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라구나 알베르게에서 출발하기 전 대만 여성 보보(사진 오른쪽에서 두 번째)의 생일을 어제 함께 잔 순례자들이 축하를 해주고 있다.
오늘은 2024년 11월 20일 수요일이다. 아침 7시쯤 일어나 함께 잔 사람들과 8시 안 돼 1층 카페로 모두 내려갔다. 카페에서 각자 커피와 간단한 빵 등을 주문했다. 한국 청년이 “오늘 보보(Bobo)의 생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방금 주인 할머니께 작은 초를 주문했습니다. 빵에 초를 꽂아 축하해주는 게 어떻겠습니까?”라고 했다. 그리하여 모두 그렇게 하자고 했다. 보보는 대만 아가씨이다. 필자를 포함한 순례자들은 빵에 초를 꽂아 손뼉을 치면서 “Happy Birthday to You!” 노래를 불러주었다. 보보는 “감사합니다.”라고 몇 번이나 말했다.
비가 내려 산꼭대기 마을인 '라 라구나'에서 출발하니 운무가 끼어 자욱하다. 사진 = 조해훈
그런 다음 각자 간단하게 아침 요기를 한 후 비옷을 입고 8시 40분쯤 출발했다. 바깥에는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이들이 먼저 출발한 후 필자는 커피를 천천히 마신 후 5분쯤 뒤 배낭을 메고 카페 밖으로 나갔다. 필자는 걸음이 느려 함께 떠나도 어차피 뒤에 쳐질 것을 안다.
바깥은 비로 촉촉이 젖어 있었다. 이틀을 머문 이 산꼭대기 마을을 떠나려니 서운함이 밀려왔다. 카페에 할머니만 계시어 할아버지와 손자에게는 인사도 하지 못하고 떠난다. 부디 이 카페의 식구들이 건강하고 행운이 항상 함께 하길 바란다고 할머니께 말씀드렸다. 카페 아래와 위의 축사에 계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사시길 빌었다. 필자는 원래 쓸데없는 걱정을 많이 하는 편이다. 이 마을의 그 누구도 필자가 이틀간 머물다 떠나도 아쉬워하지 않는데 말이다. 혼자서 ‘마을 노인분들이 돌아가시면 이곳에도 소를 키우지 않아 빈 초지만 덩그러니 남겠지.’라는 등의 걱정 말이다.
비가 내리고 날씨가 추워 털모자가 없었으면 고생했을 뻔 했다. 필자가 셀카로 촬영했다.
다시 주변 풍광을 둘러보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마음이 무거우니 걸음도 조금 무거웠다. 길 아래로는 급경사의 빈 초지이다. 2분가량 걸어가니 시멘트 포장길에서 왼쪽으로 빠져 흙길로 걸으라는 표석(標石)이 있다. 사방이 운무에 갇힌 분위기이다. 저 아래 산비탈에 초지가 많다. 산길은 비가 내려 미끄럽다. 바닥에 돌이 많이 신경이 많이 쓰인다. 날씨가 제법 춥다. 털모자가 없었더라면 추워 고생을 많이 했을 것이다. 필자는 원래 더위는 많이 안 타지만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다.
산길은 구불구불하다. 사람의 말소리는 고사하고 새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필자는 대학 1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산을 많이 탔다. 혼자서도 산행을 많이 하여 어느 길을 걷더라도 낯선 느낌은 많이 들지 않는다. 머릿속으로 대충 길을 예측한다는 것이다. 오늘도 하루 순례길을 출발하면서부터 혼자다. 이제는 작은 마을들의 알베르게는 문을 닫아 가능하면 큰 마을로 가야 한다. 그래야만 숙소가 있다. 그리하여 오늘은 23.5km를 걸어 ‘트리아카스테야(Triacastela)’까지 가야 잠을 잘 수 있다. 카페 두세 곳 들르고 느릿느릿 걸으면 어두워져야 알베르게에 도착할 수 있으리라.
