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미혜 씨 집을 팔고(11)
마침내 가족 파티를 하는 날이 오자 좀처럼 시간을 내가 힘든 치과기공사 황서방이 처제 영신씨와 미리 성당도 새벽미사를 들이고 일찌감치 올라와서
“형님, 공사가 마무리 되니 생각보다 보기가 좋네.”
꼼꼼하게 집주변을 둘러보고 방으로 들어와서 이번엔 주방과 목욕탕을 찬찬히 둘러보고
“처형, 공구함이 어디 있소?”
하고 뺀찌와 니퍼를 챙겨들고 여기저기를 손보더니
“다른 건 몰라도 설비공사한 사람이 전문가는 아닌 모양이요.”
하며 여기저기를 손을 보는데
“언니야!”
영신씨가 영순씨를 목욕탕으로 불러
“내 좋은 일에 초치는 것 같아서 웬만하면 이야기를 안 할라캤는데 화장실이고 어데고 너무 물건을 싸구려로 쓴 것 같다.”
“그러나? 나도 짐작은 했지만 워낙 우리가 처음부터 싸게 공사를 시켰고 또 조카가 하는 일이라 입대기도 그렇고...”
“다른 집하고 내부장식이 차이날 까 봐 평당 50만원이나 더 줬다면서?”
“그래. 그래서 좋다고 한 기 그 정도다.”
“아이구야. 요즘 세상에 아직 이런 변기와 세면기가 다 있나?”
황서방까지 한마디 거들고 나서서
“이 사람들 봐라. 사촌이 논 사면 배가 아프다지만 너거는 사촌이 아닌 친형제 아이가?”
열찬씨가 나서자
“형부, 그 게 아니라 진짜 물건들이 후집니다.”
하는데
“어, 언니야!”
영아씨가 들어오더니
“언니 니는 농막 짓는다하고 아예 별장을 지었네.”
입이 딱 벌어지며
“언니 니는 좋겠다. 누구는 하루하루가 불안한데...”
“와? 요새 김 서방이 또 별로가?”
하는 순간 김 서방이 쑥 들어서며
“형님, 축하합니다. 처형도 고생했습니다.”
겸연쩍은 얼굴로 인사를 하는데
“야, 멋지다!”
주형이, 지현이도 신이 나서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이모, 내가 주형이 데리고 불 피울까요?”
키가 껑충한 교영이가 벌써 실장갑에 집게들 든 차림으로 화덕에 불을 피우기 시작하는데
“처남아, 그건 내가 할 일이지.”
방금 도착한 영서애비가 포치를 찾아들고 합류하자
“언니야!”
아직까지 이모소리가 나오지 않는 영서가 지현이와 어울리는데
“아이구, 우리 새끼!”
어미의 손을 잡고 들어오는 네 살짜리 현서를 영순씨가 번쩍 들어 올리자
“우리 현서 장화신고 모자 써야지.”
어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모종삽 하나를 찾아든 아이가 금방 배추밭 사이로 들어가더니 아무데나 파고 뒤집는 흙장난에 여념이 없었다. 오리 농장에 드나들던 세 살 때부터 농장에만 오면 이상하게 모종삽을 들고 온 밭을 휘젓고 다닐 때 희한하게도 왼손에는 반드시 탁상시계나 후레쉬를 들고 다니더니 이번에는 마땅한 것이 없는지 마초의 밥그릇으로 쓰는 낡은 스텐그릇을 들고 나서니 마초도 졸졸 따라다녔다.
마지막으로 갑린씨가 아내 소정씨와 어머니 순란씨를 태우고 도착하자
“혜원이는 와?”
“고등학생이 되니 통 안 따라댕기네요.”
하는 사이 미혜씨가 나타나
“아이구, 할매는 여게 웬 일잉교?”
“우리 딸네집 아잉교? 그런데 아지매는요?”
“우리 동생집 아잉교?”
“그렁교?”
다 늙은 숙질간이 한참이나 웃더니
“고모는 더 젊어졌네.”
“니도 얼굴이 좋네. 몸은 좀 어떻노?”
“아직 아픈 데는 없는데 췌장암은 통증이 오기시작하면 땡이란다.”
“설마 낫겠지. 니가 좀 잘 묵고 잘 전디나?
“잘 전딘다고? 못 죽어서 사는 기지. 그 그 어데 전디는 기가?”
하는데
“엄마, 전디는 기 뭐고?”
지현이의 물음에
“나도 첨 듣는데 아마 견딘다는 말인 갑다.”
하는 사이에 고기가 익었다는 소식에 다들 방수탁자에 둘러 앉았는데 자리가 모자라 아이들은 데크바닥에 따로 상을 차렸다.
