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한 친구와 술·밥자리에서 ‘묘지 이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20대 대통령 당선자 윤석열이 “청와대에서 단 하룻밤도 보내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 이전에 대한 논의가 한창인 때였다.
명분이야 어떻게 둘러대든, 당선자는 부인 김건희의 말을 듣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리고 김건희는 청와대는 저주를 받고, 용산은 축복을 받는다고 말하는 무당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흉흉한 주장이 제기되고 있기도 했다.
친구는 BMW를 타고 세컨드 하우스에서 주말을 보낼 정도로 경제적으로 꽤 여유가 있다. 시대정신 따위에는 별무관심이지만 현 질서를 존중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는 전형적인 보수주의자이다. 현실 비판에 관심하는 나와는 세계관에서는 무척이나 거리가 멀다. 하여 우리는 만나 즐기는 시간을 갖더라도 정치 얘기는 나누지 않는다.
친구의 모친은 1년 전쯤 별세했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부친 음택(陰宅,산소)과 멀리 떨어진 곳에 모셨다. 그게 마음에 걸리던 참에 ‘도사’라 불리는 용한 술사가 길지(吉地)가 있으니 부모를 함께 거기에 모시라는 제안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 길지라는 곳이 내 삶터와 멀지 않은 산중턱에 있다고 했다. 같이 가 보지 않겠느냐는 부탁을 했다. 친구가 그런 부탁을 하는 데는 내가 무슨 풍수학인이라서가 아니었다. 차라리 내가 풍수 풍자도 모르는 친구라고 생각했을 법하다. 다만 찬밥 먹으면서도 평생 읽기에 골몰함을 익히 아는 터라, 최소한 허튼소리는 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은 가졌겠지. 아니면, 나름 사심(邪心) 없이 사는 친구의 동의로 자기 결정을 합리화하고 싶었을 수도 있었겠다.
“혹시 최창조 씨라고 알아?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였는데.” 친구는 금시초문이라고 답했다. 해서 나는 최창조 씨와 전 SK 회장 최종현의 관계 이야기로 친구의 부탁에 대한 대답을 가름했다.
최창조(1950~2014)는 서울대 지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토개발원 주임 연구원을 거쳐 전북대,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를 지냈다. 1992년 서울대에 온 지 4년 만에 교수직을 내려놨다. 한국의 자생풍수를 연구하기 위해서였다.
이기적으로 타락한 엉터리 잡술 부스러기의 풍수를 불식하고 정통의 풍수사상가들이 가르침을 내렸던 대동적(大同的)인 삶터 이루기에 나선 것이다. 그는 묏자리의 길흉을 점쳐 판단하는 풍수를 일컫는 음택풍수(陰宅風水)에 반대하면서, 명당은 사람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지론을 폈다. 또 한국 자생풍수의 본질은 땅의 결함을 고치는 비보(裨補)라면서, “우리 풍수는 좋은 땅을 찾자는 게 아니라, 병든 곳을 찾아 침을 놓고 뜸을 뜨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생풍수를 연구하기 위해 보기 좋게 교수직을 내던졌지만, 갑작스럽게 월급을 받지 못하니 생활에 대한 불안감이 찾아 왔다. 이때 선경의 최종현 회장이 선뜻 재정 지원을 해줬다.
최종현(1929~1998) 회장은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위스콘신대학교 화학/학사-시카코대학교 대학원 경제학/석사이다. 최 회장은 인재를 중시했다. 인재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한다고 보고, 1974년 세계적 학자 양성이라는 목표 하에 사재를 출연해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했다.
‘일등 국가, 일류 국민 도약과 고도의 지식산업사회 건설’이라는 100년의 목표로 출발한 세계적 석학 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현재까지 800여 명의 해외 명문대 박사를 비롯해 3,700여 명의 인재를 키워냈다.
최 회장의 안목에도 최창조가 ‘될성부른 인재’였을 것이다, 하여 재정 지원을 한 것이리라. 이런 최 회장은 1998년 지병인 폐암으로 사망했다. 뜻밖에도 유언은 화장이었다. 벽제화장터에서 화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당시만 해도 기존 장례문화에서 부정적으로 인식되던 화장이 국내 굴지 대기업 회장의 유언으로 본격 대중화되었다.
때론 단어의 의미를 간단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문리’(文理)는 ‘글의 이치’이다. ‘물리’(物理)는 ‘사물의 이치’이다. 마찬가지로 ‘지리’(地理)는 ‘땅의 이치’이다.
현대의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지리학을 공부하고, 풍수 최고의 경전인 『청오경(靑烏經)』과 『금낭경(錦囊經)』 등을 두루 섭렵한 자생 풍수가 최창조. 시카고대학교 경제학 석사로서 국내 기업인 중 자유시장경제이론에 가장 밝았고 가장 잘 실천한 기업인으로 평가 받는 SK 회장 최종현.
한 삶을 매듭짓는 장례는 화장이었다. 뭔가 가슴에 와 닿는 게 없는가! <계속>
*필자가 풍수지리에 대해 아는 게 있다면, 이는 모두 최창조의 『땅의 논리 인간의 논리』(민음사/1993), 『사람의 지리학』(서해문집/2011)을 읽은 덕분이다. 앞으로 ‘풍수사상’에 관한 몇 편의 글은 위 두 책에 근거함을 미리 밝힌다.
조송원 작가
<작가/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