출발한지 1시간쯤 되는 지점에 십자가가 새겨진 비석이 있다. 사진= 조해훈
오전 9시 10분, 길가에 제단 형식으로 된 비석에 빨간 십자가가 새겨져 있다. 비석은 파르스름한 색이다. 십자가 밑에 붉은색으로 ‘갈리시아(Galicia)’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갈리시아는 스페인 북서부 지역을 일컫는다. 갈리시아 지역이라는 표식이 있다는 건 이제 순례길의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가깝다는 말이다.
멀리 운무가 가득히 낀 산 풍경은 한 폭의 수묵화 같다. 오전 9시 32분, 산길 오른편에 축사로 추정되는 건물이 하나 있다. 사용을 하지 않는 건물로 보인다. 오전 9시 37분, 길 왼편의 화단에 청동으로 만든 한 여인이 양손을 아래로 다소곳이 모은 채로 앉아 있다.
출발한지 1시간 30분 되자 한 마을 입구 길가에 청동 여성상이 다소곳이 앉아 있다. 사진= 조해훈
청동상(靑銅像)에서 1분가량 가니 오른편 마을로 접어든다. 집은 몇 채밖에 없다. 신자가 없어 사용을 하지 않는 듯한 자그마한 교회가 있다. 그 앞에 우리나라의 옛 초가집과 닮은 집이 있다. 지붕을 억새로 이어 만든 집이다. 우리나라의 옛 선비들은 이런 집을 한시(漢詩) 등에서 모옥(茅屋)이라고 표현했다. 이 모옥 앞에 돌로 깎아 만든 순례자 형상이 있다. 모옥을 구경한 후 그 옆에 있는 카페에 들어갔다. 오전 9시 40분이다. 다른 손님들이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필자는 메뉴판에 차(茶)가 있어 차를 주문해 마셨다. 카페 건물도 오래된 작은 돌집이다. 카페가 마음에 들었다.
청동 여성상 인근 마을 초입에 우리나라의 초가집과 흡사한 띠집이 있다. 사진= 조해훈
초가 옆 카페에서 차를 한잔 마셨다. 사진은 카페 내부 모습. 사진= 조해훈
오전 10시에 카페를 나왔다. 바깥으로 나오니 철판으로 만든 순례자 형상이 서 있다. 이 순례자 형상에 스티커가 여러 개 붙어 있고, 아랫배에 돌리는 손잡이가 있고, 배 안에 태엽이 있다. 손잡이를 돌리면 배 안의 태엽이 돌아가는 모양이다. 어떤 용도인지는 알 수가 없다. 거기서 몇 발 내려오니 또 모옥이 몇 채 있다. 예전에 이 마을 주민들이 살던 집을 그대로 보존을 해놓은 것 같다. 그 인근 돌집 옆에는 예전에 사용하던 우물도 있다.
마을 아래에 지도가 있는 표지판이 있다. 순례길은 두 갈래이다. 밑으로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가는 길과 위쪽으로 산길을 따라 올라가는 길이 있다. 필자는 오르막길을 택했다. 비포장 오르막이다.
오전 10시 39분, 포장도로를 만났다. 이 도로를 따라 걸었다. 비는 좀 그쳤다. 하지만 하늘은 흐리고 저 멀리에는 아직 운무가 끼어 있다. 오전 11시, 양쪽으로 초지가 쭉 펼쳐져 있다. 오전 11시 8분, 잠시 내리막이다. 집이 몇 채 있고 길가에 트랙터 등 농기계들이 흩어져 있다. ‘리나레스(Linares)’ 마을이다. 교회와 집들을 지난다. 오전 11시 15분, ‘리나레스’ 마을이 끝난다는 표지판이 있고, 순례길은 포장도로에서 그 아래 오른쪽으로 내려서서 가라는 표석이 있다. 표석에는 콤포스텔라까지 156.483km 남았다고 적혀 있다. 승용차를 이용한다면 이 정도 거리는 2시간 정도면 도착한다. 사람들이 “뭣 하러 그 고생하면서 걷나?”라고 말한 게 생각난다.
