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삿날
이 광
다 알아서 해준다는 포장이사 맡겼지만
가슴으로 꾸려야 할 나만의 짐이 있다
말년을 몸져누우며 어머니 남긴 흔적
묵은 농 들어낸 방 햇살 닿지 않던 벽지
빛바랜 벽과 다른 쓸쓸함이 배여 있다
살림에 묻혀 지낸 꿈 불러내어 감싼다
짐 속에 실어 나른 하루를 부려놓고
자꾸 눈이 마주쳐도 아직은 낯선 길목
숨을 곳 찾지 못하는 아이처럼 서성인다
벽시계 걸고 나니 시간도 자리 잡고
새 아침 등짐하고 저벅저벅 오는 첫 밤
잠이여 달아나지 마라 예가 인제 네 집이다
십여 년 전 수영강 옆에서 살다가 강 건너 해운대 장산 터널 진입로 인근 산자락으로 집을 옮겼습니다. 이사하던 날 만감이 교차하는 심경을 담은 작품인데 전반과 후반으로 나누어볼 수 있습니다. 1수와 2수가 전반부로 이사 나가는 집에서의 회포가 그려지고 3수, 4수의 후반부는 새집에서의 설렘과 기대감 같은 게 묻어납니다. 이사는 집만 바뀌는 게 아니지요. 한 집에서의 생활사가 일단락 맺고 새로운 시공간으로의 이동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전 집에서 필자의 사업 실패로 인한 고초가 따랐고, 어머니를 여읜 아픔이 컸습니다. 반면 자식들은 원하는 학교로 진학했고 마침내 저도 등단의 꿈을 이루었지요. 새로 이사 온 곳에서는 점차 안정을 찾았습니다. 오랜만에 꿈속에서 웃고 계신 어머니를 뵐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서도 어느덧 십오 년이 훌쩍 가버렸군요. 그 사이 자식들은 제 짝을 만나 집을 떠났지요. 큰손녀가 벌써 초등학교 2학년입니다. 세월은 나이 들수록 가속이 붙는 것 같습니다.
◇이광 시인 : ▷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부산시조 작품상, 이호우 시조문학상 신인상, 나래시조문학상 수상 ▷시조집 《당신, 원본인가요》, 《소리가 강을 건넌다》, 《바람이 사람 같다》, 현대시조 100인선 《시장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