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곳에서
남녀끼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되는
물권색
物權色
<물권색 이야기를 서로 나누는 저곳의 다섯 공리公理 axiom>
1. 일찍 들어오고 늦게 들어오고 선후배 없이 다 똑같은 동등한 존재다. 존대말 없이 서로 말을 터도 된다.
2. 살아생전에 언제 어디서 살았던 다른 지역에 대해 대충은 안다. 시공간 초월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이유다.
3. 이승에서의 집착을 다 비워 버려야 하지만 아직 미련이 있다. 물권색 욕망이 강한 인간의 관성 때문이다.
4. 한 방에서 이성끼리 대화하다 방이 바뀌며 이성 상대가 바뀐다. 덕분에 저곳에서의 생기가 은근히 살아난다.
5. 저곳에서 어떻게 생활하느냐에 따라 최종 정착지가 정해진다. 그러니 저곳은 중간 경유지가 된다.
42. 을식과 사라
그래, 내가 기회주의자였다는 건 인정한다고 쳐봐.
다만 난 기회는 살리되 내가 품은 뜻을 죽이지 않았어.
그토록 얄미운 양반 사대부 놈들을 치고 일어서야 한다는…
난 양반도 아니고 그 아래 평민도 아니었으니
어머니가 천민이기에 서자도 아닌 얼자로 태어났어.
양반 아버지들은 천민 여자를 통해 얻은 아들을 어떻게
천민 얼자 노비로 만들어 버렸는지 참으로 미스테리해.
자기 아들을 낳은 여자의 신분이야 어찌 되었건 간에
자기 씨를 받은 아들을 위하는 건 아버지의 본능 아닌가?
천륜에 반(反)해 태어나자마자 난 얼자 천민 노비가 되었지.
하지만 난 두뇌도 신체도 좋았으니 그게 문제라면 문제지.
난 어떻게든 불가능한 신분상승을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어.
그러다가 말단 궁궐 문지기가 되고 실낱같은 기회를 잡았지.
왕의 고민을 시원하게 풀었으니 흉폭한 난을 평정하였어.
왕은 무과 과거시험에서 떨어진 나를 합격하도록 해주셨지.
그렇게 나는 기적적으로 전무후무한 신분상승을 이루었지.
양반 놈들은 펄펄 뛰었지만 왕이 날 총애하니 어쩌겠어.
결국 난 그 놈들을 없애기 위한 무서운 계략도 실행시켰지
양반 사대부 놈들이 화를 입는 첫 사화(士禍)는 내 첫 작품이지.
다섯 왕들을 거치며 기회주의자로 끈질기에 승승장구했지.
역사가 날 희대의 간신 1위로 꼽지만 내가 생각해도 난 대단해.
機
會
主
義
예술이란 건 뭔가 어떤 아름다운 걸 표현하잖아.
한마디로 예술은 미학적 미감적 속성을 가지지.
그런데 어떤 예술은 그런 것과 180도 상반되기도 해.
가령 난폭 잔혹 포악한 걸 표현하는 연극 영화가 있지.
요즘 어떤 또라이 연극들은 기괴한 소음을 아주 크게 넣어
관객들로 하여금 일부러 불쾌감을 불러 넣기도 한다더군.
그런 자극적 표현을 더욱 다채롭게 생동감 있게 할 수 있는
예술 장르인 영화는 그 강도가 워낙 아주 매우 무척 세서
웬만한 심장을 가지지 않고선 볼 수 없는 영화도 많다던데.
그런 자극적 핵심(core)을 표현하는 코어 영화 넘어
더 센 하드 코어 영화가 매니아들 사이엔 인기 있다지.
시뻘건 핏덩이(gore)가 영화 내내 이어지는 고어 영화 넘어
더 센 하드 고어 영화는 특별히 인기 있다던데... 어이없어.
피가 뚝뚝 떨어지는 유혈낭자(splatter)한 스플래터 영화가 그래.
20만 년 동안 천억 명이 살아온 호모 사피엔스 인류사에서
그런 하드 고어 스플래터 영화의 주인공으로 난 가장 딱이야.
나 자체가 피의 상징이기에 날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가 많았지.
나는 오로지 내 피부미용에 좋다는 이유로 젊은 여자들을
착즙기 같은 데 넣어 피를 짜서 피를 받아 피의 목욕을 했어.
600여 명이나 되는 아가씨들을 죽인 나는 연쇄 살인마야.
이 일에 충성스럽게 가담했던 두 하인들은 극형에 쳐해졌어.
하지만 난 백작부인 귀족이라고 난 그냥 금고형만 받고 말지.
더 일찍 죽었어야 하는데, 여기 들어와서 회개하지만 나는! 난!
流
血
狼
藉
<전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