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이 주 비
지는 노을
그 경계선 위에
그리움 하나 걸쳐놓고
해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긴 하루
붉게 타오르다
낮은 산이 가리고
빈 시간을 가리는 그림자
오랜 고임 속
서로의 가슴에서
여린 풀꽃으로 살다가
그리울 땐 그리운 하늘이었다가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너라고
수화기 너머로 울리던 말
한동안 나의 전부가 되었다
- 이주비 시 〈문득〉, 계간문예 2024년 가을호
저 세상 이 세상을 구분하는 경계가 있어서 이별도 있고 그리움도 있다. 시인은 지는 노을이 그 경계선 위에 그리움 하나 남겨놓고 해가 자리를 비우는 것을 본다. 그리움이란 아쉬움을 가득 채운 상황이다. 시인은 하루를 ‘긴 하루’라고 한다. 기쁜 사람에게는 하루가 짧고 고되고 슬픈 사람에게는 하루가 너무 길다.
붉게 타오르던 해를 가려주는 산을 경계로 보았고 다시 돌아올 때까지 ‘빈 시간’은 그림자가 점령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한순간 스쳐 지나가는 감정이 아니라 ‘오랜 고임’의 시간을 가진 감정은 ‘서로의 가슴에서’ 자라기 시작한 ‘여린 풀꽃’으로 살고 참기 어려운 그리움으로 몽글몽글 피어오르면 하늘처럼 커지고 아득해진다. 눈 들어 올려 본 하늘 가득 그 얼굴이 있다.
환청처럼 들린 수화기 너머의 소리는 사실이었기에 ‘한동안 나의 전부’가 될 만큼 큰 울림이었다.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너’라고 하는 사람을 가졌으니 늘 생각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겠다. 나의 전부로 느끼는 사람의 가슴은 노을에 덮힌 저녁 무렵처럼 그 한 사람만으로 가득 찼다.
노을과 해는 한 무리이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기 전부터 노을은 웅성웅성 모여들기 시작한다. 노을과 그림자가 어둠으로 몰려가서 사라지는 것은 어둠이 이들을 다 감추어 주기 때문이다. 어둠의 세계는 한 줄기의 빛 가루만 나타나도 줄행랑을 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공존이 안 되는 상극 相剋 관계이다.
◇ 조승래 시인은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이사, 문학의 집 서울 이사,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 시향문학회와 시와시학 문인회 회장, 가락문학회, 함안문인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취미생활로는 검도를 하고 있다(대한검도회 영무검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