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죽고 잡혀가고(4)
텅 빈 집안을 둘러본 열찬씨가 서재로 들어가 모처럼 메일을 열어보는데 주로 공무원연금공단의 연금지급통지와 이제 해외여행도 잘 나가지도 않는데도 줄기차게 들어오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마일리지통보 틈에 낯선 메일이 하나 있어 열어보니 연제문인회의 동인지발간 원고모집이었다.
작년까지 이태동안 정과정에 대한 긴 글을 쓰느라 진이 빠진 열찬씨가 올해는 가볍게 신작시나 몇 편 보내려고 살펴보는데
“여보세요. 가열찬 선생님!”
문인선회장의 전화가 와
“아이구, 공주님 분부만 하십시오.”
“장가간 아들은 잘 사시는지요? 저는 그 때 읽은 축시만 생각하면 감개가 무량해요.”
“덕분에. 딸만 둘인데 네 살, 세 살 연년생이랍니다.”
“축하합니다.”
하고는 원고가 아직 안 들어와서 확인 차 전화를 했다면서 지난 2년간 정과정에 대한 향토탐방의 진지하고도 절절한 이야기가 <연제문학>의 수준을 올리고 무게를 잡아 16개 구군의 동인지 중에서 제일로 평판을 들었다고 무엇보다도 지면을 채우는데 절대적 역할을 했다면서 올해도 적어도 20페이지가 넘는 고사성어가 많이 들어간 깊이 있는 원고를 제출해달라는 것이었다.
집을 짓느라 바쁘게 살아 한 해 동안 딱히 글다운 글을 못써본 열찬씨가 한참이나 고민을 하다 마침내 화면에 새문서의 창을 열었다. 작고한 이승암국장의 죽음을 중심으로 그간 혼자 곰곰 생각해왔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로 한 것이었다.
95 연제문학원고
죽음, 그 황홀한 불꽃에 관하여
여기 한 사내가 죽었다.
사철 새빨간 동백꽃이 피는 남쪽나라의 바닷가언덕에서 아침저녁으로 들고나는 배들과 새파란 바다를 보며 고무공을 차고 휘파람을 불며 자라난 아이는 눈빛 가득 통영바다를 담은 싱싱한 소년이 되어 글짓기를 잘하고, 축구에 능하고, 노래하기 좋아하는 해맑은 젊은이로, 번쩍이는 눈빛의 늠름한 청년이 되어 전투복이 잘 어울리는 파월장병이 되기도 했다.
이어 긴 공직생활을 고엽제후유증의 쇠약한 몸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여 노모를 부양하고 아이들을 길러내어 훈장을 받으며 퇴직하여 동료와 시민들에게 모범공무원의 귀감이 되기도 했다. 바로 수십 년간 나와 앞서거니 뒤서기니 경합하며 미운 정, 고운 정이 헤일 수도 없는 이모국장의 이야기다.
그러나 나는 이 죽음을 이야기하기에 떳떳하지가 못 하다.
퇴직만 하면 읽는 대로 머리에 속속 들어오고 마우스만 잡으면 술술 글이 써질 것 같았던 현직시절의 희망이 도무지 무슨 열병에라도 걸린 듯 머뭇거리고 비틀거리며 자리를 잡지 못 하자 나는 뭔가 변화를 구해야만 했다.
그래서 길을 가다 동사무소의 태극기를 만나도 길을 돌아서 가고 되도록 정치, 행정, 회의, 행사, 축제에 참여하거나 생각하는 것조차 삼가며 공직자의 그 딱딱한 사고방식을 벗어나려고 아주 가까운 동료의 길흉사가 아니면 직접 참석을 않고 부조만 보내면서 그저 금정산에 채소를 가꾸거나 수영강을 배회하기를 3년, 겨우 제법 긴 작품하나에 매달리면서 또 하나 나를 혼란에 빠트리는 휴대폰을 멀리해야한다는 난관에 부딪혔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의 경우 정신을 집중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하루에 너덧 시간정도이고 특히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침나절의 서너 시간동안이라 무아지경으로 몰입하고 파김치가 되어 물러나는 것이 습성인데 시도 때도 없이 오는 휴대폰을 받다가 무슨 갈등이 있거나 장광설에 휘말리고 나면 몇 며칠이나 마음을 다져 겨우 써나가던 문장이 뚝 끊어지면 다시 쓰려 해도 생각도 산만하고 억지로 써도 앞뒤의 글맛이 영 딴판이 되어 끝끝내 며칠을 고생한 글을 지워버리고 다시 한동안 마음을 다스려 다시 시도해야하는 것이었다.
