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 시인의 지리산 산책 (124) 차 시배지에서 보기 드물게 굵은 차나무를 봤다

이쌍용 법향다원 대표 차 시배지 관리 중
이곳서 키 큰 차나무와 굵은 차나무 구경
도로 가에 시배지 알리는 비석 등 서 있어

조해훈 기자 승인 2023.01.15 21:19 | 최종 수정 2023.01.20 17:17 의견 0

2023년 1월 15일 아침에 화개 삼신마을에 있는 목욕탕에서 법향다원 대표인 이쌍용(55) 차인을 만났다. 그는 2015년에 사단법인 대한민국명인회에서 우전차(雨前茶) 제다 부문으로 인정을 받은 차(茶) 명인(名人)이다.

그는 “요즘 차 시배지 죽로(竹露)밭을 손보고 있는데 구경 한 번 하시겠습니까?”고 말해, 필자는 “그럽시다.”며 따라갔다. 필자는 가끔 차 시배지와 켄싱턴리조트 사이에 있는 차밭 길을 따라 차 시배지 위쪽으로 천천히 한 바퀴 걷는다. 며칠 전에 그 길을 따라 일꾼들이 작업을 하는 모습을 봤다.

차 시배지 위쪽으로 올라가는 돌이 깔린 길. 사진=조해훈
차 시배지 위쪽으로 올라가는 돌이 깔린 길. 사진=조해훈

차 시배지는 쌍계사 소유이지만 이 명인이 위탁 재배하고 있다. 그는 “이 시배지 차로 법제를 한지 29년이나 됐다.”고 말했다. 그와 함께 돌을 바닥에 깔아놓은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올라갔다. 그는 “일 하는 사람들이 차밭에 드나들기 좋도록 길을 냈습니다.”라고 말했다. 돌길과 차밭을 일꾼들이 드나들 수 있도록 여러 군데에 길을 터놓았다.

그는 가다가 어느 지점에서 차밭으로 들어가더니 “이 차나무 한 번 보십시오.”라고 말했다. 비스듬히 누운 차나무가 많이 길었다. 이 명인은 “4m70cm입니다.”라고 했다. 필자의 차밭에도 키 큰 차나무들이 있는데, 그것들보다 훨씬 길었다. 그는 “아마 화개에 이 만한 크기의 차나무는 없을 것입니다.”라고 설명했다.

키가 무려 4m 70cm인 차나무. 옆은 이쌍용 법향다원 대표. 사진=조해훈
키가 무려 4m 70cm인 차나무. 옆은 이쌍용 법향다원 대표. 사진=조해훈

다시 돌길로 내려와 차밭 뒤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차밭 정수리 부분에서 아래로 내려갔다. 이 명인은 “가장 굵은 차나무를 보러갑니다.”라며 앞장섰다. 그가 관리하는 차밭은 1만6천 평 가량이다. 차밭 어느 지점에 그는 섰다. 그가 말했다. “해마다 차나무를 관리하다보니 키가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나무의 밑둥치를 보지 않으면, 일반 차나무와 비슷해 보여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가 가리키는 나무의 밑둥치를 보니 정말 굵었다. 필자가 근래에 본 화개지역 차나무 가운데 가장 굵었다. 물론 도심다원의 일명 ‘천년 차나무’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면 말이 달라진다. 필자가 줄자를 휴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차나무의 둘레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필자의 차밭에도 밑둥치가 긁은 차나무가 몇 그루 있긴 하지만 이 차나무보다는 굵지 않다.

밑둥치가 아주 굵은 차나무 앞에 선 이쌍용 법향다원 대표. 사진=조해훈
밑둥치가 아주 굵은 차나무 앞에 선 이쌍용 법향다원 대표. 사진=조해훈

필자는 “우리 화개에 이런 나무가 숨겨져 있었다니 놀랍습니다.”라며, 나무를 보여준 이 명인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는 “아마 용강리 모암마을에 있는 차나무보다 더 굵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필자는 쪼그려 앉아 나무의 밑둥치를 만져보기도 하면서 한참동안 구경하다 일어섰다. 필자는 “오늘 제가 일진이 좋습니다.”라며, 덕담을 했다.

그 지점에서 잘 가꾸어놓은 차밭 사이를 통해 도로로 내려왔다. 아래서 차밭 위를 쳐다보니 밑둥치가 굵은 그 차나무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필자와 이 명인은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밑둥치가 아주 굵은 차나무 모습. 사진=조해훈
밑둥치가 아주 굵은 차나무 모습. 사진=조해훈

이 차밭 아래에는 ‘차 시배지’ 표지석을 비롯해 몇 개의 비(碑)가 세워져 있다. 이곳에 있는 안내판을 한 번 보겠다. 그 내용이 긴데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 차 문화는 지리산 자락에서 시작되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중국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대렴이 신라 흥덕왕 3년(828)에 차나무 씨앗을 가지고 돌아오자 왕이 지리산에 심게 했다고 한다. 그 뒤 830년부터 진감선사가 이곳 시배지 차를 쌍계사 주변에 번식시켰다고 전해진다. 이곳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차를 재배한 차나무 시배지이다. 이곳 시배지에서 생산된 차는 우리나라 최고의 차라는 명성을 얻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이 시배지 차를 왕실에 올렸다. 조선 후기 문신이자 서화가였던 추사 김정희는 시배지 차를 중국 최고의 차인 승설차보다 낫다고 평했고, 우리나라 다도(차를 달여 마시는 예법)를 바로 세워 다성(茶聖)이라 부르는 초의 선사도 시배지 차의 풍모와 자태가 신선 같고 고결하다고 격찬했다. 이러한 명성을 떨치던 시배지 차도 일제식민지를 거치면서 사라지기 시작하였던 것을 1975년 고산 화상이 쌍계사 주지로 부임하여 화개면 운수리 산127번지와 산127-4번지(쌍계사 소유) 일대가 차나무 시배지임을 아시고 복원하여 시배지 차나무 종자를 다시 화개면 일대에 번식하여 오늘에 이른다. 1981년에 한국차인연합회에서 차의 날을 선포하여 차 시배 추원비를 세워 이곳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차나무 밭임을 알렸고, 1992년에는 하동군과 하동차인회에서 차나무 시배지 표지석을, 쌍계사를 창건하고 차 문화를 널리 보급한 진감 선사의 공을 기려 2005년에는 진감 선사 차 시배 추망비를 세웠다. 이에 고산 화상께서는 매년 5월 초에 진감, 초의, 만허의 다맥을 복원하고 다맥 전수식을 한국선다회 주관으로 열고 있으며, 차의 날인 5월 25일을 즈음해서는 화개 일대에서 하동 야생차문화축제가 열린다.”

차 시배지 위쪽에서 아래로 본 차밭. 도로가에 차 시배지 표지석 등 비석들이 세워져 있다. 사진=조해훈
차 시배지 위에서 아래로 본 차밭. 도로가 오른 쪽에 차 시배지 표지석 등 비석들이 세워져 있다. 사진=조해훈

위 안내판 내용이 사실과 부합하느냐의 진위여부에 대해서는 필자가 여기서 언급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것 같다. 한편 차 시배지에 관해서는 이곳 화개가 아닌 구례 화엄사 입구의 장죽전이라는 주장도 있다.

여하튼 필자는 오늘 아침에 화개 차 시배지에서 아주 키 큰 차나무와 밑둥치가 굵은 차나무를 각각 보는 행운을 누렸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massjo@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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