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서상균]

제2장 미혜 씨 집을 팔고(5)

“동생, 잘 잤나?”

“예. 잘 주무셨능교?”

“그래. 간밤에 동생이 자는 방에서 끙끙 앓는 소리가 나던데?”

“예. 온갖 잡생각에 잠을 좀 설쳤어요.”

“와 안 그렇겠노? 옛 말에 남자가 죄가 크면 집을 두 번 짓고 여자가 죄가 크면 쌍디를 놓는다 안 캤나?”

하고 식탁위에 상을 차리는데 열무김치와 묵은지와 돼지고기를 넣은 김치찌게에 된장과 풋고추가 전부였다.

“어서 무라. 우리 집에는 홍여사만큼 반찬도 없고 맛도 없다.”

명색 촌부자란 소리를 듣는 매형이 아무 타박도 없이 먹는 음식을 동생인 자신이 입을 댄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집에 올 때마다 비록 제 누이이지만 음식이 가짓수가 갖거나 간이 제대로 맞지 않는 것을 느끼면서 왠지 매형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 유심히 쳐다보면 그 코가 덩그런 양반은 아무 생각 없이 잘도 먹는 것이었다. 같이 왔던 영순씨가 집을 나서며

“참 희한하제? 시매씨는 보기는 까다롭게 생겼는데 음식타박을 전혀 안 하고 뭐든지 맛있게 먹는단 말이야.”

탄복을 하면

“비록 새엄마지만 미진이할머니가 음식솜씨가 짭질받고 칼클어서 클 때는 잘 얻어먹고 큰 모양이더라. 그래서 처음 시집온 누님을 딸처럼 생각하고 일일이 가르쳤지만 원래 타고난 솜씨가 그 뿐인지, 그러니까 재주가 매준지 통 발전이 없더란 말이지. 그렇지만 우리 자형이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이 주는 대로 잘만 자시니까 전혀 문제가 안 되지.”

“그 보다 음식에 돈을 통 안 들이는 것 같아. 밭에서 나는 찬거리 말고 장에서 사는 물건은 생선이든 육 고기든 뭐든 절대로 정품이 아닌 싼 것만 사는 것 같아.”

“그러니까 돈이 되지. 여북하면 누님이 반찬도 자영이 알아서 사라고 손을 털었을까? 닭은 노랑통닭, 돼지고기는 주로 만원에 한 뭉텅이씩 주는 족발을 사다가 고와서 여러 번 먹는다고 하더구먼. 그러니까 크게 돈 들일이 없지. 또 자기 돈 아끼는 재미로 사는 사람이 반찬타령을 할 일도 없고.”

“좌우간 연구대상이야.”

“연구대상이 아니라 근면성실한 거지.”

하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식사를 마치자 믹스커피를 한 잔씩 마시고

“처남, 어서 가자. 처남 명촌에 대다주고 우리 성범이 유치원 보낼라면 바쁘다.”

하고 단숨에 등말리에 대려다주고 시간이 없다면서 한번 둘러보지도 않고 떠났다.

(오늘은 무얼 좀 할까?)

생각은 하면서도 좀체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자꾸만 아래쪽 도자기집에 눈길이 갔다. 지난밤에는 자신이 과연 이 사용허가도 안 난 집에서 자는지 아닌지, 방에 불이 켜지는지 아닌지 수도 없이 쳐다봤을 거였다. 일단 작업복을 갈아입고 정면 화단 뒤쪽을 김장배추 심을 땅으로 고르려고 하는데 영순씨가 전화로

“보소, 요새 당신은 할마이 있는 거 잊었능가베? 이틀째 전화도 없고.”

“마 무소식이 희소식 아이가?”

“와? 무슨 일이 있는가?”

“있기는? 그냥 그렇지.”

“아인데 뭔가 골치 아픈 일이 있을 긴데?”

“와? 장촌누님 전화 왔더나?”

