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가방
최 수 진
어릴 적
교과서에서 본 어느 문구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
띄어쓰기의 중요성을
아버지의 그 싱거운 가방에서 발견하고
픽, 웃음을 짓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실 적에
아범 혹은 지아비의 눈물과 한숨도 같이 넣으시곤 한다
그러면 내 아버지, 그는 한숨 푹 주무시기도 하고
깨어있을 땐 갖은 염려로 낡은 손수건이
젖었다 말랐다 반들반들 윤이 나는 것이다
아서라, 내 걱정은 말아라
오로지 아내 사랑 그리고 자식 사랑
아버지의 부드러운 가방은 늘 볼록하게 솟아 있다
양말과 운동화, 소독약과 반창고...
그 속에는 가족을 위해 애쓰는 그만의 소지품들이 들어 있다// 오늘도 아버지는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시며
햇살만큼이나 풋풋한 미소를 지으신다
그러나 나는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가방 안에 쌓아둔 아버지의 고단한 삶과 희생을
- 최수진 시집 Mrs. 함무라비, 소금북 시인선 16, 소금북
시 해설
시인도 필자처럼 학창시절 띄어쓰기의 중요성을 공부할 때 본 예문이다. 선생님은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라고 써야 할 것을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하면 의미가 전혀 달라진다고 강조하셨다. 중국어와는 달리 우리말은 띄워야 할 때 띄워쓰기 해야 분명한 의미전달이 된다.
시인은 픽 웃음 짓던 생생한 기억의 가방을 통해 회상한다. 아버지는 가방을 들면서 할머니의 아들로서 엄마의 남편으로서 눈물과 한숨도 같이 넣으시곤 하셨다. 마음 먹은대로 안되고 부족한 것이 많은 시절이 있었다. 아버지는 휴식 공간인 방에 들어가시면 단잠 푹 주무시기도 했지만 ‘깨어있을 땐 갖은 염려로’ 고생하셨고, 땀과 눈물로 젖었다 말랐다 하는 낡은 손수건이 윤이 났다.
그래도 아버지는 ‘아서라, 내 걱정은 말아라 오로지 아내 사랑 그리고 자식 사랑’으로 가득한 마음이셨고 그의 ‘부드러운 가방은 늘 볼록하게 솟아 있’었다. ‘그 속에는 가족을 위해 애쓰는 그만의 소지품들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시인은 ‘가방 안에 쌓아둔 아버지의 고단한 삶과 희생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고 한다. ‘햇살만큼이나 풋풋한 미소를 지으’시는 아버지의 고마움을 절대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동일 지상에서 띄어 서기는 하더라도 거리가 멀면 안 된다. 한번 이별로 다시는 볼 수 없는 때가 오면 감당하기 힘이 든다.
◇ 조승래 시인은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이사, 문학의 집 서울 이사,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 시향문학회와 시와시학 문인회 회장, 가락문학회, 함안문인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취미생활로는 검도를 하고 있다(대한검도회 영무검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