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 '오 페드로우수오' 마을의 카페에서 나와 걷기 시작했다. 사진은 '오 페드로우수오' 마을 모습. 사진= 조해훈

오늘은 2024년 11월 26일 월요일이다. 오늘은 순례길의 공식 루트로는 마지막 코스를 걷는다. ‘오 페드로우수오’(O Pedrouzo)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의 종착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까지는 19.3km이다.

'오 페드로우수오' 마을에 수탉 동상이 생동감 있게 만들어져 있다. 사진= 조해훈

‘오 페드로우수오’의 공립 알베르게에서 아침 8시 20분에 나왔다. 아직 어둠이 완전히 걷히지 않은 가운데 도로로 올라와 알베르게를 보니 현관에 불이 켜져 있다. 오늘 마지막 코스를 걷는다고 생각하니 알베르게의 모습에 마음이 짠했다. ‘언제 다시 저 알베르게에 다시 올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음이야 ‘내년 봄쯤에 한 번 더 산티아고에 와야지.’라고 생각하나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게 세상 아니던가.

인근 카페에서 밀크커피와 빵 한 조각을 먹었다. 그리곤 오전 9시쯤 카페를 나와 걸었다. 마을은 언덕바지에 형성돼 있다. 4차선 도로 좌우로 상가와 주택들이 쭉 이어졌다. 2, 3분 걸으니 오른쪽 인도 옆에 수탉의 형상이 있다. 제법 높은 돌기둥 위에 올려진 자연석 위에 닭이 생동적으로 서 있다. 청동으로 제작된 것인데 아주 사실적이다. 돌기둥에 보니 2017년에 제작됐다고 적혀 있다. 이 마을과 수탉에 얽힌 전설이나 설화 같은 게 있는 것일까?

비가 내려서일까, 걷기 시작한지 30분 후 들어선 숲길이 차분한 분위기이다. 사진= 조해훈

오전 9시 13분, ‘오 페드로우수오’ 마을을 완전히 벗어났다. 페드로우수오 마을이 끝난다는 표지판이 도롯가에 세워져 있고, 그 앞에 한 순례자가 걸어가고 있다. 표지판이 있는 지점에서 도로를 벗어나 우회전한다. 길은 포장돼 있으나 바로 시골 풍경이다. 조금 걸어가니 집이 몇 채 있다. 오전 9시 22분, 집을 지나니 바로 비포장길이다. 숲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굵은 나무들엔 이끼가 잔뜩 끼어 있다. 여기서 2분 더 가니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 길로 가라는 표석이 있다. 표석에는 산티아고까지 18.369km 남았다고 적혀 있다.

숲길을 걸은지 10분 후에 펼쳐진 경작지 쪽으로 순례자 두 사람이 걸어가고 있다. 사진= 조해훈

깔끔하고 단정한 느낌의 숲길이다. 길은 비슷한 분위기로 이어진다. 오전 9시 39분, 숲길이 끝나고 좌우로 넓은 경작지가 펼쳐진다. 그 지점에 순례자 두 사람이 걸어가는 게 보인다. 왼쪽 저 앞 초지에 잎을 다 떨군 큰 나무가 홀로 서 있다. 마치 느티나무처럼 주민들에 의해 베이지 않고 서 있는 모습으로 멋이 있다. 왼쪽으론 베지 않은 누런 옥수수밭이다. 오전 9시 56분, 저 앞에 마을이 보인다. 마을 너머의 산 위론 하늘이 흐릿해지고 있다. 마을로 들어서니 오래된 돌집과 시멘트 등으로 지은 현대식 주택들이 혼재돼 있다.

경작지 한 가운데 큰 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사진= 조해훈

오전 10시 7분, 마을을 벗어나 깊은 숲으로 들어가는 분위기이다. 길 좌우로 언덕이 있고 나무가 우거져 있다. 길은 아주 오래돼 보인다. 중세 때부터 순례자들이 걸었던 길인지 알 수 없다. ‘혹시나 야고보가 걸었던 길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세상의 길은 누구라도 걸어가라고 존재한다. ‘처음 이 길을 걸었던 사람은 누구일까?’라는 궁금증이 일기도 하지만 그건 알 수 없으므로 중요하지 않다.

