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아 공립 알베르게에서 나와 인근 카페에서 '카미노 아침식사'를 주문했는데, 주인 할아버지께서 계란 프라이를 무려 세 개나 주셨다. 사진= 조해훈
오늘은 2024년 11월 22일 금요일이다. 사리아(Sarria) 공립 알베르게에 숙박한 사람이 거의 없어서인지 아침에 어정거리며 늦게 출발했다. 함께 잔 미국 청년도 마찬가지였다. 필자는 오전 8시 40분에 알베르게에서 나왔다.
사리아는 갈리시아의 프랑스 길(French Way)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13,700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이 도시는 13세기 알폰소 9세에 의해 순례자들을 위한 병원과 수도원이 세워지면서 활성화되었다.
이 도시에서부터 순례자가 많아진다. 그 이유는 이 도시에서부터 콤포스텔라까지 걸으면 정식 완주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100km 이상 걸으면 완주증을 받는데, 여기서 콤포스텔라까지는 114km이다. 순례자 여권(Credencial del Peregrino)을 받을 수 있는 곳은 공립 알베르게 외에도 ‘산타 마리아 성당’(Lglesia de Santa Maria de Sarria), ‘페레그리노테가’(Peregrinoteca.com) 혹은 ‘카페테리아 폴로(Cafeteria Polo)’, ‘사리아 계단’(A Escaleira da Fonte en Sarria) 옆 ‘에스까리나타 호텔 및 카페’(Pension Escalinata)에서 발급받을 수 있다.
순례길은 사리아 구시가지 쪽으로 나 있다. 알베르게에서 나와 우회전해야 한다. 2, 3분 걸어가니 카페가 있다. 들어가니 할아버지께서 운영하신다. 메뉴에 카미노 아침 식사가 있다. 12유로이다. ‘잘 됐다’ 싶어 카미노 식사를 주문했다. 오전 9시 6분, 할아버지께서 만든 음식이 나왔다. 세상에! 필자가 불쌍해 보이셨는지 계란 프라이를 세 개나 해주셨다. 스테이크와 빵 한 조각도 있었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한 뒤 정말 맛있게 먹었다. 배가 너무 든든했다. 할아버지께서 정이 무척 많아 보였다. 마을 어르신들이 들어오시어 커피를 마시며 주인 할아버지와 함께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셨다. ‘아, 이분들이 저처럼 건강하신 게 낙천적인 삶을 살기 때문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 사리아 구시가지 순례길에 카미노의 상징인 조개껍질만 파는 가게가 있다. 사진= 조해훈
카페 분위기가 좋아 더 앉아 있고 싶으나 갈 길이 멀어 오전 9시 53분, 카페에서 나왔다. 구시가지 길은 산복도로처럼 도시 전체에서 높은 곳에 있다. 건물들이 깔끔하다. 오전 9시 56분, 길 오른쪽에 교회가 있다. 2분가량 더 걸어가니 산티아고를 상징하는 조개껍데기만 파는 가게가 있다. 많은 조개껍데기가 가게 안에 전시되어 있는데 아직 오픈하지 않았다. 그냥 조개껍데기가 아니라 붉은 십자가가 그려져 있다.
사리아 구시가지 주택가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조용하면서 심플하다. 사진= 조해훈
그 가게를 지나 2, 3층의 주택가 사이의 골목을 걷는다. 주택들이 단순한 형태이면서도 튀지 않고 마치 무미건조한 느낌이랄까? 우리나라의 경우 주택가라도 뭔가 요란한 것 같으면서도 어수선한 느낌이다. 이곳은 그냥 남들에게 피해주지 않으면서도 조용히 사는 사람들의 동네 같다고나 할까?
구시가지 길가에 글자 등을 쓴 색색의 나무판들이 벽에 붙어있다. 아래에 우리나라 태극기도 그려져 있다. 사진 = 조해훈
여하튼 주택가 사이의 약간 오르막길을 걸었다. 오전 10시 2분, 색색의 나무판자에 여러 글과 몇 개 나라의 국기가 그려져 있다. 그 나무판자들 아래쪽에 우리나라 태극기가 그려져 있다. 이 도시 ‘사리아’에서부터 순례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아 순례자들을 위한 각종 표식 등이 지금까지의 루트보다 더 많다고들 한다. 이 색색의 나무판자들도 그런 용도로 세워져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이 나무판자들 앞에서 서서 보고 있는 사이 자전거로 순례를 하는 사람이 필자의 뒤를 스쳐 지나간다.
