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랑” “딸랑”
방울이 조용조용 울렸다. 방울이 작아 소리가 요란하지는 않으나 낫으로 엎드려 풀을 베고 고개를 들거나 앞뒤 좌우로 움직일 때마다 울렸다. 소의 목에 달린 큰 방울은 “딸거랑” “딸거랑” 소리가 크다. 그런 방울도 생각해 보았으나 그건 우스울 것 같아 인터넷으로 작은 방울을 샀다. 어차피 3·8장인 구례장에 가 트로트 노래가 계속 나오는 라디오 같은 걸 한 개 구할 생각이다. 차산이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어 곰과 멧돼지로부터 피해당하지 않기 위함이다.
곰과 멧돼지로 부터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 목에 작은 방울을 걸고 작업했다. 사진= 조해훈
29일 오늘 오후에 낫을 갈아서 들고 차산으로 올라갔다. 이제 차산의 풀과 잡목 등에 물기가 말라 베기가 쉽기 때문이다. 내년 4월 20일 곡우(穀雨) 때까지 거의 매일 차산에서 살아야 한다. 해마다 그런 작업을 거쳐 2017년 4월부터 찻잎을 땄다.
해마다 이맘때쯤부터 시작하는 작업이어서 필자는 사찰의 선원(禪院)에서 겨울 석 달 동안 스님들이 좌선 수행하는 동안거(冬安居)에 빗대 ‘나름대로 동안거에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물론 절집의 동안거 시기와는 다르다. 절집의 동안거 기간은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해 다음 해 1월 15일에 해제하는 겨울 3개월 동안이다. 그리고 절간의 좌선 수행 대신 필자는 낫으로 풀과 잡목을 벤다. 몸으로 때우는 수행(?)이다.
누군가 필자와 똑같이 차산에서 낫으로 작업한다면 1시간도 못 돼 “도저히 못 하겠다. 목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세상에 이런 중노동이 없다”라며 낫을 던지고 도망갈 것이 확실하다. 경사진 데다 앞으로 쭉 나가면서 풀만 베는 게 아니다. 꺾지 못한 고사리와 각종 가시, 억새, 베어내도 끊임없이 올라오는 복분자(?) 줄기, 잡목 등이 차나무 사이의 골을 따라 점잖게 자라주면 얼마나 좋겠는가. 물론 차나무 사이의 골에도 자라지만 차나무 속에 많이 있다. 일일이 차나무 속을 손으로 헤집어 아래 둥치를 베어낸다. 이 작업이 절대 만만하지 않다. 허리 구부려 10분만 작업을 해도 금방 이마에 땀이 줄줄 흐른다.
곳곳에 베어낸 풀 등을 모아놨다. 사진= 조해훈
야생차밭이어서 한 해만 걸러도 차밭은 거의 정글 수준이 된다. 일 년 동안 얼마나 많이 자라는지 모른다. 필자는 이 작업이 한 번도 힘들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남들에게는 “좋은 차를 마시려면 이 정도 노력은 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은 필자 나름 수행(?)의 일환이다. 아무도 없는 겨울 찬 바람 쌩쌩 부는 산에서 가끔 나타나는 멧돼지를 보면서 어쩌면 무의미한 일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수행한다는 마음 자세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니까 마음공부를 하는 것이다. 다른 차밭들은 일꾼들을 사서 작업을 한다.
다음 해 봄에 몸을 다치거나 갑자기 논문을 작성해야 하는 등 여러 사정으로 찻잎을 하나도 따지 못해도 변함없이 작업을 한다. 어쩌면 그동안 세상을 살아오면서 부지불식간에 남에게 상처를 주거나 피해를 준 일을 추운 겨울에 차산에서 땀을 흘리며 속죄한다는 심정이랄까? 땀으로 잘못을 갚는다는 마음이다.
지난해(10월 15~12월 5일)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때도 마찬가지의 심정이었다. 중세 때부터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가톨릭신자가 걸었던 길을 세상에 속죄한다는 마음으로 걸었다.
이 낫 한 자루로 동안거 수행하듯 풀과 잡목 등을 벤다. 사진= 조해훈
오늘 마당의 수돗가에서 숫돌에 낫을 갈았다. 낫을 갈면서 “낫을 가는 이 행위는 숭고한 기도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으로 올라가는데 낯선 사람들이 보였다. 목례하며 인사를 하면서도 ‘우리 마을 사람들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 보니 필자의 차밭 아래에 있는 다른 사람 차밭에서 전지(剪枝)하는 인부들이었다.
산에 늦게 올라간 탓에 2시간가량 작업을 했다. 2시간 작업에 2m가량 풀 등을 베어내고 웃자란 차나무 전지를 했다. 그러니까 한 시간 작업 해봐야 고작 1m 정도 한 것이다. 좀 굵은 잡목은 톱으로 자른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그러다 보니 4개월 동안 차산에서 꼬박 살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필자 역시 평생 살면서 주어진 일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누군가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만약에 친한 친구가 “도와주겠다”라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다 해도 필자는 “고맙기는 하지만 마, 됐다”라면서 거부할 것이다.
낮이 가장 짧다는 동지 지난 지 아직 며칠 안 되어 산은 일찍 어두워진다. 오후 5시가 되니 조금씩 어둑해졌다. 산 아래로 내려오니 껌껌해졌다. 산 아래 개울 다리를 건너 마을 길에 접어들어 마을회관을 거쳐 집으로 왔다. 바람이 좀 불고 겨울이라 쌀쌀하니 깊은 지리산 냄새(?)가 났다. 필자는 이 냄새, 이 느낌을 좋아한다. 코라는 육체 기관을 통한 내음이지만 도시에서는 절대로 맡을 수 없는 정신적 내음이기도 하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