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자연TV-여주자연농원]
투명꽃*
김석이
햇살이 빼앗아간 그늘의 목은 길어
비밀은 두꺼워졌지 가림막이 되었어
슬픔을 머금어야만 가는 길이 보이는지
갈증이 앞서가니 그리움도 깊어져서
세세한 빗방울에도 가식을 벗겨내고
말갛게 내맡겨보는 또 다른 나의 이름
온전히 섞였을 때 속속들이 불러내며
음지를 다독이다 느슨하게 바라보는
서로의 거울이 된다 나는 너의 꽃이다
*비가 오면 꽃잎이 흰색에서 투명하게 변한다고해서 붙여진 이름. 산하엽, 얼음꽃, 해골꽃이라고도 한다.
투명하게 속을 내보이는 것은 무얼까. 온전히 타인의 슬픔이 내 슬픔으로 하나가 될 때인지도 모르겠다. ‘세세한 빗방울에도 가식을 벗겨내고’ 느슨하게 얇아져야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곳인지도 모르겠다. 남의 일이라고 멀게만 느껴졌던 모든 일이 바로 나의 일이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을 생각한다. 서로의 거울이 되고, 서로를 환히 비출 수 있다면, 나는 너의 꽃이다.
김석이 시인
◇김석이 시인
▷2012 매일신문신춘 당선
▷2013 천강문학상, 2019 중앙시조 신인상 수상,
▷시조집 《비브라토》 《소리 꺾꽂이》 《심금의 현을 뜯을 때 별빛은 차오르고》
단시조집 《블루문》 동시조집 《빗방울 기차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