구 시가지에 이 도시의 이름인 'Sarria'라는 흰 글자가 세워져 있다. 사진= 조해훈
1분 정도 더 걸어가니 오른쪽 큰 건물 아래 담장에 흰색으로 ‘Sarria’라는 글자가 크게 붙어 있다. 그 글자를 지나니 순례길은 왼쪽에 성벽 같은 큰 돌담을 끼고 약간 우회해 이어진다. 지대가 높다. 오전 10시 6분, 길옆에 ‘Sarria’란 글자가 새겨져 있고 이곳의 문양이 모자이크처럼 돼 있는 네모난 비석이 있다. 그 인근에는 기단이 있는 돌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종교적인 이유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은 전체의 42%라고 한다. 이처럼 종교적인 차원에서 걷는 순례자들은 대개 십자가 앞에서 성호(聖號)를 긋는다.
구시가지의 끄트머리에 돌로 만든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사진= 조해훈
안개가 자욱하다. 오전 10시 12분, 안개 속에 교회가 있고, 차들이 주차돼 있다. 교회 인근 3층 건물에는 독특한 휘장이 붙어 있다. 위쪽에는 철제 왕관이 있고 그 아래에는 아마 이 도시의 상징인 듯한 문양이 있다. 그 문양 아래에 성직자와 주민들이 문양을 받들고 있는 모습이다. 그 옆에 공동묘지가 있다.
구시가지 끄터머리에 있는 교회 옆에 독특한 휘장이 붙은 3층짜리 건물이 있다. 사진= 조해훈
거기서 7, 8분 더 걸어 강 위에 있는 다리를 건너야 한다. 다리를 건너면 철길이 나온다. 철길 옆으로 난 길을 10분가량 걸으면 건널목이 있다. 마침 한 순례자가 건널목을 건너고 있다. 건널목을 건너 철길 아래로 난 흙길을 걷는다, 오전 10시 38분, 작은 개울 위에 난 나무다리를 건넌 후 철길 아래의 작은 터널을 통과한다. 그런 다음 약간 오르막인 산길을 따라 걸어야 한다.
구 시가지를 벗어나자 철길 옆으로 순례길이 이어졌다. 사진= 조해훈
2, 3분 후 뿌리에서 하늘을 보고 세 개의 굵은 가지가 치솟은 형태의 고목이 있다. 순례자들이 이 고목의 빈 부분에 자신들의 소지품을 몇 개 올려놓았다. 길바닥이 축축하다. 오전 10시 54분, 표석이 있다. 콤포스텔라까지 111.571km 남았다고 적혀 있다. 이 표석을 지나면 평탄한 들길이다. 그 사이 하늘이 맑아져 잉크 빛을 띠고 있고, 들판은 봄이나 여름인 듯 풀들이 초록빛이다. 하늘이 아름답고 평탄한 길인 데다 주변 풍광도 좋으니 기분 또한 덩달아 좋다. 그런데 지금 시기가 순례 하기에는 늦어서인지 좀 전에 철길 건너면서 만났던 순례자 외에는 한 사람도 없다. 그분도 옷차림 등으로 볼 때 이곳 ‘사리아’에서부터 단체로 걷는 것 같았다. 아마 일행들보다 뒤에 걷는 느낌이었다.
한 순례자가 철길 건너 만난 개울 위 자그마한 나무 다리를 건너고 있다. 사진= 조해훈
개울을 건너 오르막 산길을 걸으니 신기한 형태의 고목이 있다. 사진= 조해훈
목가적인 풍경은 계속 이어졌다. 오전 11시 8분, 저 앞에 마을이 보인다. 마을 입구에 ‘빌레이’(Vilei)라는 이름이 바위에 동판으로 붙어 있다. 산티아고 순례자 문양이 들어있는 이 동판은 2009년에 만들었다고 적혀 있다. 마침 주민 한 분이 산책 나오다가 필자와 인사를 나누었는데, 고맙게도 필자를 동판 옆에 서게 한 뒤 사진을 한 장 찍어주셨다.
