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른다
이 경 옥
까마귀 울음 쪽에 고개를 돌리던 밤
단테의 신곡을
가슴이 아닌 눈으로만 완독하며
할머니의 죽음을 떠올렸다
내 죄와 벌의 무게를 종일 저울질하다 보면
실없이 웃는 웃음기가 사라졌다
지금도 나는 죽음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
할머니 보내고
울음 끝물에 저절로 마르는 눈물
마른 눈물의 얼룩
먹을 양 다 먹었다며
숟가락 내려놓던 할머니
나는 배가 불러도 숟가락을 놓지 못해
아직 살고 있는 것인지
- 시와소금, 2025 가을호
시 해설
까마귀라는 단어만 보아도 어둠과 이별이 느껴지는데 시인은 ‘가슴이 아닌 눈으로만’ 단테의 신곡을 읽으면서 돌아가신 할머니를 떠올린다. 시인이 13년간 집필한 대서사시 신곡을 눈으로만 완독한 이유는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의 깊이 때문인 것 같다.
음식을 드시다가도 ‘먹을 양 다 먹었다며 숟가락 내려놓던 할머니’의 성품은 강한 절제력이 있고 손녀에 대한 사랑이 깊었을 것으로 보인다. ‘배가 불러도 숟가락을 놓지 못해 아직 살고 있는 것인지’하면서 숟가락을 매개체로 하여 시인은 할머니를 그리워하고 자신을 비난한다. 아직 ‘죽음이 어떤 것인지 모’르지만 사후가 아닌 현실에서 ‘죄와 벌의 무게를 종일 저울질하다 보면’ 시인은 ‘실없이 웃는 웃음기가 사라졌’음을 안다.
벌은 죄의 무게에 달려 있을 것인데 손녀가 할머니에게 저지른 죄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봐도 짐작할 수가 없지만 ‘할머니 보내고 울음 끝물에 저절로 마르는 눈물 마른 눈물의 얼룩’을 기억하는 참회만으로도 무죄가 확실하다.
◇ 조승래 시인은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이사, 문학의 집 서울 이사,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 시향문학회와 시와시학 문인회 회장, 가락문학회, 함안문인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취미생활로는 검도를 하고 있다(대한검도회 영무검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