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아카스테야 공립 알베르게를 나와 아침 7시 56분 마을 길을 걸어 내려가는 데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둡다. 사진= 조해훈
오늘은 2024년 11월 21일 목요일이다. 아침 7시 50분에 트라이카스테야(Triacastela) 마을의 공립 알베르게를 출발했다. 어제저녁에 들렀던 카페는 문이 닫혀 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어두웠다. 날씨가 제법 추웠다. 표지를 보고 순례 루트인 마을 길을 따라 조금 내려가니 좌우에 사설 숙소가 몇 개 있다.
아침 8시쯤 문이 열린 마을 카페에 들어가 커피와 크로아상을 주문해 먹었다. 카페 내부 모습. 사진= 조해훈
아침 7시 58분, 왼쪽에 문을 연 카페가 있다. 들어가니 순례자 네 명이 있다. 어제저녁 다른 카페에서 만났던 대만 여성 보보(Bobo)도 있다. 커피와 크로아상 한 개를 주문해 천천히 먹었다. 다른 순례자들이 먼저 나간 후 카페에 와이파이가 돼 노트북으로 글을 쓰다가 오전 8시 54분, 털모자를 쓰고 바깥으로 나갔다. 날은 밝았으나 하늘은 흐렸다. 마을 길은 경사가 심하지는 않으나 내리막이다.
카페를 나와 마을 길을 따라 내려가는데 나무로 깎아 만든 중세 때 순례자의 형상이 서 있다. 사진= 조해훈
5분 뒤인 오전 8시 59분, 길가에 나무로 깎아 만든 중세 순례자의 형상이 세워져 있다. 이 형상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산티아고 순례길에 있는 순례자 형상들을 한곳에 모아 전시하면 아주 재미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1분 정도 더 가니 돌로 쌓아 만든 탑 몸체에 붉은 십자가가 크게 붙어 있고, 꼭대기에는 돌을 깎아 만든 크지 않은 중세 순례자 형상이 올려져 있다. 돌탑 옆에는 배낭을 메고 있는 순례자의 형상이 서 있다. 나무를 깎아 만들었다. 순례자들을 위해 이 지역 관청에서 신경을 많이 쓴 게 느껴졌다.
마을을 벗어나기 전 자그마한 광장에 있는 돌탑에 빨간색의 십자가가 붙어있고 꼭대기에는 돌을 깎아 만든 순례자가 올려져 있다. 또 돌탑 옆에는 나무로 깎아 만든 순례자가 배낭을 메고 있다. 사진= 조해훈
오전 9시 4분, 마을 길은 도로와 접한다. 여기서 좌회전한다. 도로를 따라 옆으로 순례길이 나 있다. 도로로 접어들어 조금 가면 트리아카스테야(Triacastela) 마을이 끝난다는 표지판이 있다.
돌탑을 지나 다리를 건너 접하는 도로에서 좌회전 한다. 사진= 조해훈
9시 38분, 길 왼쪽으로 강물이 흐른다. 몇 걸음 더 가니 오늘 도착지인 사리아(Sarria) 지역까지의 지형도가 그려진 큰 표지판이 있다. 붉은색 글씨로 현 위치를 알려주고 있다.
오전 9시 39분, 도로 옆에 출발지점인 '트리아카스테야'에서 오늘의 목적지인 '사리아'까지의 루트가 그려진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사진= 조해훈
오전 9시 49분, 순례길은 포장길을 따라 강을 건넜다. 아래로 보는 강은 아주 맑다. 이 정도 넓이의 물길이면 우리나라에서는 계곡, 또는 개울이라고 하는데 이곳에서는 대체로 강이라고 한다. 10분 후 집이 몇 채 있는 마을로 들어섰다. 처음 만난 건물은 축사였던 것 같은데 사용을 하지 않아 허물어지고 있다. 옛적 돌을 하나하나 쌓아 만든 집들이 연이어 있다. 3층 돌집이 있는데 역시 사람이 살지 않는 것 같다. 이 집 벽에 우회전하라는 산티아고 문양이 붙어 있다. 10분여 더 가니 마을 가운데에 작은 교회 건물이 있다. 집들이 대부분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것으로 보여 교회는 실제로 사용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한때는 주일이면 교회 내부가 비좁을 정도로 주민들이 많이 참석해 기도를 올렸을 텐데 텅 빈 마을과 돌보지 않는 교회 건물을 보니 마음이 쓸쓸하다. 지나는 길손인 필자가 안타까워해 봐야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마을을 지나는 동안 마을의 표정은 비슷하다는 걸 느낀다.