오전 10시 54분, 하늘은 잉크색이고 들판은 초록의 초지가 펼쳐져 있어 목가적인 분위기이다. 사진= 조해훈
마을은 크지 않았다. 오전 11시 16분, 마을을 지나니 순례길은 아스콘으로 포장이 돼 있다. 3분 뒤 갈림길 나온다. 왼쪽 길로 가면 ‘수히바’(Surriba)로 가는 길이다. 순례길은 오른쪽 길이다. 오전 11시 38분, 포장도로에서 왼쪽 흙길로 접어든다. 표석이 있다. 흙길로 접어들자 바로 왼편 초지에 소들이 풀을 뜯어 먹고 있다. 하늘은 맑고 초록색 초지 위에서 소들이 풀을 뜯고 있으니 그림 같은 풍경이다.
오전 11시 39분, 초지에 소들이 풀을 뜯고 있다. 사진= 조해훈
오전 11시 11분, 미을 주민이 '빌레이'(Vilei)라는 이름이 바위에 새겨진 동판 앞에서 필자의 사진을 찍어주셨다. 사진= 조해훈
여기서 3분가량 걸어가니 집 서너 채가 있다. 마을 길에는 소똥 냄새가 진동한다. 좀 전에 초지에서 풀을 뜯고 있는 소들을 키우는 집과 축사인 것 같다. 그곳을 벗어나니 아스콘 포장길이다가 다시 흙길로 이어졌다. 흙길 좌우로 나무들이 많다. 낮 12시 2분, 길에 차량과 인부 몇 분이 일을 하고 있다. 무슨 공사를 하는 모양이다. 공사지점을 지나 3분가량 걸으니 독특한 기단이 있다. 기단 아래 쳐놓은 철제 울타리에 산티아고 문양이 몇 개 장식돼 있다. 그리고 울타리 안에 기단을 쌓고 사각형 돌을 올려놓았는데, 사각형 돌에 철판이 붙어 있다. 철판에 산티아고 문양이 새겨져 있다. 아마 이 길이 산티아고 순례길임을 강조하려고 조각작품을 설치해 놓은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낮12시 19분 순례길은 구릉 사이로 이어졌다. 사진 = 조해훈
흙길은 이어지고, 햇살이 잘 든다. 길 오른편은 큰 나무들이 있고, 왼편은 초지다. 낮 12시 17분, 산티아고까지 106.858km 남았다는 표석이 있다. 7분 정도 더 걸어가니 저 앞에 이층집이 보인다. 집 뒤 구릉에는 키 큰 풍력발전기가 돌아가고 있다. 뒤에서 빠른 걸음으로 순례자 두 사람이 필자를 스쳐 지나간다. 표정과 옷차림으로 보아 ‘사리아’에서부터 걷는 사람들로 보인다. 앞에 횡으로 지나는 도로를 건너 걸어가야 한다. 도로를 건너 걸어가니 초지가 햇빛을 받아 빛이 나고 더 아름답게 보인다.
낮 12시 25분, 순례자 두 사람이 필자를 스쳐 지나간다. 사진= 조해훈
낮 12시 42분, 왼편에 집이 한 채 있다. 거기를 지나니 산속 길처럼 나무가 우거지고 길 양쪽에 언덕이 있다. ‘아, 햇살과 풍광이 좋은 이곳에 나무 벤치가 하나 있으면 잠시 쉬면서 힐링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햇빛을 받아 초지에 빛이 난다. 사진= 조해훈
낮 12시 52분, 갈림길이 나오고 그 앞에 또 표석이 있다. ‘왼쪽 길로 가라’고 가리킨다. 길은 여전히 아름답다. 큰 나무들이 햇빛을 어느 정도 가려준다. 10분 정도 더 걸어가니 또 전형적인 산촌이다. 흙길은 약간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저 앞으로는 각각의 초지가 경계를 지으면서 펼쳐져 있다. 이쪽으로 오는 동안 길이 더 아름다워 보인 건 나무에 아직 잎이 제법 있기 때문이다.
