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그머니 바지 벗고 얼굴 내미는 
 아가처럼 귀여운 고추 좀 보아,
 소년처럼 부끄러운 가지 좀 보아, 
 동그랗게 눈을 뜨는 초록 감또개, 
 훌쩍 자라 사춘기 된 석류열매와,
 우수수 발돋움한 옥수수 벌판, 
 타래타래 콩알 맺는 등나무 깍지...

 열매 맺던 초록이 넘쳐 번지는
 소금처럼 저 새하얀 망초꽃 좀 봐. 
 쓰러진 그리움은 더 눈부시며. 
 그렇게 들판 가득 하늘 가득히 
 초록빛, 또 초록빛 넘쳐흐르며

 마침내 이 세상 다 품에 껴안아
 평범한 일상들이 정다움 되고 
 소치는 늙은 사내 그림이 되고
 순박한 아낙네도 꽃으로 피어
 무르녹는 초록빛 푸른 들녘에
 메아리로 돌아오는 그리움 좀 봐.

<시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