오전 10시 1분,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마을에 교회가 있다. 사진= 조해훈
오전 10시 4분, 마을 끝부분의 돌담을 지나니 순례길은 산길로 이어진다. 나무의 이파리는 다 떨어졌는데도 길바닥의 풀은 초록색이다. 아무튼 이 지역 순례길에는 축산을 하기에 적합하도록 풀이 계절에 구애받지 않고 잘 자라는 것 같다. 나무 넝쿨은 진녹색이다. 계절이 섞여 있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다. 길바닥에는 단풍 든 낙엽이 쫙 갈려있다. 길 오른쪽은 돌로 담을 쌓았다. 길은 점점 산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순례길이 정해져 있고, 한 해에도 수십만 명의 순례자들이 걷는 길이니 혼자서 산속 길을 가든 들판 길을 가든 크게 걱정이 안 든다. 만약 정해진 길이 아니고 그야말로 정처 없이 걷는 길이라면 걱정도 태산이고 두려움이 들기도 할 것이다.
오전 10시 8분, 산길에 아름다운 낙엽이 쌓여 있어 밟고 지나가려니 송구한 마음이 들었다. 사진= 조해훈
2023년 통계를 보면 산티아고를 걸은 순례자는 모두 44만 6천 명이었다. 국적별로는 스페인이 가장 많은 19만 7천 명이다. 두 번째는 미국인으로 3만 2천 명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아홉 번째인 7,563명이었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의 70% 이상은 생장에서부터 걷는다. 그리하여 2023년 생장에서 걸어 완주한 우리나라 사람은 3만 1천 명이다. 한국인 순례자의 경우 동양인 중에서는 가장 많다.
오전 10시 19분, 산티아고까지 133.314km 남았다는 표석이 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필자는 혼자 걸을 때 이 표석이 큰 위안이 된다. 가끔 오후에 덥거나 춥거나 할 때 ‘아직 몇 시간을 더 걸어가야 하나?’라고, 지겨움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 표석이 있으면 ‘아, 이제 몇 km만 더 가면 목적지에 도착하는구나.’라는 안도감이 든다는 것이다.
오전 10시 25분, 길 옆 초지에 소 다섯 마리가 풀을 뜯고 있다. 사진= 조해훈
오전 10시 25분, 길옆 초지에 소 다섯 마리가 풀을 뜯고 있다. 혼자 이렇게 태어나서 처음 걷는 이국(異國)땅, 그것도 산속에서 소든 말이든 양이든 생명체를 만나면 반갑다. 게다가 처음 만나는 짐승들이지만 친숙한 느낌마저 든다. 아마 겉으로 표는 내지 않지만 한 달 넘게 혼자 걸으면서 외로움이 쌓인 탓인지도 모르겠다. 초지를 지나자마자 다리를 건넜다. 아까 본 강보다 폭이 더 넓다. 날씨가 춥다. 털모자를 쓰고 그 위에 바람막이 재킷의 모자까지 썼다.
