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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나무 절집

유 창 섭

어디선가 목탁 두드리는 소리
높이 솟은 나무에 절이 세 들었나
죽은 도토리나무에 딱따구리가 찾아왔다

연 사흘이나
주검 속에서 생명을 찾으려고
주검 속에 절집을 지으려고
연장통을 메고 와서
몇 시간이나 나무를 다듬다가 돌아갔다

매양 바람이나 안고 사는 나무 등걸에서는
두꺼운 세월의 껍질이 벗겨져
너와 집이 생겨나고
절간 봉당에는 부러져 땅에 꽂힌 나무 부도(浮屠)가
홀로 불경을 배우고 있다
한낮에는 낭낭한 소리에 햇살도 쏟아졌다
민항재 가는 길, 정암사 부처님이 오셨나 보다

가고 싶어도 엄두도 못 내는 나를 위해
예까지 오셨나 보다
집 앞에는 정화수 한 그릇 떠 놓을 옹달샘도 없는데
콸콸콸 쏟아지는 수돗물이나 떠다 놓아야겠다
때 묻은 마음이라도 흘러 나가게

* 강원도 정선군 정암사 수마노탑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어 법당에는 부처님의 불상이 없다

- 月刊文學 vol. 681, 사단법인 한국문인협회

시 해설

높은 나무에 ‘절이 세 들었는’지 목탁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서 보니까 딱따구리가 죽은 도토리나무를 찾아와서 내는 소리였다.

시주하라고 빨간 모자 쓰고 죽은 나무를 두드리는 딱따구리는 사흘이나 공을 들이며 ‘생명을 찾으려고’ 했고 내친김에 구멍을 내서 ‘절집’ 지으려고 부모님께 물려받은 연장(부리)으로 ‘몇 시간이나 나무를 다듬다가 돌아’가고 주위는 고요해졌다.

절집 소문에 관심 없던 나무 등걸은 오랜 세월동안 소유해 온 껍질을 벗어주어 너와 집을 짓도록 보시했고 ‘절간 봉당에는 부러져 땅에 꽂힌 나무’가 부도(浮屠)가 되어서 불경 소리를 듣고 있다. 암송을 다 했기에 바람이 집적거려도 침묵하고 있는지 모른다. 한낮에는 낭낭한 소리에 햇살도 그늘을 깔고 눕는다. 하오의 숲에 소르르 졸음이 쏟아진다.

‘민항재 가는 길, 정암사 부처님이 오셨나 보다 가고 싶어도 엄두도 못 내는 나를 위해 예까지 오셨나’ 예를 올리려는 시인의 집 앞에는 정화수 한 그릇 떠 놓을 옹달샘도 없어서 ‘콸콸콸 쏟아지는 수돗물이나 떠다 놓’기로 한다. 졸졸졸 샘물 기다리다가 한세상 다 갈 것 같고 묵은 때 찌든 마음 확 씻어버리고 싶은 것이다.

◇ 조승래 시인은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이사, 문학의 집 서울 이사,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 시향문학회와 시와시학 문인회 회장, 가락문학회, 함안문인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취미생활로는 검도를 하고 있다(대한검도회 영무검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