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결국 사람의 삶을 바꾸는 일이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정치가 민생을 움직이기보다 민생이 정치의 희생양이 되는 모습이 더 자주 보인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 시간이 흘렀지만, 국민이 체감하는 현실은 여전히 고단하다. 물가는 안정되지 않고, 고용은 불안하며, 전·월세 시장은 혼란스럽다. 그 와중에 사회는 갈등과 불신으로 더욱 분열되고 있다. 이 정부의 핵심 과제는 결국 ‘민생 회복’과 ‘국민 통합’, 그리고 외교적 위기 속에서 국익을 지켜내는 능력이다.
1. 복합위기의 민생
한국 경제는 여러 겹의 위기를 동시에 맞고 있다. 인플레이션과 경기 둔화, 부동산 불안, 고령화와 생산성 정체가 얽혀 있다. 가계 부채는 사상 최고치이고, 자영업자 부채 비율은 이미 경고선을 넘어섰다. 청년층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공시 낭인’으로, 중년층은 고용불안 속에 ‘사직 예비군’으로 불린다.
이재명 정부는 실용적 경제정책과 복지 확충을 병행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정책의 잦은 수정과 번복으로 국민 신뢰는 흔들리고 있다. 민생은 정책의 숫자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라는 점에서, 정부의 가장 큰 과제는 ‘정책의 일관성’과 ‘현장의 신뢰 회복’이다.
2. 통합을 가로막는 진영화
민생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사회 전반의 분열이다. 정치권의 극단적 대립은 일상이 되었고, 여야 모두 민생을 외치지만 그것은 종종 상대를 공격하는 수단이 된다. 정부 또한 진영 정치와 법적 공방 속에서 통합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렵다.
통합은 선언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노동시장, 교육, 주거, 복지 영역에서 격차가 완화되지 않는 한, 사회는 결코 하나로 묶일 수 없다. 정책의 공정성과 제도적 안전망이 선행되어야 하며, 감정적 화해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3. 외교적 압박과 국익
국내 민생과 통합 문제 외에도, 외교적 압박이 정부를 시험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이 미국과의 무역 합의의 일환으로 약속한 대미 투자금 3500억 달러(약 497조 7000억 원)를 ‘선불 지급’으로 요구하며 압박을 가하고 있다. 지난달에도 트럼프는 “한국에서 3500억 달러를 받는다”며 반복적으로 강하게 주장했다. 우리 정부는 ‘현금 직접 투자’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일부 대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외교적 협상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이는 단순한 금액 문제가 아니다. 민생 회복과 통합 정책에 필요한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하는 상황에서, 외부 압박은 국내 정치의 불확실성을 배가시키는 요소가 된다. 따라서 정부는 내부 개혁과 외교적 대응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4. 통합은 정책으로, 정치의 품격으로
통합은 ‘선언’이 아니라 ‘행동’이다. 국민이 서로 싸우지 않도록 만드는 사회적 안전망, 공정한 경쟁 구조, 투명한 행정이 통합의 실질적 조건이다. 이재명 정부가 통합을 말하려면, 먼저 국민의 피로와 분열의 뿌리를 이해해야 한다. 지속되는 지역 편차, 세대 갈등, 정치 불신은 단순한 감정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부동산·교육·노동·복지의 불균형이 그대로인 한, 통합은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또한 정치적 품격의 회복이 필요하다. 대립과 비방 대신, 협력과 설득의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 대통령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정치는 상대를 이기는 기술이 아니라, 국민을 이롭게 하는 지혜이기 때문이다.
5. 다시, 사람으로 돌아가야 한다
민생과 통합의 위기는 곧 정치의 인간성 상실에서 비롯된다. 권력의 언어가 아니라 사람의 언어로, 승리의 논리가 아니라 공감의 언어로 돌아가야 한다. 국민은 완벽한 정부를 바라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감각을 되찾길 바랄 뿐이다.
민생이란 삶의 무게를 함께 짊어지는 것이고, 통합이란 서로 다른 상처를 껴안는 일이다. 이재명 정부가 진정한 리더십을 발휘하려면, 정책보다 마음을, 경쟁보다 신뢰를, 그리고 권력보다 사람의 존엄을 먼저 세워야 한다.
맺으며
오늘의 한국은 위기와 가능성이 공존하는 나라다. 경제는 흔들리고 정치의 신뢰는 약해졌지만, 국민은 여전히 성숙하다. 이재명 정부가 이 시대의 짐을 짊어진 이상 그 책임은 단순한 정권 운영이 아니라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잇는 일이다. 민생이 회복되고, 통합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정치가 제 자리를 찾는다. 그 길은 멀고 험하지만, 정치가 사람을 향해 다시 걸어간다면, 그 길 끝에는 아직 희망이 있다.
◇ 박철 : 감리교 은퇴목사, 시인. 생명과 영성, 사회적 실천을 주제로 글을 써왔다. 매일 자작시 한편을 지인들과 나누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어느 자유인의 고백』, 『시골목사의 느릿느릿 이야기』, 『행복한 나무는 천천히 자란다』, 『목사는 꽃이 아니어도 좋다』, 『낙제 목사의 느릿느릿 세상 보기』 등이 있다