“아이고, 우리 큰 딸이 이래 잘 살 줄을 몰랐구나? 가서방 자네 고생이 많았네.”
“장모님 덕분입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고기를 먹는데
“형님이 술이 점점 약해져서 섭섭합니다.”
“그래. 대신 자네가 내 몫까지 더 마시게.”
하며 황 서방에게 한 잔 부어주는데
“참 이상하제? 큰 말 죽으면 작은 말이 큰말노릇을 한다더니 우리 황서방이 꼭 그렇단 말이다?”
“뭐를?”
“형부 술 덜 마시니까 우리 황서방이 두 배나 마신다.”
“저런!”
하면서 다들 와아 웃는데
“그기 아이다. 막내이 우리 김 서방은...”
영아씨가 끼어들더니
“큰말뿐 아니라 작은 말 또 작은 말, 그러니까 큰 형부, 작은 형부, 오빠까지 술 안마시면 혼자서 4인분을 다 마실 위인이다. 그런 걱정은 없을 것 같다.”
하며 와아 웃는데
“김 서방 니는 교영이 하고 고기 꿉으면서 슬쩍슬쩍 한 잔씩 묵어라.”
“예. 벌써 두 병째 바닥이 보입니다. 가끔 만두가게에 와서 아르바이트를 해서인지 무려 스무 살 차이의 처남남매간이 잘도 어울렸다.
“장모님, 여기 소고기 잡수소.”
“아이다. 이서방 잡소. 나는 삼겹살이 더 좋다.”
“고모 안 묵으면 소고기 내가 묵는다.”
하며 미혜씨가 특별히 찬조한 쇠고기를 구워 먹는 사이 영순씨가 미더덕을 넣은 된장찌게를 가져와 모두 푸짐하게 점심 겸 저녁식사를 하고 잔디밭과 배추밭을 서성거리던 현서, 영서, 지현이 세 아이는 자기들끼리는 무섭다고 중학생이 된 주형이를 앞세워 칼치 못으로 산책을 나가자 여자들이 설거지를 하는 사이 커피를 마시던 황서방이
“형님, 카드 있소?”
“이 사람아, 선비 집에 책이 없겠나?”
“그럼 딱 한 시간만 해보까? 집들이를 겸해.”
하는 사이 눈치 빠른 차복씨가 재빨리 탁자를 닦고 담요와 카드를 찾아오는데
“만나기만 하면 꼭 붙어야 하나?”
매사 소극적인 갑린씨가 투덜거리다 열찬씨와 눈이 마주치자
“맨 날 돈이나 꼴면서?”
급히 말머리를 돌리며 탁자에 둘러앉더니
“예원이엄마!”
오늘도 밑천을 달라고 불렀다.
“니는 남자가 비상금도 안 가 댕기나?”
“예. 주유소고 식당이고 모두 카드로 결재하면 되는데요. 뭐.”
머리를 긁적거렸다. 한 시간 정도 훌라를 하다가
“모두 배가 부르니 별로 신이 안 나는 모양이지.”
“예. 해가 안 져서 그런가? 훌라가 신이 안 나네. 형님 술이나 한 잔 더 합시다.”
이번엔 패트병에 든 맥주를 꺼내와 한잔씩 마시는데
“아이구, 수돗가에서 설거지를 하니 속이 다 후련하네.”
기름범벅이 된 접시와 밥 그릇 수저를 깨끗이 닦아 햇살아래 반짝반짝 빛이 나는 걸 바라보며
“언니야, 나중에 김장도 여기서 하면 좋겠네.”
“그래 배추 소금에 절이고 양념치내든 데는 여게가 최고겠지.”
“언니, 우리 김장 찜!”
“그래. 우리 거 하면서 엄마 꺼도 하고 너거도 조금 해 주깨.”
“그라면 몸 아픈 나도 꼽사리 낄까?”
“그라든지.”
영아, 영순, 미혜씨가 주고받는데
“언니, 나는 일 없다. 진주 시가에 가서 한다.”
하며 순란씨의 눈치를 살피던 영신씨가
“언니, 올캐 꺼도 해준다 캐라. 엄마가 얼굴을 안 편다.”
“그래. 엄마김장 하면 당연히 올캐 거도 해주는 거지.”
비로소 순란씨가 얼굴을 폈다.
내일 아침부터 만두반죽을 쳐야하는 김서방이 피로해서 어서 돌아가 좀 쉬어야 된다면서 오후 다섯 시 경 다들 돌아가자
“할매는 우째 안 가고 주저앉는데요.”
“나는 딸네집 댕기러 왔는데 아지매는 요?”
“나도 한 밤 더 잔다고 영감한테 전화했지요. 내 동생 집에서 잔다고 말입니다.”