“장촌뿐 아니고 명촌 형님도 전화했더라. 당신이 숨긴다고 내 눈을 피할 것 같나?”

“그래. 그건 내일저녁 당신 내려오면 이야기하자.”

“야. 일단 꾹 참고 서로 받치지 말고 지내소. 사전입주 고발하는 사람이라면 뭔들 못 하겠나?”

“알았어.”

하고 전화를 끊는데

“외삼촌!”

또식씨가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사전입주 벌금을 오늘 부과한답니다.”

“그래. 우째 알았는데?”

“설계사무소쪽으로 연락이 왔답니다.”

“와 나한테 직접 안 했을까?”

“공무원선배라 미안해서 그랬겠지요.”

“할 수 있나? 공무원 다치게 할 수는 없지.”

“죄송합니다. 외삼촌.”

“니가 죄송하기는? 그래 액수는 얼마고 고지서는 어데로 보낸다 카더노?”

“예. 액수는 50만원이 좀 넘고 고지서는 마 삼촌은 신경쓰지 마이소. 제 선에서...”

“아이지. 나한테 갖고 오너라.”

“아, 알겠심더.”

하고 또식씨가 떠나고 작은 손수레에 겨우 돌 한 소쿠리를 빼 담았을까 싶은데

“외삼촌!”

이번에는 일식씨가 나타나

“그래. 박장로, 이장한테 승낙은 받았나?”

발갛게 상기된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니

“그, 그기 아니라 네 집 중에서 두 집만 물을 준답니다.”

“두 집이라니 그러면 누는 물을 주고 누는 안 줘서 목말라 죽어도 좋단 말인가?”

“그 기 아니라 명촌서 태어난 현주하고 명촌출입한 지가 50년도 더 되는 외삼촌은 물을 주고 다른 두 집은 못 준다는 말이지요.”

“그 기 말이 되나? 그래 되면 내가 자네 처남 되는 성일씨는 우째 얼굴을 보고 또 김기연사장은 우째 보고.”

“그래도 우짭니까? 네 집 다 주면 물이 모자란다고 연고가 있는 두 집만 준다는데.”

“세상에 그런 법이 없다. 묵는 물 가지고 누는 주고 안 주고 하는 것도 그렇지만 사람이 물을 묵고 살아야 되는 것은 하늘의 이치고 하늘의 이치란 말은 국가가 그걸 보장해준다는 말이지 결코 동네 구장이나 반장이 주고 안 주고 할 문제가 아이다.”

“국가가 식수를 보장한다니요?”

“우리가 건축허가를 낼 때 정부를 대표하는 대통령의 대행자인 지방자치단체장 울주군수, 그러니까 담당부서 건축과에서는 새로 지으려는 집이 재난에는 안전하며 도로, 수도, 전기에 심지어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에 따른 전파수급에는 지장이 없는지, 다시 말해서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고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 있는 행복권추구에 지장이 없는지를 살펴서 허가를 내어주는데 그렇다면 이미 건축허가가 된 세 집에 대해서는 군청에서 지원해서 개발한 사광마을지하수를 나눠먹고 충분히 살 수 있기 때문에 건축허가가 된 것이야. 또 만약 인구가 늘어 물이 부족하면 울주군수 또는 울산시장은 관에서 보급하는 상수도를 넣어주거나 기존의 지하수를 더 확장해서 물탱크를 더 크게 지어 저수량을 늘여 식수를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것이지.”

“제가 외삼촌처럼 자세하게는 설명 못 해도 세상에 묵는 물을 가지고 사람 차별하는 법이 없다고 설명해도 소용이 없습디더. 이장 자기도 마을의 개발위원들이 허락을 안 하면 마음대로 안 된다고 말입니다.”

“마을의 개발위원이라는 것이 공식기구도 아닐 건데 그건 단지 핑계일 뿐이다.”

“...”