오전 10시 32분, 마을의 교회 마당에 공동묘지가 있다. 사진= 조해훈
5분 더 걸어가니 집이 몇 채 보인다. 길이랑 분위기가 축산을 하는 마을인 것 같다. 어제 비가 제법 내린 탓인지 마을 길은 축축하다. 오늘도 햇볕은 나지 않고 흐릿하다. 여기까지 몇 군데의 마을을 지났는데 마을에 어떤 마을임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없다. 아마 산속 마을인 데다 규모가 작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오전 10시 39분, 마을의 한 집에 담쟁이넝쿨이 아름답게 자라 있다. 사진= 조해훈
오전 10시 32분, 담장 안에 있는 교회 마당에 공동묘지가 조성돼 있다. 순례길의 작은 마을에는 이런 형태의 공동묘지가 제법 있었다. 종교와 삶이 하나라는 생각에서 교회에 묘지를 만든 것 같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등 가톨릭 신앙이 강했던 나라에서는 주교님이나 신부님이 소찬하게 되면 교회 아래 지하에 무덤을 많이 썼다. 순례길의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산티아고 성당 지하에 예수님의 3대 제자 중의 한 명인 야고보의 무덤이 있지 않은가.
분가량 더 걸어가니 도로가 나왔다. 도로 건너편에 길쭉한 이층 짜리 건물이 있다. 도로 옆으로 난 순례길을 걷는다. 이 건물 앞쪽으로 1분 걸으니 오른쪽 아래 흙길로 가라고 가리키는 표지판이 있다. 표지판 아래에는 ‘라스트레스’(Lastres)라고 가리키는 작은 표지가 있다. 오전 10시 39분, 저 앞에 집이 두어 채 있다. 200m가량 걸어가니 담쟁이넝쿨이 아름다운 자그마한 집이 있다. 집의 전체적인 분위기로 볼 때 사람이 사는 것 같지는 않다. 이 집과 옆집 사이의 골목으로 들어갔다. 또 산길로 접어든다. 길바닥에는 온통 불그스레 물든 낙엽이다.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없다. ‘혼자 이 아름다운 낙엽길을 걸어도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혼자 호강스럽게 이토록 예쁜 길을 걸을 것에 대한 송구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전 11시 58분, 소를 키우는 듯 소똥 냄새가 많이 나는 마을로 접어들었다. 사진= 조해훈
그렇게 산길을 걷다 보니 오전 11시, 길가에 화분을 몇 개 내어다 놓은 집이 있다. 그 집과 두어 채의 집을 더 지나니 길 아래 경사지로 초록빛의 초지가 보인다. 또 저 앞에 집이 몇 채 더 있다. 소똥 냄새가 많이 나는 걸로 볼 때 소를 키우는 집이 있는 모양이다. 산길은 계속 이어진다.
오전 11시 22분, 길 가 초지에 소들이 풀을 뜯고 있다. 누런 소가 2마리, 검은 소가 1마리, 얼룩소가 2마리다. 4분 더 걸어가 강 위의 다리를 건넜다. 오전 11시 29분, 저 앞에 또 집이 몇 채 보인다. ‘산 마르티노’(San Martino) 마을 표지판이 서 있다. 오늘 출발한 ‘트리아카스테야’에서 8.3km 거리의 마을이다. 집 쪽으로 걸어가니 소똥들이 흩어져 있다. 오전 11시 44분, 작은 터널을 지난다. 터널을 지나 도로로 올라섰다. 승용차가 두 대 세워져 있다. 도로를 지나 다시 산길로 접어들었다. ‘사모스’(Samos) 마을을 가리키는 아주 작은 나무표지판이 서 있다. 1분 후, 산길 양 옆으로 구릉이 쭉 이어져 마치 협곡(峽谷)을 지나는 것 같다. 5분 더 걸으니 산골 마을이 나타났다. 모두 돌집들이다. 대부분 사람이 살지 않는 모양이다.
낮 12시 8분, '사모스' 마을이다. 사진= 조해훈
이 산촌을 지나 낮 12시 7분, 제법 괜찮은 현대식 집들이 나온다. 그 사이로 들어가니 ‘사모스’(Samos)라는 글자가 세워져 있다. ‘아, 드디어 사모스에 도착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모스는 갈리시아 지방에서 제법 큰 마을이어서 순례자들이 많이 머무는 곳으로 알고 있다. 필자는 오늘 여기서 머물지 않고 ‘사리아’까지 갈 계획이다. 그래야만 콤포스텔라까지 몇 차례 머물 수 있는 공립 알베르게가 있기 때문이다. ‘사모스’는 큰 동네라서 분명 문을 연 카페가 있을 것이니, 커피와 빵으로 점심을 먹을 수 있다. ‘Samos’라고 글자가 세워져 있는 곳에서 좌회전한다. ‘Samos’ 글자에서 좌회전을 하면 강 위 다리를 건넌다. 다리에 산티아고를 상징하는 조개 문양이 덧붙여져 있다.