걷기 시작한지 1시간 즈음에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을 만났다. 사진= 조해훈

오전 10시 16분, 저 멀리 초지 너머로 또 집들이 있다. 다시 또 숲속으로 들어간다. 오전 11시, 독특한 비석이 있다. 비석 한 가운데 조개껍데기가 새겨져 있고, 그 위쪽으론 다른 문양들이 새겨져 있으나 정확히 무엇을 새긴 것인지 잘 모르겠다. 여길 지나니 길은 다시 숲길이다. 오전 11시 7분, 왼쪽에 철망이 쳐져 있고, 그 안에 큰 철 구조물이 있다. 오전 11시 22분, 오른쪽 길로 가라고 가리키는 표석이 있다. 산티아고까지 12.650km 남았다고 적혀 있다. 그 길로 가니 가운데 도로가 있고 평야지대이다. 5분 더 걸어가니 길가에 벤치가 있어 앉아 좀 쉬었다. 오전 11시 39분, 마을에 카페가 있으나 문이 열려 있지 않다. 오전 11시 42분, 마을을 지나니 또 숲길이다. 오전 11시 55분, 숲길에 비가 내린다.

순례길 양쪽에 언덕이 있어 깊은 협곡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사진= 조해훈

비가 계속 내리고 있어 멀리 산 위로 여전히 하늘은 흐리다. 사진= 조해훈

오전 10시 17분, 경작지에서 다시 숲길로 길은 이어진다. 사진= 조해훈

비가 내리는 가운데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사진= 조해훈

낮 12시 10분, 초등학교인 모양이다. 길옆 운동장엔 농구대가 있고, 저 앞에 아이들이 몇 명 놀고 있다. 운동장에 비가 내려 아이들이 농구 놀이를 하지 못하고 그냥 노는 모양이다. 아이들을 보니 반갑기도 하지만 ‘저들이 세상의 희망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맞는 말일 것이다. 국적은 다를지언정 저 아이들이 자라 세상을 이끌어가지 않겠는가! 학교 건물 옆으로 순례길이 나 있어 학교를 보면서 걸어갔다. 비가 내리는 마을을 천천히 지났다. 마을의 마지막 건물 벽에 검은 테 안경을 쓴 남자의 얼굴이 연한 파란색으로 그려져 있다.

오전 10시 59분, 독특한 산티아고 표석이 서 있다. 사진= 조해훈

다시 숲길로 이어지는 곳에서 필자가 셀프로 사진을 찍었다.

순례길은 숲속과 들판이 번갈아 이어지고 있다. 사진 = 조해훈

오후 1시 5분, 트랙터를 세워놓고 한 농부가 작업하고 있다. 사진= 조해훈

낮 12시 47분, 개울 위 나무다리를 지난다. 오후 1시 5분, 트랙터를 세워놓고 한 농부가 밭에서 일을 하고 있다. 오후 1시 48분, 또 표석이 있다. 산티아고까지 6.750km 남았다고 적혀 있다.

낮 12시 45분, 한 마을의 집 벽에 안경을 낀 파란색의 남자 얼굴이 그려져 있다. 사진= 조해훈

오전 11시 40분, 한 마을 중간에 돌로 쌓은 교회가 자리해 있다. 사진= 조해훈

순례길에 떨어진 단풍잎이 지천이다. 사진= 조해훈

오후 2시 2분, 독특한 순례자의 돌 형상이 있다. 돌을 깎아 만든 중세 순례자의 형상이 기단 위에 있다. 그리고 그 순례자 형상 왼쪽 발치께 비슷한 모양의 작은 순례자 형상이 있다. 마치 아버지 앞에 아들이 서 있는 듯하다. 기단 위 남은 공간에 순례자들이 각종 소지품 등을 올려놓았다. 큰 순례자가 짚고 다니는 지팡이에는 울긋불긋한 천들이 달려 있다. 필자는 잠시 두 손을 모으고 순례자 형상을 바라보다가 인사를 드린 후 발걸음을 옮겼다.

