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부터 비기(秘記)를 무척 좋아했다. 이들 비기들은 미래의 재난을 얘기하고 피난할 곳을 일러주고 왕조의 교체를 주로 담아놓았는데, 그것의 기술 방식은 거의 파자(破字)나 난해한 말들로 되어 있다.

이런 비기는 신라 말 도선에서 비롯되어, 고려 말 무학 그리고 조선조에 들어와 박지화·이지함·남사고 등으로 이어졌다. 이들이 적은 비기에 정 씨 출현설을 담았기에, 이들을 묶어 『정감록』(鄭鑑錄)이라 부른다.

이 중에 남사고는 아주 미천한 출신으로 고관들과 사귀며 많은 예언을 남겼다. 그가 어느 때에 태어나서 죽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고, 다만 조선조 중기 명종 때의 인물로 알려져 있다.

남사고는 특히 『주역』에 뛰어난 식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재주는 원근에 널리 퍼졌다. 그는 무슨 연유인지 향시(鄕試:지방에서 보는 과거의 초시)에는 여러 번 뽑혔으나, 끝내 급제는 못했다. 누가 물었다.

“자네는 남의 운명은 잘 알면서 자기 운명은 알지 못하고, 해마다 과거에 떨어지니 어쩐 일인가?”

“사심이 동하면 술법도 어두워지는 법이라네.” 이렇게 말하고는 그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허균,『성옹지소록惺翁識小錄』)」 -이이화/『인물한국사2』/남사고-

격암(格菴) 남사고(南師古)는 명종의 뒤를 이어 선조의 등극을 점쳤으며, 임진왜란이 발발할 것도 미리 알고 있었다고 하며, 동인과 서인의 당쟁이 시작될 것도 예언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평가는 민초들의 소박한 바람이 낳은 설화에 불과하다. 격암에 대한 기록 중 유명한 것이 ‘구천십장’(九遷十葬)이다. 발복을 위해 길지(吉地)를 찾아 9번을 이장하여 10번의 장례를 치렀다는 말이다. 강효석의 『대동기문(大同奇聞)』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남사고는 복을 받는다는 보길지지(保吉之地)를 찾아 선조 묘를 이장했다. 한데 이장하고 보면 묘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여 길지를 골라 여덟 번을 이장한 끝에 ‘용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비룡상천(飛龍上天)’의 묘 터를 발견했다. 남사고는 크게 기뻐하여 이장을 하고 흙을 져다 봉분을 만드는데, 어디선가 한 일꾼이 이런 노래를 불렀다.

“아홉 번 옮겨 열 번째 장자지내는(九遷十葬) 남사고야! 이 자리가 비룡상천하는 명당인 줄 알지 마라. 죽은 뱀이 나무에 걸린(枯蛇掛樹) 자리가 여기 아니더냐!”

남사고가 깜짝 놀라서 다시 산천의 형세를 찬찬히 살펴보니, 과연 용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형세가 아니라 죽은 용의 형세였다. 정신을 차린 남사고는 그 노래를 부른 일꾼을 급히 찾았으나, 홀연히 사라져버려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에 남사고는 “땅도 각자 주인이 있는 법이니 인력만으로는 안 되는 것이다.”라고 탄식을 하고, 해(害)나 없는 땅을 골라 이장을 했다고 한다.

최창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풍수의 응보설(應報說)에 무엇인가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사람과 효자들이 의도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은 아니다. 길한 장소는 발견하기가 쉽지 않고, 진정 숙련된 풍수가를 만나기란 특히 어렵다.

풍수사가 얼마나 숙련되었는가에 관계없이, 그리고 그를 고용하는가 못 하는가에 관계없이, 어떤 장소의 장점과 단점, 그리고 그것을 얻느냐 얻지 못하느냐의 여부는 하늘에 달려있는 것이지, 인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풍수사상 최대의 스승인 일행선사(一行禪師. 당나라 현종 때 국사)는 이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못을 박는다.

「효자는 부모에게 좋은 산천의 땅을 구해 드려야 하는데, 그 이유는 장사(葬事)라는 것이 부모를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보내드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부모의 유해가 편안해지면 효자의 마음도 편안해지는 것이다. 부모의 유해가 편안함으로써 복이 후손에게 흘러 그 음덕이 살아 있는 자손에게 모이는 이치라고 한다면, 효자 아닌 자가 어찌 만에 하나라도 감히 그것을 바랄 수 있겠는가.

대대로 내려오는 효자는 부모님의 유해가 좋은 땅에 모셔짐으로써 진실로 복이 자신에게 접응하리라는 생각은 꿈에도 떠올리지 않는다. 그저 어리석고 천한 무리들이 음덕을 받는 것이 바로 땅의 이치라고 믿어버리고는, 살아가는 못된 꾀로서 좋은 터를 구함에만 급급해 있다.

오로지 부모의 유해가 편안함을 얻게 함이 풍수의 이치이니, 그 보람은 음덕을 입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부모님을 편안히 모실 수 있느냐를 근심함에 있는 것이다.」

위와 같은 설화나 주장은 모두 ‘믿음’의 영역에 속한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다. 그래서 ‘풍수의 논리구조’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다음 편에서 살펴본다. <계속>

조송원 작가

<작가/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