낮12시 22분, '사머스' 마을의 카페에 들어가 점심으로 커피와 산티아고 상징인 조개 껍질 모양의 빵을 먹었다. 필자가 먹은 조개 껍질 모양의 빵. 사진= 조해훈
오른쪽 위에서 내려오는 도로로 올라섰다. 건물들은 오래전 지은 돌담집들이 아니라 도시에서 볼 수 있는 현대식이다. 조금 내려가니 역시나 문을 연 카페가 있다. 이곳의 카페는 순례자뿐 아니라 주민들이 더 많이 이용할 것 같다. 커피와 조개 문양의 빵을 주문했다. 안쪽 테이블에는 주민인 듯한 아주머니 두 분이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후 1시쯤 카페에서 나왔다. 카페에서 40분쯤 앉아 있었다. 와이파이가 돼 커피를 마시며 노트북으로 글을 조금 쓰다가 오래 있을 수 없어 일어섰다. 아직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2분가량 도로를 따라 내려가니 돌을 깎아 만든 여성 순례자가 십자가를 든 채 서 있고, 그 옆에는 중세 스타일의 남성 순례자가 지팡이를 짚고 걷고 있는 석상(石像)이 세워져 있다. 도로를 따라 계속 걸어간다. 오후 1시 8분, 안개가 낀 가운데 도로 건너편에 ‘Samos’ 마을이 끝난다는 표지판이 서 있다. 도로를 따라 순례길은 계속 됐다.
카페에서 나와 다시 순례길을 걷는데 돌로 만든 순례자의 형상이 있다. 그 뒤에는 십자가를 든 여성 순례자의 형상도 있다. 사진 = 조해훈
오후 1시 52분, 길가에 집이 있고 도로에서 오른쪽 길로 빠지라는 산티아고 길 표지판이 있다. 그 길로 접어드니 사설 숙소가 있고, 숙소 앞에 철 파이프로 지팡이를 짚은 순례자 모형이 세워져 있다. 그동안 순례길을 걸으면서 만난 순례자 모형 중 하나라도 같은 게 없었다. 재미있다. 세월이 더 흐르면 이러한 순례자의 모형들이 산티아고 순례길의 또 하나의 문화 콘텐츠가 될 것 같다.
오후 1시 53분, 사설 숙소 앞에 쇠 파이프로 만든 순례자의 형상이 서 있다. 사진= 조해훈
이 건물을 지나자마자 우회전해 순례길로 접어들었다. 바로 산길이다. 또 협곡을 지나는 길 같다. 한 시간 여 전에 거쳐왔던 ‘사모스’ 동네와는 다른 산촌이다. 오후 2시 9분, 집이 몇 채 보인다. 비가 많이 내려 날씨가 여전히 춥다. 길은 비에 젖어 축축했고 집들은 가난한 농가 형태이다. 길은 여전히 산길이다. 길바닥에는 젖은 낙엽들이 뒹굴고 있고 가끔 고목이 험상궂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마을 주민은 고사하고 순례자도 한 명 만나지 못했다. 비가 내려 날씨가 어둑하다. 단풍 든 낙엽으로 아름답기도 하지만 약간의 두려움도 든다. 혹여 짐승이나 들개라도 불쑥 나타나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오후 2시 3분, 비가 여전히 내리는 가운데 협곡 같은 산길이 이어졌다. 사진= 조해훈
오후 2시 28분, 또 나지막한 집 몇 채를 만났다. 주민들이 없어 이제는 기능을 잃어버린 작은 규모의 마을 교회도 있다. 마을을 벗어나니 순례길은 포장도로로 이어졌다. 도로로 올라서자마자 도로 아랫길로 가라는 표석이 있다. 두툼하게 쌓인 낙엽 위에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없다. 그러면 필자보다 먼저 간 순례자들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비가 그치지 않는 늦가을 산길을 혼자 걷는 건 춥고 외로움이 든다. 오후 2시 49분, 필자의 마음을 위로라도 해주는 양 노란색 꽃이 무더기로 핀 나무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나무이다. 우리나라의 명자나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몸과 마음이 좀 지쳐있었는데 꽃에 위안이 된다. 오후 2시 50분, 강 위로 난 크지 않는 시멘트 다리를 건넌다.
