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민중의소리]

뉴스

이광

대학교 청소노동자 천막농성 철수 현장

우리가 본관 앞에 천막 치고 앉은 지도 오늘이 딱 이십육일 째여 지난 한 해동안 꼭두새벽에 나와 화장실 청소한 거 돈 한 푼 더 받자고 한 일 아니여 그리않음 일이 되지를 않은께 어쩔 수 없이 서둘러 나왔던 거여 수당이라도 올리달란 말? 짤릴까 봐 입도 벙긋 못혔어 일할 땐 말이여 콧노래도 부르지 말라 고것이 회사 방침이다 그러더만, 점심 먹고 소파에 앉아 잠시 쉬는 꼴도 못 봐주질 않나 이런 근무조건에 고용 보장도 확실 않은께 우리가 이 모양하고 나설 수밖에...... 건데 오늘부로 이 짓거리도 그만 끝내기로 혔어 총장님한테 무슨 확답 같은 거 받은 건 없어 그냥 우리끼리 뜻을 모은 거여 아, 낼모레가 졸업식 아닌감 또 입학식이 바로 코앞이제 수고한다며 인사 꼬박 건네던 학생들 떠나는 마당인데 우리 입장만 내세우면 도리가 아니제 게다가 손주 같은 신입생들 말이여 활짝 웃는 낯으로 들어설 자리에 나 먹은 사람들이 찬물 끼얹을 순 없잖여 그래서 우리끼리 고민 막 해가지고 내린 결정이란께

일행은 천막을 접고 플래카드 떼어낸다

이번에도 미화원이 등장하는 사설시조를 소개합니다. 모 대학교 청소 노동자들의 농성 철수 현장을 옮겨놓은 작품입니다.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가 농성 철수를 결정한 할머니 대표와 인터뷰를 하는 형식으로 펼쳐집니다, 이는 실제로 기사화된 사실을 토대로 한 것으로 시간이 꽤 지난 일이지만 정확히 기억하는 건 할머니가 도리를 지키기 위해 농성을 철회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노사문제에 있어서 시사하는 점이 많습니다. 노동자들이 도리에 맞게 행동하고 사용자들이 도리에 맞는 결정을 내린다면 분쟁은 자연히 줄어들겠죠. 하지만 사용자들은 기업은 도리보다 이윤을 우선한다는 논리에 사로잡혀 있지요. 한 할머니의 도리를 내세우는 말씀에 진한 감동을 받고 쓴 작품입니다.

시인이 타자와의 연대를 현실로 인식하지 않고 자기 신변 위주의 작품만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시인 또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한 사람의 역할을 하겠다는 자세가 작가정신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를 감동적인 무대로 만드는 데 겨자씨만 한 역할이라도 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특히 사회적 약자를 향한 따스한 시선은 시인의 주요한 덕목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을 눈여겨보고 그들의 말을 귀담아들어, 뭔가를 읽어내고 또 뭔가를 받아쓰면 그게 시가 됩니다.

이광 시인

◇이광 시인 : ▷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부산시조 작품상, 이호우 시조문학상 신인상, 나래시조문학상 수상 ▷시조집 《당신, 원본인가요》, 《소리가 강을 건넌다》, 《바람이 사람 같다》, 현대시조 100인선 《시장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