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오후 2시부터 대흥사 대웅보전 앞 마당에서 '제34회 초의문화제' 본행사 전에 '찻자리 경연대회'가 열리고 있는 가운데 풍물굿패 '해원'이 흥을 돋우고 있다. 사진= 조해훈
후황이 아름다운 나무를 귤의 덕과 짝지으니(后皇嘉樹配橘德·후황가수배귤덕)
받은 명예 옮겨가지 않고 남녘 땅에 자란다네.(受命不遷生南國·수명불천생남국)
촘촘한 잎은 싸라기눈과 싸워 겨우내 푸르고(密葉鬪霰貫冬靑·밀엽투산관동청)
하얀 꽃은 서리에 빛나며 가을 풍광을 빛내네.(素花濯霜發秋榮·소화탁상발추영)
위 시는 초의선사 의순(意恂·1786~1866)이 우리나라 차의 미덕을 찬양하여 지은 다서(茶書)인 『동다송(東茶訟)』의 제1 송(訟)이다.
위 시를 먼저 소개하는 이유는 필자가 지난 18~19일 전남 해남군 대흥사에서 열린 ‘제34회 초의문화제’와 초의를 이야기하고자 함이다.
'제34회 초의문화제'의 특별행사 중 하나인 '찻잔 만들기 체험'에서 한 여성 참여자가 물레를 돌리며 찻잔을 만들고 있다. 사진= 조해훈
1992년 처음 열린 이래 해마다 대흥사 일원에서 열리고 있는 ‘초의문화제’는 우리나라의 다성(茶聖)으로 일컬어지는 초의선사를 기리는 차 축제다. 필자는 이 행사에 본행사가 열리는 이틀째인 19일에 참석하였다.
'제34회 초의문화제' 본행사 직전에 한듬어린이집 원아들이 찻자리 시연을 해 큰 박수를 받았다. 사진= 조해훈
그러면 초의선사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자. 그의 법명은 의순이지만 법호인 초의(草衣)가 더 잘 알려졌기에 보통 초의선사로 불린다.
15세에 승려가 된 초의는 1809년 다산 정약용을 만나 그에게서 한시 작법 등을 배웠고, 1815년 상경하여 추사 김정희를 만나 동갑내기 친구가 되었다. 추사는 1840년 제주도에 유배 가는 길에 대둔사(현 대흥사)의 일지암(一枝庵)으로 초의를 찾아가 그가 직접 길러 만든 차를 마셨다. 이후 초의는 추사가 유배 살고 있는 제주도까지 차를 들고 찾아가는 등 두 사람의 우정을 과시했다. 다산과 추사, 초의 세 사람은 조선 후기 우리나라 차를 부흥시킨 대표적인 차인(茶人)들이다. 추사는 초의에게 많은 편지를 썼다. 추사의 문집인 『완당전집』에도 37편이 소개되어 있다.
'찻자리 경연대회'에 대구의 '영남차회' 소속으로 참가한 필자의 집안 일가인 조병옥 주경숙 부부가 손님들에게 차를 우려 드리고 있다. 안쪽 한복 차림의 여성이 영남차회 사무국장을 역임한 필자의 질부인 주경숙 차인이다. 사진= 조해훈
추사의 글씨 중에 ‘명선(茗禪)’이 있다. 차를 마시며 선정에 든다는 뜻이다. 이 글씨의 제발(題跋)에 “초의가 찻잎(茗)으로 스스로 만든 차를 보내왔는데, 중국의 명차인 몽정(夢頂), 노아(露芽)보다 못하지 않다”라고 했다. 초의의 차와 비교한 몽정차와 노아차는 중국에서 손꼽히는 명차이다. 추사는 초의의 차를 계속 얻어 마셔 그에 대한 보답으로 ‘일로향실(一爐香室)’이란 편액을 써서 제자인 소치 허련을 통해 보내기도 했다.
