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는 별도 연락이 없었고 들리는 말로 회고록이나 자서전이 없이 옛 동료들과 가족들을 모시고 희수연을 치렀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현직을 떠나서까지 가장 충성스럽고 성실하다고 해서 불려 들어간 이승암 국장이 그 부실한 몸으로 몇 년이나 다시 그 까다롭고 자존심 강한 사람의 눈치를 보고 자리를 지키다 마침내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었다.
이미 세상을 떠난 뒤 몇 달이나 지났으니 문상도 할 수가 없고 출상 당시 문상조차 오지 않았다고 또 엄청 욕을 먹었을 것 같았다. 사실은 그게 아니라고 나도 이승암 국장의 죽음이 너무나 애통하고 정말로 가슴이 아프며 오만 감정이 다 솟구친다고 변명이나 해 보고 싶어도 해 볼 데가 없었다. 곰곰 생각하던 열찬씨가 퇴직공무원모임 시우회에서 발간하는 <나루터>에 추도사를 발표하면 다소나마 위로가 될 것 같아 저간의 세월을 뒤돌아보며 초안을 잡기 시작했다.
마침내 건축이 마무리 되자 그 동안 긴장했던 마음이 풀리면서 찬찬히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겨
“우리 데크에서 커피 한 잔 하자. 풀벌레소리가 너무 좋다.”
하고 영순씨와 데크에 앉아 거뭇하게 어둠이 묻어오는 전망과 밤공기를 즐기다 휴대폰으로 클래식을 틀면
“무슨 음악이야? 이 고요한 밤에.”
“정석이가 녹음해 줬어. 클래식은 클래식이지만 주로 경쾌한 행진곡이지.”
“아, 아메리칸 파머!”
“뭐, 파머씩이나...”
혼자 밭에서 돌을 빼거나 고추를 따는 열찬씨가 젊어 수술할 때 골반 뼈를 일부 떼어내어 바지에 허리띠를 매지 못 해 X자의 멜빵을 메는데다 늘 클래식을 틀어놓은 것이 눈에 익지 않아서 가끔 들리는 현주네 식구나 공사 차 드나드는 인부나 납품업자들이 농부는 농분데 영판 서부영화에 나오는 미국의 농부 같다고 <아메리칸 파머>란 별명을 붙였다고 했다.
“오늘은 당신이 있으니 이렇게 오손도손 분위기가 좋지만 어떤 때는 이 외진 골짜기에 나 혼자 있다는 생각을 하면 무서운 느낌도 들어.”
“그래? 나이가 몇인데?”
“무서움이 나이하고 관계가 없는 것 같기도 하지만 외로움의 한 변종 같은 생각도 들어.”
“하여간 말 하나는! 그럼 개를 길러보지.”
“개? 마음이는 너무 커서 감당이 안 되던데?”
“그럼 조그만 개를 한 마리 길러보지.”
“구할 수는 있을까?”
“고모한테 물어보면 금방 될 걸.”
하고 영순씨가 돌아간 뒤 금찬씨에게 말하자
“안산 할매집에 개가 새빠졌는데 한 마리 얻어오지.”
“아는 집이요?”
“같은 교회집사다.”
“돈은? 공짜로 얻어도 되지만 그간 사료 값이라고 한 2만 원 주지.”
해서 즉석에서 2만 원을 꺼내주었는데 이튿날 둘째 손자 만태가 오토바이에서 내리며 품속에서 노란 강아지 한 마리를 꺼내며
“할아버지. 생후 한 1개월 된 수놈인데 같은 배 열두 마리 중에 제일 귀여운 놈입니다.”
하고 라면박스 하나를 구해와 그 안에 넣고
“할머니가 목줄하고 개 줄을 사왔어요.”
하면서 목줄을 끼우고 줄에 묶어 데크기둥에 고정시키니 겨우 눈을 뜬 그 조그만 놈이 얼마나 안타깝게 울어쌓는지
“할아버지, 안 되겠어요. 오늘은 박스에 담아 방안에서 할아버지랑 같이 자도록 하세요. 한 이틀 지나 할아버지가 정이 들고 새 주인임이 확실해지면 안정될 것입니다.”
유일한 관심사가 개인만큼 자상하기가 짝이 없었다.
“저 이제 갈게요.”
하고 대문 앞을 나서서 되돌아온 만태가
“할아버지 강아지 이름 생각해놓은 것이 있어요?”
묻는지라
“보자아...”
한참이나 생각하던 열찬씨가
“<마초>가 어때? 삼국지에 나오는 장군인데 충성스럽고 의리있고 무엇보다 용감한 장수지.”
“예. 괜찮네요. 남의 일에 잘 끼어드는 인정 많은 남자도 되고.”
하며
“마초야!”
강아지의 목을 한번 쓰다듬은 뒤
“인자부터 반드시 마초라고만 불러야 됩니다.”
당부를 하고 떠났다.
만태가 가 버린 뒤
(무얼 보고 젤 귀엽다는 거지?)