한참이나 아재비조카가 마주 쳐다보다

“이 사람아, 내가 한번 이장을 만나러 갈까?”

“외삼촌. 그 기 무슨 말입니까? 몇 대를 한 동네서 살은 우리 형제가 몇 번을 가도 안 된다는데. 또 제가 명색이 덕천교회의 장론데 그런 이치쯤 못 따지고 그 사람들 눈치쯤 모르겠능교?”

“그런가?”

“또 우리 외삼촌에 공직에 오래 있어 이런 문제를 모를 사람도 아니고 그냥 넘어갈 사람도 아니라고 했더니 말입니다.”

“그래서?”

“별로 신경도 안 쓰는 시큰둥한 표정인데 뒤에 있는 노인네들 표정이 왕년에 누가 공무원나부랭이 안 해 본 사람이 있냐고 빈정거리는 것 같은 표정 같던데요.”

순간 화가 치민 열찬씨가

“그래? 니 지금 차 있제? 우리 둘이 면사무소에 가자.”

“면에는 와요?”

“내가 일일이 이장하고 따지느니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 항의하고 어떻게든 물을 먹게 중재를 좀 해달라고 하면 되지.”

하고 단숨에 면사무소로 달려가 창구직원에게 면장님이 계시냐고 묻자 지금 면장님이 바뀌어 새로 오신 면장님이 아직 취임식도 안 했다고 하며 어디서 무슨 일로 오신 누구냐고 물어 우선 명함 한 장을 꺼내주자 한참 들여다 보다 뒷자리의 중년에게 건네주자

“예. 어떻게 오셨어요? 제가 부면장인데요. 면장님은 이따 11시에 취임식을 하니 일단 저랑 이야기를 하지요.”

하고 부면장책상에 앉아 엉거주춤 서 있는 열찬씨를 보고

“미안합니다. 경황이 없어서.”

눈짓에 따라 의자를 가져온 직원이 자판기커피를 빼 오자

“대선배님 같으신데 간단히 이야기 하시면 제가 최선을 다해드릴 게요.”

하는지라

“한 3,4년 전에 여기 최광원상북면장이 내 동창이고 삼남면 이근오면장도 마찬가지고.”

운을 떼자

“예. 두 분 다 제가 계장으로 모신 분들이지요.”

“퇴직한지 꽤 되는 유말순이라는 국장님하고 지금 시의원 허령의원하고 내가 같이 삼남면사무소에 근무한 적이 있지요.”

“예. 정말 호랑이 담배피던 이야기군요. 그런데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내 고향이 얼마 전 고속철업무부지로 들어간 서울산톨게이트 앞 삼남면 교동리라 정년퇴직 후 마땅히 귀향할 데가 없어 누님집이 있는 명촌 등말리로 들어와 집을 짓고 있어요.”

“아 그렇군요.”

“그런데 이건 뭐 고향무정도 아니고 누구하나 도와주는 사람도 없이 어떻게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지 말이요.”

“예. 구체적으로요.”

“우선 건축허가를 내어 자재를 들이는데 진입로에 사는 사람이 도로에 담을 쳐서 막아버리더군요.”

“아, 명촌리 등말리 말이지요. 우리도 들은 것 같습니다.”

“들으면 뭐 하요? 나도 여기 면장격인 동장을 해 봤지만 지역 책임자 면장이 해결을 해야지요.”

“예. 말씀은 맞는 말씀인데 그게 만만한 문제가 아니지요. 요즘 마을마다 도시서 귀농, 또는 귀촌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기존의 농민들과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서로 무례하다느니 야박하다느니 갈등이 많지요. 특히 무턱대고 땅을 사 들어오는 사람들과 기존농민들과는 옛날 농로로 사용하던 현황도로가 사실은 사유지인 경우가 많아서 끊임없이 분쟁이 일어나지요.”

