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본세상 23 - 보물찾기】 삼국유사 - 신종석

삼국유사 / 신종석(소설가)

인본세상 승인 2024.04.01 16:20 | 최종 수정 2024.04.01 16:24 의견 0

<보물찾기>

삼국유사

소설가 신종석

“묻지마 살인 시대”입에 올려도 안 될 말 아닙니까?

우리 사회의 치열한 경쟁에 따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인간의 존엄성과 배려, 이타적 인성 회복에 인본사회연구소가 누구보다 먼저 앞장서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人 人 人 人 人 人 사람인 6개를 써놓고, 누구는 이렇게 붙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人 사람이 人 사람이면 人 다 사람이냐? 人 사람이 人 사람다워야 人 사람이지.

오늘은 우리 부산에 있는 보물 중에서 국보로 승격된, 우리의 인간성을 되찾을 수 있는 책 한 권을 소개하겠습니다. 모두 다 잘 아신다고 생각하는 삼국유사三國遺事입니다. 삼국유사의 첫머리에는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사상과 ‘세상으로 나아가 도리로 교화한다.’는 ‘재세이화在世理化’의 인본주의적 윤리 의식과 우리의 유구한 철학사상이 잘 담겨 있는 보물 책입니다. 필자는 이 시대 다시 꼭 읽어야 할 필독서로 추천하고 한 번쯤 원본 친견을 권해드립니다.

삼국유사는 우리가 다 아시다시피 보각국사 일연一然이 젊은 시절부터 전국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환웅 단군 고조선부터 전해져오던 이야기 중 역사의 기록에 빠진 부분과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사람 사는 이야기 138편을 모은 우리의 참된 역사책이자 미래 인본 사회를 바라는 책입니다.

일연은 9살에 출가해 몽골의 침략으로부터 유난히 많이 소실된 불교 문화재를 보며 비애를 느꼈고 이로 인한 백성의 고충을 위로해 왔습니다. 일연(1206년-1289년)이 살았던 시기는 어느 때보다 백성의 삶이 고달팠고 이로 인한 인간성 회복이 절실했습니다. 일연은 민족의 선지식으로 무엇보다 백성의 삶에 희망과 용기, 자긍심 그리고 인본주의적 미래를 심어줄 필요가 있다는 것을 느껴, 78세로 나라의 국존이 되고 군위군 인각사에 머물면서 삼국유사를 마무리하고 세수 84세에 입적했습니다. 삼국유사는 일연이 입적 후 제자 무극에 의하여 1310년 간행되었습니다.

삼국유사 표지

삼국유사의 저술 동기와 목적은 책에서 밝히고 있듯이 1145년 저술된 김부식의 삼국사기의 미비점과 놓친 것을 보완한 유사遺事, 예로부터 전해오는 우리의 진실된 인본을 중시하는 책이란 뜻입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3국의 유문과 전해오는 사람의 이야기를 주로 싣고, 정사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사람 중심의 것과 역사 이전의 역사이며 미래를 위한 책이었습니다.

삼국유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삼국사기에 있는 사건 중심의 내용을, 사람 중심으로 하나하나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는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이 범하고 있던 편견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 밝히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환인과 서자 환웅, 아들 단군의 기록입니다. 일연이 환인과 환웅의 역사 이전의 역사, 사람 중심의 이야기를 남기지 않았다면 우리의 고조선 진실은 그냥 덮였을 것입니다. 일연은 그 시기를 중국이 가장 자랑하는 요임금 때와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아쉬운 것은 신라 충신 박제상이 집필했다는 부도지의 부도복본符都復本 사상을 뺀 것입니다. 부도지에는 우리 민족의 기원을 1만 1천 년 전 마고麻姑부터 시작하며 부도복본 사상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삼국사기에서 배제한 우리나라 고대 신화와 관련된 내용을 대폭 수록하다 보니, 현실적인 역사로 생각하기 어려운 환상적인 이야기가 많이 실렸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가슴속에 면면히 흘러온 유전적으로 투영되어있는 진실의 본질이 아닐까요? 사람들에게 희망과 자존심을 심어주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고, 불교를 통한 마음의 안식처 찾기였던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만파식적 설화도 삼국사기에서는 역사 부분엔 안 쓰고 악기로서 소개할 때만 간단히 언급하며 김부식은 '이런 말이 있지만 괴이해 믿을 수 없다'고 써 놓았지만, 삼국유사에서는 매우 상세하게 직접 본 것처럼 써 놓았습니다. 필자가 몇 년 전부터 직접 쌍골죽 대금을 불고 있는데, 직접 대금을 불어본 결과 만파식적 이야기는 사실이라고 할 수 없지만, 결코 황당무계하다고 말할 수도 없는 무한한 내면의 진실을 깨달았습니다. 인간과 대나무 쌍골죽과의 조화로 세상을 울리게 하는 소리, 마치 천부天府를 통해서 음향音響(듣고 울림)하는 소리에는 우리에게 꿈과 용기, 바람뿐만 아니라 만만파파식적 이상의 힘이 있어 어떠한 난관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었던 것입니다. 만약 당대 최고의 석학 김부식이 대금을 직접 배우며 불어봤다면 결코 황당무계하다는 말은 하지 못했을 것을 필자는 확신합니다.

