도 회에는 젓가락이 가지 않고
“누나, 암환자는 꼭 음식을 가려야 하나?”
“의사가 특별히 가려라고는 않지만 상식적으로 육회나 회, 특히 게 같이 식중독이 우려되는 음식은 제가 알아서 안 묵어야지.”
하고 물끄러미 헌범씨를 쳐다보다
“구석아!”
국민학교에 들어가지 전까지 쓰던 헌범씨의 아명을 부르며
“니 무슨 일 있제?”
눈을 반짝였다.
“...”
“와? 니가 전에 안 하던 일을 자꾸 하니 그렇지. 우리 김가들 성질머리가 돈이 남아 썩어빠질 판이라도 지 혼자 술 묵고 기집질했으면 했지 4촌간에 옷 사줄 성질이 아닌데 잠바를 여섯 개나 사 준 것도 그렇고 술잔도 받아만 놓고 안마 시고 횟집에서 회는 안 묵고 남의 생선구이나 넘봤어보고.”
“맞아. 나도 암이래.”
“뭐? 암!”
영순씨와 열찬씨는 물론 가까이 앉은 남숙씨와 헌택씨의 처인 종부 순남씨가 일제히 쳐다보는데
요양원의 아부지가 자꾸 감기에 걸리고 기침을 한다고 잠을 못 주무셔서 단순히 노환인줄 알았는데 의사가 엑스레이를 한 번 찍어보자고 해서 찍어보고는 폐암말기래. 어떻게 하냐니까 어떡할 수가 없다는 거야. 너무 늦었기도 하지만 89세 노령으로는 수술 같은 적극치료가 어렵다고 말이야. 그냥 노인병원에서 곱다시 앓다 죽을 형편이지. 그래서 아버지께 아버지가 폐암일지도 모른다니까 이외로 담담하게 이제 죽을 나이에 그런 병이 실려야 곱게 갈 수 있지 아무 것도 못하는 판에 죽지도 못하고 견디는 것도 여사 일이 아니라면서 빙그시 웃는 거야. 그러면서.“
“그래. 외삼촌이 그러면서 무얼?”
궁금해진 남숙씨가 애가 바짝 타는데
“구석아, 니나 종합검사 한 번 해 봐라. 하는 거였지.”
“작은 아부지가 그랬어? 그래서?”
미혜씨의 말에
“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골초인 니가 검사를 하고 아무 탈 없다는 말을 해야 내가 안심하고 눈을 감는다고 하시잖아.”
“그래서 검사를 하니?”
“나도 폐암말기래. 수술도 안 된데. 세상에 무슨 암이 말기가 되도록 한 번 아프지도 않나 말이지.”
“그래. 암이 통증을 느낄 정도면 바로 죽는다잖아.”
“맞아. 그런가 봐. 그래서 아버지에게 아무이상이 없다고 말했더니 안심하고 눈을 감더구먼.”
“그랬구나. 그 몸으로 초상을 치렀구나!”
영순씨가 감탄을 하는데
“몸이 아프거나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이러다가 초상도 못 치르고 내가 죽을까 봐 걱정을 했지. 좌우간 초상이 끝나기 전까지는 지수엄마나 두 아이들에게도 말은 안 했지.”
“그랬구나. 니가 평소에 촐랑거리는 요량하곤 속이 깊네.”
미혜씨의 말에
“그래서 괜히 나보다 연상인 우리 이서방 제매한테 니네돌이로 욕을 하고 가시나 있는 노래방에 가서 어문 짓을 하곤 했지.”
“이 문둥아,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하지. 난 처남 니가 그런 줄도 모르고.”
열찬씨가 손을 잡자
“인명재천이다. 갈 때 되면 가야지.”
“그래서 그랬구나. 불쌍한 은영이도 한 푼 안 주고?”
“내 코가 석자 아이가? 몸 아픈 마누라에 장가 안 간 지수에다...”
그럭저럭 모임이 끝나자
“이 서방, 우리 노래방이나 가까?”
헌범씨가 영순씨, 미혜씨가 들으라고 말하자
“까짓 것 한번 갔다 오소. 우리 영감은 보나마나 딱 10만원 카드 끊으면 더는 돈 안 쓸 건데 오빠가 부담이 많겠소.”
“이럴 때 쓸려고 내가 돈 7억 땡깄다 아이가?”
허허 웃는 헌범씨와 노래와 춤을 좋아하는 헌관씨에 열찬씨와 미혜씨까지 태웠다. 먼저 연산동에서 미혜씨를 내려준 승용차가 온천동 미남로터리 가까이 가자 헌범씨가
“영순아, 차대라. 암만 그래도 노래방 입구까지 타고 갈 수는 없다. 어느 집 몇 번 룸에 어느 가시나 하고 노는지 마누라가 다 안다면 가서방이 놀 기분이 나겠나?”
하고 영순씨를 돌려보냈다.
재미사마 시작했지만 너무나 애가 많은 구서동 밭, 또 세 시간이 걸리는 머나먼 오리 농장의 막막한 황무지와 그물처럼 빼곡한 칡넝쿨과 끈질긴 칡뿌리와 클로버뿌리, 상식적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교장선생내외의 욕심이 가득한 심술과 몰상식, 언제나 어디서나 뭔가 찜찜한 분위기를 몰고 오며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윤여사와의 갈등, 밋밋한 언덕을 밀어붙이던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바닷바람에 부대끼며 살아온 한 해, 예순이 훨씬 넘은 나이에 달랑 삽 한 자루를 들고 황무지 200평을 개간한 만용, 10개의 손가락이 마디마다 골병이 들어서 배구선수처럼 반창고를 붙이면서도 내 농사꾼자식으로서 내게 밀어닥치는 소소한 위기정도는 농사꾼의 뚝심으로 밀어 붙이리, 그리고 어떻게든 열무가 자라고 고추가 익어가는 한 마지기 200평의 땅 한 자락을 일구어보리, 어찌 보면 만용에 가까운 한해, 그렇게 악착같이 버텨온 한 해가 갔다.
그러나 힘들기만 하고 전혀 소득이 없는 한 해는 아니었다. 사람의 욕심이 아무리 늙어도 줄어들거나 사라지지 않고 늙으면 늙을수록 미련이 되고 집착이 되어 커다란 갈등과 비극으로 변한다는 것, 그리고 세상에 지주가 소작농에 대한 심술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마침내 손바닥만 하지만 내 땅을, 그것도 신불산아래 고향땅에 마련한 것이었다.
또 제일 가까이 지내던 친척 미혜씨가 치유불능의 췌장암에 걸리는 슬픔을 목도하기도 했지만 네 명의 손녀, 그 중에서도 돌바기에서 세 살짜리의 세 손녀 우화, 가화, 현서가 무럭무럭 자라난 기쁨도 누렸고 아들내외의 직장생활도 딸의 만두가게도 다 정상궤도에 올랐다. 텔레비전에서 제야의 종소리가 울리기를 기다리면서
“당신은 기쁭교? 또 한 해가 가고 아이들이 자라는 게?”
“기쁘기 보다는 시원섭섭하지 내 나이가 벌써 60대 후반으로 접어들다니.”
“남들처럼 건강이나 챙기면서 편안하게 살면 좋으련만 당신은 글을 씁네, 농사를 짓네, 남들은 상상하지도 못할 유난을 떨며 나까지 힘들게 하더니 이제 고향에 내 땅을 사서 기분이 좋응교?”
“그게 어데 내 땅이가, 당신 땅이지?”
“아이구, 말이사.”
하면서 영순씨 역시 흐뭇한 표정이었다.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