오후 2시 49분, 노란색 꽃들을 만나 몸과 마음이 지친 필자는 다소 위안을 받았다. 사진= 조해훈
오후 2시 58분, 콤포스텔라까지 122,561km 남았다는 표석이 있다. 하루에 20km씩 끊어 걸어도 아직 여섯 코스를 더 걸어야 한다. 물론 상황에 따라 한 차례 줄어들 수도 있고, 한 차례 늘어날 수도 있다.
오후 3시 11분, 초지에 소들이 열 마리가량 있다. 초지에 풀을 뜯는 소만 보면 반갑다. 오후 3시 25분, 집이 서너 채 보인다. 오늘 소들이 초지로 이동했는지 길에는 소똥이 많고 소똥 냄새가 진동한다. 800km 가까운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여러 상황을 마주한다. 우리나라에도 “길을 걷다 보면 중도 만나고 소도 만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 집들을 지나 길을 걸으니 오후 3시 54분, 또 앞에 집 서너 채가 있다.
비는 그치지 않는다. 오후 4시 3분, 마을 같은 마을에 들어섰다. 포장된 마을 길에는 비가 내려 길이 맑아 보인다. 한겨울처럼 춥다. 마을을 지나니 아스팔트 도로로 연결되었다. 5분 정도 도로를 따라 걸으니 도로 옆으로 순례길이 나 있다.
오후 5시 17분, 오늘의 목적지인 '사리아'에 들어왔다. 사진= 조해훈
오후 4시 50분, 오른쪽으로 가라는 노란색 화살표가 돌 벤치에 표시돼 있다. 이제 산촌의 느낌이 아니라 도시의 분위기이다. 아니나 다를까, 10분가량 더 걸어가니 저 앞에 도시 같은 동네가 보인다. 오후 5시 14분, ‘Sarria’ 글자가 적힌 표지판이 있다. ‘사리아’로 접어드니 도시의 분위가 물씬 풍겼다. 곳곳에 사설 숙소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리아’는 콤포스텔라에 도착하기 전까지 가장 큰 도시이다. 오후 5시 12분, 삼거리에서 좌회전 하지 말고 직진하라는 표지판이 있다. 삼거리 건물벽에 푸른색의 한 남자 얼굴이 크게 그려져 있다. 오후 5시 29분, ‘사리아’ 지도가 있는 표지판이 있다.
오후 5시 21분, 파란색 사람 얼굴이 있는 삼거리에서 직진한다. 사진= 조해훈
오후 5시 31분, 저 멀리 성당의 첨탑이 보인다. 오늘의 숙소는 저 성당 인근에 있다. 아래로 강이 흐르는 다리를 지난다. 오후 5시 35분, 마침내 사리아 공립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저 멀리 보이는 교회 옆에 ' 사리아' 공립 알베르게가 있다. 오후 5시 35분에 숙소에 도착했다. 사진= 조해훈
사리아는 공식 완주증을 받을 수 있는 마지막 동네이다. 그리하여 전체 순례자의 1/3이 이곳 사리아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생장에서 이곳 사리아까지 걷다 보면 한국 사람이 많다고 느껴지는 건 대부분 생장에서 순례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트리아카스테야에서 사리아까지 25.5km를 걸었다. 생장 피에르 포흐에서 사리아까지는 총 662.2km를 걸었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