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의 제주 유배 기착지를 알리는 제주 구좌읍 어등포의 표지석 [사진=제이누리]
주중적국 舟中敵國
- 어등포
이 형 우
내 배소지는 마땅히
귀덕리歸德里여야 한다
거기서 평생
아침엔 동산
저녁엔 서산 향해
삼배구고두례 올리며
머리 찧어 피 흘려야 한다
니놈이 말하지 않아도 안다
귀덕이 경서經書 만 권의 벼리임을
스무 살도 안 된 그때부터
종횡에 지친
내 발바닥의 피고름이 알려준 사실이다
하여 내 죄는
아버지 신하들의 험준한 요새를
아름다운 내 강산으로 만들지 못한 데 있다
지금부터 나는
집어등 일렁이는 포구의 불빛
만선으로 흥겨운 어적漁笛 소리
무사귀환 빌고 비는 아낙의 손바닥이다
비로소 나는
부덕不德 패덕悖德 악덕惡德을 씻으며
흥덕興德은 아니더라도 귀덕歸德으론 가려고 한다
탐라는 내 어버이, 이 땅의 옥쇄다
- 서정과 현실, 2025. 상반기호
시 해설
제주도 구좌읍에 있는 마을인 어등포의 단상입니다.
내가 귀양을 가면 마땅히 귀덕리라야 합니다
거기서 아침에는 해 뜨는 곳, 저녁에는 해지는 곳을 향해 평생을 세 번 무릎 꿇고 아홉 번 조아리는 굴욕적인 옛 시절 신하의 예, 삼배구고두례를 올리며 머리 찧어 이마에 피 흐르도록 참회해야 합니다.
경멸하는 당신이 말 안 해도 압니다.
인간의 올바른 도리인 덕德을 실천하는 것이 경서 만 권의 줄거리와 같음을 스무 살 안 된 나이부터 지친 내 발바닥의 피고름으로 알고 있던 것입니다.
아버지의 신하들은 험준한 요새를 갖추어 지키려 했으나 이를 아름다운 내 강산으로 바꾸지 못한 내 죄를 눈이 짓무르도록 알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제부터는 고깃배 가득 채워 무사히 항구로 돌아오도록 빌고 비는 아낙의 손바닥이 되려고 하며, 깨우치지 못하고 이루지 못해 생긴 도덕과 의리에 어긋나는 나쁜 행위를 씻어내고 덕을 일으키진 못하더라도 덕으로는 귀의하고자 합니다.
한 척 배 같은 여리고 아름다운 섬의 나라에 적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데 ‘탐라는 내 어버이, 이 땅의 옥쇄’이므로 이 땅이 우리의 터전으로 영원히 보존되도록 해 주소서.
(필자가 시인의 의도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면서 서술적으로 묘사해 본 것이다.)
◇ 조승래 시인은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이사, 문학의 집 서울 이사,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 시향문학회와 시와시학 문인회 회장, 가락문학회, 함안문인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취미생활로는 검도를 하고 있다(대한검도회 영무검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