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어가는 길에 있어 마치 다시 벌거숭이 갓난애로 돌아가듯 마침내 이빨이 다 빠지고 걷지도 못 하고 젖을 빨 듯 우유를 마시고 단것을 밝히며 혼자 있기를 두려워하다 마침내 말문을 닫고, 곡기(穀氣)를 끊고 사람을 못 알아보다 숨소리가 잦아지는 천수(天壽)를 다하고 와석종신(臥席終身)한 자들의 그 필연의 종점이나 갑자기 당한 교통사고나 발견이 늦은 말기의 암으로 눈을 뜨지 못 하거나 말을 하지 못 할 경우에도 맨 마지막까지 청각, 그러니까 뇌와 가장 가까운 그 기능은 남아 있다고 한다. 이렇게 유체이탈(遺體離脫)의 열명길에 든 자신에게 자식이나 친구나 이웃이 하는 사랑과 염려와 찬사와 오해와 갈등과 비방과 포폄의 말을 다 듣는다는데, 그렇지만 한마디 반응이나 반박도 못 해보고 그냥 듣다 죽어간다는데, 그렇다면 죽음의 호사라는 것은 그 마지막 감각인 청각, 즉 귀를 즐겁게 하고 가장 화려하던 시절의 음향과 음악, 속삭임을 들을 수 있다면 더 할 데 없이 좋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청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을 상실하고 죽음의 고샅길로 들어설 때, 그 때 가장 듣고 싶고 가장 황홀하고 기분 좋은 음악은 어떤 것이 있을까? 어떤 음악을 들으면 굴곡이 많고 오욕에 젖은 내 삶이 보다 객관적인 하나의 풍경, 도랑가에 핀 찔레꽃이나 뱀 딸기처럼 무던하며 세상사 다 그렇듯이 나도 이렇게 살다가는구나 덤덤하고 의연해질까?
<아리랑>, 찬송가 <내 주를 가까이 하려 함은>과 주기도문, <회심곡>, <반야바라밀다심경>,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이면 될까? 담담하게 삶을 되돌아보지만 끝내 아쉬움을 떨쳐내지 못 하여 가수의 이름마저 <여운>인 <과거는 흘러갔다.>의 회한은 어떻고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회상하는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간 <섬 집 아기>나 나의 살던 고향을 떠올리는 <고향의 봄>은 또 어떨까?
또 <꿈이었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아쉬운 미련이 남아>의 조용필의 <허공>이나 <파도는 영원한데 그런 사랑은 있을 수도 있으련만> 배호의 <파도>는 어떻고 저만치 물러서서 떠나가는 봄을 보는 듯 세상사에 달관한 것 같으면서도 끝내 아쉬움이 가득한 음조의 <봄날은 간다.>와 목이 메어 불러보는 이미자의 <황혼의 엘레지>는 어떨까?
그러나 죽음이 한갓 실패한 자의 변명처럼 아쉬움과 미련의 반추로 장식되기를 원치 않는다면 마치 스페인이나 브라질에서 벌어진 요란한 축제의 메인스트리트를 행진하는 브라스밴드처럼, 50인조 오케스트라의 음향처럼 웅장하고 화려하며 활기차고 붕붕 뜨는 느낌이어야할 것이다. 설령 이미 기억과 의식이 다 무너졌더라도 축제전야의 불꽃처럼 화려한 환청(幻聽)속에 눈을 감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내가 열명길에서 들을 마지막 음악, MP3에 저장해 이어폰으로 내게 꽂아주기 바란다면서 아들이나 아내에게 적어줄 곡명들은 어떤 것들이 될까?
<라데츠키행진곡>, <경기병서곡>, <카르멘서곡 투우사입장의 노래> 같은 행진곡을 들으며 성공한 전쟁의 개선(凱旋), 생사를 넘나드는 절박함 속에서 아이러니하게 활기에 가득 찬 투우장의 소음을 듣는 것은 어떨까, 너무 경쾌해 다소 생뚱맞은 <콰이강의 다리>에서 나오는 휘파람소리는 또 어떨까?
그리고 마치 감당도 못 하고 형언도 못 할 엄청난 사연을 가진 듯 무겁디무거운 긁힘으로 읊조리다 마침내 오르가즘에 도달한 여인의 희열에 찬 외마디소리로 끊어지는 저 찬바람과 흰 눈과 우울(憂鬱)이 지배하는 나라 노르웨이의 사내 그리그의 <솔베이지 송>은 또 어떨까?-
손이 큰 영순씨가 냉장실과 냉장고에 넉넉하게 음식을 사다 놓기 때문에 밥하는 게 귀찮아서 그렇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그보다는 처형 미혜씨의 생명이 마침내 막바지에 이르러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지경, 이미 루비콘강을 건넌 것이 아닌가 하는 묵직한 불안감이 하루 종일 떠나지 않았다.
