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본특집>

한국 극우파의 실체와 빛의 혁명

최병학 목사(종교인문학연구소 소장)

계엄 내란과 탄핵 인용

지난 2024년 12월 3일 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과연 가능할까 하는 기괴한 현상을 보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불법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헌법을 짓밟고 민주주의를 파괴한 것입니다. 1980년 ‘서울의 봄’이 이제 ‘대한민국의 겨울’로 부활했습니다. 대통령이 자신의 불의를 감추고 권력을 지키기 위해 친위 쿠데타를 일으켰던 것입니다. 참담함을 넘어 분노를 금할 수 없습니다. 불법 계엄령은 곧 국민에 대한 선전포고입니다. 다행히 국회를 사수한 시민들과 의원들의 노력으로 계엄령이 해제되고 대통령 탄핵안이 발휘되어 헌법재판소의 인용으로 대통령이 파면되었지만(2025년 4월 4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대통령이 오히려 국민을 적으로 돌리고, 국가의 신뢰를 깨부순 것은 명백히 민주주의를 배반한 행위이고, 용서받을 수 없는 내란죄입니다. 목사로서 저는 부산 서면에서 열린 시국 집회에서 발표된 ‘부산기독인 시국선언문(2024년 12월 5일)’에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는 윤석열 탄핵이 정의를 회복하는 첫걸음이라고 믿는다. 국회는 더 이상 주저하지 말고 대통령을 탄핵하라. 김용현 국방부 장관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도 즉시 체포해 법적 심판대에 세워야 한다. 이제라도 책임자들이 죗값을 치르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침묵하는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배반한다고 고백한다. 그동안 불의 앞에서 방관했던 것을 회개하며, 이제 정의와 진실을 위해 행동할 것이다.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며,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싸울 것이다. 우리는 정의와 민주주의가 회복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정의는 절대 좌절하지 않고, 우리는 그분의 빛 아래서 이 땅에 새로운 희망을 세워갈 것이다.”

사실 한국교회는 불의에 침묵하였습니다. 권력과 맘몬의 편에 서서 하나님의 정의를 무너뜨리는 데 일조하였습니다. 먼저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평화의 촛불을 켜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계엄 내란이 척결되기는커녕, 국민의힘과 일부 극우 개신교 세력*1), 그리고 언론과 극우 유튜브를 중심으로 계엄 합법과 윤석열 탄핵 무효라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숨겨진 한국 개신교 극우파의 민낯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1980년 ‘5월의 봄’은 유신체제를 계속 이어가려는 신군부 세력과 민주 회복을 바라는 국민의 격돌이었다. “비상계엄 해제하라”는 펼침막을 들고 시위 중인 대학생들(경향신문사, 1980년 5월15일).

2024년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수많은 인파가 모였다(연합뉴스).

2. 한국 (개신교) 극우파의 실체

계엄 내란의 배경에는 극우 유튜브가 있습니다(대통령도 즐겨보았고, 강추했던). 사실,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필터 버블(filter bubble)’과 ‘반향실 효과(echo chamber)’를 초래하며,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그리고 확증편향(특히 정보의 편향)으로 인해,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은 더욱 악화되고 있습니다.

‘필터 버블’은 비유적으로 ‘비눗방울에 갇힌 상황’을 뜻합니다. 시야가 제한당한다는 뜻입니다. 가령,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데이터에 기반해 선별된 정보만을 보여줌으로써, 개인은 자신만의 문화적·이념적 거품에 갇히게 됩니다. 이렇게 개인화된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관심사에 맞는 정보만을 제공하여 반대의견에 노출되지 않게 만듭니다. 결과적으로 개인은 자신만의 신념을 강화하면서 자기만의 세계에 고립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현상이 자연스럽게 ‘반향실 효과’를 심화시킵니다.

‘반향실 효과’는 사용자가 기존 신념과 맞는 정보만을 반복적으로 받아들이며 그 신념이 강화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비슷한 견해를 가진 사람들과 교류하게 되고, 다른 사람의 정보와 견해를 불신하고 자신의 이야기만 진실이라 느끼게 됩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그렇죠? 문제는 이로 인해 집단 내 의견이 극단화된다는 점입니다.

