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초상

우리는 ‘항산이 없으면, 항심이 없다’는 말을 자주 접한다. 경제적으로 안정이 돼야 도덕적으로 행동한다는 뜻이리라. 곧, 경제적 안정(항산)이 없으면, 도덕적 심성(항심)도 없게 된다는 주장이다. 요즘에 이 말을 인용할 때는 항산-경제적 안정-을 강조할 때이지, 항심-도덕적 심성-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 듯하다.

하지만 한 번만 더 곰곰 생각해 보면, 이 주장은 뭔가 좀 이상함을 감지할 수 있다. 사회적 일탈 행위-범죄-는 빈곤에 비례해서, 가난할수록 범죄율이 높다는 말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게 통계적으로 확인 된다. 빈곤율과 범죄율 사이에 상관관계가 거의 없다. 그리고 ‘화이트칼라 범죄’(white-collar crime, 직업상 존경 받으며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에 의해 저질러지는 범죄)를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람에게 ‘한 번 더 곰곰 생각함’은 대단히 어려운 과업이다. 왜냐하면 두뇌는 게을러서 ‘노력 경제의 원칙’을 따르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하여 굳이 옳음/그름이나 명예, 정의, 미덕 등을 스스로 판단하려 하지 않는다. 이러려면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들어 두뇌에 과부하가 걸리기 때문이다.

사람은 문화적 동물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사회 속 언어, 관습, 규범 등을 관찰하고 모방하여 점차 그 가치관을 내면화한다. 개인이 속한 어떤 사회든 공유하는 고유한 신념·가치관·행동양식이 있다. 이를 에토스(ethos)라 하는데, 사회화의 과정에서 개인은 이 에토스를 체화하게 된다.

몸에 밴 에토스는 개인이 각각의 사안에 옳음/그름이나 선/악 등을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수고에서 해방시켜 준다. 직접 두뇌활동이란 고비용 노동을 하기보다는 에토스가 정해주는 답에 따라 행동하면 무난하기 때문이다.

에토스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그 사회가 받드는 성현(聖賢)과 그들의 저술이다. ‘공·맹’(孔孟)은 한국인의 에토스 정립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아닌 듯하지만 현재 젊은이들도 공·맹의 가르침이, 부모나 사회로부터 물려받아 어느 정도는 행동의 지침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시골에는 학생이 귀하다. 한 날은 교복을 입는 중학생이 동네로 줄레줄레 걸어 들어왔다. 드문 일이고 반갑기도 해 불러 세웠다. “이 동네 사나?” “예” 우리 동네 살긴 사는 모양인데, 내가 이 동네 토박이긴 하지만 저들이 까마득한 동네 어른인 날 알아볼 턱은 없다. 그래도 누구 집 자식인지는 알고 싶었다.

“아버지 이름이 어찌 되노?” “이, 0자, 0자입니다.” “그래? 으음” “들어가 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1천년 이상 한국인의 에토스 형성의 근원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내 정체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유학이나 성리학에 젊었을 때부터 죽 관심을 가져왔다. 공·맹에 대해서도 제법 읽은 편이다.

배우고 전승해야 할 숱한 가르침도 많지만, 신분차별과 남녀차별은 유학의 천형이다. 이에 못지않게 가부장적 권위주의도 이제는 버려야할 유산에 속할 뿐이다. 하여 자식에게도 학생들에게도 부모나 조상의 이름을 남에게 밝힐 때 ‘0자 0자입니다’고 하는, 형식상 존중의 예는 갖출 필요 없다고 일렀다.

인간을 줄 세워서 차별하는 왕조시대와 계급사회에서 존경과 삼감의 뜻을 나타내는 ‘피휘’(避諱) 언어관습은,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현대에서는 굳이 계승할 유산이 아니라는 것이 지론이다.

성현의 저술도 ‘비판적 독해’(critical reading)가 절실하다. 공자와 그 도통(道統)을 이어받는 맹자도 ‘시대를 초월한 무오류의 성현’은 아니다. 현대인의 눈으로는 ‘비람 풍’인데, 공자는 ‘바담 풍’이라고 한 사례도 분명히 있다.

공자의 사상은 지배자를 위한 통치 사상이고, 봉건 잔재의 표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공자는 인류 최초로 지식인 계급을 역사의 무대로 등장시킨 지식인의 시조이며, 진정한 보수 정치인의 전범이기도 하다.

공자는 혼란하고 민생이 도탄에 빠졌던 춘추시대에 천하를 평안하게 하기 위해 고민하던 2,500년 전의 학자요 정치 관료였다. 그의 고민과 혜안은 우리가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 그래서 개혁적이고 비판적인 다산 정약용 선생도, “『논어』만은 종신토록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맹의 시대적 한계는 분명하다. 『논어』나 『맹자』를 읽을 때, 그 시대적 한계를 감안하지 않고 축어역(逐語譯)으로 현대에 바로 적용하면, 저자의 뜻과 전혀 다른 심한 왜곡이 일어난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현재의 과학기술은 1년의 변화가 과거 100년의 변화를 능가한다. 이러한 세상의 흐름에서 2,500년 전의 고문서는 그 당시의 시대상황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그 진의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 대표적인 예의 하나는 ‘항산이 없으면, 항심이 없다’이다. 이 구절의 전거인 ‘『맹자』/「양혜왕장구 상」/제7 제환진문장’을 축어역이 아니라, 그 시대상황으로 돌아가 ‘비판적 독해’를 해보자. 의미가 사뭇 달라진다. <계속>

조송원 작가

<작가/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