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道无知)의 채근담 읽기 (359) - 수연(隨緣)과 소위(素位), 이 네 글자는 바다를 건너는 부낭이어라  

허섭 승인 2021.12.23 21:43 | 최종 수정 2021.12.26 21:49 의견 0
359 이가염(李可染 1907~1989)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 74.1+48.7 1944년
이가염(李可染, 1907~1989) -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 

359 - 수연(隨緣)과 소위(素位), 이 네 글자는 바다를 건너는 부낭이어라                                                     

불가(佛家)의 수연(隨緣)과 우리 유가(儒家)의 소위(素位) 이 네 글자는
곧 바다를 건너는 부낭(浮囊)이다.

대개 세상을 건너는 길은 아득하여 일념으로(오로지) 완전함만을 구한다면 
만 갈래 생각(욕심)이 어지러히 일어나게 되니

처지(인연)에 따라 편안히 살면 이르는 곳마다 만족하지 못할 일이 없으리.

  • 釋氏(석씨) : 석가모니 부처님. 여기서는 불교를 가리킴.
  • 隨緣(수연) : 인연을 따르는 것. 각기 그 인연에 따라 일을 처리하거나 처신하는 것을 의미함. 불교의 근본이 인과법(因果法)에 있음을 말한다.
  • 吾儒(오유) : 우리네 유가(儒家). 필자가 자기를 스스로 칭하는 말로 『채근담』 중에 여러 차례 나온다. 
  • 素位(소위) : 자기의 본분을 지킴. 현재의 자신이 처한 지위와 신분에 맞게 처신하는 것을 의미함. 『중용(中庸)』에서 밝힌 군자의 처신법을 말한다.  여기서 素는 傃와 같은 의미로
  • 향하다, 지키다, 처하다, 머물다(鄕)’ 의 뜻이다.
  • 浮囊(부낭) : 물에 빠지지 않고 뜨게 하기 위해서 몸에 지는 주머니로 일종의 구명용구(求命用具)이다.  * 중국의 풍물 중에는 양 가죽을 통째로 벗겨 부낭을 만들고 이를 여러 개 잇대어 뗏목을 만들어 강을 건너는 광경을 볼 수 있으니 이를 생각하면 부낭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 世路茫茫(세로망망) : 세상을 건너는 길이 아득히 멀다.  망망대해(茫茫大海)
  • 萬緖(만서) : 만 갈래 생각의 실마리.
  • 紛起(분기) : 어지러히 일어남.
  • 隨寓(수우) : 처지에 따라.  불교적으로 보자면 인연에 따라.  寓는 임시의 거처를 뜻한다.  우거(寓居)
  • 無入不得(무입부득) : 이르는 곳마다 얻지 못함이 없다. 즉 어떤 경우라도 만족할 수 있다는 뜻이다.

※ 문맥의 흐름을 따르자면, 본문 중에서 <一念求全 則萬緖紛起> 은 분명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일념으로 오로지 완전함을 구한다면 만 갈래 생각의 실마리가 어지럽게 일어난다’ 고 했으니 이 의미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남들이 보기에는 세상 걱정 없이 행복해 보여도 속속들이 알고 보면 그 사람들도 다 나름의 걱정이 있고 애로사항이 있는 것이 세상살이의 이치이다. 그런데 누군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만은 모든 것이 충족한 완전한 행복을 구한다면 그것은 욕심이 지나쳐 (온갖 욕심이 다 일어나) 결국엔 지금 누리는 행복마저도 잃게 된다는 의미이다. 이 장의 요지(要旨)는 ‘안분지족(安分知足) 안심입명(安心立命)’ 이라 할 것이다. 

359 이가염(李可染 1907~1989) 모운도(暮韻圖) 71.5+46.2 1965년
이가염(李可染, 1907~1989) - 모운도(暮韻圖)

◈ 『중용(中庸)』 제14장에

君子(군자) 素其位而行(소기위이행) 不願乎其外(불원호기외). 素富貴(소부귀) 行乎富貴(행호부귀), 素貧賤(소빈천) 行乎貧賤(행호빈천), 素夷狄(소이적) 行乎夷狄(행호이적), 素患難(소환난) 行乎患難(행호환난). 君子(군자) 無入而不自得焉(무입이부자득언). 在上位(재상위) 不陵下(불능하), 在下位(재하위) 不援上(불원상). 正己而不求於人(정기이불구어인) 則無怨(즉무원) 上不怨天(상불원천) 下不尤人(하불우인). 子曰(자왈) 射有似乎君子(사유사호군자) 失諸正鵠(실저정곡) 反求諸其身(반구저기신).

- 군자는 현재 그 위치에서 행하고 그 밖의 것을 원하지 않는다. 부귀에 있어서는 부귀대로 행하며, 빈천에 있어서는 빈천대로 행하며, 오랑캐에 있어서는 오랑캐대로 행하고, 환난에 있어서는 환난대로 행하니 군자는 들어가는 데마다 스스로 얻지(만족하지) 못함이 없다. 윗자리에 있어서 아랫사람을 능멸하지 않으며, 아랫자리에 있어서 윗사람을 잡아당기지(윗사람에게 매달리지) 않는다. 자기 몸을 바로 하여 남에게 구하지 않는 즉 원망이 없음이니, 위로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으며 아래로는 사람(남)을 탓하지 아니 한다. 공자께서 이르기를,  활쏘기는 군자의 처신과 같으니 정곡을 잃으면(과녁을 맞추지 못하면) 돌이켜 자신에게서 (그 원인을) 구하느니라.

諸 : 之於(之于)의 줄임말(縮音축음)이다.

359 이가염(李可染 1907~1989) 송하관폭도(松下觀瀑圖) 79.9+47 1943년
이가염(李可染, 1907~1989) - 송하관폭도(松下觀瀑圖) 

<배움의 공동체 - 학사재(學思齋)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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