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지 크지 않은 차나무에 차꽃이 눈송이처럼 피어나고 있다. 사진= 조해훈
요즈음 지리산 화개골에는 차꽃(茶花)이 만발하고 있다.
차꽃은 벚꽃처럼 아무 데서나 볼 수 있는 꽃이 아니다. 화개골로 와야만 되고 가능하면 개인 차 농가들이 짓는 차산(茶山)에 올라야 제대로 된 차꽃을 볼 수 있다.
화개골에는 꽃이 많이 핀다. 봄이면 매화와 벚꽃이 유명하다. 요즘 같은 늦가을에는 차꽃이 무척 아름답다. 벚꽃은 벚꽃대로, 매화는 매화대로 특유의 아름다움이 있지만 차꽃은 그런 꽃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우리나라 차의 원향인 화개골짜기에 차꽃이 만발하고 있다. 순백색의 꽃잎에 노오란 꽃술이 같이 피어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 사진= 조해훈
바닥의 아주 작은 차나무도 예쁜 꽃송이를 피워냈다. 사진= 조해훈
꽃잎이 새하얗다. 그리고 꽃잎 안에는 노란 꽃술이 예쁘고 앙증맞게 핀다. 선녀가 내려앉은 듯한 하얀 꽃잎과 예쁜 병아리들이 떼 지어 있는 듯한 노란 꽃술이 동시에 핀 것이다. 벚꽃과 매화에서는 이런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볼 수 없다.
필자는 오늘(10월 25일) 오후에 차산에 올라갔다. 차꽃을 볼 목적이 더 컸다. 물론 차산에 올라가면 늘 풀을 베는 게 습관이 되어 있다. 상강(霜降)이 지나 사나흘 전부터 서리가 내리는 시기인데도 생명력이 강한 고사리들이 땅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웃자란 차나무 가지에도 차꽃이 피어있다. 사진= 조해훈
봄부터 초여름까지 웃자란 차나무의 가지를 거의 잘라주었다. 그런데 간혹 차나무 가지 한두 개가 쑤~욱 올라온 녀석 중 키 크기대로 하얗게 꽃이 달려 있다. 그냥 올라와 있으면 뻘쭘할 텐데 새하얀 꽃이 달려 있어 예쁘기 짝이 없다. 진한 초록색 잎과 함께 달려 있어 색상이 대비되어 더 순백색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진한 초록색의 이파리들과 순백색의 꽃, 그리고 진노란 꽃술이 묘하게 대비되어 다른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치 아름답다.
차꽃이 피면서 차씨도 함께 열려있다. 사진= 조해훈
필자는 봄에 차산에 매화가 만발할 때 올라가 풀을 베지 않고 넋을 놓고 꽃만 바라본다. 매화 꽃잎이 바람에 날릴 때면 즐거움의 극치를 맛본다. 아래 차밭의 약간 아래쪽의 고사리밭 할아버지가 “고사리밭에 그늘이 끼어 고사리가 잘 자라지 않는다”라고 고함을 질러도 수십 년된 매화나무 20여 그루를 그냥 내버려둔다. 실제로는 그늘이 끼지 않는다. 약을 치지 않아 매실은 다 떨어진다. 필자는 꽃을 보기 위해 매화나무를 그대로 둔다. 마을 아래 계곡 건너 찻길에서 보면 필자의 차산에 허옇게 피어 있는 매화군락이 참으로 환상적이다.
그런데 차꽃은 매화와는 또 다른 매력으로 필자를 유혹한다. 차꽃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다른 꽃과 비교 불가능할 정도의 아름다운 모양이다. 차꽃의 향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은은한 향이 먼저 풍기면서 아주 감미롭고 폐부 깊숙이 묘하게 적시는 듯한 향수 내음 같은 게 느껴진다.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야릇하고 좋은 내음이다. 차산에서 차나무 가지를 자를 때에 향이 난다. 필자는 그 냄새를 맡을 때마다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찻잎을 덖을 때도 찻잎 특유의 매혹적이면서도 야릇한 향이 난다. 그런데 차나무와 찻잎에서 나는 내음보다 가장 묘하고 기쁨을 느끼게 하는 내음이 차꽃에서 나는 향이다.
차산의 온 차나무에 차꽃이 피고 있다. 사진= 조해훈
그리고 물론 밭에서 재배하는 차꽃과 차산의 차꽃은 내음이 좀 다르다. 우리가 같은 산나물이라도 산에서 채취한 나물과 밭에서 키운 것의 향이 다르다는 사실은 다 안다. 산에서 채취한 산나물의 향이 더 짙고 강하다. 차꽃도 마찬가지이다. 필자는 걸어 다니면서 길가나 밭에 어쩌다 보이는 차꽃의 향을 맡아보면 역시 산에서 자라는 차꽃의 향이 더 진하다는 걸 느낀다.
여하튼 이러한 차꽃을 활용해 화장품 업계에서는 이미 상품화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필자가 생각하기엔 차꽃 향은 인공적으로 절대 낼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비슷하게는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오늘 차산에 늦게 올라가기도 하였지만 이 나무, 저 나무의 차꽃 향을 맡는다고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아마 차밭 위쪽에서 멧돼지가 내려오다가 나이 일흔이 다 되어가는 필자의 모습을 보곤 “저 나이에도 저렇게 순진할(?) 수 있을까?”라며 웃으며 돌아갈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차산에서의 이런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 과연 세상에 필자 말고 또 있을까. 이런 어리숙한 스타일이다 보니 늘 세상에서 밀리고 속는지도 모른다.
원두막에서 보니 어둠이 깔리면서 맞은 편 산(황장산)자락의 용강마을에 벌써 가로등이 들어와 있고 집집에 불이 켜지고 있다. 핸드폰의 라이트를 켜지 않으면 내리막에 다칠 수도 있겠다 싶어 불을 켰다. 지팡이를 짚으며 가능한 빠른 걸음으로 발걸음을 아래로 옮겼다. 아래쪽에 있는 필자의 움막 인근으로 오니 완전히 깜깜해졌다. 무섬증이 들었다. 가장 난코스를 지나니 마을의 집들에 등불이 켜져 있다.
도재명차 뒤로 내려와 개울을 건넌 후 마을 길로 접어드니 안심이 되었다. 내일 아침에 해가 뜨면 다시 차산에 올라가 또 풀을 베면서 차꽃의 아름다움을 보고, 차꽃향을 맡을 생각을 하니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그리하여 차꽃을 주제로 아래와 같이 졸시(拙詩)를 한 수 지어본다.
차꽃
조해훈
그대 살 내음 맡으니
세상 살아갈 이유가 또 하나 생긴다
선녀가 차나무에 살포시 앉았으리
순백색의 꽃
노란 꽃술의 아름다움에 빠졌지만
은은하면서 감미롭고 향긋야릇한
다른 그 무엇에서도 맡을 수 없는 향
오늘도 차산에서 오후 내내
그대의 새하얀 꽃잎 만져보고
입술을 대고 비벼보느라
해지는 줄 모르고
사방이 껌껌해서야 내려왔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