결국 휴대폰을 끄고 신문을 끊고 기장의 야산을 일구어 농막을 짓고 칩거했는데 주말에 모처럼 찾아온 아내가 내 휴대폰의 메시지를 하나씩 지워나가다 초특가 상품 틈에 조그맣게 자리한 부음을 발견한 것이었다.
아내에게 혼이 난 것은 변명이라도 하지만 망인에게는 어떻게도 사과할 수 없는 일, 어느 듯 장년(長年)을 사는 나로서도 결코 남의 일이 아닌 어딘가 늘 나를 훔쳐보고 호시탐탐 노리는 것만 같은 그 죽음에 관한 짧은 고찰로 고인에 대한 애도와 함께 명복을 빌고자 한다.
도대체 죽음은 무엇이고 생명은 무엇이며 우리는 왜 태어나고 죽어가는 것일까?
이는 죽음의 재료가 되는 탄생에 대하여 먼저 생각해보아야 되는데 하나의 풀잎이 지각을 뚫고 나오거나 나비가 부화하거나 아기가 태어나는 것은 성스럽고 경이로운 생명의 출발이지만 그 의미는 조금씩 다를 수 있다.
흙이나 바위 같은 무생물과 달리 움직임을 가지는 이 유기질의 생명체는 우주를 이루는 두개의 얼개인 시간과 공간 중에서 죽고 산다는 시간적 제약은 꼭 같이 받아, 다시 말해 죽기 때문에 생명체라고 불리지만 그 공간적 활용은 매우 판이한 양상을 보인다.
즉 식물은 한정된 공간 즉 땅에 뿌리를 박고 잎과 꽃을 피우고 물과 햇빛을 받기위해 서로 다투며 옆으로 번지고 위로 올라가기도 하고 열매를 맺기 위해 화려한 꽃과 달콤한 꿀로 벌 나비를 유혹하고 떨어진 열매를 싹 틔우기 위해 감과 포도, 밤과 도토리처럼 맛있는 과육을 내어준다.
그런가 하면 사슴이나 승냥이 같은 동물들은 마음대로 뛰어다니는 공간적 자유를 누리며 핥고 빨고 사랑하거나 치고받고 싸우며 서로 잡아먹기도 서슴지 않는다.
그 위에 만물의 영장인 사람은 단순한 하나의 운동체가 아니라 생각하며 고뇌하고 무언가 개선하고 발명하고 즐기며 언어로 소통하고 빛과 소리와 색깔로 시와 회화, 조각과 오페라 같은 예술적 창조를 하며 도서관과 박물관을 만들어 과거와 미래를 관통하고 천문학으로 우주를, 철학과 심리학으로 인간존재를 탐구하기도 한다. 심지어 생명의 신비를 풀려하고 신의 존재를 뛰어넘거나 부인하기에 이르기도 했다.
그런 최상의 존재인 우리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부르고 이 인간의 인식과 사고 그 집착을, 그 형형하게 빛나던 눈동자에 어리던 뜨거운 눈길을 한문에서 살아서는 혼(魂), 죽어서는 백(魄)이라 부르며 신성시한다.
어디 그 뿐인가? 한자문화권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 또는 가장 원초적 슬픔을 슬플 애(哀)자로 표현하는데 이 애(哀)자야 말로 어미가 포대기에 쌓인 죽은 아이를 들여다보며 우는 형상이다. 중국인들은 아직 이빨이 나지 않은 젖먹이의 죽음을 애(哀)로, 성년이 되기 전에 죽는 것을 요(夭)로 표현했는데 말하자면 지상이 모든 슬픔의 기본이 죽음이요, 그 절정이 젖먹이, 즉 일찍 죽는 것으로 보았다.
단지 그 뿐만이 아니다. 같은 생명체라도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의 죽음은 고착된 수동적 생명체의 종말이라면 뻐꾸기나 사슴 같은 동물의 죽음은 가고 오고, 치고 달리는 본능과 감각을 가진 움직이는 생명의 정지 내지 소멸이라면 소우주(小宇宙)로 불리는 인간의 죽음은 그 하나하나가 의지와 집념이 끊어지고 꿈이 사라지는 단순한 죽음이상의 특별한 그 무엇이다.