오른쪽 아래의 시멘트 길을 따라 1, 2분가량 걸었다. 왼쪽 흙길로 올라가라는 노란색 화살표가 시멘트 길에 표시돼 있고, 흙길 올라서는 지점에 전형적인 산티아고 표석이 있다. 좁은 산길이다. 5분가량 걸어 올라가니 길바닥에 온통 아름다운 단풍잎이 깔렸다. 그렇게 흙길을 걸어가니 오전 11시 33분, 도로가 나왔다. 18분 전에 도로에서 흙길로 내려서기 전에 걷던 그 도로였다.
카페에서 나오니 바깥에 배에 테옆이 들어있는 철제품의 순례자 형상이 세워져 있다. 사진= 조해훈
도로 건너편에 제법 큰 청동 인물상이 서 있다. 도로는 좀 내리막이다. 가까이 가 보니 청동 인물상이 있는 장소는 우리나라의 쌈지공원처럼 조성돼 있다. 중세 순례자의 형상으로 보인다. 청동상이 비를 맞아 고독해 보인다. ‘비바람이나 햇볕을 가려주는 돔 형태의 천장이 설치돼 있으면 더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청동상을 설치하고 관리하는 행정관청에서도 다 생각이 있을 터인데, 낯선 외국인 순례자가 걱정하는 건 주제넘은 일이었다.
출발한지 3시간 30분후 청동으로 제작된 큰 순례자상이 비를 맞고 쓸쓸하게 서 있다. 사진= 조해훈
순례길은 청동 인물상에서 다시 도로 건너로 연결돼 있다. 오전 11시 39분, 도로 건너 흙길로 올라섰다. 2, 3분 걸어가니 흙길 양쪽으로 쇤 고사리밭이다. 비를 맞아 그런지 고사리들이 불그스레하였다. 하늘에는 여전히 먹구름이 끼어 있고 길은 저 앞으로 구불구불 이어진다. 나무와 풀들에 가려 그렇지 굽이진 길 저 멀리 마을이 있다. 마을 인근에는 초지에 비가 내려 마치 봄날의 맑은 초록색처럼 멀리서도 눈에 뜨인다. 길가에 이어져 있는 불그스레한 고사리밭들과 색상이 잘 어울려 돋보인다.
이 마을의 주민들이 예전에 살았던 초가집이 보존돼 있다. 사진= 조해훈
흙길은 다시 도로를 따라 쭉 나 있다. 낮 12시 6분, 마을 입구에 ‘호스피탈’(Hospital)이라는 표지판이 있다. 마을에는 오래된 돌집도 있고, 시멘트로 지은 집이 섞여 있다. 마을 길의 축담도 돌로 쌓았는데, 석축 양식을 보니 최근의 것으로 보인다. 돌로 쌓아 역사가 오래돼 보이는 교회는 사용을 하지 않는 것 같다. 마을의 규모가 작다. 5분 후에 마을을 벗어나니 흙길이다. 그리고 길은 바로 도로 옆으로 이어진다.
낮 12시 26분, 초지들이 펼쳐진 풍광이 연이어 있다. 사진= 조해훈
낮 12시 26분, 길 오른쪽으로 경계가 있는 초지들이 산등성이 이곳저곳에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지금처럼 시골의 주민들이 줄어들기 전에는 초지마다 소들이 많았을 것이다. 소들이 몇 군데의 초지에 풀을 뜯든지 그건 필자가 걱정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지만 저 자체가 그림이다. 우리나라 지형에는 없는 모습이다. 길에 ‘사부고스’(Sabugos)까지 1.5km, ‘템플’(Temple)까지 3km 남았다는 표지가 가리키는 길로 계속 걷는다. 좀 전에 오면서 봤던 초지들이 또 전개돼 있다. ‘초록색의 초지가 저토록 아름다울 수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낮 12시 31분, 가던 길에서 왼쪽 길로 접어들어 가라는 표석이 있다. 산길은 만추를 넘어 초겨울로 가는 분위기이다. 나무는 벌거숭이이다. 길가에는 초록색 풀이 있는가 하면, 다 떨어질 듯한 나무의 누런 잎이 있다. 그리고 불그스레한 고사리들이 있어 색의 조화 또한 아름답다. 필자는 이국(異國)인 스페인 북서부지역의 이런 호젓한 산길을 걸으면서 계절이 주는 이런 감동까지 느끼니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게다가 길바닥에는 붉은 단풍잎이 깔려 있다.