하는데
“동생집은 내가 진짜 동생집이지요.”
숨을 헐떡거리며 금찬씨가 들어섰다. 오후 네 시까지 예배를 보고 다시 교인들끼리 어울리느라고 보통 종일을 교회에서 지내는데 오늘은 동생 집에 어떤 손님들이 오고 또 무얼 먹는지 종일 궁금해서 죽을 판이었을 것이었다.
“사장어른 오셨능교?”
“사형 오랜만이네요.”
하고 인사를 하다 미혜씨와 눈이 마주치자
“사영은 아직 안 갔능교?”
“내가 와 가능교? 안주 묵을 기 태산인데.”
하고 깔깔 웃는 사이 영순씨가 따로 제쳐 두었던 쇠고기를 구워
“형님, 약은 묵고 왔지요?”
“그래. 올캐집에 고기 꿉는 줄 알고 진작 묵었다.”
하고 셋이 온갖 이야기를 다 하면서 밤이 이슥해 금찬씨가 좋아하는 주말연속극이 다 끝나고 자리를 펴려는데
“올캐, 나도 자고가면 안 될까?”
“그라든지요.”
하자 휴대폰으로 며느리에게 전화를 한 금찬씨가
“야! 얼매나 오랜만에 남의 집에 자 보노? 그것도 친정집에...”
하고 자리에 누워서도 순란씨와 둘이
“아이구, 참 희한해라!”
“그래. 우짜든동 단디 해야지요.”
이런 저런 남의 이야기를 반복하며 잘 생각을 않는데
“아이구, 그만 잡시다!”
미혜씨가 역정을 내자 비로소 사방이 조용해지는데
“푸후, 푸 푸르르 푸 푸훗!”
진작 곯아떨어진 영순씨의 코고는 소리가 방안을 진동했다. 몹시 피로한 모양이었다.
이튿날 아침
“다들 안녕히 주무셨능교?”
하고 영순씨가 인사를 하는데
“안녕 못 했다!”
미혜씨의 말에
“나도 기분 안 좋다!”
순란씨도 심술이 가득해 방안이 얼음처럼 싸늘해지자
“그런데 우리 형님은?”
영순씨가 문밖으로 나가
“형님!”
하고 소리치며 어딘가로 사라지더니
“보소. 당신. 여게 나와 보소.”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는 열찬씨를 불러
“내 작업 중인데...”
“그 놈의 글 하루쯤 안 쓰면 굶어죽소?”
하도 역정을 내어 밖으로 나가니
“쉿!”
방안을 가리키며
“형님한테 물어보니 자다가 입씰레기 했답니다.”
“뭐라고?”
“무슨 말 끝에 엄마가 췌장암에 걸린 사람은 절대로 못 살고 다 죽는다는 말을 하자 언니가 고모는 무슨 그런 말을 하노? 인지 죽어도 호상인 고모가 열세 살이나 적은 조카한테 그 기 할 말인가 따져서.”
“그래서?”
“밤새 말 한마디 없었단다.”
“그래. 아침 묵고 내가 살살 달래서 화해시킬 께.”
“어떻게?”
“차차 연구해봐야지.”
하는 사이 빨간 소쿠리에 제피를 잔뜩 따서 들어오는 금찬씨를 보고
“아침부터 웬 제핑교?”
“야, 올해 제피 값이 좋다캐서.”
“얼마나 하는 데요?”
“한 되 5만원. 그것도 없어 못 판답니다.”
“그래 제피나무는 많이 있능교?”
“몰라. 한 되나 따질랑가.”
주고받던 미혜씨가 말하자
“사돈 그 제피 내가 사 께요.”
“얄궂어라. 부산사람도 제피를 묵능교?”
금찬씨가 놀라는데
“언니 니는 제피도 잘 안 묵으면서...”
차마 언데 죽을 지도 모르는 판에 한 홉이면 한 해 동안 먹고 떡을 칠 제피를 왜 그렇게 사느냐는 투로 말하자
“이서방이 미꾸라지를 잘 잡으니 너거도 묵고 나도 좀 묵고 또 사돈 용돈도 될 거고.”
하자
“가시나 그래 속도 너리고 정도 많은 기 어데 고모 말을 따박따박 달라들고...”
영순씨가 웃자
“고모 미안해. 내가 만만해서 그랬는 갑다.”
“알았다.”
“몸 아픈 내 한테 어른이라고는 천전고모하고 막내고모밖에 더 있나? 그런데 천전이모는 왈바리에 잔정이 없어서 전화도 할 맘이 안 생기고 세상에 내가 신세타령이라고 할 데가 고모밖에 더 있나?”
“그래 알았다.”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