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곳에서
남녀끼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되는
물권색
物權色
<물권색 이야기를 서로 나누는 저곳의 다섯 공리公理 axiom>
1. 일찍 들어오고 늦게 들어오고 선후배 없이 다 똑같은 동등한 존재다. 존대말 없이 서로 말을 터도 된다.
2. 살아생전에 언제 어디서 살았던 다른 지역에 대해 대충은 안다. 시공간 초월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이유다.
3. 이승에서의 집착을 다 비워 버려야 하지만 아직 미련이 있다. 물권색 욕망이 강한 인간의 관성 때문이다.
4. 한 방에서 이성끼리 대화하다 방이 바뀌며 이성 상대가 바뀐다. 덕분에 저곳에서의 생기가 은근히 살아난다.
5. 저곳에서 어떻게 생활하느냐에 따라 최종 정착지가 정해진다. 그러니 저곳은 중간 경유지가 된다.
36. 기백과 해아
한 나라의 존엄한 국왕이었던 날보고 악마라던데
나한테 충성한다며 아래 것들이 악마같은 짓을 한 거지
난 그다지 나쁜 짓 한 적이 별로 없는 거같은데.
내가 흑인노예들을 수백만명이나 죽인 도살자라던데
난 내 손으로 직접 끔찍한 짓을 벌이지 않았어.
히틀러도 스탈린도 폴포트도 자기가 직접 죽이진 않았지.
다 아래 것들 부하들이 충성하듯 알아서 죽였지.
그러니까 간접학살한 그들 처지도 나랑 비슷하다면 비슷해.
어! 말하다 보니 말이 헛나왔네. 이상하게 꼬이네.
내가 히틀러 스탈린 폴포트랑 나랑 비슷하다고?
아니야! 그건 아니야. 위에 한 말 취소!
그 악랄한 놈들이랑 나랑 같다니 내 뭔 헛소리야.
난 국왕이었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다스리던
직영 고무 농장을 통해 막대한 부를 챙겼지.
그 돈으로 젊은 많은 여인들을 거느리기도 했지만
우리나라에 멋진 건축물들을 많이 지은 건축왕이었어.
우리나라가 초코렛의 나라가 된 것도 다 내 덕분이야.
그런 나보고 도살자라니, 최악의 학살악마라니.
기백이 난 거기 한 번도 가본 적도 없는데.
내가 직접 저지른 짓은 아니지만 사람들을 죽게 했으니
히틀러 스탈린 폴포트처럼 내가 학살악마인 게 맞나?
虐
殺
惡
魔
30여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 출현 이래
천억 명이 살아온 지구 이 세상에서
나만큼 불쌍한 가련한 년이 또 어디 있을까?
중학생이었던 어린 딸을 병으로 잃고나서도
나는 치열하게 내 삶을 열심히도 살았어.
샌님 같은 남편을 제2의 권력자로까지 키웠어.
권력이란 게 참으로 웃기는 요물같은 거야.
그다지도 사람좋던 남편도 권력에 흠뻑 빠져들더군.
권력탐욕은 더 큰 권력탐욕을 불러 일으키더군.
그러다 우리 부부는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지.
보다 못한 큰 아들이 나랑 남편이랑 작은 아들을
권총으로 싸서 죽이고나서 자기도 쏴서 죽었어.
그렇게나 악다구로 살던 삶이란 게 일장춘몽이야.
죽고나니 정말로 열반이고 입적이고 해탈이야.
서부영화에서도 드센 악당들도 총맞으면 조용해지잖아.
참으로 방방뜨며 살던 나도 가슴에 총 한방 맞고나서
조용해지며 편해지며 涅槃인 Nirvana에 들어가더군.
그렇다쳐도 여기서도 시원하게 지울 수 없는 게 미련이야.
내 못된 야망을 줄였다면 내 못된 탐욕을 줄였다면.
그저 낭만주의자 남편이 켜는 바이올린 소리나 들으며
맑은 아내로 넓은 엄마로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제 와 후회한들 소용없지만 그냥 지금 심정이 그래.
權
力
貪
慾
<전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