“아니? 옛날부터 사람이 다니던 현황도로라면 새로운 사람이 오든 누가 다니든 사람이 다니는 도로로 있어야지요? 새삼스레 길을 막아서도 안 되지만 관에서 그거 하나 해결을 못해서 말이 됩니까?”

“이론은 그렇지만 사유재산문제가 되어 관에서 함부로 끼어들지를 못 하지요.”

“아니 멀쩡한 길을 막아 어제까지 잘 다니는 사람들이 길이 막혀 둘러가도 관에서는 수수방관이란 말입니까?”

“그게 아니라 그 쪽 이야기를 들어보면 또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 우리는 어디까지나 중간에서 공평하게 대해야지요.”

“그 말은 중간에서 눈치나 보며 아무 것도 안 하겠다는 보신주의적 발상이고 무책임의 현주소고...”

“어르신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조금 진정하십시오.”

“참 그러고 보니 그러네. 내가 부면장보고 화를 낼 일이 아니지.”

“예. 하실 말씀이 그 건인가요?”

“아니요. 그건 부수적인 거고 당장 급한 것은 그 골짝사람들이 시의 지원을 받아 공동으로 지하수를 개발해서 물탱크를 짓고 선을 깔아 식수로 사용하는데 말이지요.”

“예. 우리 면에는 대부분의 마을이 다 그렇지요. 간이상수도 아니면 지하수...”

“문제는 그 지하수 물을 안 주겠다는 겁니다. 아무런 단서조항 없이 군에서 그 자리에 허가를 내 주었다는 것은 당연히 그 물을 먹고 살라는 뜻인데 말입니다.”

“그건 제가 동네사정을 잘 모르지만 그 분들도 지하수공사한 비용도 있을 거고 운영비도 있을 거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가 어찌 개인이나 한 마을의 건가요? 헌법상의 생존권이나 행복추구권으로 봐서도 물을 안 줄 수는 없지만 그 보다 유수인입권이라해서 같은 산 아래, 같은 강가에 사는 몽리주민은 누구나 그 강물이나 지하수를 식수로 사용하는 것은 물론 그 물로 농사를 짓고 목욕이나 빨래를 하고 그 강에 물고기를 잡는 것을 아무도 말릴 수가 없이 누구나 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냐 말이요?”

“그러니까 지하수를 식수로 달라는 말씀이신가요?”

“그렇지요. 내가 일자무식도 아닌데 어찌 그걸 다 시비를 건단 말이요?”

“그래서 이장님은 만나보셨나요?”

“아니 우리 생질이 대여섯 번도 더 찾아갔는데 쌀쌀하기가 삶은 호박에 이빨도 안 들어갈 것 같답니다.”

“그런가요? 그럼 어떻게?”

“좌우간 물만 먹게 중재를 하주면 되겠네요. 내가 서른여덟에 주사, 그러니까 부면장을 했고 마흔 네 살에 사무관, 그러니까 면장이 되어 이장격인 통장을 근 40명이나 거느렸는데 어째 이장을 찾아가 통사정을 하겠어요?”

“예. 곧 면장이취임식을 해야 되니 일단 돌아가시지요. 제가 면장님 알 것도 없이 이장하고 의논해서 해결하도록 하지요.”

“알았어요. 수고 많네요.”

하고 차로 면사무소를 벗어나는데 일식씨가

“외삼촌, 방금 이장이 면에 들어가던데요.”

“그래 면장 이취임식 한다더라. 그러면 방금 지나간 그 빼빼마른 사람이 명촌이장이가?”

“예.”

“그라고 보이 안면이 있네. 보자아....”

한참이아 미간을 찌프리고 생각하던 열찬씨가

“아, 그렇구나!”

무릎을 탁 쳤다. 얼마 전 버스정류소에서 만나 거기엔 도로가 없어 절대로 건축허가가 안 날 것이라고 단정하던 그 깡마른 초로의 사내가 바로 이장이었던 것이었다.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