전쟁이나 흉년, 질병으로 죽는 그 아픔이나 슬픔, 억울함도 문제겠지만 인간의 죽음 하나하나에는 상인의 부(富)와 노파의 자손, 예술가의 성취와 정치인의 카리스마와 명예, 작곡가의 선율, 가수의 바이브레이션, 화가의 실루엣, 시인의 시상(詩想)이, 발명가의 설계, 대학교수의 학식, 젊은이들의 사랑, 그 한없이 설레는 울렁거림마저도 죽어버리는 것이다. 이 어찌 슬프고 허무한 일이 아닌가?
아무리 영특하고 존귀한 존재라 한 들 이미 죽어버린 다음에야 인간의 죽음이 혼이면 어떻고 백이면 어떻고 영(靈)이면 어떻고 귀신(鬼神)이라 불린다고 또 어떠랴, 어차피 죽어 육신이 소멸되고 영혼의 메아리가 없는 판에...
지금 맞닥뜨린 한 사내의 죽음, 천진한 아이, 순수한 사내, 승리의 용사, 모범공무원에 더없이 좋은 아들, 좋은 남편, 좋은 아비이던 완벽한 상남자마저 어떤 저항도 못 해보고 홀연 이승을 떠나야 하는 마당에...
그렇다면 이렇게 허무하게 죽어가는 생명은 왜 태어나고 죽어야만 할까, 그렇게 소모되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고 무슨 가치가 있는 것일까?
모든 생명체는 부모가 되는 전세대의 충동이나 불의의 부산물로 태어난다. 어떻게 보면 불교에서 말하는 전생이나 윤회, 업보란 말도 냉정히 말해서 아무 근거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이 세상의 어느 누가 제가 태어나고 싶어, 제 의지, 제 힘으로 태어나며 또 반드시 어떤 자식을 어떻게 낳겠다고 찰흙으로 조각을 빗듯이 아이를 낳을 수 있단 말인가? 단지 우주의 조화에 의한 수동적인 탄생으로 그저 우연일 뿐일 수도 있다.
그리고는 짧든 길든 나름대로 우여곡절을 겪으며 약간의 결과물을 남기고 죽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굳이 너무 어렵거나 고상한 역사적, 철학적 차원이 아닌 보통사람의 생애를 평할 때 그 중간평가에 해당하는 환갑전후 은퇴 무렵에는 자녀를 몇이나 낳고 몇을 결혼시켰으며 노후에 먹고 살만한 여력이 있는지를 논하고 영결식장의 최종평가에는 손자를 몇이나 두어 대를 잇고 지적, 창조적 성과나 빌딩 같은 재산, 하다못해 사회적 명망 같은 업적을 따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임진왜란에 순국한 이순신장군이나 일제침략에 맞선 유관순열사, 안중근의사 같은 경우 국가 또는 민족을 위하여 너무나 뚜렷한 공적을 남겼다고 할 수 있다. 또 하여가(何如歌)의 정몽주, 사육신(死六臣)의 성삼문은 기울어져가는 나라나 왕실의 정통성을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바쳤고, 금오신화(金鰲新話)의 오세신동 김시습은 비운의 임금 단종을 못 잊어 일생을 거친 초야를 떠돌며 밤이슬을 맞았고, 목민심서(牧民心書)정약용과 열하일기(熱河日記)의 박지원은 몽매한 백성을 깨우치기 위하여, 이차돈과 김대건은 새로운 신앙을 위하여 기꺼이 순교(殉敎)의 길을 택해 목숨을 버렸다. 늘 흉년이 들고 질병이 흉흉하여 먹고 살기도 힘든 시절에 밥도 되지 않고 도(道)도 되지 않는 동떨어진 명분을 위하여, 또 수많은 당대인들을 다 두고 유독 그들만은 스스로 그 짐을 지고, 그 길을 가며 어떻게 그렇게 쉽사리 가정을 버리고, 자신을 버리고, 마침내 생명도 바칠 수가 있었을까?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왕조시대, 특히 나라가 위기에 처한 시절의 사내들은 비록 가난하고 고달프고 쉽사리 목숨을 바쳐야하긴 했지만 무언가 삶의 가치를 부여할 만한 대의명분(大義名分)과 기회가 있었지만 전쟁이 없어진 지가 반세기가 넘는 지금 같은 평화시대, 경제가 세상을 지배하고 충절을 지켜 목숨을 바치기보다 눈치가 빠르고 사람을 잘 다루는 사람이 지배자가 되는 시대에는 한 사내가 감히 목숨을 버릴 만큼의 대단한 명분도 기회도 없는 것이다.
