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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죄수의 딜레마란 무엇인가]

국제정치와 경제학에서 자주 인용되는 ‘죄수의 딜레마’는 협력과 배신 사이의 갈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게임이론 모델이다. 상황은 단순하다. 두 명의 공범이 따로 심문을 받는다. 만약 두 사람이 모두 침묵하면, 증거 불충분으로 가벼운 형만 받는다. 그러나 한쪽이 배신해 상대를 고발하면, 배신자는 풀려나고 협력자는 무거운 형을 받는다. 만약 둘 다 배신하면, 둘 다 중형을 받는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단발적 게임과 반복 게임의 차이다. 단발적 게임에서는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으므로, 합리적 선택은 배신이다. 침묵했다가 상대가 배신하면 자신만 큰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사람 모두 배신을 택하고, 결국 둘 다 중형을 받는 비합리적 결과가 나온다.

그러나 반복 게임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오늘의 선택이 내일의 보복이나 보상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상대가 협력하면 나도 협력하고, 상대가 배신하면 나도 배신하는 ‘tit-for-tat’(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사실이 여러 실험에서 입증되었다. 즉, 반복되는 관계에서는 신뢰와 상호주의가 장기적으로 더 큰 이익을 보장한다.

이 단순한 모델은 국제정치, 무역 협상, 군비 경쟁 등 다양한 현실에 적용된다. 단기적으로는 상대를 속이거나 배신하는 것이 유리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관계가 반복될수록 신뢰를 쌓는 협력이 더 큰 이익을 가져온다. 동맹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순간의 거래나 허세보다, 장기적 신뢰와 상호주의가 훨씬 더 중요하다.

1. 국제정치, 포커판과 죄수의 딜레마

국제정치는 학술 논문처럼 딱딱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포커판에 더 가깝다. 각국 지도자들은 웃는 얼굴 뒤에 카드를 숨기고, 때로는 허세로 판돈을 키운다. 게임이론의 고전인 ‘죄수의 딜레마’는 이 장면을 설명하는 데 딱 맞는 비유다.

2. 트럼프의 ‘승인’이라는 카드

2025년 10월 말,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 직후 우리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자신이 승인했다고 선언했다. 우리는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오랫동안 핵추진 잠수함 도입을 희망해왔다. 장시간 잠항이 가능하고 은밀성이 뛰어난 핵추진 잠수함은 우리 해군의 숙원 사업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그동안 난색을 보여왔다.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기술 이전 문제, 동맹 내 균형 등 복잡한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트럼프의 ‘승인’ 발언은 마치 포커판에서 “올인(All-in)!”을 외치며 판돈을 밀어 넣는 것과 비슷하다. 겉보기에는 대담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실현 가능성이 낮을 수 있다.

3. TACO, 늘 닭이 되는 순간

트럼프의 이런 행태는 낯설지 않다. 그는 북미정상회담에서 “비핵화 합의”를 이끌어냈다고 자랑했지만, 구체적 로드맵은 없었다. 나토 정상회의에서는 동맹국들을 향해 방위비 분담금을 늘리지 않으면 미국이 나토에서 탈퇴할 수 있다고 위협했지만, 실제로는 탈퇴하지 않았다. 미·중 무역협상에서도 강경한 관세 부과를 선언했다가, 금융시장이 흔들리자 협상 타결을 서둘렀다.

이런 패턴은 반복된다. 강경한 언사로 상대를 압박하다가도, 실제 결단의 순간에는 후퇴하거나 모호한 합의로 귀결된다. 워싱턴의 풍자적 표현인 “TACO(Trump Always Chickens Out)”는 바로 이 점을 겨냥한다. 큰소리로 판을 흔들지만 막상 칼날이 닿는 순간에는 늘 닭처럼 도망친다는 뜻이다. 허세는 요란하지만, 정작 행동은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냉소가 담겨 있다. 우리 핵추진 잠수함 ‘승인’ 발언 역시 이 패턴의 연장선상에 있다.

4. 죄수의 딜레마로 본 동맹

죄수의 딜레마로 보자면, 트럼프는 반복 게임의 교훈을 무시한 셈이다. 단기적으로는 상대를 속이거나 허세를 부리는 것이 유리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반복되는 동맹 관계에서는 신뢰가 핵심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승인’ 발언이 실행되지 않는다면, 이는 배신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반복 게임에서 신뢰를 잃는 순간, 협력은 깨지고 상호주의는 배신의 악순환으로 전락한다.

동맹은 단발적 거래가 아니다. 한미 관계는 수십 년간 반복되어온 장기 게임이다. 단기적 제스처로는 신뢰를 유지할 수 없다. 오히려 반복 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상호주의, 즉 ‘tit-for-tat’의 교훈이다. 상대가 협력하면 협력으로 응답하고, 배신에는 단호히 대응하는 것. 그래야만 동맹은 지속 가능하다.

5. 우리의 선택 – 현명한 플레이어가 되려면

우리는 트럼프의 발언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반복 게임의 맥락 속에서 해석해야 한다. 즉흥적 제스처에 일희일비하기보다, 장기적 신뢰 구축을 위한 제도적 장치와 다층적 협력 구조를 강화해야 한다. 핵추진 잠수함 문제 역시 단순히 기술 이전이나 승인 여부를 넘어, 한미 간 전략적 신뢰를 어떻게 공고히 할 것인가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동시에 우리는 자율적 방위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동맹은 중요하지만, 동맹만으로는 안보를 보장할 수 없다. 반복 게임에서 협력은 중요하지만, 협력의 기반은 결국 우리의 역량이다.

이 지점에서 헨리 키신저의 통찰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세계질서』 서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세계 질서 체계 중에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다. 그것은 언제나 도전받고, 시험받으며, 결국에는 변화한다.”

6. 결론 – 풍자의 힘과 우리의 과제

결국 TACO라는 풍자는 단순한 조롱이 아니다. 그것은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다. 동맹은 순간의 허세가 아니라, 반복되는 협력 속에서만 유지된다. 닭처럼 회피하는 지도자의 선택은 잠시 웃음을 줄 수는 있어도, 장기적 신뢰를 구축하지는 못한다.

헨리 키신저가 지적했듯, “이 세계 질서 체계 중에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다. 그것은 언제나 도전받고, 시험받으며, 결국에는 변화한다.” 우리에게 이 말은 곧, 동맹 역시 불변의 보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신뢰와 상호주의라는 토대 위에서만 동맹은 진화하며 살아남을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단기적 제스처에 흔들리지 않고, 반복 게임의 교훈을 기억해야 한다. 협력에는 협력으로, 배신에는 단호한 대응으로 응수하는 ‘tit-for-tat’ 전략이야말로 장기적 신뢰를 지키는 길이다. 동시에 우리의 자율적 역량을 강화함으로써, 동맹을 선택이 아닌 필연의 관계로 만들 수 있다.

풍자는 웃음으로 끝나지만, 그 속에 담긴 교훈은 무겁다. 국제정치의 포커판에서 진정한 승자는 허세가 아니라 신뢰를 쌓는 자다. 그리고 그 신뢰는 반복되는 협력 속에서만 살아남는다. 우리가 그 교훈을 잊지 않고 실천할 때, 동맹은 흔들림 없는 자산이 되고, 우리의 안보와 미래 역시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조송원 작가

<작가/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