사실, 전통적인 인쇄물, 텔레비전, 라디오에서도 반향실 효과가 있지만, 이러한 매체들은 편집 과정을 통해 일정 수준 통제됩니다(물론 지금은 이상하게 통제되지만). 반면, 소셜 미디어는 이러한 편집 통제가 부족하여 양극화와 혐오 표현이 그대로 노출되는 환경을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에서는 사용자가 주로 자신의 견해 혹은 신념과 유사한 정치적 내용을 소비하며, 반대의견이 배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 표현이 그대로 노출되는 사례가 빈번합니다.

결국, 이러한 과정은 궁극적으로 ‘확증편향’으로 이어집니다. 확증편향은 자신의 견해가 옳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증거는 적극적으로 찾는 반면, 자신의 견해를 반박하거나 불리한 증거는 외면하거나 무시하는 경향을 말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그렇습니다. 기막힌 세상입니다. 결국 이러한 잘못된 필터 버블, 반향실 효과, 확증편향에 감금된 이들이 계엄 내란을 일으킨 폭군(Tyrant)을 만든 것입니다.

3. 폭군의 부활

하버드대학교의 인문대 교수이자 셰익스피어 연구자인 스티븐 그린블랫 교수의 『폭군』이 제기하는 문제의식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힐러리와 트럼프가 격돌했던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왜 트럼프 같은 사람, 다시 말해 독재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 대통령에 뽑힐까?”라고 의아해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2025년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린블랫 교수는 ‘독재자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도대체 독재자는 어떤 성격을 가진 인물인가?’라고 물으며 셰익스피어의 문학 작품에서 그 답을 찾았습니다. 『리처드 3세』, 『맥베스』 등입니다. 이들을 분석하며 독재자의 권력은 오래가지 못하고 몰락한다고 소개합니다. 번역자 이종인 선생은 역자 후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셰익스피어는 독재자들이 권세를 오래 누린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이 권좌에 부상하는 방식이 아무리 영리하다 하더라도, 일단 권좌에 오르면 그들은 아주 무능하다는 것이 밝혀진다. 그들이 통치해야 하는 국가에 대하여 아무런 비전을 갖고 있지 못하므로, 그들은 지속적인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한다. 그들이 아무리 잔인하고 난폭하다고 해도 모든 반대 세력을 제거하지는 못한다. 그들의 고립, 의심, 분노는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오만하고 과도한 자신감을 만들어내고, 이것이 마침내 그들의 몰락을 촉진한다.”*2)

폭군의 사전적 의미는 “자신이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을 잔인하고 불공정한 방식으로 대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눈여겨 볼 것은 이러한 폭군을 도와주는 이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린블랫 교수는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를 인용하며 그들을 여섯 그룹으로 나눕니다.

첫째, 리처드에게 정말로 속아버린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리처드의 주장을 정당하다고 생각했고, 그의 약속을 믿었고, 그의 감정 표현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은 너무 순진하거나 순수한 사람, 혹은 너무 힘이 없어 정치에 아무런 유의미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둘째, 괴롭힘과 폭력의 위협 앞에서 겁을 먹거나 무기력해진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리처드가 미친 듯이 위협하자 그의 난폭한 명령에 저항하다가 점점 시들해집니다. 셋째, 리처드가 겉과 속이 모두 사악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리처드가 거짓말쟁이고 끔찍한 일을 저지른 것을 잘 알지만, 그것을 쉽게 잊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이들은 정상적이지 않은 것을 정상적인 것으로 만드는 일에 엄청나게 매혹됩니다.

넷째, 리처드가 형편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모든 일이 정상적으로 굴러갈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생각은, 방 안에는 언제나 충분한 수의 어른들이 있어서 우리 사회가 약속을 지키고 핵심 제도가 준수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허약하기 짝이 없는 정치 구조에 의존하려고 합니다. 다섯째, 다소 음흉한 그룹으로 리처드를 통해 자신이 이익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리처드를 도와주고, 그의 더러운 일에 참여하고, 각종 폐해들을 무관심하게 지켜봅니다. 그러나 폭군 같은 리처드는 일단 목적을 달성하면 이런 냉소적인 협조자들부터 먼저 제거합니다. 여섯째, 리처드의 명령을 수행하는 잡다한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곤란한 상황을 피하고자 마지못해 명령을 따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명령을 이행하면서 뭔가 챙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고위직을 공격하여 고통받고 죽어가게 하는 잔인한 게임을 즐깁니다. 폭군, 혹은 독재자 주변에는 늘 이런 사람들이 넘쳐납니다.*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기막힌 세상에도 희망이 있습니다. 물론, 셰익스피어도 독재자와 그 추종자들은 결국에는 실패한다고 보았습니다. 폭군 자신의 사악함과 민중들의 인간적 감정에 의해 파멸하고 만다는 것이죠. 비록 지금, 군중들이 어리석고, 배은망덕하며, 민중 선동가에게 쉽게 넘어가지만, 반드시 진실은 밝혀지고 폭군의 민낯은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비열한 사람들의 잔인한 동기가 승리를 거두는 것처럼 보이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기간이 있습니다(물론, 이 기간이 길 수도 있습니다만).

