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도시, 부산으로 향하는 해양수산부
- 우려를 머금은 시대의 항해

이상원(부산 시민)

1. 바다를 향한 국가적 약속

대한민국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해양국가다. 전체 국토 면적의 4.5배에 달하는 광활한 해양 관할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어업과 해운, 항만, 해양 에너지, 해양 관광까지 바다와 직결된 산업은 국민 경제의 중추를 차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바다를 육지의 부속물처럼 생각해 온 적이 많았다. 바다는 늘 배후지에 가려져 있었고 국가 정책의 중심에는 다소 소외돼 있었다.

1996년 김영삼 정부 시절 탄생 된 해양수산부의 출범은 이러한 시각 전환의 산물이었다. 바다를 더 이상의 주변부로 두지 않고 국가 전략의 중심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해양수산부는 출범 이후 한국을 ‘해양 강국’으로 이끌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했다. 항만 현대화, 해운 경쟁력 강화, 수산업 진흥, 해양환경 보호, 해양과학 연구 등은 모두 해양수산부의 손을 거쳐왔다.

그러나 그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2008년 정부 조직 개편으로 해양수산부는 폐지되고 국토해양부에 흡수되었다. 해양의 정체성이 약화되었다는 비판 속에서 해양수산 정책의 전문성이 흐려졌다는 평가도 뒤따랐다. 결국 국민적 요구와 국제적 현실 속에서 2013년 해양수산부는 다시 부활했다. 이는 단순한 부처 복원이 아니라 바다에 대한 국가적 책임을 다시 확인하는 선언이었다.

이제 해양수산부는 또 하나의 전환점에 서 있다. 바로 부산 이전이다. 바다의 도시, 동북아 해양 물류의 거점인 부산은 행정의 상징성을 현실로 옮길 수 있는 최적지로도 보인다.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은 단순한 행정기관 이전이 아니라 한국의 해양 거버넌스 체계와 지역 발전 전략에 중대한 전환점을 마련하는 사건이다. 부산은 대한민국 제1의 항만도시이자 해양 산업의 중심지로서 상징성과 실질적 기반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전이 반드시 긍정적 효과만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며, 여러 차원의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수도 서울을 떠나 바다의 현장, 항만의 중심으로 내려가는 이 결정은 단순한 행정 편제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가 바다를 어떻게 바라보고 활용할 것인가, 국가 균형발전과 국제 해양 질서를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라는 시대적 질문을 담고 있다.

2. 기대되는 효과 : 바다와 더 가까이

(1) 현장 행정의 강화

부산은 명실공히 대한민국 바다의 수도다. 세계 3위의 물동량을 자랑하는 부산항, 조선업과 해운업, 수산업이 얽혀 만들어낸 산업 생태계, 그리고 바다와 더불어 살아가는 시민들의 삶이 녹아 있다. 해양수산부가 이곳으로 이전함으로써 책상 위에서만 논의되던 정책이 현장과 호흡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

가령 항만 물류 시스템의 개선, 어민의 생계와 직결되는 수산 정책, 해양 재단 대응 등은 신속한 현장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장 가까이에서 문제를 듣고 즉시 정책으로 반영할 수 있다면 행정은 단순한 관리가 아닌 진정한 현장 대응이 가능한 서비스로 거듭날 것이다.

(2) 지역균형발전과 청년의 기회

대한민국의 인구와 산업, 행정은 지나치게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그 결과 지역의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떠나고 그 결과 지역은 공동화의 위기를 맞고 있다.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은 이러한 흐름에 제동을 거는 시도가 될 수 있겠다.

부처 이전은 단순한 정부 부처 건물의 이동이 아니다. 공무원 가족, 관련 연구기관, 협력 기업이 함께 움직인다. 그 과정에서 청년 일자리와 지역의 인구 생태계가 살아나고 부산은 단순한 지방 도시가 아닌 국가 전략의 전진 기지로 성장할 수 있다.

(3) 국제 해양협력의 거점화

오늘날 바다의 문제는 국경을 초월한다. 기후위기로 인한 해양 생태계 파괴, 불법 어업, 해양 물류 안보, 해양 영토 분쟁 등은 국제적 연대를 필요로 한다. 부산은 2024년 국제해양법재판소(ITLOS) 재판관은 물론 세계적으로 저명한 학계 인사들이 고루 참여한 ‘제12회 Global Ocean Regime Conference’를 해양수산부 주최로 개최한 경험을 갖고 있다. 아울러 부산은 일본의 요코하마, 고베, 중국의 상하이, 홍콩, 싱가포르 등 세계 주요 항만도시와의 교류·협력 체계를 꾸준히 확립해 왔다.

해양수산부의 부산 유치를 통해 한국은 동북아 해양 거버넌스의 허브로 부상할 수 있다. 이는 단지 부산의 위상을 높이는 것을 넘어 한국이 국제 사회에서 ‘해양강국’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될 것이다.