순례길은 만추에서 초겨울로 넘어가는 풍경이다. 사진= 조해훈
낮 12시 42분, 또 다른 길을 만난다. 임도인지, 마을로 들어가는 길인지 알 수는 없으나 아스콘 포장이 되어 있다. 1분 뒤 표석이 있다. 이곳에는 산티아고까지 152.147km 남았다는 글자가 있다. 화살표 아래에 글자를 청동판으로 새겨 박아놓았다. 표석 맨 아래에는 ‘갈리시아’(Galicia) 글자가 새겨져 있어 이 지역이 갈리시아 지방임을 알려주고 있다.
여기서 3분 걸어가니 돌로 지은 집이 한 채 있다. 주인아주머니가 왼쪽 문 안의 벽난로에 불을 지피고 있다. 그 집을 지나 또 구불거리는 산길을 따라 걸었다. 왼쪽은 나무가 많은 구릉이고 오른쪽 아래로는 역시 초지다. 아무래도 이 지역은 소를 키우는 집들이 좀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낮 12시 50분, 돌을 쌓아 건축한 조그만 마을 교회가 있다. 교회를 지나니 집이 한 채씩 나타난다. 집과 길은 비를 맞아 축축하다. 굽이진 마을 길이 안개가 끼어 흐릿한 저 앞으로 꿈틀거리며 들어가는 착각이 든다.
오후 1시 고갯마루 너머로는 우중충한 하늘만 보인다. 사진= 조해훈
오후 1시, 양쪽으로 작은 언덕을 낀 고갯길이 앞에 떡하니 있다. 언덕 사이로는 흐릿한 하늘만 보인다. 고개를 넘자마자 다행히도 자그마한 바(Bar)가 있는 게 아닌가. 너무 반가웠다. 알베르게를 겸하고 있었다. 바 이름은 ‘에스트레야 갈리시아’(Estrella Galicia)였다. 들어가니 크지 않은 홀의 벽난로 앞에서 어제 ‘라 라구나’ 마을의 알베르게에서 함께 묵었던 우리나라 아가씨와 중국 아가씨인 장시우(張詩雨·31) 씨가 몸을 녹이며 쉬고 있었다. 각각 혼자 산티아고 순례길을 시작한 두 사람은 피레네산맥을 넘으면서 알게 돼 지금까지 동행을 한다고 했다. 우리나라 아가씨는 서울에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이직하려는 기간에 순례길을 걸으러 왔고, 중국인 장시우 씨는 한국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4년간 한국에서 직장을 다닌 사람이었다.
필자는 커피 한잔을 마시며 30분가량 쉬다가 카페에서 일어섰다. 아가씨들은 필자보다 먼저 출발했다. 카페 앞 도로를 따라 걷는다. 여전히 안개가 자욱했다.
오후 2시 57분, 소몰이 개가 왔다갔다하면서 도로를 따라 걸어온 소들을 위쪽 초지로 올려보내고 있다. 사진= 조해훈
오후 1시 40분, 도로 옆으로 순례길이 나 있다. 오후 2시 27분, 축사가 있다. 축사 앞에는 트럭과 트랙터 한 대가 세워져 있다. 큰 개가 다가왔다. 셰퍼드처럼 생겼는데 덩치가 아주 컸다. 필자는 겁이 나 걷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그러자 개는 필자의 옷을 핥았다. 순한 개였다. 아마 소몰이 개인 모양이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니 따라오면서 “컹! 컹!” 짖는다.
개가 더 이상 따라오지 않자 겁이 나 빨리 걸었다. 마을 길을 1분 걸어가니 산티아고 표석이 있다. 149.009km 남았다고 새겨져 있다. 표석에서 3분을 더 가니 ‘알베르게 아 헤볼레이’(Albergue A Reboleira)라는 이름의 알베르게가 있다. 24시간 약도 판다고 적혀 있다. 오후 2시 35분, 마을 끝부분에 돌로 지은 작은 예배당 같은 교회가 있다. 건물이 퇴색한 것을 볼 때 신자가 없어 사용을 하지 않는 교회로 추측된다.