중세 때 순례자의 형상 왼쪽 발치에 아이 순례자의 모습이 있는 독특한 석상이 있다. 사진= 조해훈

거길 지나 15분가량 걸으니 마을이다. 마을 길 저 앞에 순례자 두 사람이 걸어가고 있다. 마을에 카페가 없다. 점심을 먹지 못해 배가 무척 고팠다. 오후 2시 35분, 마을을 지나 계속 걸어가니 저 앞에 또 순례자 몇 명이 걷고 있다. 단체로 걷는 순례자로 보였다. 3분가량 더 걸으니 저 아래 오른편으로 큰 도시가 내려다보인다. ‘아, 콤포스텔라구나!’라는 감탄사가 필자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오후 2시 38분, 오른쪽 저 아래로 순례길의 종착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도시가 보인다. 사진= 조해훈

오후 2시 47분, 수로처럼 양쪽에 시멘트벽이 있는 길을 따라 도시로 내려갔다. 비가 가랑비처럼 계속 내려 하늘은 여전히 회색이다. 콤포스텔라를 향해 가까이 가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오후 2시 55분, 이제 평지 도로에 내려섰다. 교통표지판에 ‘Santino’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길가 잔디밭에 창을 든 한 장군의 청동상이 세워져 있다. 아마 산티아고 도시를 위해 혁혁한 공을 세운 장군이리라.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다. 도로 곳곳에 빗물이 곳곳에 고여 있고, 도로가 젖었다.

콤포스텔라로 들어가는 길목에 한 장군의 청동상이 세워져 있다. 사진= 조해훈

오후 2시 58분, 마침내 ‘SANTIAGO de COMPOSTELA’라고 적힌 글귀가 있다. 순간 가슴이 벅차올라 눈에 눈물이 고였다. 순례길을 걸은 지 40일 만에 드디어 목적지인 콤포스텔라에 도착한 것이다. 물론 빨리빨리 걷기만 한 사람은 27일 만에 도착한 사람도 있다고 하지만 각자 걷는 목적과 걷는 방식이 다른 탓에 시간 차가 나는 것이다. 산티아고 입구이다. 글귀에서 조금 더 가니 개선문 형식의 문이 있고, 도로에는 ‘SANTINO’라고 적힌 컬러표지판도 있다.

오후 2시 58분, 순례길의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걷기 시작한지 40일 만에 들어왔다. 사진= 조해훈

산티아고에 도착한 이 느낌을 뭐라고 할까? 어떻게 정확하게 표현할 말이 없다. 생전 처음 느끼는 감정이다. 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줄여서 ‘산티아고’라고 부르니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도로 옆 인도를 좀 걷다가 오후 3시 4분, 우회전해 공립 알베르게로 간다. 오른쪽으로 도는 지점에 스테인리스로 만들어 세운 표지판이 있다. 사선으로 ‘SAN LAZARO’라고 적혀 있다.

콤포스텔라에 들어오니 '산티아고' 표지판이 필자를 반겨준다. 사진=

알베르게에 들어가 방을 배정받은 후 배낭을 풀고 노트북만 들고 건물 바깥으로 나왔다. 알베르게는 현대식 건물이다. 그러니까 이 지역은 콤포스텔라 성당이 있는 곳이 아니다. 좀 전에 밝혔듯 콤포스텔라 도시의 입구이다. 큰 도로 건너편에 바(Bar)가 보인다. 바에 들어가니 실내가 넓은데 앉을 자리가 없다. 노트북을 들고 서서 망설이는데 입구 출입문 쪽 테이블에 앉은 손님 두 사람이 일어섰다. 자리에 가 앉은 후 밀크커피와 빵 한 개를 시켰다. 점심을 못 먹어 배가 고프다. 바에는 손님이 많이 들락거렸다. 두어 시간 가까이 앉아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다가 눈치가 보여 바깥으로 나왔다. 저녁 시간이 되니 도로 건너 맞은편 바에도 불이 켜져 있다. 그곳으로 들어가 커피를 한 잔 주문한 후 앉아 쓰던 글을 계속 썼다. 그러다 밤 9시가 다 돼서야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콤포스텔라 입구에서 이 표지판을 보고 오른쪽으로 가면 공립 알베르게가 있다. 사진= 조해훈

알베르게의 방에는 필자의 침대 옆에 미국에서 온 여성 두 사람 외엔 다른 순례자가 없었다. 인사를 한 후 씻고 침대에 누웠다. 그런데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산티아고에 도착해 잠을 잔다는 기쁨과 설렘 때문이었다.

오늘은 ‘오 페드로우수오’(O Pedrouzo)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까지 19.3km를 걸었다. 생장에서는 총 777.0km를 걸었다. 꼬박 40일이 걸렸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