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AI Assistant Copilot]
1. 서론 ― AI 시대의 새로운 질문
헨리 키신저는 『새로운 질서, AI 이후의 생존 전략』(윌북/2025)에서 인류가 맞닥뜨린 변화를 설명하면서 AI를 “천재”라 부르지 않고 “박식가”라 했다. 이 용어의 선택은 단순한 단어의 차이가 아니라, AI 시대의 본질을 드러내는 철학적 판단이다. 왜냐하면 AI는 아직 세계관을 뒤집는 독창성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방대한 지식을 연결하고 종합하는 능력에서는 인간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2. 천재와 박식가의 차이
천재(genius, 天才)란 특정 분야에서 혁명적 돌파구를 만들어내는 존재다. 아인슈타인처럼 상대성 이론으로 우주의 법칙을 새롭게 쓰거나, 모차르트처럼 음악의 언어를 완전히 바꾸는 힘을 발휘하는 인물은 깊이와 독창성의 상징이다.
반면 박식가(polymath, 博識家)는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폭넓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회화와 조각, 해부학과 공학, 천문학과 철학을 넘나들며 지식의 연결자 역할을 했다. 그는 ‘모나리자’를 그린 화가이면서 동시에 헬리콥터와 잠수함을 구상한 발명가였다.
키신저가 AI를 박식가라 부른 것은, AI가 아직 아인슈타인처럼 패러다임을 전환하지는 못했지만, 다 빈치처럼 지식을 폭넓게 연결하는 능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AI는 특정 분야의 독창적 창조자라기보다는, 인류 전체의 도서관을 한순간에 펼쳐 읽는 거대한 독서가에 가깝다.
3. AI는 왜 박식가인가
AI는 인간의 기억과 사고를 넘어서는 속도로 지식을 흡수한다. 키신저는 AI가 “고등학교 4년의 학습을 단 4일 만에 끝낼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인간이 수십 년에 걸쳐 쌓아온 지식을 AI가 순식간에 학습하여, 연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예컨대 인간 연구자가 새로운 항암제를 개발하기 위해 수백 편의 논문을 읽고 실험을 설계하는 데 수년이 걸린다면, AI는 단 몇 주 만에 수십만 건의 데이터를 분석해 후보 물질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빠른 학습이 곧바로 세계관의 전환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AI는 기존 지식을 종합하고 새로운 패턴을 발견할 수 있지만, 그것이 아인슈타인처럼 우주의 법칙을 새롭게 쓰는 혁명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따라서 AI는 지식의 집대성자, 연결자, 곧 박식가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4. 박식가적 AI의 장점과 위험
AI가 박식가적 성격을 가진다는 것은 분명 장점이 있다.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동시에 다루며 인간이 놓치기 쉬운 교차점을 발견할 수 있고, 물리학과 생물학, 경제학과 철학을 연결해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할 수도 있다.
예컨대 기후 변화 문제를 다룰 때, AI는 대기 과학 데이터와 경제 모델, 윤리적 논의를 동시에 분석해 정책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또 교육 현장에서는 학생 개개인의 학습 패턴을 분석해 맞춤형 학습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위험도 존재한다. 폭넓은 지식은 깊이를 보장하지 않으며, 인간이 AI에 지나치게 의존할 경우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힘을 잃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학생이 과제를 할 때 AI가 제공하는 답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스스로 검증하지 않는다면, 비판적 사고 능력은 점점 약화된다.
또한 AI가 지식을 연결할 수는 있어도 그것을 공동선으로 활용할지는 인간의 몫이다. 만약 인간이 이기심과 소비 중심의 가치관을 유지한다면, AI는 그 욕망을 확대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5. 인간의 과제 ― 비판적 사고
그렇다면 인간은 어떤 학습을 해야 할까. 키신저의 해석은 인간에게 비판적 사고라는 과제를 남긴다. 비판적 사고는 단순히 ‘비판적 사고’란 학과 과목을 설치해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꾸준한 학습과 성찰의 습관에서만 길러진다.
