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管

박 설 희

입과 항문의 거리는 얼마나 가까운지

취나물 무침, 조기 튀김, 계란찜, 김치찌개,
반주로 소주 몇 잔과 B의 스캔들, P의 무능함, H의 기행奇行...
낄낄거리며 안주 삼아 삼켰던 것들이
답답하다는 듯, 숨 막힌다는 듯
변기 속으로 급하게 쏟아져 내린다

어디에서 탈이 난 걸까
정작 하고 싶은 말들은 꺼내 놓지도 못했다
내보내지 못한 딱딱한 분노와 갈증의 찌꺼기들
몸속에서 이리저리 구부러지는 수많은 경계선을 따라
팽팽한 긴장이 날을 세운다

자극적이고/ 짜릿한 것들/ 돌기와 상처와 염증을 더듬으며
가장 깊은 내부를 질주하고 있다/ 먼저 빠져나가겠다고 온통 아우성을 치며/ 또 한 차례 경련이 지나간다

거칠고 급하게/ 때로 너무 더디게/ 나를 관통하는 세상이
좀 더 순하고 말랑거렸으면 하다가

어서 나를 지나가라/ 배를 움켜쥐는 것이다

- 박설희 시인의 시 관管 전문, 2025 동행문학 봄호


시 해설

밥이 신체에 들어가서 누구라도 겪는 일을 묘사한 시이다. 입에서 시작하여 출구까지를 하나의 관管으로 보았고 온갖 거 다 지나가면서 길 잃지 않도록 외길로 되어 있다.

시인은 관(시도 위 소장 대장)을 지나가는 물질의 특성에 맞도록 체류와 이동 추이를 자세히 묘사한 시를 쓴 것이다. 자극적이지 않은 순한 맛이 제일 좋음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와 같다.

태어나서 이유식 때부터 한번 입맛을 들이고는 세상 떠나기 전까지 먹게 되는 것이 밥이다. 신체를 유지하게 하는 것이니만큼 건강식으로 탄수화물 과다 섭취를 피하는 방법으로 슬기롭게 밥을 먹어야 한다. 공짜 점심은 없다고 하니까 밥을 얻기 위해서는 모두가 노동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직접 생계 활동을 해야 하고 남이 입에 밥을 떠 먹여주는 상태가 되면 그때부터는 삶의 질이 아주 나빠질 수밖에 없다.

밥 욕심내다가 범죄자가 되어 남에게 고통도 주고 자신도 고통을 받는 사람이 있으며 사회에서는 법적 심판으로 사필귀정을 말한다. 우리들의 현대사에 떳떳하고 따스하지 않은 밥에 소화기능이 취약한 시인들은 밥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기에 할 말이 많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조승래 시인

◇ 조승래 시인은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이사, 문학의 집 서울 이사,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 시향문학회와 시와시학 문인회 회장, 가락문학회, 함안문인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취미생활로는 검도를 하고 있다(대한검도회 영무검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