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甲의 사망 이후 그의 유일한 상속인인 乙은 甲의 생전 채무관계를 정리하던 중, 甲에게 2000만 원의 금전채권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丙으로부터 금전채무의 이행을 청구 받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丙은 금전을 대여한 사실을 증명하겠다며 영수증을 제시하였으며, 乙은 영수증까지 보유한 丙이 甲에 대한 적법한 채권자일 것이라 믿고 상속재산을 이용하여 2000만 원을 모두 지급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후 乙은 丙이 제시하였던 영수증과 동일한 영수증을 제시하는 丁으로부터 2000만 원의 채무이행을 다시 청구 받게 되었는데, 丁은 자신이 적법한 채권자이고 丙은 영수증을 위조한 것이므로 丙에게 금전을 지급했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자신에게 2000만 원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 乙이 丁에게 2000만 원을 다시 지급하여야 하는지, 丙과의 법률관계는 어떻게 정리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A: 丁의 주장이 진실이라는 전제 하에, 乙은 본래 채권자인 丁에게 금전채무를 이행할 책임이 있을 뿐이고, 변제수령권이 없는 丙에게 금전을 지급하였다는 사실로써 丁에게 대항할 수 없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원칙은 아무런 과실 없이 丙을 진정한 채권자로 믿고 금전을 지급한 乙로 하여금 채무의 중복 이행을 강요하게 되는 결과가 되는 바, 민법은 제470조 및 제471조에서 채무자가 수령권한이 없는 자에게 변제한 경우에도 일정한 경우에는 채무소멸을 주장할 수 있는 예외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우선 민법 제471조는 영수증 소지자를 적법한 채권자로 믿고 이 같이 믿은데 과실이 없는 경우, 가사 영수증 소지자가 적법한 채권자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채무자는 변제의 유효를 주장할 수 있는 것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영수증은 채권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증명수단 중 하나이므로 가사 그 영수증이 타인에게 절취되어 잘못 제시되었다 하더라도 이를 믿고 채무를 변제한 채무자를 보호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때 영수증은 작성할 권한 있는 자가 작성한 진정한 영수증만을 의미하며 위조된 영수증의 경우 당해 조항에 따라 보호될 수는 없다는 것이 판례의 입장입니다(대법원 1963. 10. 10. 선고 63다384 판결 참조).

따라서 사안의 경우 丙이 제시한 영수증은 위조된 것으로 진짜가 아니므로 乙은 민법 제471조를 근거로 丙에 대한 변제로 丁에 대한 채무가 소멸하였다는 주장은 할 수 없습니다.

한편, 민법 제470조는 채무자가 ‘채권의 준점유자‘를 적법한 채권자로 믿고 과실 없이 변제한 경우에도 유효한 변제의 효력이 있는 것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채권의 준점유자란 거래관념상 진정한 채권자라고 믿게 할 만한 외관을 갖춘 자를 의미합니다. 앞서 살핀 영수증 이외에도 예금통장과 인장을 소지한 자, 무효인 채권압류 및 전부명령의 전부채권자 등은 채무자로 하여금 진정한 채권자라고 믿게 할 만한 외관을 갖춘 자에 해당하는 바, 이 같은 자들에게 채무를 이행한 채무자를 보호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앞서 살핀 위조된 영수증의 소지자는 민법 제471조에서 정하는 영수증의 소지자는 아니지만, 제470조에서 정하는 채권의 준점유자에는 해당한다는 것이 판례의 입장입니다.

위와 같은 법리에 따를 때, 사안의 경우 乙은 민법 제470조를 근거로 위조된 영수증을 소지한 丙에게 선의‧무과실로 채무를 이행하였음을 주장‧입증하여 丁에 대한 채무소멸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단, 이 경우 乙은 자신이 丙을 진정한 채권자라고 믿었고, 이 같이 믿은 데 과실이 없었음을 스스로 입증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乙이 이와 같은 주장‧입증에 성공하는 경우, 丁은 더 이상 乙에게 채무이행을 청구할 수 없으며, 위조된 영수증을 토대로 부당한 이득을 취득한 丙에 대하여 부당이득반환청구를 하여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