거기다 현서를 돌보는 틈틈이 병원을 찾아 미혜씨의 곁을 지켜야하는 영순씨도 이제 많이 지친데다 무릎관절이 좋지 않아 늘 어기적거리며 걸어야 하는 것이 신경이 쓰였다. 아직 쉰이 되기도 전에 외손녀 영서가 태어났을 때는 상가의 아주머니들로 부터 늦둥이가 아니냐는 소리를 들어가며 끄떡끄떡 잘도 업고 다녔는데 예순이 다 되어 새삼스레 생긴 현서는 전과 달리 조금씩 자랄수록 업고 안고 하는 모든 동작마다 힘이 들고 무릎에 통증이 느껴지며 환갑을 앞둔 지금 근 15킬로그램이나 나가는 아이가 재미사마 업어달라고 떼를 쓰면 모질게 자를 수도 없어 밤에 잠자리에 들 때마다 끙끙 앓는다는 것이었다.
이제 이별을 목전에 둔 미혜씨와 남편 예소의씨는 서로가 서로를 걱정하며 최선을 다하지만 영순씨의 눈에 그건 부부사이의 애정을 표시하기보다는 예의를 다하는 것만 같았다.
“좀 어떠노? 많이 아프나?”
아침에 남편이 병실로 찾아와 손을 잡거나 이마를 짚어보며 이야기하면
“괜찮소. 당신 밥은 묵고댕기요?”
“응 내 걱정은 하지 마. 아픈 당신이 문제지.”
“괜찮소. 최악의 경우 죽기밖에 더 하겠소?”
“당신 무슨 말로 그래 하노?”
“오늘은 영순이 있으니 당신은 친구들 만나러 가서 밥도 묵고 훌라도 치고 재미나게 놀고 오소.”
“괜찮다.”
“당신이 그래 해야 내 마음이 편하다니까.”
“아, 알았어.”
하고 예소의씨가 나가자
“영순아, 오늘은 좀 심각한 의논을 해보자.”
“뭐를?”
“우리 집 세 남자들 각각 문제가 하나씩 있다.”
“무슨 문제?”
“첫 번째 서울 큰아들 마누라바보 승만이 말이다.”
“마누라바보가 아니고 마누라가 그만큼 예쁘고 좋은 거지.”
“우쨋거나 대기업에 다니는 그 놈은 장가도 지가 벌어서 가고 집도 지가 벌어서 살 정도니 먹고살 걱정은 없는데 너거 형부하고 부자간에 전화하는 내용을 들으니 내가 죽기 전에 며느리하고 화해를 시킬 모양이다.”
“그래. 언니는 며느리가 와서 잘못했다고 사과하면 받아줄 거가?”
“썩 내키지는 않지만 마음을 고쳐 묵어야 안 되겠나? 나는 죽으면 끝인데 아직 몇 십 년은 더 살 며느리나 아들이 마음 한 구석에 얼음덩어리를 넣고 살 걸 생각하면 말이다.”
“그래 잘 생각했네. 좋든 나쁘든 다 인연이니 악연은 이제 풀어야지.”
“그런데 그게 아니야.”
“왜?”
“며느리가 도무지 부산에 올 생각을 안 하는 모양이야.”
“설마?”
“아니야. 나만 독한 것이 아니고 저도 독한 모양이야. 승만이아버지 말로는 삶은 호박에 이빨도 안 들어간다는 거야.”
“그런가?”
“그래. 내가 정신이 있고 말을 할 수 있을 때 와야 될 건데.”
“그렇지.”
“그 다음 둘째 승관이문젠데 이번에 신용불량도 해소하고 승용하도 하나 빼주고 사업도 다시 시작하게 해줬으면 싶은데 도무지 결혼을 않으려고 한단 말이야.”
“여가가 있다고 했잖아? 십년너머 동거한 여자.”
“그렇지. 인물도 좋고 학별도 좋아 7급 공무원시험 준비하는 여잔데 너무 똑똑해서 그런지 결혼이니 시집이니 속박을 당하기 싫다고 한다나.”
“일단 언니 살았을 때 통장에 돈을 찾아 승관이명의로 넘겨주지.”
“그것보다 내 통장에 돈 한 2억 가까이 있는 걸 일단 저거 아부지한테 넘겨주고 저거 아부지가 아이에게 주게 할 생각이다.”
“왜?”
“내 죽고 나면 부자간에 서로 의지하고 살 건데 그렇게 서로 주고받을 기회를 주는 거지.”
“그거 좋은 생각이네. 언니는 참 대단해.”
“그런데 제일 골치 아픈 문제는 내하고 만이아버지하고 서로 마음을 풀고 가는 건데?”
“두 사람사이가 서로 좋은데 풀고 말고가 어딨노?”
“그 기 아이다. 진짜 골치 아프다.”