사실, 민중의 감정을 일시적으로 억압할 수 있을지 몰라도 아예 없애지는 못합니다. 따라서 집단적 올바름을 회복하는 가장 좋은 기회는 보통 시민들의 정치적 행동에서 나옵니다. 드라마에서 사람들은 독재자를 지지하는 함성을 외쳐 달라고 재촉받을 때 침묵합니다. 사악한 주인이 죄수를 고문할 때 그 악랄함에 저항하는 하인도 있습니다. 또한 경제적 정의를 요구하는 배고픈 시민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국가, 혹은 도시란 사람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4. 빛의 혁명

그렇습니다. 대한민국의 추악한 민낯이 드러난 이 겨울에 남태령에, 한남동 관저 앞에, 헌법재판소와 광장에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키세스 시위대(은박 담요)는 추위를 견디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거리에는 민주주의와 공화국을 수호하고자 한 사람들의 열기로 다시 뜨거워졌습니다. 결국 폭군과 그를 도와주는 이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입니다.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은 2025년 1월 4일 서울 광화문 동십자각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 체포·퇴진 사회 대개혁 범시민대행진’단상에서 윤석열 탄핵 정국에서 두드러진 2030 여성들의 정치 참여에 경의와 감사를 표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페미니스트가 대통령이 되고, 성소수자가 총리가 되고, 성폭력 피해 여성이 경찰청장이 되고, 알바 노동자가 노동부 장관이 되고, 사고 피해 유족이 행정안전부 장관이 되고,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 복지부 장관이 되고, 전농이 농림부 장관이 되고, 전쟁 없는 세상을 위해 싸워왔던 이들이 평화부 장관이 되는 게 민주주의고 진짜 대의 정치 아니냐?”

계엄 내란이 종식되고 빛의 혁명이 완수되기 위해서는 대통령 파면이 끝이 아닙니다. ①반국가 잔당 세력들을 법의 심판대에 올려야 합니다. 그리고 ②새로운 세상을, 제7공화국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기막힌 세상(氣絶)’을 ‘기똥찬 세상(氣通)’으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새로워진 한국 사회의 민낯에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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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근 극우 개신교 집회를 벌이고 있는 두 세력의 축은 전광훈(광화문파, 정치적으로 김문수 지지)과 손현보(여의도파, 정치적으로 오세훈 지지)입니다. 이들의 교집합은 ‘반공’과 ‘반동성애’로, 자신들의 맹목적이고 보수적인 신앙 가치를 지켜주는 정치권력이라면 손에 ‘王’ 자를 그리고 나온 주술에 빠진 윤석열이든, 119에 전화하여 꼰대 짓을 한 김문수이든 누구든 후보로 나와도 맹목적으로 지지해 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반공과 반동성애 노선을 지지해 주고 관련 법안을 저지하는 등 자신들의 뜻을 관철해 주느냐가 최대 관건이지 정치권력자의 윤리의식과 도덕성이나 신앙적 신실함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민주당은 북한과 적대적 입장을 취하고 차별금지법을 반대하지 않는 이상, 변함없는 종북 세력이자 영적으로 배후에 사탄 마귀가 조종하는 집단에 불과합니다. 이것이 극우 개신교 세력의 저변에 깔려있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자 전광훈과 손현보를 따르는 교인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신앙적 사고 체계입니다.

*2)스티븐 그린블랫·이종인, 『폭군』(비잉, 2020), p.254.

*3)Ibid., p.95.

최병학 목사

<최병학 목사(종교인문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