호랑이가 죽어 가죽을 남긴다는 말처럼 입신양명(立身揚名), 이름을 남기기 원한다면 요즘 세상만큼 사내들이 살아갈 명분이 없고 무언가 이루고 남기기 어려운 시대도 없다. 그러면서 남녀평등이 양성평등으로 다시 레이디퍼스트의 페미니즘으로 변해 더욱 입지가 좁아지면서 자칫하면 마마보이나 공처가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그래도 굳이 이 시대 남자의 삶과 죽음의 의미를 좀 더 가까이 찬찬히 살펴본다면 앞의 내 동료는 우리 시대의 한 모범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역할을 다한 사람이다. 그라나 그는 죽음을 면치 못 했다. 그렇다면 나도 죽고 이 글을 읽는 이들도 모두 죽을 것이다. 죽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죽기 전의 아픔, 죽는다는 공포도 보통이 아닐 것이다. 아아, 기독교의 장례식에서 말하는 요단강을 건너가 만나는, 아니 그 아득히 멀고 어두운 죽음의 강을 우리는 어떻게 건너야 하는 것일까?
논산훈련소에서 처음 정신없이 힘든 훈련과 낯선 환경에 직면했을 때 나는 내 사촌형님을 비롯한 아주 평범한 사람이라도 이미 그 어렵고 힘들고 지루한 군대생활을 마친 사람이라면 다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3년간의 휴지(休止)상태인 군대가 그럴진대 하물며 그 끝없는 어둠과 공포의 나락, 죽음의 강을 먼저 건너간 선배에 대한 외경심이란!
이제 주변사람이 적잖이 죽음의 나라로 떠나는 이 나이에 나 역시 윤동주의 서시(序詩)에 나오는 시구(詩句)처럼 모든 죽어간 사람과 그 꿈, 농부의 논밭, 졸부의 빌딩, 상인의 요지(要地), 학자의 지식, 발명가의 미완성 아이디어, 무명시인의 넋두리, 늙은 예술가의 권위처럼 이승의 그 많은 재산과 미련을 버리고 훌훌히 떠난 사람, 아무 미련도 없이 온전히 생애를 불태우고 소금보다도 더 희고 정갈한 영혼으로 결정(結晶)된 사람, 그 불안과 공포가 칙칙하게 도사린 죽음이라는 어두운 다리를 건너 마침내 혼란의 이승(此岸)을 넘어 영원한 빛의 세계(彼岸)에 도달한 영혼들이 부럽고 존경스러운 것이다.
그렇다면 내게 다가올 죽음은 어떤 빛깔일까?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 언젠가는 가야할 길이라면 어떤 미련이나 두려움도 없는 담담함을 넘어 차라리 흥겨운 축제처럼 붕붕 뜨는 느낌, 꺼지기 직전에 펄럭이는 촛불처럼 화려한 불꽃이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차피 죽음을 전제로 생명이 태어난 것이라면 살아가는 동안의 어떠한 영광도 결국은 죽음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오페라의 대미처럼 화려하고 장엄한 죽음을 완성하는 피날레의 장식일 뿐이다.
죽음, 그 육신이 참담하게 무너지는 생명의 종말에 있어 우리는 생애 내내 후줄근히 젖은 추레한 육신의 옷을 벗고 찬란한 영혼의 날개로 비상(飛翔)하여야 하지만 과연 영혼이 있기나 한 것인지, 그런 천상의 세계인 저승을 다녀온 자, 그러니까 아직까지 죽었다 살아난 자가 없으니 그마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누구도 살아서는 알 수 없는 죽음,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 우리는 필연의 미래, 죽음에 대하여 처연하게 슬퍼하며 공포(恐怖)에 빠지기보다는 또 하나의 탄생, 새로운 세상의 개벽(開闢)에 대하여 차라리 황홀하고 사치스런 기대에 부풀면 어떨까?
그렇다면 우리의 육신이 해체(解體)되는 순간, 비로소 먹고 숨 쉬고 피돌기를 지탱하는 생명의 굴레에서 벗어나 비로소 자유의 영역에 진입하는 영혼이야말로 불꽃처럼 타오르는 죽음의 호사를 누릴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그 호사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될까?
어머니의 품, 고향마을과 유년의 추억, 첫사랑과 첫아이의 대면일 수도 있고 사법고시합격이나 국회의원당선, 로또복권당첨의 또 다른 무엇일 수도 있으며 어린 시절에 보았던 무지개, 여울에 부서지던 햇살, 흩날리던 찔레꽃과 그렇게 가슴이 콩닥거리던 첫 경험의 살 냄새와 전율(戰慄)일 수도 있다.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