오후 3시 10분, 오래되고 아주 작은 교회가 있다. 사진= 조해훈
오후 2시 37분, 마을을 벗어난다. 몇 가구 되지 않는 이 작은 마을에도 살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인다. 주민은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다른 순례자처럼 그냥 산티아고 길을 부지런히 걸으면 되는데 필자는 잡생각이 너무 많다. 산길로 접어드는데 소똥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순례자들 외엔 발걸음하지 않는 지대가 높은 마을이지 않은가. 소똥을 보니 ‘그래도 사람이 사는 곳이구나.’라는 안도감(?)이 들어 다행이다 싶었다.
지금이 순례 기간의 끝무렵이고 오지여서 사람을 만날 수 없다. 순례자들마저 숙소 문제와 추워지는 날씨를 고려해 빨리 걸어가고 없어 필자는 쌀쌀한 날씨 속에 외로움이 번져왔다. 중세 때 순례자들은 마을을 만나지 못하면 풍찬노숙(風餐露宿)했을 것이다. 그걸 생각하면 지금 시대에 산티아고 길을 걷는 건 복 받았다는 생각이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지정된 길이어서 곳곳에 순례자들을 위한 알베르게와 카페 등을 만들어 최대한 순례자들을 위한 편의시설 등을 만들어놓았으니 말이다.
날씨가 추워지는데 오르막이 이어진다. 오후 2시 55분, 도로로 올라섰다. 그런데 재미있는 풍광이 연출되었다. 도로 저 앞에서 소들이 몰려와 필자가 선 지점의 도로 건너편 초지로 올라가고 있다. 소몰이 개가 도로에 서서 왔다 갔다 하며 초지로 올라가라고 짖으며 안내하고 있다. 필자는 태어나서 소몰이 개의 이런 모습을 처음 본다. 주인아저씨는 맨 뒤에서 소를 몰고 오신다.
이런 모습이 목가적으로 보일지는 모르나 필자의 눈에는 주인아저씨의 고단함이 느껴진다. 60대 중반 필자의 나이도 나이지만, 세상이라는 게 그저 살아가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세상은 노력하고 애쓰지 않는 사람에겐 결코 무엇을 그저 가져다 주지 않는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것이다.
소들의 주인아저씨에게 필자는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그러자 주인아저씨도 막대기를 들고 소들 뒤를 따르면서 필자에게 “부엔 카미노!”라고 인사를 해주셨다. 주인아저씨와 간단한 인사 한마디만 한 것뿐이지만 필자는 힘이 생겼다. 주인아저씨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오후 3시 13분, 초지에 말 한 마리와 양 네 마리가 풀을 뜯고 있다. 사진= 조해훈
소들이 다 지나가는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본 후 필자는 도로 옆 순례길을 따랐다. 오후 3시, 길옆 한 초지에 소들이 풀을 뜯고 있다. 하늘은 아직 흐리고 우중충하다. 오후 3시 9분, 또 마을이 나타났다. 첫 집이 개인이 운영하는 사설 숙소다. 오후 3시 10분, 길옆의 한 집 뜰에 밭을 갈 때 사용하던 쟁기(?)인지 알 수 없는 철제품이 전시돼 있는데 자그마한 톱니바퀴가 달려 있다. 거기서 몇 걸음 앞에 정말 작은 예배당이 있다. 그만큼 마을 규모가 작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어느 마을이든 교회 규모를 보면 그 마을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이 작은 교회의 지붕이 얇은 돌판이다. 그만큼 교회 역사가 오래됐음을 증명한다.
오후 3시 13분, 교회를 지나 마을을 벗어나니 초지에 말 한 마리와 양 네 마리가 풀을 뜯는다. 이 풍광만 보면 목가적이다. 산길을 따라 올라간다. 오른쪽에 펼쳐진 저 많은 초지에는 소가 한 마리도 없다. 스페인 정부에서 초지와 집, 그리고 소 몇 마리를 주면서 외국인에게 “여기 와서 사세요.”라고 한다면 올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런 조건이라면 필자는 “좀 고민을 해보겠노라.”라고 자문자답(自問自答)한다.
