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가치와 존재가치를 비교하는 이미지 [by copilot]

「시몬 스테빈(Simon Stevin, 1548~1620년, 수학자, 물리학자, 초기 엔지니어, 의심의 대가)과 그의 친구 얀 코르넷드 흐로트(Jan Cornets de Groot, 1554~1640년, ‘자연의 비밀을 가장 열정적으로 탐구한 자)가 1586년 델프트 신(新)교회탑 꼭대기로 올라갔다. 한 명은 납으로 된 공 하나를, 다른 이는 그보다 열 배 더 크고 무거운 납공 하나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약 9미터 높이에서 두 공을 동시에 떨어뜨렸다.

세 번째 인물은 두 발을 땅에 딛고 서서 실험을 관찰하는 중요한 임무를 맡았다. 그는 묵직한 ‘납공’ 두 개가 실제로 동시에 나무판자에 떨어지는 것을 눈과 귀로 확인했다. 확실히 ‘쿵’하는 소리가 하나만 들렸다. 시몬 스테빈은 텔프트에서의 실험을 통해 중요한 결론에 도달했다. 그가 땀에 젖어 계단을 급히 내려오면서,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은 틀렸다.”

이 실험은 가혹할 정도로 명확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에 등장한 과학자들은 약 이천 년 동안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물체와 같은 속도로 떨어진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영원히 입증된 것이다.」 -프랑크 베르스트라테 외 1/최진영 옮김/『최소한의 양자역학』(동아엠앤비, 2025)/pp.19~20-

생존 가치(Survival Value)는, 생명을 유지하고 위험을 피하며 기본적 욕구(먹고, 자고, 안전하게 사는 것)를 충족시키는 데 필요한 가치라고 정의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는 의료나 안전, 경제적 안정 등이 포함된다. 이 생존 가치는 즉각적이고 실용적이며, 누구나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존재 가치(Existence Value)는, 단순히 살아남는 것 이상의 의미, 곧 ‘왜 살아야 하는가’, ‘나는 어떤 존재인가’ 라는 질문과 연결된 가치이다. 예술을 창작하거나 감상하는 행위는 생존에 직접 필요하지는 않다. 그러나 존재의 의미를 풍부하게 한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철학적·종교적 탐구 또한 생존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존재의 의미를 추구하는 행위이다.

이 존재 가치는 추상적이고 현실 초월적이며, 직관적으로는 그 가치를 납득하기 어렵다. 그러나 사람이 ‘삶의 이유’에 관심할 때는 반드시 마주하게 되는 가치이다.

대지가 얼어붙고 삭풍이 몰아치는 겨울날, 우리는 군불을 지펴 방을 데운다. 따뜻한 방을 위해 군불을 지피는 행위는 생존의 가치에 속한다. 그러나 그 따뜻함 속에서 무엇을 사유하고, 무엇을 창조하며, 어떤 의미를 발견할 것인가를 묻는 순간, 존재의 가치가 드러난다.

그러나 따뜻한 방을 마련한 뒤(생존 가치 충족)에야 존재 가치를 추구한다는 생각은 절반의 진실일 뿐이다. 차가운 방에서도, 혹은 방조차 없이도 존재의 가치를 좇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의 삶은 혹독했지만, 인류의 정신은 그들의 희생 위에서 자라났다. 스테빈과 갈릴레오가 그랬고, 스피노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한데 생존 가치를 소홀히 하면서도 존재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은 어떻게 존재하게 된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그렇게 ‘생겨먹었기’(태어났기) 때문이다. 개인적 경험, 평생의 관찰과 읽은 사료(서적)들로 감연히 내린 결론이다. 이에 대한 진화론적, 심리학적, 철학적 뒷받침은 뒤로 미루고, 우선 매슬로우의 욕구단계이론(Maslow's hierarchy of needs)을 살펴보자.

그 이론의 핵심은 인간의 욕구가 피라미드 형태로 단계적 위계를 가지며, 하위 욕구가 충족되어야 상위 욕구가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매슬로우는 피라미드의 가장 아래에서 위로 5가지 욕구를 배열했다(말년에 ‘자기 초월 욕구’를 추가했다). 구체적으로는, 생리적 욕구(음식, 물, 수면 등 기본적 생존 조건) - 안전의 요구(주거, 건강, 경제적 안정) - 애정·소속 욕구(가족, 친구, 공동체 소속감) - 존중(받고 싶은) 욕구(인정, 지위, 성취감) - 자아실현 욕구(자기 잠재력 실현, 창조성, 진리 탐구)이다.

매슬로우의 이론은 한마디로 ‘생존 가치가 충족된 뒤에야 존재 가치를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존 가치를 희생하면서도 존재 가치를 추구하여 인류의 지적 혁명을 일으킨 수많은 과학자나 철학자, 예술가, 혁명가, 작가, 사상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따라서 이 이론의 현실적합성에는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구체적으로 욕구단계이론은 몇 가지 점에서 비판할 수 있다.

첫째, 경직된 단계성이다. 역사상 인물에서도, 실제 우리 일상에서도 하위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도 상위 욕구를 추구하는 사례가 많다는 점이다. 둘째, 문화적 편향이다. 서구 개인주의적 가치관에 기반하여, 집단적 가치를 더 우선시하는 문화권을 감안하지 않았다. 셋째, 실증적 증거가 부족하다. 이 인간 욕구의 단계는 일견 그럴듯하다. 곧, 직관적으로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적 실증이나 데이터로 뒷받침되지 않는다. 넷째, 인간의 다양성을 무시했다. 모든 인간이 동일한 욕구 위계를 따른다고 가정하지만, 실제로는 개인 성향과 상황에 따라 각자기 다르다.

따라서 개인적 관점에서 매슬로우의 욕구단계이론은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이 이론은 인간의 욕구가 하위에서 상위로, 차례대로 충족된다고 설명한다. 인간 행동을 단순화한 틀로서는 유용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와 현실은 이를 반박한다.

생존 가치가 충분히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존재 가치를 추구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의 선택이 인류의 사유와 과학을 진보시켰다. 매슬로우의 단계적 욕구 충족론은 인간 존재의 본질을 설명하기에는 불충분하다.

그렇다면 생존 가치를 희생하면서까지 존재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 시쳇말로 ‘돈 안 되는 일’을 하는 사람은 어떻게 존재하게 된 것일까? 진화론적, 심리학적, 철학적 근거를 살펴보자. <계속>

조송원 작가

<작가/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