초의가 해남의 두륜산에 일지암(一枝庵)을 지은 시기는 1824년이었다. 이후 그는 입적할 때까지 40여 년을 일지암에서 수행하였다. 초의는 1828년에 지리산 칠불사에서 「다신전(茶神傳)」을 등초하고, 1837년(52세) 『동다송』을 지었다. 『동다송』은 초의가 정조의 부마(사위)인 홍현주(洪顯周)의 청으로 지은 칠언절구의 시 68행(492자)으로, 17송 또는 31송으로 분류된다. 『동다송』은 우리나라의 첫 차 이론서로 일컬어진다.
이제 위 시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가겠다. 『동다송』 첫 구절부터 차나무는 하늘이 내린 신령스러운 나무라고 읊고 있다. 차나무는 귤나무처럼 군자의 덕을 가지고 있으며, 따뜻한 남쪽에서만 자라고 옮겨가지 않는 것에서 영원한 믿음과 정절을 상징한다고 강조한다. 매서운 눈보라에 굴하지 않고 늘 푸른 것에서 선비의 충절을, 또 모진 추위에도 끄떡하지 않는 흰 꽃은 강인한 순결과 백의민족을 암시한다.
첫 행의 ‘후황(后皇)’은 황천후토(皇天后土)의 줄임말이다. ‘후’는 후토(后土)로 땅의 신이며, ‘황’은 ‘황천(皇天)’으로 하늘의 신이다. ‘가수(嘉樹)’는 신령스러운 나무를 뜻한다. 또 가수라는 글자에는 제사라는 상징성이 있다. 그리하여 차는 제상(祭床)에 올리는 신물(神物)임을 알 수 있다.
지난 19일 오후 ' 제34회 초의문화제'에 참가한 대흥사 내 '(사)초의차보존회' 회원들과 필자(오른쪽에서 두번째)가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 다른 차인
육우(陸羽·733~804)의 『다경(茶經)』 첫머리에도 ‘차는 남녘의 성스러운 나무다(茶者南方之嘉木也·차자남방지가목야)’라며 ‘가목(嘉木)’을 이야기하고 있다. ‘귤덕(橘德)’이란 귤나무의 덕성을 말한다. 초나라의 시인이자 정치가인 굴원(B.C. 345년?~278년?)의 시에서도 귤나무는 뿌리가 깊고 단단해서 옮기기 어렵고, 또 나무의 마음도 언제나 한결같다. 껍질 색깔이 선명하고 속살이 흰 것은 재주 있고 결백한 마음으로 정도(正道)를 가는 군자를 비유한다고 했다.
초의는 이렇듯 신령스럽고 성스러운 귤나무의 덕이 차나무와 배필, 즉 짝을 지었다고 표현한 것이다. 둘째 행의 ‘옮겨가지 않고’(불천·不遷)은 명나라 때 절강성 항주 출신인 허차서(許次紓·1549~1604)가 쓴 「다소(茶疏)」 고본(古本)에 나오는 말이다.
이하 3·4행의 시는 어렵지 않아 굳이 설명을 따로 덧붙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차 축제는 해남의 ‘초의문화제’ 뿐만 아니라 경남 하동·전남 강진과 보성에서도 열린다. 하지만 ‘초의문화제’는 초의선사의 삶과 그의 차 문화를 기린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제34회 초의문화제'의 식전행사 중 하나인 '찻자리 경연대회'에서 필자의 집안 일가인 조병옥(오른쪽 첫번째) 주경숙(가운데) 부부가 특별상을 받고 필자와 기념촬영을 했다. 이날 경연대회에 26개 팀이 참가한 가운데 8개 팀이 수상했다. 사진= 다른 차인
한편 이번 차 축제의 ‘찻자리 경연대회’에 ‘영남차회’ 소속으로 참가한 필자의 집안 일가인 조병욱(70) 박사·주경숙(66) 부부는 특별상을 수상했다. 필자의 질부인 주 씨는 영남차회 사무국장을 역임한 차인이다. ‘찻자리 경연대회’에 전국의 차 모임에서 26개 팀이 참가했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