13세기 고려는 무신정권의 폭정에 이어 몽골의 침략이 40년간 이어지면서 백성의 삶은 매우 피폐했습니다. 그 찬란했던 천년 신라의 영화와 우리의 자존심인 고려대장경판, 주변 9개 나라에서 조공을 바친다는 우뚝 솟았던 황룡사 9층 목탑, 전국의 많은 사찰이 몽골의 침입으로 일순간 재가 되어 사라졌고 국토는 파괴되었습니다. 백성은 오랑캐의 약탈과 폭력에 시달렸고, 끈질긴 저항은 이어졌지만, 그로 인한 심신의 상처와 고통은 너무나 컸습니다.

선지식 일연은 그처럼 참혹했던 시절을 이웃과 함께했고, 우리에게 잃어버린 민족적 자부심과 문화적 긍지를 일깨워 줄 필요성을 느꼈던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뿌리와 자부심,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 불교적 이상세계를 담은 역사 이전의 역사, 사람의 심금을 울렸던 감동적인 이야기, 울고 웃고 싸우고 절망하고 인내하는 사람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마구간 청소를 하던 주몽이 고구려를 세우는 이야기, 남의 집 하인이던 욱면이 부처가 된 이야기, 패망하는 신라 말기 서해 용은 너무나 무기력하여 가족의 생존을 일개 승려에게 위협받는 이야기.

이 모든 것들을 선지식 일연은 방대하면서도 섬세한 필치로 써 내려갔습니다. 그 이전까지의 사대주의 사상과 모화주의 사상에 입각한 역사책이 아니라 민족공동체의 정신적 역량을 총체적으로 집결하고, 흔들리는 공동체의 정체성을 다잡아서 새롭고 담대한 진실된 사람을 위한 책을 써 내려갔던 것입니다.

춤과 노래로 역신을 막아낸 처용 이야기는 전 세계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우리의 슬기로운 이야기 아닙니까?

서울 달 밝은 밤에 밤 깊도록 노닐다가

들어와 자리 보매 가랑이가 넷이로다

둘은 내 것이지마는 둘은 뉘 것인고

본디 내 것이었지만 달아남을 어찌할꼬

하고 노래와 춤을 추니, 처용의 처를 탐하던 역신이 모습을 나타내고 처용 앞에 무릎 꿇고 앉아, “미천한 귀신이 공의 아내를 사모하여 지금 범하였는데도 공은 노여움을 나타내지 않으니 감동하여 공경하나이다. 맹세코 지금 이후 공의 형상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문에 들어가지 않겠나이다.”라고 했다는 이야기.

필자는 처용가를 처음 듣고 무릎을 쳤습니다. 처용가에는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배려와 이타 공생, 한마음 일심의 지혜가 담겨 있었다고 감히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와 같은 선지식 일연의 사람 사랑의 정신은 우리의 홍익인간 한마음 일심一心으로 되찾을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 가슴속에 면면히 이어져 온 홍익인간 사상은 온 세상에 있는 인간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존재 만물을 이롭게 한다는 한마음 일심과 부도복본符都腹本 사상에서 시작했던 것입니다.

삼국유사는 결코 사실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그 속에는 우리 민족과 인간의 참된 진실, 속마음과 바람이 담겨 있고 인본주의적 미래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의 일 만년 역사는 분열과 다툼의 시대에서 원융회통 조화의 시대로 이어져 왔습니다. 먼저 사람과 사람이 배려하고 존중하며 조화를 이루고, 나와 사회가 조화를 이루고, 모든 인류와 자연환경이, 마침내 온 우주 만물이 한마음 일심으로 조화를 이룰 것을 바란 선지식 일연一然에게 두 손 모으고 머리 숙입니다.

삼국유사 범어사 본이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되어 부산 범어사 성보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습니다. 이 가을 한 번쯤 가족 지인과 함께 친견하시길 권해드립니다.

신종석

<신종석 / 소설가>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