낮 12시 41분, 또 다른 초지에서 소들이 풀을 뜯고 있다. 사진= 조해훈
오후 1시 21분, 길옆 초지에 젖소들이 풀을 뜯고 있다. 계절이 섞여 있는 느낌이다. 나무의 이파리들은 푸르다. 길가 풀과 초지도 파랗다. 다시 들판 길이다. ‘순례자들이 이 길을 걸어갔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들이 다닌 흔적은 있는데 순례자들이 다닌 흔적을 별로 느끼지 못하겠다. 오후 1시 27분, 왼편에 집이 한 채 있다. 사람이 없더라도 이렇게 집이 간간이 있으면 덜 심심하다. 저 앞에 집이 두세 채 더 있다. 문을 연 카페가 있으면 좋겠다. 아침에 계란 프라이를 세 개나 먹어 배는 그다지 고프지 않으나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좀 쉬고 싶어서다. 4시간가량을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은 채 쉬지 않고 걷고 있다.
이 지역엔 나무에 아직 잎이 많다. 사진= 조해훈
집들을 지나니 또 그림 같은 풍경이다. 하늘은 화창한 데다 길 양옆으로 야트막한 돌담이 있고, 그 안쪽으로는 초지가 펼쳐져 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라는 유행가 가사가 떠올랐다. 넓은 초지에 소들이 풀을 뜯고 있다. 큰 도시인 콤포스텔라에 가까워질수록 소를 키우는 집들이 늘어가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오후 1시 37분, 또 축사로 보이는 건물이 세 채 정도 나타났다. 길에는 소들이 이동하면서 배설한 소똥이 많이 흩어져 있다.
오후 1시 30분, 순례길은 여전히 아름답고 낭만적으로 느꺼진다. 사진= 조해훈
오후 1시 38분, 한 건물벽에 흰 바탕에 예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애니메이션 ‘스누피’는 아닌데, 독특한 문양으로 순례자를 표현하고 있다. 머리는 파란색이고 몸체는 빨간 삼각형이다. 흰 바탕색 끝 네 군데는 산티아고 문양인 조개껍질을 붙여 놓았다. 지친 순례자들에게 위안을 주려고 그려놓은 것 같다.
넓은 초지와 풀을 뜯는 소와 하늘이 인상적이다. 사진= 조해훈
이 그림에서 1분가량 걸으니 아주 작은 예배당 같은 건물이 있다. 돌을 쌓아 만들었다. 건물 위에는 십자가가 있다. 안에 들여다보니 기도하는 공간인 것 같다. ‘아, 순례자들이 지나면서 기도하는 곳이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수님 그림도 있고, 순례자들이 소지품을 하나씩 두어 제법 쌓여 있다. 대들보에는 성모님 그림인지 걸려 있다. 흰 벽체에는 순례자들이 낙서를 해놓았다. 그런데 실내에 의자가 없다. ‘벤치라도 하나 있으면 앉아 좀 쉬면 좋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밖으로 나와 다시 길을 걸었다. 오늘따라 길이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배가 슬슬 고픈 데다 쉬지를 못해서 더 그런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다. 날씨는 너무나도 쾌청하고 좋았다. 길바닥에는 낙엽이 많아 밟으면 푹신하다. 길 양옆은 구릉이다.
오후 1시 38분, 한 건물벽에 재미있는 순례자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사진= 조해훈
오후 2시 7분, 마침내 레스토랑 간판이 붙은 작은 돌집이 있으나 문이 잠겨 있다. 하지만 앞에 나무 식탁이 있어 배낭을 벗고 잠시 쉬었다. 커피를 마실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래도 앉을 수 있으니 다행이었다. 5분 가까이 쉬면서 간단한 스트레칭을 한 후 다시 길을 나섰다. 거기서 300m가량 길을 따라 내려가니 작은 바(Bar)가 있는 게 아닌가. 반가워 들어갔다. 커피와 빵을 한 개 주문하고 앉아 있으니 ‘라 라구나’에서 하룻밤 함께 묵었던 우리나라 아가씨 한 명과 중국 아가씨 장시우 양이 들어왔다. 반가웠다. 두 사람은 각자 와 피레네산맥을 넘으면서 만나 도반이 되었다고 했다. 필자는 먹는 것이 느린 편이지만 엉덩이가 무거워 한 번 앉으면 금방 일어나지를 못한다. 두 아가씨는 금방 먹고는 바를 나갔다. 필자는 커피를 마시며 충분히 휴식한 후 오후 3시 23분에 바를 나왔다. 45분가량 바에 앉아 있었다.