잔뜩 겁을 먹어 꼬리가 축 처지고 눈곱까지 낀 채 박스위에 오줌까지 질금거리는 강아지를 보고
“야, 오늘 부터 내가 니 주인이다. 말만 잘 들으면 엄청 귀염 받을 수 있다.”
머리를 한번 쓸어주자 힐끗 한 번 쳐다보고는 낯선 사람임을 확인하고 다시 깨갱거리며 꼬리를 감추는 것이었다.
(하긴 엄마도 떨어지고 11마리의 형제도 떨어지고 또 처음으로 목줄까지 매었으니...)
목줄을 풀어주고 주방에 가서 밥 한 덩어리를 가져와서 턱 밑에 놓아주며
“마초야, 묵어라. 엄마가 생각나도 일단은 묵어야 산다.”
하고 쓸어주니 밥 냄새를 킁킁 맡아보고는 도로 머리를 뗐다. 그리고는 오소소 몸을 떨며 다시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어릴 적의 슬비가 울보라고 소문이 날 정도로 예민했지만 직장에 다닌다는 핑계로 거의 돌보지 않았고 그 어미를 닮은 영서가 어미보다도 더 예민해 무려 22개월간이나 키워주던 영순씨가 참다 참다 너무 지칠 때면
“나만 할맨가, 누구는 할배라고 신은 더 내면서...”
하면서 곤히 잠든 열찬씨를 깨워 아이를 넘겨주고
“내 조금만 잘께. 당신 출근시간 되면 께우소.”
하고 금방 코를 골고 잠이 들면 무려 27년 전 제 어미를 안고 부르던 자장가
- 우리 슬비는 착한 슬비지. 착한 슬비는 잠도 잘 들고 -
를 다음 세대 영서가 나오자 이름만 바꿔
- 우리 영서는 착한 영서지 착한 영서는 잠도 잘 들고 -
로 바꾸어 부르면 희한하게도 잠이 드는데 제 어미 슬비는 그렇게 한참을 흔들다 조심스레 바닥에 눕히면 그대로 자는데 비해 영서는 절대로 용납하지 않고 곧바로 울어댔다. 어미보다 더 예민해 누가 지금 자기를 안고 흔드는지 아닌지 또 누군가의 피부가 접촉되어 있는지 자기혼자 버려져 있는지를 아는 것만 같았다.
“야, 이놈아, 니가 뭐 우리 영서도 아니고 말 안 들으면 바로 퇴출이다. 너거 할매가 개 키우는 취미가 많아 그렇지 개밥도 닥치는 대로 아무거나 먹이고 덩치가 조금 커서 개장수가 달라고 하면 마리당 2,3만원에 바로 버린다고 하는데...”
하다 아무리 미물이지만 졸지에 어미를 떨어진 것이 얼마나 스트레스겠는가 싶어 다용도실 선반에서 꽁치통조림을 하나 꺼내와 두 점을 그릇에 담아
“그래 먹어라. 니도 식구라고 나머지는 힐매가 끓여서 저녁반찬으로 하고 요 두 동가리는 니가 먹고.”
하고 코밑에 내밀어도 냄새만 한번 맡고 고개를 외로 꼬았다.
“평양감사도 제 싫으면 그만이라더니 이 녀석이 아직 배가 덜 고픈 모양이로구나.”
하고 냄비에 꽁치통조림을 끓여 고춧가루를 듬뿍 넣고 저녁을 먹었다.
(짜식이, 없이 사는 처지에 입은 고급인가?)
사실 마초의 키우던 안산할머니는 사광리에서도 고래들을 건너 천전마을 뒷산 기슭에 자리 잡은 주로 짐승을 키우는 새마을에 사는 사람으로 금찬씨와 같이 덕천교회에 다니는 신도로서 같은 마을에 살아 금요일 날 지역별로 보는 반모임의 멤버였다.
원래부터 명촌마을의 토박이는 아니었지만 몇 대 째 고래뜰에 농사를 지으며 살았는데 일찍 축산에 눈을 뜬 사람들이 안산기슭에 거대한 축사를 지어 소와 돼지를 기르느라 3가구가 새집을 지었을 때 돌아가신 남편이 그만한 밑천도 없으면서 입구 쪽에 슬레이트집을 하나 짓고 닭 대신 꿩이라고 돼지 몇 마리와 개들을 키우면서 살았다. 그러다 영감이 죽고 주욱 혼자 개들을 키우면서 살았는데 아버지가 남긴 땅을 처분해 여러 번 실패한 장남이 찾아와
“엄마는 개똥냄새가 지겹지도 않소? 인자 개 좀 그만 키우소.”
해도
“개 안 키우면 집터 팔아서 사업하자 칼라꼬. 다른 건 몰라도 너거 아부지하고 같이 살던 이 집은 내 죽을 때까지 손댈 생각을 말아라. 내 혼자 개나 키우면서 살란다.”