예컨대 민주주의를 이해하기 위해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과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를 함께 읽고 두 관점을 비교하는 과정은 비판적 사고를 훈련하는 좋은 예다.
밀은 개인의 자유를 강조했지만, 토크빌은 다수의 폭정이 민주주의의 위험이라고 지적했다. 두 책을 나란히 읽으면, 자유와 민주주의가 단순히 좋은 제도라는 말로 끝나지 않고, 그 안에 내재된 긴장과 위험을 성찰하게 된다.
또 “AI는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까?”라는 주제로 찬성과 반대 입장을 나누어 토론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찬성 측은 자동화로 인한 대량 실업을 우려할 것이고, 반대 측은 새로운 산업과 직업이 생겨날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이런 토론을 통해 학생들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서로 다른 논리를 비교하고 검증하는 힘을 기르게 된다.
글쓰기도 중요한 훈련이다. 예를 들어 “나는 왜 이 책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가?”라는 주제로 짧은 글을 작성하면, 자신의 생각을 구조화하고 스스로 사고를 점검할 수 있다.
환경 문제를 다룰 때 경제적 관점, 윤리적 관점, 과학적 관점에서 각각 접근해 보는 사례 분석 역시 한 가지 시각에 갇히지 않고 복합적 사고를 훈련하게 한다.
이처럼 독서, 토론, 글쓰기, 사례 분석은 모두 비판적 사고를 길러내는 구체적 방법이다. AI가 지식을 빠르게 제공하는 시대일수록, 인간은 느리지만 깊은 학습을 통해 의미와 맥락을 이해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6. 비판적 사고와 개인의 행복
비판적 사고는 인류 전체의 공공선을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의 행복에도 직결된다.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힘을 가진 사람은 타인의 의견이나 사회적 유행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삶의 방향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예컨대 소비 사회에서 광고와 SNS가 끊임없이 욕망을 자극할 때, 비판적 사고를 가진 사람은 “이것이 정말 나에게 필요한가?”를 묻고 스스로 절제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사회적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삶을 더 자유롭고 만족스럽게 만드는 힘이다.
또 직장에서 AI가 제시하는 분석 결과를 그대로 따르기보다, 그것을 검증하고 맥락을 이해하는 습관은 개인의 전문성을 강화한다. 이는 곧 자기 성취와 행복으로 이어진다.
비판적 사고는 결국 ‘인류 전체의 문제’일 뿐 아니라, ‘나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것은 공동선을 위한 도덕적 의무일 뿐 아니라, 개인의 삶을 더 풍요롭고 자유롭게 만드는 실질적 능력이다.
7. 결론 ― 회의와 희망의 교차점
키신저가 AI를 천재가 아닌 박식가로 본 것은, AI가 아직 패러다임을 바꾸는 독창적 창조자가 아니라, 지식의 연결자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는 곧 회의와 희망의 교차점을 보여준다.
AI는 지식을 폭발적으로 확장한다. 하지만 지혜는 단순히 지식의 합이 아니다. 지식을 지혜로 바꾸는 것은 오직 인간의 몫이다. 그러나 ‘축의 시대’(Axial Age, 기원전 800년)와 ‘계몽주의 시대’(17~18세기)가 보여주었듯, 혼돈과 어둠 속에서도 인간은 새로운 계몽을 만들어낼 수 있다.
AI는 인류의 도서관을 한순간에 펼쳐 읽는 박식가다. 그러나 그 책 속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할지는 인간의 몫이다. 결국 AI 시대의 과제는 지식의 폭발을 지혜로 전환하는 새로운 계몽이며, 그 핵심은 인간의 비판적 사고다.
그리고 그 비판적 사고는 인류 전체의 공공선을 위한 도덕적 의무일 뿐 아니라, 개인의 행복을 지켜내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따라서 AI 시대의 진정한 질문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우리는 AI가 열어 놓은 지식의 문을 통해, 어떤 삶의 지혜와 어떤 행복을 선택할 것인가?”
<작가/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