오후 1시 49분, 자그마한 기도처 안에 순례자들이 기도 후 각자의 소지품을 올려놓았다. 사진= 조해훈
바에서 나오니 50m가량 아래에 교회가 있다. 들판 길을 10분가량 더 걸으니 작은 마을이 있다. 길가에 독특하고 재미있는 표식이 있다. 철로 만든 순례자의 문양이 있고 그 앞에 ‘M 100’이라는 글자가 역시 철로 크게 세워져 있다. 그러니까 순례자 모형은 영어의 ‘K’자다. 그러니까 ‘100KM’라는 글자다. ‘콤포스텔라까지 100km 남았다’라는 표식이다. 그 글자 아래에는 ‘CASA do REGO’(카사 도 레고)라고 적혀 있다. ‘아, 이제 100km 남았구나’라는 생각이 드니 다소 위안이 되었다. 다시 산길 같은 들길을 걷는다.
오후 1시 49분, 구릉 사이로 안 순례길에 낙엽이 많이 쌓여있다. 사진= 조해훈
오후 5시 15분, 돌로 지은 집 서너 채를 지난다. 20분 뒤 저 초지 위로 석양이 내려앉는다. 2분 더 걸어가니 길에 노인 한 분과 언덕 위의 노인 한 분이 이야기를 나누고 계신다. 20여 분 더 걸으니 오른쪽 아래에 큰 강이 흐른다. 미뇨강(Mino river)이다. 미뇨강 너머 언덕 위에 큰 동네가 보인다. 긴 다리를 건넜다. 강폭이 아주 넓다. 다리를 건너 언덕으로 올라 공립 알베르게를 찾아갔다. 언덕 위 알베르게로 가는 길에 상가가 많다. 카페도 몇 개 있어 ‘내일 아침에 어느 한 곳이라도 문을 열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가 길에 역사가 오래 돼 보이는 교회가 있다. 오후 6시 6분, 마침내 오늘의 목적지인 ‘포르토마린’(Portomarin) 공립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알베르게는 지은 지 오래되지 않은 단층 건물이다.
오후 2시 넘어 문 닫은 카페 앞에 배낭을 내려놓고 잠시 쉬었다. 사진= 조해훈
문 닫은 카페서 쉬었다 300m쯤 내려가니 조그만 바(Bar)가 있어 들어가 커피와 빵으로 점심을 먹었다. 사진= 조해훈
오후 3시 36분, 길가 건물 앞에 콤포스텔라까지 100km 남았다고 알려주는 독특한 글자 문양이 있다. 사진= 조해훈
순례길은 마치 계절이 섞여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사진= 조해훈
오후 5시가 넘자 석양이 초지 위로 떨어지고 있다. 사진= 조해훈
넓은 미뇨강 다리 건너 언덕 위에 오늘의 목적지인 '포르토마린' 마을이 있다. 사진= 조해훈
알베르게 앞에서 오후에 바에서 만난 우리나라 아가씨와 중국 아가씨 장시우 양을 만났다. 이들을 따라 카미노 메뉴가 되는 식당에 갔다. 역시 ‘라 라구나’에서 함께 잤던 대만 아가씨 보보와 우리나라 청년 한 명을 만났다. 필자까지 다섯 명 모두 산꼭대기 마을인 ‘라 라구나’ 알베르게에서 하루 잤던 동양인들이다. 이 식당에서 1인당 12유로인 저녁 식사를 하였다. 옆 테이블에 앉은 한 아저씨가 우리 일행에게 말을 걸어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함께 웃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하루의 피로가 다 풀리었다. 밤 10시가 다 돼 숙소로 와 잠을 청했다.
'포르토마린'의 공립 알베르게에 도착해 짐을 푼 뒤 인근 식당에서 '라 라구나' 산꼭대기 알베르게에서 함께 잤던 우리나라 사람 등 동양인들과 저녁을 먹으며 건배를 하고 있다. 사진= 식당 주인아저씨
오늘은 사리아(Sarria)에서 포르토마린(Portomarin)까지 22.3km를 걸었다. 생장에서는 총 684.6km를 걸었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