오후 3시 52분, 길가에 억새로 지붕을 인 창고가 있다. 사진= 조해훈
오후 3시 50분, ‘필로발’(Fillobal) 마을 입구에 들어섰다. 낡은 마을 표지판이 있다. 마을 길에 역시 소똥이 흩어져 있고 소들이 지금으로부터 얼마 멀지 않은 때에 이동하면서 똥을 쌌는지 냄새가 많이 난다.
오후 3시 52분, 길옆에 조그만 공원이 있다. 거기에 창고로 보이는 독특한 건물이 있다. 지붕을 억새로 엮었다. 지붕 색깔로 볼 때 금방 엮지는 않았다. 벽체는 나무판으로 되어 있다. 아마 규모는 작지만 오래된 양식의 건물이어서 순례자들이 지나면서 볼 수 있도록 주변능 꾸며놓은 것으로 추측된다. 그곳을 지나니 자그마한 다리 아래로 계곡이 흐른다. 다시 초지가 양옆으로 있는 산길을 걸었다.
오후 4시 11분, 왼쪽에 고목이 있고 그 앞에 사람이 살지 않는 2층 돌집이 있다. 맞은편에는 그다지 오래되지 않은 시멘트 단층집도 있다. 오후 4시 31분, 오른쪽에 좀 전보다 더 나이가 많아 보이는 고목이 서 있고, 그 옆으로 돌집 몇 채가 있다.
오후 4시 31분, 오늘의 도착지인 '트리아카스테야' 마을 초입에 큰 고목이 서있다. 사진= 조해훈
오후 5시 18분, 마을을 거쳐 내려가니 마침내 공립 알베르게가 보인다. 길 왼쪽으로 초지가 있고 그 아래에 단층으로 된 돌집이 두 채 있다. 먼저 있는 돌집은 알베르게 직원들이 이용하는 공간이고, 두 번째 돌집이 알베르게이다. 두 채 모두 입구에 파란색 현관이다. ‘트리아카스테야’마을이다. 안내 창구에서 일을 보는 아주머니께 접수하고 방에 들어갔다. 방에는 젊은 외국인 남자 한 사람뿐이다. 그러니까 오늘 알베르게에 묵을 순례자는 필자를 포함해 두 명이다.
아주머니에게 “저녁 먹을 만한 카페나 바가 있을까요?”라며 물으니, “저 앞쪽 길에서 아래로 조금만 내려가면 카페가 있어요.”라고 알려주었다. 카페에 들어가니 어제 ‘라 라구나’ 알베르게에 함께 묵었던 대만 여성인 보보가 식사하고 있었다. 필자는 밀크커피와 빵 하나를 주문했다.
오후 5시 20분, 오늘 묵을 '트리아카스테야' 공립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왼쪽 건물이 숙소. 사진= 조해훈
필자가 보보에게 “어디에 숙소를 잡았습니까?”라고 물으니, “이 카페에서 조금만 아래로 가면 사설 알베르게가 있는데 그곳에 묵을 겁니다.”라고 했다. 보보와 잠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영어 발음이 좋고 유창했다. 직업은 디자이너라고 한다. 보보가 먼저 카페를 나간 뒤 필자는 카페 주인아주머니에게 “카페 몇 시에 문 닫습니까?”라고 물었다. 주인아주머니는 “밤 9시까지 영업합니다.”라고 답했다. 그리하여 필자는 카페 문을 닫을 때까지 가져간 노트북으로 글을 쓰다 알베르게로 돌아와 씻고 잠을 잤다.
오늘 순례길은 필자의 걸음으로 8시간 20분가량 소요됐다. 걸은 구간은 ‘라 라구나’에서 ‘트리아카스테야까지 23.5km이다. 오늘 순례길은 최저 해발 663m에서 최고 해발 1,337m였다. 생장에서는 총 636.8km 걸었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