3. 피할 수 없는 우려

(1) 중앙정부와의 협력 비용

해양 정책은 산업통상자원부, 외교부, 환경부 등과 긴밀히 얽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처는 서울에 위치한다. 이로 인해 정책 조율 등의 과정에서 물리적 거리와 시간적 비용이 늘어날 수 있다. 이는 곧 정책의 속도를 늦추고 국가적 대응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진다.

특히 해양수산부 정책은 해양을 넘어 육상 교통, 산업 전략, 외교 협상 등 다양한 분야와 긴밀하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는 해양산업의 거점화, 물류 중심지 구축, 국제 협상 준비 등 실질적 국가 경쟁력 강화와 직결된다. 따라서 단순히 ‘부산으로의 이전’이라는 선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중앙정부와 지방을 연결하는 새로운 행정 협력 메커니즘이 반드시 필요하다.

(2) 지방정부와의 협력 비용

부처 이전은 공무원 등 전문 인력의 대규모 이동을 수반하며, 이는 조직의 안정성과 인력 확보에 큰 영향을 미친다. 서울과 수도권에 기반을 둔 전문가들이 부산으로 이주하지 않는다면 조직 내부의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상황에 따라서 부산 근무가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경험 많은 관료와 전문가의 이탈은 큰 타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는 단순한 이전 계획에 그치지 않고, 인재 유출을 방지할 수 있는 실질적인 강력한 인센티브 제공과 근무 환경 개선 방안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만약 이러한 보완책이 없다면 인적 자원이 빠져나간 조직은 사실상 껍데기만 남게 되어 정책 집행 능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3) 지역 불균형의 또 다른 모습

부산 이전은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제 효과가 부산에 집중될 경우 ‘부산만을 위한 특혜’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수도권 집중 완화라는 대의가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특정 지역 편중이 아닌 다극적 분산 전략이 필요하다. 해양수산부 이전을 계기로 전남, 울산, 제주 등 해양도시와의 연계 발전 방안도 함께 모색해야 한다.

4. 해양수산부의 역할 : 과거와 미래

해양수산부는 지난 30여 년 동안 우리나라의 바다를 지켜온 든든한 방파제였다. 수산업 진흥 정책을 통해 어민들의 삶을 보호하고 연근해 자원의 관리 체계를 정비했으며, 항만 개발을 적극 추진하여 부산항과 광양항을 세계적 거점으로 성장시킴으로써 대한민국이 세계 5대 해운 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또한 해양환경 정책과 연구를 통해 기후위기 시대에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해양생태계 보전과 미세플라스틱 저감 등 지속 가능한 관리 체계의 초석을 다졌다.

그러나 앞으로 해양수산부가 맞이할 과제는 더욱 복합적이고 도전적이다. 무엇보다 해양 자원을 지속 가능하게 관리하고 남획과 생태계 파괴를 방지하는 것이 긴급한 과제이며, 동시에 탄소중립 시대에 발맞추어 해상풍력·조력·해양수소 등 청정에너지를 확대하고 해운산업의 탈탄소화를 추진해야 한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자율운항 선박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항만 구축 또한 국가 물류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과제이다. 나아가 크루즈 산업과 해양레저, 섬 관광을 활성화하여 해양관광 산업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육성하는 한편, 기후위기 대응과 해양법, 해양안보 등 국제적 현안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는 일 역시 중요한 책무로 다가올 것이다.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은 단순한 행정조직의 이전을 넘어, 해양수산부가 직면한 과제를 현장에서 직접 풀어가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미 세계적 항만 인프라와 해양산업 생태계를 갖춘 부산은 해양수산부가 미래 비전을 실행하기에 가장 적합한 현장이며, 그러므로 이번 이전은 우리나라 해양 거버넌스의 새로운 전기를 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5. 결론 : 바다를 향한 국가 비전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은 한 부처의 이전을 넘어 대한민국이 바다를 어떻게 정의하고 어떤 미래를 설계할 것인가를 묻는 국가적 선택이다. 바다는 더 이상 국경선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과 기회의 출발점이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안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논의가 단순한 찬반 갈등으로 소모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바다와 어떤 관계를 맺을지 성찰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우리가 이번 이전을 국가 전력의 재구성으로 삼는다면 부산은 단순한 지방 도시가 아니라 대한민국 해양 거버넌스의 심장으로 다시 뛰게 될 것이다.

이제 부산에서 시작되는 항해는 해양 강국을 넘어 해양인문국가로 도약하는 여정이 되어야 한다. 바다는 산업과 경제의 터전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과 정신을 지탱해 온 근원이다.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은 그 바탕 위에 더 깊은 뿌리를 내리고 미래 세대를 위한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 길 위에서 대한민국은 바다와 더 가까이 세계와 연결될 것이다.

<부산 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