하고 일축했는데 다행히 아들이 명문대를 나온 바람에 큰며느리가 중학교교사로 근무해 먹고살 걱정은 없어 부동산중개소의 보조를 하며 잡비나 얻어 쓰면서 산다고 했다.
또 서울서 공무원생활을 하는 차남이나 딸들이 와서 단골로 항의하는 레퍼토리, 장남이 아버지가 남긴 땅을 다 팔아가서 자기네는 받아갈 거도 없고 엄마를 잘 모시지도 않는다는 이야기와 자기들이 엄마용돈을 줄 테니 제발 개를 키우지 말라는 말이 나오기도 전에
“오늘 우리 집 장남에 대해서 험담하는 사람이나 개 키우지 말라고 타박하는 사람은 내 새끼가 아이다!”
어금니가 다 빠져 합죽한 입으로 한마디 던지면 희한하게도 누구하나 이의를 달지 않았다. 부모를 닮아 천성이 착하기도 했지만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닌 사람들이라 효성이 몸에 밴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작은아들과 딸들이 돌아가고 나면
“야야, 남자가 사회생활을 할라카면 용돈이 좀 있어야겠제?”
하고 다른 자식들이 준 용돈을 장남에게 내미는데
“엄마, 용돈 있심더. 아아 엄마가 돈 번다 아이가?”
“그래도 남자가 사람을 만날 때도 있고 술도 먹을 때가 있고...”
“아임더. 엄마 옷도 사 입고 병원비도 하고 또 개 사료도 좀 사고.”
“아이다. 몸이 쪼그라들어서 옷은 사도 태가 안 나고 나든 사람이 잔병치레는 해도 금방 죽는 것도 아이고 개밥은 교회에서 얻어오면 되고.”
하고 기어이 장남의 손에 쥐여 주며 일요일마다 몇 백 명의 신도들에 대한 점심을 반별로 돌아가며 해 먹이고 남은 잔반을 거두어 바께스에 닮고 돌아오면
“아이구, 허리도 못 펴는 집사님이 개한테는 충성이야.”
또식씨를 비롯한 신도들이 차로 집까지 실어다 주었다. 그 할머니 집에는 키가 사람 무릎정도가 되고 통통한 몸매에 아랫배가 축 처진 늙은 암캐가 한 마리 있었는데 학교세면장의 수도꼭지처럼 한 줄로 젖꼭지를 여러 개 매단 이 누렁이가 일 년에 보통 두 배정도 새끼를 낳는데 적으면 7,8마리, 많으면 열두 마리씩 낳아 단 한 마리 죽이는 법 없이 다 길러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크고 작은 두 배의 강아지들이 보통 20마리 이상 마당은 물론 집 앞의 도로에 까지 득시글대는데 개장수가 좀 늦게 올 경우는 이미 어미만큼 자란 된 앞의 형제들까지 무려 서른 마리가 넘을 경우도 있었다. 혹시 이웃에서 누가 한 마리 달라고 하면
“암놈? 숙놈? 마음대로 골라가소.”
하고 거의 다 어미를 닮은 노란 빛에 간혹 검은 점이 박힌 무려 2,30마리의 개 중에서 고르라고 해서
“아이구, 정신없어라. 할매가 한 마리 골라주소.”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고 내가 봐서 안 예쁜 놈이 있나? 그래도 요놈이 기중 예쁘지.”
하며 한 마리를 골라주고
“얼마 안 되지만 사료 값이라도...”
하고 돈을 주면 이웃 간에 그러는 법이 아니라고 절대로 받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다가 개장수가 차를 몰고 와서
“중개 열두 마리에 마리당 2만 원 쳐서 24만 원.”
하고 부지런히 차에 실으면
“미안하다. 가서 잘 살거라.”
일일이 한 마리씩 쓸어주며 이별을 하는데 개장수가 자기네 축사에서 한 동안 더 살을 찌워서 내든 아니면 바로 내든 반드시 보신탕집에 납품하는 도축업자에게 넘어가는 줄 알면서도 서로 내색은 않다가
“요번에는 살이 좀 빠진 놈이 많네. 4만 원 깎아서 20만 원.”
“그러든지.”
절대로 타박하는 일이 없었다. 마초를 가져올 때도
“집사님, 내 동생 집 지킬 놈이니 제일 똘똘한 숙놈으로 주소.”
해서 마초를 고르면서
“강아지 이거 이름이 뭥교?”
“이름이 따로 없다. 그 많은 놈들을 다 이름을 지을 수도 없지만 헷갈려서 외울 수도 없고. 그냥 워리워리! 하고 부르면 저거가 알아듣고 밥 묵으러 온다.”
“그러면 애미는?”
“그 놈 이름도 워리다.”
열찬씨에게 받은 2만 원을 내밀었지만 절대로 받으려고 하자 않아 내 동생이 만약에 돈을 안 받으면 절대로 가져오지 말라고 하더라고 우겨자 만원만 받고 남은 만원은 목테와 끈을 사라고 돌려주더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