하며 영순씨의 귀에 대고 조근조근 하는 말은 이랬다. 울산에서 연산동으로 이사해 삼겹살 장사를 할 때 이미 상당한 재산이 있어 달리 일을 하거나 돈을 벌 필요가 없는 예소의씨가 훌라를 빼고는 유일한 취미인 카바레나 콜라텍에서 춤을 추거나 관광버스에서 신명을 풀고 오는 것인데 한번은 남편의 거동이 어딘가 전과 같지 않아 조용히 뒤를 밟아보니 따로 만나는 여자가 하나 있는데 꽤나 깊고도 오랜 사이 같았다. 결혼이후 단 한 번도 갈등이 없이 잘 지내온 미혜씨는 속이 상하기보다 자존심이 상해
“보소. 당신이 그래 나가면 죽도록 돈 버는 나는 뭐요? 나라고 당신처럼 밖에 나돌지 말란 법이 있소?”
하고는 단번에 가게를 접었다. 그 후 두 사람사이에는 대화가 뚝 끊어졌다. 아침에 일어나면 남편이 좋아하는 메뉴로 극진하게 밥상을 차리고 둘이 나란히 백화점에 가서 쇼핑을 하고 명절에 처가식구를 만나거나 계에 나가면 그저 “만이 아부지, 만이 아부지.”를 입에 달고 살아도 일단 집에 들어오면 그 뿐이었다.
매일 한 이불을 덮고 자더라도 서로의 숨길이 부딪혀도 말 한마디 없이 고개를 돌렸다. 남이 보면 완벽한 부부, 넉넉하고 깔끔하고 매너도 좋고 씀씀이까지 후한 사람들이지만 좀체 마음을 열어 보이지 않고 함부로 말을 해 약점이 잡히지 않는 성격인데 그게 부부사이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심지어 육식을 좋아하는 미혜씨가 심한 변비에 걸려 남편 항문에 꼬챙이를 넣어 파내어주기까지 하면서도 더 이상 대화나 애정표현은 일절 없다는 것이었다.
“언니가 그 동안 고맙다고 먼저 인사하고 풀고 가지.”
“나도 그런 생각은 하지만 선뜻 용기가 안 나. 명색 남자인 자기가 먼저 입을 열면 내가 두 말없이 받아줄 건데 말이야.”
“내가 형부한테 이야기 한번 해볼까?”
“일 없다. 만약 그런다면 자존심이 상한다고 더 마음을 닫을 거다.”
“...”
“니나 이서방한테 잘 해라.”
“우리사 뭐?”
“그래 잘 싸우고 잘 화해하고 잘 성내며 애정표현 다 하고 사는 너거 부부가 진찌 부부다. 그런 거 보고 자란 너거 아들딸도 인정이 있고.”
“나도 나지만 남숙이언니가 더 큰일이다. 인제 각방거처가 문제가 아니라 밥도 안 차려준다 카더라.”
“응?”
“부부가 큰방, 아랫방에 따로 사는 기 말이나 되나? 자식이 셋에 손자가 여섯이나 되는 사람이.”
“그래 말이요.”
“형부는 연금 한 돈백만원 나오는 것 가지고 살고 언니는 딸네집 아이 봐주고 대충 살아가는 모양인데 얼라가 맨날 얼라가? 커서 학교 다니면 뭐 묵고 살 끼고?”
“...”
“그렇다고 내가 뭐 해결해 줄 일도 아이고 어제 왔길대 돈을 쪼깨 주었다.”
“돈은 와?”
“사촌간에다 같이 계를 할 정도로 친한 친구지만 정작 이별을 하려니까 도무지 뭘 해줄 수 있는 기 없더라. 그래 고민 끝에 그런 결정을 내렸지. 마땅하지는 않지만 해줄 수 있으니 해주자꼬.”
“언니, 참 성경필사는 다 했나?”
“응, 어제 오후에 주기도문까지 끝냈다. 인자 편안하게 하늘나라로 갈 수 있겠다.”
“그래. 언니야. 먼저 가서 기다려라. 나도 곧 안 가겠나?”
“무슨 소리? 니는 가서방하고 오래오래 있다가 오너라.”
하고 둘이 손을 잡고 한참이나 울었다고 했다.
“고맙다. 영순아, 내 이 괴로운 종착역에 니까지 없었으면 우쨌겠노? 니가 천사다.”
“아이다. 나는 아무 것도 해 줄 수도 없고 대신 아파주거나 죽을 수도 없고...”
“그래. 내 죽기 전에 등말리 너거집에 한 번 더 가봤으면. 아궁이에 불을 때서 가서방하고 고구마도 구워먹고 소고기 구워 갑장 제부 실컨 먹이고...”
“언니야, 의사선생님 말 잘 들으면 차츰 회복되어 언제 한 번 갈 날이 오겠지.”
“그러게 말이야.”
하더니 다음 일요일 날 영순씨가 미혜씨를 데리고 온다는 연락이 왔다. 아마도 마지막 걸음일 것이었다. 연락을 받은 열찬씨가 전화로
“요새 처형 먹기는 좀 먹나?”
“통 굶는 것은 아닌데 잘 못 묵는다.”
“엉개나무, 뽕나무, 가시오가피나무 듬뿍 넣고 백숙을 좀 고을까?”
“잘 먹어낼지 모르지만 누가 먹어도 먹겠지.”
“그래. 내가 약재를 준비해서 미리 다려놓을 테니까 당신이 닭을 사오지.”
“예. 알았어요.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